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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발제_발터 벤야민: 화재경보 <서론>
희음 / 2017-09-11 / 조회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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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화재경보_<서론> 및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읽기-들어가는 말

 

 

20160905. 희음.

 

역자 양창렬은 이 책에 대한 장점을 세 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 뢰비가 ‘크고 작음을 구별하지 않고’ 테제들 모두를 한 줄 한 줄 곱씹으면서 우리가 그 테제들을 이해하고 ‘인용 가능하게’ 만들어준다는 점. 지금껏 비상사태, 현재 시간, 파국과 메시아주의, 성좌, 변증법적 이미지, 회억 등의 개념은 각각 개별적으로 연구대상이 되어 왔지만 그것을 한 데 모아 논리적 연관성 아래 연구한 작업은 없었기에 이 저작은 의미가 크다. 둘째, 뢰비의 역사철학 테제 독법은 명쾌하고 설득력 있다. 그는 벤야민을 어느 한쪽의 철학자로 규정하지 않고, 낭만주의+메시아주의+(비정통) 맑스주의라는 면모를 지닌 사상가로 규정하며 글을 풀어나간다. 셋째, 뢰비는 벤야민에 대한 프랑스 내 연구의 수준을 알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러나 역자는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가 하나의 텍스트로 읽혀야 할지, 텍스트‘들’로 읽혀야 할지에 대한 의문을 여전히 품는다. 예컨대 그 테제의 가능한 다섯 개의 판본을 예로 들면서. 뢰비가 택한 것은 벤야민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던 바타이유에게 맡겼던 1940년 판과 그가 손수 프랑스어판으로 의역한 원고의 비교의 방법론이다.

 

 

1장. 서론: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에서의 낭만주의, 메시아주의, 맑스주의

 

벤야민에 대한 기존 수용은 그를 미학적 측면에 우선 집중되었고, 특히 문화사가로서의 측면을 부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사유의 휠씬 광범위한 차원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 그의 성찰은 하나의 전체를 구성하며, 그 안에서 예술, 역사, 문화, 정치, 문학, 신학은 분리 불가능하다.

그는 또한 진보와 보수, 혁명적 혹은 회고적 사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어느 한 쪽으로의 분류를 벗어난다. 벤야민은 진보의 철학에 대한 혁명적 비판가이자, 진보주의를 공격하는 맑스주의자이며, 과거를 돌아봄과 동시에 미래를 꿈꾸는 자이며, 유물론의 낭만주의적 지지자이다. 그는 분류 불가능하고 모든 사조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상가(아도르노)이다. 하버마스는 벤야민에 대해, ‘근대의 (미래 개방적) 시간 의식의 퇴화’를 공격하며 이를 되살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지금 시간’의 주요 개념들을 통합하지는 못했다. 서구 근대성에 대한 대서사의 정당성을 벗겨내고 진보의 담론을 해체하고 역사의 불연속성을 변론한 벤야민의 철학을 포스트모더니즘에 우겨넣는 일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의 사유는 서사 너머에 있지 않으며 해방의 서사의 비정통적 형태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현재를 비판하는 혁명적 방법으로 활용한다. 즉 전자본주의적인 문화적·역사적 참조 대상들에 영감을 받은 (자본주의적/산업적) 근대성에 대한 근대적 비판을 취한다. ‘시간성’ 개념을 근거로 하이데거와 그를 나란히 놓는 일도 위험하다. 벤야민은 하이데거에 대해 ‘현상학을 위해 역사를 추상적으로, 역사성을 통해 구원하려고 시도했지만 허사로 끝났다.’라고 비판했다.

벤야민은 그의 역사철학의 세 가지 원천, 독일 낭만주의, 유대 메시아주의, 맑스주의를 절충하거나 종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극도로 독창적인 새 개념을 창안해 내고 있다. 연금술적 융해 작업을 통해 현자의 황금을 제조해 내는 일처럼. 브레히트에게 영향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조언한 아도르노에게, ‘제 사유가 움직이는 이런 식의 진폭, 또는 합치 불가능해 보이는 사물들과 사상들을 하나로 모으는 자유는 위험이 닥칠 때 비로소 그 진정한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했듯이.

벤야민의 사유의 운동을 이해하려면 몇 가지 핵심 테마들의 연속성과 동시에 그의 지적·정치적 궤적을 수놓는 다양한 전환점과 단절점을 고려해야 한다. 스테판 모제스는 그의 사유의 진화보다는 지층화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했다. 벤야민의 낭만주의적 세계관의 경우, 근대(자본주의) 문명을 전근대적인(전자본주의적인) 가치를 내걸고 문화적으로 비판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생명 양화와 기계화, 사회적 관계의 사물화, 공동체 와해, 세상의 탈주술화를 향한 비판이자 항의. 그의 회고, 즉 그의 혁명적 낭만주의의 목적은 회귀가 아닌 과거로의 우회, 그것을 통해 유토피아적 미래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의 낭만주의에 대한 관심은 초기 낭만주의(슐레겔)에 대한 것에서 출발했고, 그것은 그의 미학적, 신학적, 역사철학적 생각들 모두에 녹아들어 있다. 청년 시절, 그는 ‘우리는 자연적인 것이 지닌 밤의 측면에 대한 강력한 통찰을 낭만주의에 빚졌다’고 썼다. 인간은 일하는 기계로 변했고 노동은 단순 기술로 전락했으며 사람들은 사회 메커니즘에 굴복했고, 과거의 ‘영웅적-혁명적 노력’은 진화와 진보의 안쓰러운 걸음으로 대체됐다고 한탄했다(<현재의 종교성에 관한 대화>). 진보 이데올로기에 대한 공격이 복고적 보수주의가 아닌 혁명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 그는 또한 사회에서 제기되는 진정한 물음이 ‘플라톤과 스피노자, 낭만주의자들과 니체의 형이상학적 물음들’이라고 말하면서 역사적 시간성의 물음을 담지한 그만의 역사철학을 열어내기 시작한다(<대학생활의 삶> 안에 그 단초가 들어있다고 뢰비는 본다.).

‘진보주의의 무정형한 경향’에 맞서는 메시아적이고 혁명적인 유토피아 이미지를 벤야민은 그의 박사학위 논문인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의 서론에서, 낭만주의의 역사적 본령은 ‘낭만주의적 메시아주의에서 구해야만 한다’는 말과 함께 제시한다. 슐레겔의 다음 말을 인용하면서. “신의 나라를 실현하고자 하는 혁명적 소망이야말로······근대 역사의 발단이다.” 그는 ‘낭만주의적 메시아주의에서 귀결’되는, 인류 생명 전체를 ‘생성’이 아닌 무한한 ‘실현’ 과정으로 보고자 한, 무한한 시간의 질적 개념(질적인 시간적 무한성)과 근대 진보 이데올로기의 특징인 무한히 공허한 시간(시간의 공허한 무한성)을 대립시키기도 하는데, 이는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의 테제들과도 유사하다.

메시아의 왕국과 혁명이라는 ‘유토피아의 이미지’ 사이의 관계는 <신학적·정치적 단편>에서 일정부분 논의된다. 그는 ‘어떤 역사적 현실도 그 자체로부터 메시아주의와 연관되기를 바랄 수 없다’고 하면서 ‘자유로운 인류의 행복 추구’라고 정의한 세속적인 것들이 ‘메시아 왕국의 도래를 촉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메시아적이고 유토피아적이고 낭만주의적인 그의 사유는 1924년, 그가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을 읽으면서, 또 아샤 라치스를 통해 공산주의를 발견하기 시작하면서 발현된다. ‘철학의 비판적 상황 속에서 계급투쟁의 비판적 상황을 파악했고, 만기된 구체적 혁명에서 절대적 전제를, 더구나 이론적 인식의 절대적 성취와 최종 결정권을 파악’했다고 루카치의 책을 평가하면서 벤야민은 ‘계급투쟁’이라는 역사적 과정에 대한 시각을 명확하게 한다.(뢰비는 <폭력비판을 위하여>에서 그가 공산주의를 처음 참조하는 것을 통해 공산주의와 아나키즘의 연결이 이후 벤야민의 정치적 진화의 중요한 측면이 된다고 본다.) 그의 역사적 유물론은 반진보주의적 직관과 절합됨으로써 당대의 지배적인 ‘공식’ 맑스주의와 구분되는 비판적 성격을 획득한다. 이런 절합은 <<일방통행로>>에서 처음 나타난다. 즉 그는 ‘화재경보기’라는 소제목 아래, 만일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부르주아지의 전복이 ‘경제와 기술의 진화에서 대략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어느 시점에 이르기까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모든 것이 끝장이다. 불이 다이너마이트에 이르기 전에 타고 있는 심지를 자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썼다.

벤야민은 혁명을 경제적이고 기술적인 진보의 자연적이고 불가피한 결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파국으로 이끄는 역사적 진화의 중단으로 인식한다. 이런 혁명적 비관론은 억압받는 계급의 해방에 봉사한다. 그가 보기에 부르주아 정당과 사회민주주의의 낙관론보다 가소로운 것은 없었다. 그의 비관론은 관조적 감정이 아닌, 능동적이고 조직된 실천적 비관론인바, 전적으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최악의 도래를 막겠다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그의 단편 <초현실주의>에서 그는 “전방위적인 비관론. 절대적으로 그렇다. 문학의 운명을 불신하고 자유의 운명을 불신하고, 유럽의 인류의 운명을 불신하며, 무엇보다 계급 간의, 민족 간의, 개인 간의 모든 소통을 불신, 불신, 불신하기이다. 그리고 I.G. 나염회사와 공군력의 평화적인 완성에 대해서만 전폭적으로 신뢰하기이다.” 그는 일찌감치 위기에 처한 산업/부르주아 문명이 낳을 수 있는 끔찍한 재난들을 예감했다. 그의 혁명적 비관론은 혁명적 멜랑콜리로 나타나기도 한다. 초현실주의 선언을 열어낸 브루통과 그는 공통된 행보를 이어가는데, 그 둘에게 공통된 것은 고딕적 맑스주의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문화의 마술적 차원에, 봉기의 어두운 순간에, 섬광처럼 혁명적 행동의 하늘을 찢는 조명에 민감한 역사적 유물론.

벤야민이 1935년 바호펜에 관해 쓴 서평에서 그는 낭만주의적 원천을 참조하는 바호펜의 저작은 역사의 벽두에 존재하던 공산주의 사회를 불러냄으로써 맑스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을 매혹시켰다고 말함으로써, 낭만주의적 계기를 맑스주의에 연결짓는다. 특히 바호펜이 제시하는 모계 사회에 주목했는데, 고도의 민주주의와 공민적 평등, 그리고 권위 개념에 대한 (진정한) 전복을 함축하는 원시 공산주의의 형태들이 존재했을 수 있다고 말한다. 보들레르에 관한 시론에서도 그는 보들레르가 말하는 ‘만물 조응’을 근대의 붕괴에 대한 거부에 영감을 주는 경험이라 하며, 그것의 작용을 촉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물조응은 회억의 자료들이다. 그것은 역사의 자료들이 아니라, 전사의 자료들이다. 기념 축제일들을 중요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이전 삶’과의 조우이다.” 만물 조응은 잃어버린 낙원이 그것을 통해 미래에 투사되어 등장하는 유토피아라 할 수 있다.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1939년 체결된 독일과 소련 간의 상호불가침 조약)은 소비에트 체제를 ‘미래의 전쟁에서 우리에게 이익이 될 대행인’으로 여길 수 있다고 희망을 표한 그의 기대를 배반하는 것이었다.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는 그 경험을 통한 새로운 맥락으로 쓰여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화재경보기’에서 말하는 화재경보는 벤야민의 저작 전체가 자신의 동시대인들에게 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장.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읽기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는 1940년 초, 벤야민이 비시정권(유대계, 맑스주의자인 독일 난민을 게슈타포에게 넘기는) 아래의 프랑스에서 탈출 시도 직전에 쓰여진 글이다. 호르크하이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글에 대해 그는 ‘우리가 보는 방식(좌파의 역사 개념에 출몰하는)과 실증주의의 잔재들 사이에 돌잉킬 수 없는 분열을 수립하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텍스트를 보는 세 가지 시선이 있는데 그것은 유물론적 학파, 신학적 학파, 모순 학파의 세 입장이다. 벤야민은 맑스주의와 신학적 사유의 모순의 야누스적 얼굴을 가진 자이지만 그 얼굴은 하나의 머리 안에 존재하므로, 그 둘은 하나의 사고의 두 표현일 뿐으로 보아야 한다. 구원과 혁명. 그것은 ‘친화력’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뢰비는 벤야민의 명제들을 수차례의 읽기를 통해 다르게 읽음으로써 그 텍스트만의 보편적 사정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그것은 억압받는 계급의 역사뿐 아니라 인류의 절반인 여성, 유대인, 집시, 아메리카 인디언, 흑인, 성소수자, 요컨대 모든 시대와 모든 대륙의 천민들의 역사를 ‘패배자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그의 관심을 읽어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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