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 발제 <발터 벤야민: 화재경보 테제1-7번> +3
우주
/ 201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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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뢰비, 『발터 벤야민: 화재경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테제1번-7번
1. “사람들이 ‘역사적 유물론’이라고 부르는” 인형(또는 꼭두각시)만으로 승리할 수 없다.
- 이는 ‘진정한’ 역사적 유물론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사람들이란 당대의 맑스주의의 주대변인 즉 제2~3차 인터내셔널의 이데올로그들이다. 이런 기계적 유물론에서는 생산력 발전, 경제적 진보, ‘역사의 법칙’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의 최종 위기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공산주의 판본) 또는 사회를 점차 전화시킬 개혁(사회민주주의 판본)이 귀결된다고 보지만 벤야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 “시험에서 승리한다”는 의미는 a) 역사를 정확히 해석하다, 억압자들의 역사관에 맞서 싸우다, b) 역사적인 적 자체, 즉 지배 계급(1940년 파시즘)을 무찌르다는 이중의 의미다. 이는 이론과 실천이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역사에 대한 올바른 해석 없이는 파시즘에 맞서 효과적으로 싸울 수 없지는 않더라도 어렵다.
2. 시험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역사적 유물론은 신학이 필요하다.
- 여기에서는 기계 안에 숨은 작은 난쟁이가 신학이다. 이 우화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멜첼의 체스 기사」(1836)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 단편의 철학적 결론은 “자동기계의 작동이 다른 사물이 아닌 정신에 의해 조절된다는 것은 완전히 틀림없다”고 했다. 포가 이야기한 정신이 벤야민에게 신학, 즉 메시아적 정신이 된다. 그것이 없다면 역사적 유물론은 “시합에서 승리”하지 못하며, 혁명은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 합리화된, 무신앙의 시대에 신학은 자신을 감춰야 하는 “왜소하고 흉측”하거나 “쪼글쪼글하고 평판이 나쁜 노파”(벤야민의 프랑스어 번역)이다. 벤야민은 이 규칙에 순응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고찰은 역사철학 테제의 준비 자료에 집어넣은 『파사젠베르크』관련 노트의 고찰과 유사하다.
- 벤야민에게 신학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테제를 검토해감에 따라 더 명확해지겠지만 신학은 근본적인 두 개념을 가리킨다. 회억과 메시아의 구원(Erlösung)이다. 이 두 개념은 테제들이 구축하는 새로운 ‘역사의 개념’의 본질적 구성요소들이다.
3. 신학과 유물론의 관계
- 먼저 신학적 난쟁이(=신학)는 자동기계(=인형=유물론)의 주인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말미에는 난쟁이가 자동기계의 ‘시중을 든다’고 적혀 있다. 이 역전은 벤야민이 둘의 변증법적 상보성을 보이려 했다는 것 같다는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신학과 역사적 유물론은 서로의 주인이자 하인이며, 서로를 필요로 한다.
- 신학이 유물론의 ‘시중을 둔다’는 생각은 철학이 신학의 시녀라는 스콜라주의의 전통적 정의를 뒤집는다. 벤야민에게 신학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신학은 억압받는 자들의 투쟁에 봉사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신학은 (역사적 유물론의) 에피고넨들에 의해 자동기계로 환원된 역사적 유물론의 폭발적이고 메시아적이고 혁명적인 힘을 복구하는 데 쓰여야 한다. 이어지는 테제들에서 벤야민이 표방하는 역사적 유물론은 신학에 의한 소생, 이 영적 활성화의 결과물이다.
4. 테제1번에 대한 이견과 미카엘 뢰비의 평가
1) 게르하르트 카이저는 벤야민은 “맑스주의를 신격화한다”며 “진정한 역사적 유물론은 진정한 신학”이라고 봤다. 이런 해석은 하나를 다른 하나로 환원함으로써 두 구성요소 사이의 평형을 파괴한다.
2) 크리스타 그레프라스는 “역사철학 테제의 신학은 과거의 전통을 현재의 경영자들의 손에서 뽑아내는 데 필요한 …… 보조 구성물”이라 봤다. 이런 해석은 신학에 대해 지나치게 우연적이고 도구적인 시각을 제공할 위험이 있다.
3) 하인츠-디터 키트슈타이너는 “역사적 유물론은 맑스주의자로서 현재와 맞서고 회억이 신학자로서 과거에 맞선다”고 봤다. 그러나 이런 분업은 벤야민의 어떤 이념에도 상응하지 않는다.
5. (가장 많은 몰이해와 난감함을 낳은) 벤야민의 ‘신학과 맑스주의의 연합’과 라틴아메리카의 해방 신학
- 맑스주의와 신학을 체계적으로 접합하는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우고 아스만 등의 수많은 저자들이 쓴 텍스트들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변화시키는 데 한몫했다. 지난 30여 년간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적․정치적 반란 운동 대부분은 어느 정도 해방신학과 관련 있다.
- 해방신학은 벤야민의 ‘혁명 신학’과 많은 점에서 매우 다르다. 라틴아메리카 신학자들은 벤야민은 몰랐다. 또한 해방신학은 (유대교 신학이 아닌) 그리스도교 신학이다. 게다가 최근 수십 년간의 라틴아메리카 상황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 유럽의 상황과 매우 다르다.
- 그럼에도 벤야민이 꿈꾼 신학과 맑스주의의 연합이 역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가능하고 유익할 뿐 아니라 혁명적 변화를 담지하고 있음을 밝혔다.
테제 2번
1. Erlösung(구원)이라는 개념
- 이 단어는 rédemption(구원)으로도, déliveance(석방)으로도 옮길 수 있다. 벤야민은 그 개념을 개인의 영역에 위치시킨다. 개인적 행복은 제 자신의 과거의 구원, 즉 그럴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한 것의 완수를 함축한다.『파사젠베르크』[N 13a, 1]에서 발견되는 이 테제의 이본에 따르면 행복(Glück)은 과거의 버림받음(Verlassenheit, 신에게서 버림받아 느끼는 완전한 고독감)과 절망(Trostlosigkeit, 낙담, 암울함)에 대한 복구를 함축한다.
- 테제 2번은 역사의 영역 위에서 개인의 구원으로부터 집단적 복구로 시나브로 넘어간다. 이를 이해하려면 헤르만 로체(1817~1881)의 인용구를 담고 있는『파사젠베르크』를 참고해야 한다.
2. 독일 철학자 로체와 호르크하이머의 영향
1)『파사젠베르크』[N 13, 3]에서 벤야민이 인용한 로체의『소우주』(1856~64)의 발췌문에 따르면, 고통을 겪은 영혼들이 행복과 완전함/완수에 대한 권리를 갖지 못하면 진보는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로체는 지난 시대의 요구들을 무시하는 역사 개념, 지난 세대의 고통이 돌이킬 수 없이 사라졌다고 여기는 역사 개념을 거부한다. 진보는 지난 세대를 위해서도 신비한 방식으로 완수되어야 한다고 로체는 주장한다. 이런 생각은 테제 2번에 거의 그대로 나온다. 테제 2번은 무엇보다 과거의 희생자들을 역사적으로 회억하는 것으로서 구원을 이해한다.
2) 호르크하이머가『사회연구지』(1934)에 게재한 앙리 베르그손에 대한 논문에 나타난 역사 의식(“영원에 대한 믿음이 붕괴되어야 하는 지금, 역사기술은 그 자신도 사라져갈 행인에 불과한 현재의 인류가 과거로부터의 고발에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상고 재판정이다.”)에 힘입어 과거의 부정의를 지양한다는 생각은 벤야민의 의도와 딱 맞는다. 벤야민은 이런 생각에 신학적 차원을 부여한다. 벤야민은 회억에 구원이라는 신학적 성격을 할당한다. 회억은 완전히 끝난 듯이 보이는 과거 희생자들의 고통을 “미종결된 것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은 신학이다. 회억은 안에 숨었지만 너무 ‘직접’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신학이라는 난쟁이가 수행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3. 구원의 의미 해석
- 구원은 신학적 방식으로도 세속적 방식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속세의 용어로, 구원이란 억압받은 자들의 해방을 뜻한다.
- 메시아적/혁명적 구원은 지난 세대가 우리에게 귀속시킨 과제이다. 우리 자신이 메시아고 모든 세대는 메세아적 권능의 단편을 소유하고 있다. 각 세대는 그 단편을 발휘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 신은 부재하며 메시아적 과제는 전적으로 인간 세대에게 귀속된다. 유일하게 가능한 메시아는 억압받은 인류 자체이다. 구원은 자기-구원이다. 맑스에게 ‘자기-구원으로서의 구원’이란 인간이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는 것이며, 노동자의 해방은 노동자 자신의 작업이 될 것이라는 세속적 등가물로 표현된다. 벤야민은 맑스와 달리 과거에서 온 요청(역사의 희생자들의 요구)의 중요성을 보았다.
4. 메시아적 권능이 희미한 이유
- 사도 바울이 고린도인에게 보낸 둘째 편지(12장 9~10절)에 대한 벤야민의 참조를 엿볼 수 있다. 메시아에게 “권능은 약함 안에서 완수된다”. 이 표현은 현재의 정치적 의미도 들어 있다. 과거와 현재에 실패한 해방 전투에서 벤야민이 끌어낸 멜랑콜리한 결론을 뜻하기도 한다. 구원은 보장되어 있지 않고 포착하는 법을 알아야 하는 아주 작은 가능성일 뿐이다.
5. 테제 2번은 과거(역사, 회억)로 정향하는 동시에 현재(구원하는 행위)로 정향된다.
- 메시아적 권능은 능동적이다. 구원은 현재에 실현되는 혁명적 과제이다. 테제 1번이 환기하듯이, 막강하고 위험한 상대에 맞서는 시합에서 승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지상에서 기다려졌다.” 이는 패배자들을 망각에서 구해내기 위해서, 그들의 해방 전투를 지속하기 위해서, 가능하다면 완수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 벤야민의 구제 요청은 과거를 단순히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능동적으로 변혁하는 것이다.
테제 3번
1. 연대기 기술자를 선택한 까닭
- 벤야민이 바라는 ‘완전한’ 역사 즉 변변치 않은 사건도 배제하지 않는 역사, 그리고 어떤 것도 상실되지 않는 역사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벤야민이 보기에는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레스코프, 프란츠 카프카, 안나 제거스가 연대기 기술자의 근대적 형성에 포함된다.
2. 구원 즉 최후의 심판, 아포카타스타시스
- 아포카타스타시스는 문자 그대로 만물이 본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복음서에서는 메시아가 천국을 복귀하는 것을 뜻한다. 만물의 회귀 내지 만사의 끝에 이뤄진 화해의 귀환은 로체가『소우주』에서 꿈꿨던 생각이다. 다른 말로 하면 벤야민이 「신학적․정치적 단편」(1921)에서 말하던 완전한 원상복구 내지 모든 것의 원상복구이다.
- 벤야민은 숄렘이 『유대 백과사전』(1932)의 「카발라」항목에서 말한 티쿤(만물이 처음 상태로 회귀하는 것으로서의 구원)에 영향을 받았다. 벤야민이 작성한 테제 3번의 프랑스어 판본에서는 “복구되고, 구제받으며, 회복된 인류”라고 나오는데 이는 아포카타스타시스와 티쿤을 참조한 것이다.
- 테제 3번에는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아포카타스타시스의 유토피아적-혁명적 차원은『파사젠베르크』를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벤야민은 초현실주의는 “아포카타스타시스를 향한 욕망, 다름 아니라 ‘너무 이르게’ 온 요소나 ‘너무 늦게’ 온 요소, 즉 최초의 발단과 최후의 해체의 요소를 혁명적 행위와 혁명적 사고 속에서 다시 응집시키려는 결단”에 영감을 받은 운동이라 평가했다. 망각된 전투의 회억, 시대를 거스르는 시도의 구제, 사회주의의 ‘상실된’ 유토피아적 순간의 아포카타스타시스는 현재, 지금 여기(jetzt)의 혁명적 성찰과 실천에 봉사한다.
- 벤야민은 유토피아적 희망을 지닌 과거의 모든 측면의 혁명적 문화/교양을 풍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맑스주의도 그것이 수세기에 걸친 해방 투쟁과 꿈의 유언을 계승하고 실행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테제 4번
1. 헤겔의 텍스트를 빌린 이유
- 기독교 복음서의 잘 알려진 구절을 아이러니하게 뒤집은 것이다. 헤겔은 여기서 가장 기본적인 유물론을 증언하고 있다.
- 여기에 테제 2-3번과 이어지는 구원의 테마를 결부시킨다. 물질적 삶의 혁명적 변혁 없이는 구제도 없다는 것이다. ‘신의 왕국’은 엥겔스가 『독일 농민 전쟁』(1850)에서 소개한 토마스 뮌처의 개념을 상기시킨다. “뮌처에게 신의 왕국은 어떤 계급 차이도, 어떤 사적 소유도, 사회성원들에 맞서는 국가 권력도 없는 사회와 다르지 않다”고 했는데 벤야민은 그 개념에 신학적 사정을 완전히 세속화시키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2. 맑스의 학교(역사적 유물론)의 의미
- 벤야민은 브레히트처럼 “투박하고 물질적인” 사물들의 우위를 주장한다. (그 다음은 친구와 달리) 계급투쟁에서 정신적․도덕적 힘에 주된 중요성을 부여한다. 신념(Zuversicht[확신]을 번역하기 위해 벤야민이 택한 단어), 용기, 끈기가 그것이다. 정신적 것의 목록에는 ‘브레히트적인’ 두 가지, 즉 유머 그리고 특히 억압받은 자들의 기지도 들어간다.
- 벤야민에게는 (맑스가 달리) 계급투쟁에서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변증법이, 즉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라는 기계적인 모델을 벗어나는 변증법이 존재한다. 투쟁의 쟁점은 물질적이지만 사회 행위자들의 동기는 정신적이다. 만일 어떤 도덕적인 힘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면 피지배 계급은 해방을 위해 싸울 수 없을 것이다.
- 벤야민에게 역사적 유물론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추상적인 철학적 유물론이 아니라 계급투쟁이다. 계급투쟁은 이론과 실천이 합치되는 장소이다. 벤야민은 계급투쟁에 어떤 맑스주의자들보다 열정적이고 강렬하며 외곬으로 매달렸다. 그가 관심을 기울인 것은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 사이의, 착취하는 자와 착취받는 자 사이의,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 사이의 결사 투쟁이다.
- 벤야민은 (맑스와 엥겔스의『공산당 선언』(1848)에 인식과 달리) 역사를 ‘아래로부터’, 패배자들의 편에서, 마치 주류 계급의 일련의 승리로 인식한다. 그렇지만 억압받는 자들은 매번 새로운 전투에서 기성의 지배를 의문에 부칠 뿐 아니라 과거의 이 승리들도 의문에 부친다.
3. 태양이라는 상징
- 태양의 은유는 독일 노동자 운동의 전통적 이미지였다. 사회민주당의 옛 찬가에는 “형제들이여, 태양을 향해, 자유를 향해”라는 구절이 있다. 거기서 중요했던 것은 현재를 비추는 미래의 태양이었다. 여기서는 현재의 태양에 힘입어 우리에게 과거의 의미가 변환하게 된다.
- 현재의 투쟁은 억압하는 자들의 역사적 승리를 의문에 부친다. 그 투쟁은 과거든 현재든 지배 계급이 지난 권력의 정당성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벤야민은 ‘과거 부르주아지가 거둔 승리를 역사의 법칙, 생산력을 발전시켜야 할 필연성, 사회적 해방을 위한 조건의 미성숙으로 정당화한 진화론적 맑스주의’에 암묵적으로 맞서고 있다.
- ‘태양’은 ‘진보주의’ 좌파의 전통에서 생각하는 필연적이고 불가피하며 ‘자연적으로’ 도래하는 신세계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 자체, 그 투쟁을 고취하는 유토피아를 상징한다.
테제 5번
1. 이미지(현재의 순간과 더불어 사라질 위험이 있는, 복원할 수 없는 이미지)의 해석
- 테제 5번의 첫 번째 판본은 이미 1937년의 푹스 관련 시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벤야민은 전통적인 역사가의 관조적 태조에 맞서 역사적 유물론의 능동적 개입을 강조한다. 벤야민의 목표는 어떤 파편이 현재의 어떤 순간과 함께 형성하는 비판적 성좌를 발견하는 데 있다. 테제 준비 노트(「<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관련 노트들」) 중에는 “이런 [현재] 개념은 역사 기술과 정치 사이에 연관을 만들어내는데, 그 연관은 회억과 구원 사이의 신학적 연관과 동일하다. 이런 현재는 사람들이 변증법적이라고 칭할 수 있는 이미지들 속에 표현된다. 그 이미지들은 인류를 구제하는 개입을 나타낸다.”
- 몇몇 신학적 개념과 그것의 세속적이고 혁명적인 등가물 사이에 일종의 동일성이 있다는 벤야민(본인에게는 본질적인 생각이지만)의 역설적 생각을 다시 발견한다. 다른 한편 ‘구제하는 개입’의 대상은 과거뿐 아니라 현재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역사와 정치, 회억과 구원은 떼려야 뗄 수 없다.
- 벤야민은 헤겔-맑스의 ‘변증법’ 개념을 끌어와 과거와 현재, 이론과 실천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의 지양을 목표로 하는 ‘구제하는’ 이미지의 본성을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2. 트로츠키의 ‘영구 혁명’(1905~06)의 변증법적 이미지와의 유사성
- 1905년 러시아 혁명과 1871년 파리 코뮌 사이에 존재하는 비판적 성좌를 지각하는 것에 바탕을 둔다. 하지만 정치적 역사가/행위자에게 “불현듯” 나타난 일시적 이미지는 사라져버렸다.
3. 미카엘 뢰비의 정리(?)
a) 벤야민이 고민하는 문제는 역사적 진리에 대한 독점을 내세우는 것이 절대 아니며, 그 진리를 사회 전체에 주입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b) 스탈린의 기구는 과거나 미래의 그 어떤 변화도 부정하면서 불변하고 최종적이며 완전히 고정된 진리를 소지하겠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벤야민은 일시적이고 취약하며 “불현듯” 보일 뿐인 이미지를 말한다.
c) 벤야민에게는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기구나 국가를 위한 자리는 없다. 역사가는 늘 당대에 이해되지 않을 위험을 무릅쓰는 한 명의 개인이다.
테제 6번
1. 역사주의적/실증주의적 역사 개념의 거부
- 이 테제는 프로이센의 보수주의 역사가 랑케의 “역사가의 과제는 그저 ‘사실 그대로의’ 과거를 묘사하는 것이다”로 대표되는 역사주의적/실증주의적 역사 개념을 거부하면서 시작한다. ‘실제’ 사태에 직접 접근한다면서 중립을 자처하는 역사가는 사실상 모든 시대의 승리자, 왕, 교황, 황제의 시각을 공고히 할 뿐이다.
- 역사적 주체, 다시 말해 억압받는 계급들(그리고 그들의 진영을 택한 역사가)에게 위험의 순간은 과거의 진정한 이미지가 솟아오르는 순간이다. 그 순간은 역사를 진보로 보는 시각을 와해시킨다. 현재의 패배의 위험은 이전의 패배들의 대한 감수성을 예민하게 만들고, 패배자들의 전투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며, 역사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고무한다.
- 위험의 순간에 변증법적 이미지가 “섬광처럼 번득일” 때, 역사가 또는 혁명가는 정신이 깨어 있음을 입증해 보임으로써 너무 늦기 전에 이 유일한 순간, 즉 구제를 할 수 있는 이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갑작스런 위험의 순간에 나타나는 이 기억은 마침 “자기를 구제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위험은 이중적이다. 과거의 역사(억압받은 자들의 전통)와 현재의 역사적 주체(이 전통의 ‘새로운 수탁자들’인 피지배 계급)를 지배 계급의 도구로 변환시킬 위험. 전통을 탈취하려는 타협주의에서 전통을 뽑아내기, 이는 ‘공식’ 역사가들이 누그러뜨리고 마멸시키거나 부인한, 기성 질서를 전복하는 역사의 차원을 역사(예컨대 프랑스 혁명의 역사나 1848년의 역사)에 복원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역사적 유물론의 지지자는 “과거 속에서 희망의 불씨를 일으”킬 수 있다. 오늘 화약에 불을 당길 수 있는 불씨를.
- 억압받는 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과거는 ‘진보주의’ 역사기술에서처럼 정복의 점진적 축적이 아니다. 과거는 오히려 종결되지 않고 이어지는 파국적인 패배이다. 로마에 맞선 노예 폭동의 진압, 16세기 재침례파 농민 반란의 진압, 1848년 6월의 진압 등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2. 현재의 문제, 현재의 적은 ‘파시즘’
- 억압받는 자들에게 파시즘은 역사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큰, 최고의 위험을 대표한다. 벤야민은 보들레르에 관해 작성한 글(1939)에서 오늘날 군중은 “독재자들의 손으로 빚어진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벤야민은 절망하지 않고 “이 예속된 군중에게서 저항의 핵을 어렴풋이 느꼈다.”
3. ‘적그리스도를 극복하는 자’로 오는 ‘메시아’
- 티데만은 “다른 어디에서도 벤야민은 여기처럼 직접 신학적인 방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다른 어디에서도 벤야민은 이만큼 유물적인 의도를 가진 적이 없다”고 했다. 메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적그리스도에서 지배계급을 알아봐야 한다. 덧붙이자면, 메시아의 세속적 등가물(‘조응하는 것’)은 오늘날 반파시스트 저항의 핵이요, 1848년 6월과 1871년 4~5월의 전통을 계승하는 미래의 혁명 대중이다. 적그리스도(벤야민이 명시적으로 유대교에서 영향 받은 메시아적 논변을 펼치며 주저 없이 통합한 그리스도교적 신학소)의 속세적 대응물은 아돌프 히틀러의 제3제국임에 틀림없다.
- 개신교 신학자이자 스위스의 혁명적 사회주의자였던 프리츠 리프는 1934년부터 나치즘을 ‘근대의 적그리스도’라고 정의했다. 벤야민의 친구 리프에게서 이런 영감을 얻어 제거스의 소설『구제』에 대해 1938년에 쓴 서평에서 “제3제국은 사회주의를 흉내 낸다. 마치 적그리스도가 메시아의 약속을 흉내 내듯이”라고 썼다.
테제 7번
1. Einfühlung[감정이입]이라는 개념의 도입
- 벤야민의 퓌스텔 드 쿨랑주(19세기의 실증주의적․반동적 프랑스 역사가)에 맞서는 논쟁은 랑케와 독일 역사주의에 맞서는 앞선 테제들의 논쟁을 연장한다. 과거는 현재에 비춰볼 때만 이해될 수 있다. 과거의 진정한 상은 일시적이며 불안정하다.
- 벤야민은 여기서 Einfühlung[감정이입]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데 프랑스어 번역은 ‘identifcation affective'[감정의 동일시]라고 번역했다. 그는 역사주의를 승리자와의 동일시라며 고발한다. 벤야민에 따르면 지배자들의 행렬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감정이입의 기원은 태만(acedia)에 있다. 이는 마음의 나태함, 멜랑콜리를 가리키는 라틴어이다. acedia와 Einfühlung의 관계는 테제 7번에서는 찾을 수 없다.
- 그 문제의 열쇠를 『독일 비애극의 원천』(1925)에서 찾을 수 있다. acedia는 인간의 행동에서 일체의 가치를 박탈하는 전능한 숙명에서 느끼는 멜랑콜리한 감정이다. 그 결과 태만은 기존 사물의 질서에 전적으로 복종하도록 이끈다. 마음의 나태(태만)에 지배되는 멜랑콜리에 빠진 자는 아첨하는 신하(궁신)이다. 궁신은 배반한다. 궁신은 운명에 복종함으로써 승리의 진형에 합류하기 때문이다.
2. 타협주의 역사가 비판
- 바로크적 궁신의 근대적 등가물이 타협주의 역사가이다. 벤야민은 퓌스텔 드 쿨랑주의 예를 들었지만 빅토르 쿠쟁 역시 비슷하다. 쿠쟁은 『철학사 입문』(1828)에서 경탄스러울 만큼 우아아게 성공과 ‘도덕성’을 연합하는 인상적인 ‘승리자의 철학’을 전개한다.
3. 니체에게 받은 영향
- 니체(「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1873))가 보기에 악마는 성공과 진보의 진정한 스승이다. 역사가의 덕이란 실재의 참주에 맞서고, “역사의 파도를 거슬러 헤엄”치며, 그 역사에 맞서 투쟁할 줄 아는 것으로 이뤄진다. 벤야민은 이런 감정을 전적으로 공유했다. 벤야민은 역사의 “윤기가 잘잘 흐르는 털”(프랑스어로 번역할 때 사용한 아이러니한 표현)을 결대로 쓰다듬는 자들을 따라 하기를 거부했다. 니체의 비판은 반역하는 개인, 영웅, 나중에는 넘어가는-자[초인]über-mensch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반대로 벤야민의 비판은 문명, 진보, 근대성이라고 불리는 위엄 있고 웅장한 수레의 바퀴 아래 깔린 자들과 굳게 결속되어 있다.
4. “곁을 거슬러 역사를 솔질하라”의 의미
- “결을 거슬러 역사를 솔직하기”의 의미는 무엇보다 오늘날에도 땅에 깔린 자들의 몸 위를 넘어가는 개선 행렬에 합류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 이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a) 역사적 의미: 역사의 공식 판본에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을 맞세움으로써 전자의 흐름에 거슬러 가는 것. 이런 시각에서 지배 계급의 역사적 연속성은 하위 계급의 봉기에 의해 이따금 중단되는 개선 행렬로 파악된다.
b) 정치적(현재적) 의미: 구원/혁명은 사물의 자연적 흐름, ‘역사의 방향’, 불가피한 진보 덕분에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흐름을 거슬러 투쟁해야만 한다. 그대로 놔두거나, 털의 결 방향으로 쓰다듬을 경우, 역사는 새로운 전쟁, 새로운 재난, 새로운 형태의 야만과 억압을 낳을 뿐이다.
- 여기서 (초현실주의에 관한 논문(1929)에서 “비관론을 조직할” 필요성을 요청한) 벤야민의 혁명적 비관론과 다시 만난다.
5. 문화와 야만의 관계
- 벤야민은 문화와 야만을 변증법적으로 모순적 통일성인 양 제시한다. 개선문은 문화의 기념비의 현저한 예인 동시에 확고하게 전쟁과 살육을 축하하는 야만의 기념비이다. 벤야민의 이런 건축물에 대한 관심은 『파사젠베르크』와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에서도 확인된다.
- 벤야민은 이 텍스트를 쓰면서 브레히트의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1935)을 생각했다.
- 고급 문화는 노예, 농민, 노동자 같은 직접 생산자들(그들 자신은 문화재의 향유에서 배제된)의 익명적 노동 없이는 그것의 역사적 형태로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문화재는 계급적 부정의, 사회적․정치적 억압, 불평등에서 생겨난 이상, 그리고 그것의 전승이 살육과 전쟁을 거쳐 이뤄지기에 “야만의 기록”이다. 벤야민이 테제 6번에서 강조하듯이, 문화와 전통은 사회적․이데올로기적 지배 체계 안에 그 문화를 통합시킴으로써 “지배 계급에게 도구”가 된다.
- “곁을 거슬러” 문화사를 솔질한다는 것은 문화사를 패배자, 배제된 자, 천민의 관점에서 고찰한다는 뜻이다.
- 벤야민이 “문화적 포퓰리즘”의 신봉자라는 말은 아니다. 벤야민은 “고급 문화”의 작품들을 반동적인 것으로 간주해 거부하기는커녕, 그것들 상당수가 공공연하게 혹은 은밀하게 자본주의에 적대적이라고 확신한다.
- 벤야민은 문화의 전복적이고 반부르주아적인 형태들을 수호하는 데 관심이 있다. 이를 위해 벤야민은 그 형태들이 문화적 기득권층에 의해 방부 처리되고, 중화되고, 판에 박히고, 상찬되는 것을 막았다. 지배 계급이 과거 문화의 불꽃을 꺼트리지 못하게 막고, 그 불꽃을 노리는 타협주의로부터 [과거] 문화를 빼내는 것이 관건이다(테제 6번).
6. “결을 거슬러 역사를 솔질하라”는 의미에서의 라틴아메리카의 예
- 수세기 동안 발견․정복․포교의 ‘공식’ 역사는 헤게모니를 쥐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정치․문화의 무대를 점령한 유일한 역사였다. 1911년 멕시코 혁명이 일어나고 나서야 이 헤게모니는 이의제기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디에고 리베라가 그린 프레스코화(1930)는 라틴아메리카 문화사의 진정한 전환점이었다. 이 프레스코화는 콘키스타도르의 우상을 파괴하는 탈신비화 작업을 했고, 예술가는 인디언 전사들에게 동감을 표했기 때문이다. 40년 뒤 우루과이 출신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라틴아메리카의 절개된 혈맥』(1971)에서 이베리아 출신자들의 식민지 개척에 대한 기소장을 식민지 개척의 희생자들과 그들의 문화, 인디언들, 흑인 노예들, 메스티조의 관점에서 설득력 있는 총론의 형태로 작성한다.
- 스페인, 유럽, 미국이 콜럼버스의 도착을 기념하려고 준비했던 것과 달리, 과테말라의 쉘라후(마야 문화의 보루 가운데 하나)에서 1991년 10월에 개최된 라틴아메리카 회의는 ‘인디언, 흑인, 민중 저항 5세기’를 기념할 것을 호소했다. 등등.
댓글목록
우주님의 댓글
우주이상하게 발제문이 짤리네요. ㅜㅜ 파일에는 모두 있습니다.
우리실험실님의 댓글
우리실험실
[ 자료 업로드시 텍스트 잘림현상에 대한 대처 ]
한글.워드문서를 복사해서 홈페이지에 붙여넣을 때, 텍스트가 부분만 나타나는 잘림현상이 생깁니다.
그것은 한글.워드문서에서 웹문서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한글.워드문서의 속성(밑줄, 볼드, 크기)들이 웹문서의 html태그로 변환되어 용량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한글.워드문서의 텍스트를 복사해서 -- 메모장에 붙였다가 다시 복사해서 -- 홈페이지에 올리면,
원본문서의 속성들이 지워지면서 잘림현상이 해소됩니다. ^^*
우주님의 댓글
우주아. 감사합니다. ^^ 덕분에 수정해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