[코뮨] 거대한 전환 5~6장 _0916일(토)
윤도현
/ 2017-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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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시장패턴의 진화
(1) 사회제도와 경제체제
시장, 물물교환 혹은 판매 및 구매를 목적으로 하여 이루어진 만남의 장으로 기존 사회제도와 달리 별도의 경제적 제도이다. 사회제도에서 상호성의 원리는 대칭성의 사회조직, 재분배의 원리는 집중화의 사회조직, 가정경제의 원리는 자급자족의 사회조직에 기반하지만, 물물교환은 앞 세 가지 다른 원리들과 다른 특별한 제도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시장으로 인해 경제가 여러 사회관계 안에 묻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여러 사회관계가 경제체제 안에 묻어 들어가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회제도와 별도로 존재하는 경제체제가 스스로 작동하게 틀을 갖추면, 시장경제는 오직 시장을 존중하는 사회에서만 작동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단일한 시장경제, 고립되어 따로 존재하던 시장을 뭉쳐 단일한 시장경제를 만들고 또 규제를 받던 시장을 뭉쳐서 자기조정 시장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자연적인 결과가 아니고 지극히 인위적인 자극제를 사회라는 몸체에 억지로 주입하여 생겨난 결과가 자기조정 시장의 출현이다.
현재 정설로 통하는 경제사 이론은 사실상 시장 자체의 중요성과 의미를 끝없이 과장하는 관점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어떤 사회에 시장이 없다고 해도 거기에서 올바르게 추론할 수 있는 바가 그 사회가 일정한 고립과 폐쇄적 경향과 같은 경제적 특징을 가진다는 것 뿐이지, 어떤 경제의 내부 조직이라는 점에서 보면 시장이 있고 없고는 아무런 차이도 낳지 않는다.
(2) 중세도시 --> 대외무역, 마을장터
시장은 경제의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작동하는 제도이다. 시장은 원거리 무역의 만남의 장소이며 마을장터는 공동체 생활에 중요한 일부인 동네사람들의 장터였다. 역사 속의 다양한 공동체들 사이에서 외부와의 무역은 끊임없이 이루어졌지만, 이는 시장을 통한 것이 아니라(물물교환이 아닌) 모험, 탐험, 수렵, 해적질, 전쟁 등의 성격을 띠고 있다. 혹여나 평화적이라 해도 상호성의 원리이지 물물교환의 원리는 아니다.
대외무역, 마을장터, 국내시장은 단순히 크기의 차이가 아니라 기원과 기능 자체가 모두 상이한 제도들이다.
대외무역은 장거리 운송에 관한 문제이며, 마을장터는 장거리 운송에 적합하지 않거나 견딜 수 없는 것들이다. 이 두가지는 지리적 거리의 문제로 상호보완의 관계로 보면 된다.
국내시장은 본질적으로 경쟁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서로에게 없는 물품을 주고받는 상호 보완적인 교환 행위와 달리 다른 원천에서 나오느 비슷비슷한 물품들이 서로서로 경쟁하는 장이며, 교환거래도 대외무역이나 마을장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더 많다.
그러면 국내 혹은 전국시장의 기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자연스럽게 물물교환을 행하는 개별 행위들이 시간이 흘러 마을장터로 발전하고, 그렇게 해서 시장들이 존재하면 자연스럽게 국내 혹은 전국 시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가의 개입으로 시장이 만들어 졌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중세를 보면 한자동맹은 독일의 경제생활을 전국화 하기는커녕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가면서 도시 주변의 배후지를 교역과 단절시켰고 농촌 지역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마을장터와 원거리무역의 단절을 통해 큰 자본에 의해서 도시의 여러 제도가 해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응한 전략이었으며 이러한 보호와 배제를 집행하는 것이야 말로 중세도시가 존재하는 근본적 이유였다.
(3) 영토국가 --> 국내시장
국내시장은 자본주의적 방법으로 영업하던 도매상들이, 이러한 중세도시들 때문에 국내시장 혹은 전국시장이 갖가지 장애물에 부닥쳐 창출되지 못한다 주장하며 국내시장 혹은 전국시장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이 전국화되어 한 나라의 국내상업이 창출되어야 하며 영방국가(영토국가)라는 도구가 전면에 등장하는 수밖에 없었다.
15~16세기에 나타난 형태의 국가는 교묘한 계획으로 인해 각 도시들을 중상주의 치제를 받아들이도록 하여 비경쟁적 상업을 가르는 장벽을 무너뜨림으로써 시대적 수명이 다해버린 마을 장터 및 도시 간 무역의 배타주의를 분쇄해버렸고 그를 통해 전국적으로 통일된 시장을 만들어갔다.
경제적 요구가 정치적변화를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는데, 결국 정치의 차원에서 주권이라는 새로운 권력을 확립한 국가는 전 국토를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 경제적인 도구를 이용했는데 그것이 자본이다. 행정이라는 것도 결국 중앙정부의 정책을 시행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중세도시가 자신의 특권을 이용하여 가두어놓았던 상업을 해방시키는 데에도 국가 개입이 필요했지만, 또 그 도시들이 성공적으로 풀었던 독점과 경쟁의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국가의 개입이 요구되었다. 특히 경쟁보다 더욱 두려움을 샀던 것은 독점이었다.
독점행위는 생필품을 볼모로 삼아서 공동체 전체의 재난을 만들었다. 그래서 국가는 전국차원의 규제를 내 놓았고, 그리하여 국내시장은 경쟁적 성격을 띨 수 밖에 없었지만 중상주의 시절 시장체제에서의 지배적인 경향은 경쟁보다 바로 규제라는 전통적인 특징이었다.
중상주의가 이룬 상업의 자유화라는 것은 그저 배타주의에서 교역을 풀어놓을 것 이상이 아니었고, 오히려 규제의 지리적 범위를 한층 더 확장해놓을 것이었다. 경제체제는 일반적인 여러 사회관계 속에 잠겨있었고, 시장은 단지 당시의 제도적 구조에 딸려 있는 특징 이상이 아니었으며, 그 제도적 구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의 권위에 의해 통제 및 규제되고 있었다.
제6장 자기조정 시장 그리고 허구 상품 : 노동, 토지, 화폐
(1) 자기조정시장
우리 시대 이전에는 시장이 경제생활에서 부속품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시장은 중앙집권화된 행정 체제의 통제 아래에서만 규제와 함께 자라났다.
시장경제란 오로지 시장만이 통제하고 조정하며 방향을 지도하는 경제 체제이다. 재화의 생산과 분배의 질서는 자기조정 매커니즘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이런 종류의 경제는 인간이란 그의 화폐 수익의 극대화를 달성하는 방식으로 행위하게 되어 있다는 예측과 기대에서 도출되어 나온 것이다.
자기조정시장은 모든 생산은 시장에서의 판매를 목적으로 하며, 모든 소득은 생산물을 시장에서 판매한 것에서 나온다는 것을 함축. 재화만이 아니라 노동, 토지, 화폐 시장도 포함되며 그 가격은 임금, 지대, 이자라 불린다. 즉, 산업의 모든 요소에 대한 시장이 형성되어야 한다.
자기조정시장에는 국가와 국가 정책에 관한 전제가 붙는다. 어떤 시장이든 그 형성을 금지하는 것, 시장 판매 이외의 방법으로 소득이 형성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시장 조건 변화에 따른 가격 등락을 방해하는 것은 없어야 하며, 시장의 활동에 영향일 미치는 정책과 법안은 용납되지 않는다. 오로지 시장만을 경제 영역을 조직하는 유일한 권력으로 만드는, 즉 시장의 자기조정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책과 법안들만 합당하다.
봉건제 및 길드체제에서는 토지와 노동이 사회 조직 자체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었다. 토지는 봉건 질서의 중추적 요소로서 소유권의 이전, 그 제약, 용도 등은 모두 판매와 구매 조직과는 전적으로 다른 제도적 규제 영역에 들어가 있었다. 노동 조직도 마찬가지였다. 마스터와 직인의 관계, 생산 기술의 조건, 도제의 수, 노동자 임금 등은 모두 길드와 도시의 관습과 규칙의 규제를 받았다.
중상주의는 국가정책으로 상업화를 강력하게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바라보는 사고방식은 시장경제와 정반대였다. 길드, 도시, 지방 등은 관습과 전통의 힘에 호소하려 든 반면, 새로 나타난 국가는 법령과 포고에 의지했으나 이들 모두는 노동과 토지와 상업화라는 관념에는 혐오감을 가졌다. 영국, 프랑스에서 18세기 마지막 10년이 되기 전까지 자유로운 노동시장이나, 자기조정 메커니즘에 맡겨진 시장이라는 생각은 상상 속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기조정 시장은 사회를 정치 영역과 경제 영역으로 제도적으로 분리한다는 엄청난 요구지만, 이러한 분리가 가능하다는 추론은 오류에 바탕을 둔 것이다. 경제 질서란 이를 안에 포함한 사회적인 것들의 한 기능일 뿐이다. 앞서 밝힌 대로, 부족 사회, 봉건 사회, 중상주의 조건 어디서든 사회에서 경제가 분리된 적은 없다. 따라서 19세기 사회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탈의 사례다.
(2) 허구 상품 : 노동, 토지, 화폐
시장경제는 노동, 토지, 화폐를 포함한 산업의 모든 요소를 포괄해야 한다.
노동은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 자체이며, 토지는 사회가 그 안에 존재하는 자연환경이다. 이것이 시장 메커니즘에 포함된다는 것은 사회의 실체 자체를 시장 법칙에 종속시킨다는 뜻이다.
노동, 토지, 화폐는 산업의 필수 요소이며 이 또한 시장에서 조직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분명 상품이 아니다. 시장에서 판매하기 위해 생산한 물건이라는 상품의 경험적 정의가 결코 적용될 수 없다.
노동이란 인간 활동의 다른 이름일 뿐으로 인간의 생명과 함께 붙어 있는 것이다. 그 활동은 생명의 다른 영역과 분리할 수 없다.
토지란 자연의 다른 이름일 뿐이며 인간이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화폐란 그저 구매력의 징표일 뿐이며, 은행업이나 국가 금융의 메커니즘에서 생겨나는 것이니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노동, 토지, 화폐를 상품으로 묘사하는 것은 허구다. 현실에서 이들이 거래되는 시장들은 바로 그러한 허구의 도움을 얻어 조직되는 것이다. 시장에서 실제로 판매, 구매되고 있으며, 그 수요와 공급도 현실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