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진실의 용기》 15강, 16강 후기 +3
제이
/ 2017-09-11
/ 조회 1,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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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하는 동안 15강 16강에서 이것이 푸코가 말을 한건지, (세네카의 말인지.. 스토아주의자들의 말인지...)
파레지아를 견유주의에서 찾아내서 말하고 있지만
이전의 견유주의자와 현재 보여지는 이미지에 차이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견유주의적 사명의 윤리적 요소들에서 인내, 경계, 검사 라고 말을 한다.
이것이 스토아적 요소라고 말한다.
그래도 디오게네스의 삶으로 보여준 견유주의도, 헤라클레스의 삶의 모습도 분명 인내는 있었으리라는 생각은 든다.
굴욕, 모욕, 구타를 훈련으로서 수락하는 것이 견유주의적 인내의 또 다른 면이라고 한다. 견유주의적 사유가 에픽테토스 안에서 스토아적 사유에 의해 오염된 부분이 있다고 한다
모욕을 준 사람들과 혹은 그들을 통해 인류 전체와 정서적 관계를 확립하는 기회가 되는 그런 전도로 나타난다고 말하는데
아직도 어떤 형태를 말하고자 하는지 선듯 상상이 가질 않는다.
분명 이로써 견유주의자들은 경계와 검사를 통해 이것을 점검하고 이로부터 자유로워 진다고 하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것이 숨김없는 삶이라는 주제의 견유주의를 말하는 것이겠지만 이러한 극화된 방법만의 진실의 용기를 만드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이것으로 전도되는 삶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가져본다.
물론 푸코가 말하는 부분은 ''자기 자신을 소유하라 (in sepotestatem bahere). 자기 자신이 법이 되는 것(sui juris esse), 다른 낯선 법 아래 놓이지 않는 것(On the shortness of life)'' 과 같은 말을 한 세네카의 말을 인용한다.
자기 안에서 주권적 삶 안에서 쾌락을 누린다고 한다. 그 기쁨이 자기 안에서 진실한 기쁨의 원천과 토대를 만들고
몸의 기쁨이 아닌 외적 대상에 의존한 기쁨도 아니고,
그 어떤 것도 뺏기지 않고 무한히 가질 수 있는 기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말들로 푸코가 말하는 파레지아, 진실의 용기를 가진 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여전히 진실의 용기는 어렵고 내 안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철할적 삶이 아닌가를 생각해본다.
세미나가 진행되는 동안 많이 부족한 나에게 친철한 설명과 발제 당일 늦은 출석에도 따뜻하게 맞아주신 우리 푸코 세미나 회원분들께 넘넘 감사드려요.
이번주가 마지막 세미나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다음에 또 우리 멤버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인~~~!!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유택님의 댓글
유택저도 사실 푸코책을 읽다 보면 이게 누구 말인가.. 아직도! 지금도! 항상! 맨날! 헷갈려요. @.@ ㅎㅎㅎ 마지막 강의록의 마지막 세미나라고 혼자 생각하며 감상에 젖어 있었는데, 오후 나절 제주도에서 이 사진들이 도착했을때 그 순간의 고마움과 감회란! 제이님 후기 잘 읽었습니다. 후기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세미나원에게 양보해야겠죠? ㅋㅋㅋ 개인적으로 세미나 시간에 제이님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던것 같네요. 이렇게 아숩게 마지막 시간이 되어버리다니. 저녁이라도 같이 잡숫게 일찍 오시라고 말씀드리고프나 또 시간 여건상.. 이번주 목욜 세미나 시간에 건강한 얼굴로 만나요~ ^^
소리님의 댓글
소리
제이 님 후기 감사합니다. 스토아와 견유주의가 말하는 주체가 되는 것은 자유로운 삶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금욕적인 모습도, 퍼포먼스적인 모습도, 여러가지의 모습이 나타나지요. 내 안의 진실을 찾아가는 방법은 각기 다르겠지만
이런 시간을 통해 고민하면서 한 발짝 나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될거라 생각합니다.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오우 ~ 쾌락.... 작은 것으로 쾌락을 극대화 할수 있는 방법... 정말 알고 싶습니닷~~
다음책에서 비법을 알려주길 기대합니닷~
이번주 내용은 전에 읽은 점점 감을 잡을랑 말랑한 견유주의자에서 또 다른 스토아적 견유주의를 이야기 해서 ~~
혼돈 ~~
그래도 다들 잘 정리해주셔서 이해하는대 많은 도움이 댔습니다.
항상 감사해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