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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마지막 세미나 후기 0914 +7
유택 / 2017-09-15 / 조회 2,129 

본문

진실로 애정했던 울 푸코 세미나 마지막 후기입니다.

 

세미나 교재 [콜레쥬 드 프랑스 강의록]

비정상인들 2016 715 ~ 819

정신의학의 권력2016 92 ~ 1014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2016 1021 ~ 1125

안전, 영토, 인구 2016 129 ~ 2017 120

생명관리정치의 탄생2017 23~ 310

주체의 해석학2017 3 24~ 616

진실의 용기2017 76~ 914

 

개인적으로 추가로 읽은 책

미셸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헤테로토피아》 미셸 푸코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 이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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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개월의 장정 끝에 한국에 번역되어 나와 있는 모든 미셸 푸코의 <콜레쥬 드 프랑스> 강의록 7권을 완독했습니다. 이해가 되는 부분, 헷갈리는 부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부분도 텀벙텀벙 자신 있게 건넜습니다. 물론 세미나원들의 부축이 없었더라면 혼자서는 절대 할 수 못했을 인간적으로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푸코 세미나를 끝내면서 푸코에 대한 제 느낌들을 정리해 기록해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회되면 나중에 푸코의 정식 저서들(<감시와 처벌><광기의 역사><말과 사물><성의 역사1,2,3>)에 대해서,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살짝 예측하고 꿈꿔보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입니다. 연대기 순으로 읽어왔던 푸코의 강의록들이 하나의 시간적 선분위에서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양상의 논의들은 아니었습니다. 각 책 마다 다른 논의들이 있고 심지어 마지막 강의록들에는 푸코의 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논점이 많이 바뀌기도 하는데요. 전 이렇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무언가 한 큐에 꿰뚫으려는 일목요연한 중심 줄기를 찾는 행위 그 자체가 이미 근대적 사유 방식이라고요. 푸코도 사람이고 변화하는 인간이고 생각도 유동하고 그래서 자신의 삶도 변해갔듯이 말이죠. 오로지 그 수많은 책들을 관통하는 것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말 그대로 푸코의 삶, 실존 그 자체였다고요. 그 긴 과정을 변화라는 격자 속에서 다양하게 받아들이고 싶었어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기대했던 그 정답은 실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니까요.

 

푸코는 지금의 인식으로 치자면 동성애자였습니다. 본인은 죽을때까지 그런 성정체성의 규정속에 포획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의 사춘기시절 자살시도에 이를 정도의 수많은 콤플렉스와 우울이 있던 소년이었고요. 그런 개인적 배경과 학문에 대한 재능이 푸코를 철학자의 길 위에 서게 한 것 같습니다. 끝까지 삶과 세계, 인간, 권력, 규율, 국가, 자본주의, 사랑과 성(sex)등에 지치지 않는 열정과 호기심을 가지고 우리가 보지 못했던 그 이면을 보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각 시대마다 세계를 바라보는 각자의 고유한 격자가 있다는 것, 즉 그 시대의 진술진실체계를 따져 보아야 한다고 푸코는 말합니다. 그랬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였던 것들이 왜 그 시대의 진리로, 진실로 등극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멋있는 제목이라고 생각이 드는 이비정상인들에서 푸코는 묻습니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 그것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렇게 나뉘어져서 통제되어야 하는 인구집단과 사회 구조, 권력의 작용 방식에 대해서 말 하고자 했습니다. 흔히들 권력은 어떤 주체로부터 뻗어 나오는 추상적 형상으로 우리들은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푸코가 말하는 권력은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용, 하나의 효과이지요. 권력 효과 혹은 효과로써의 권력. 그래서 꼭 거대한 국가 주권 권력 이런 말 없이도 우리 삶 속에 무수히 작용하고 있는 미시권력(규율권력)효과들도 논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다르게 보는 순간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푸코 말년의 글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정신의학의 권력에서 시종일관 말하는 것은, 드디어 근대에 접어 들어서면서 정신과 의사가 종교인들과 여러 도덕주의자들을 제치고 제 일의 근대적 규율 감시자로 탄생하는 과정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근대의 병리학적 신체가 탄생하지요. 인간의 몸은 더 이상 우주적 리듬을 간직하고 있는 소우주가 아니라 드디어 낱낱이 파헤쳐져서 규율권력이 내면화 되는 신체로 바뀝니다. 이제 더 이상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상태라고 말 할 수 있겠지요. 자기 검열과 규율적 삶을 의문 없이 당연히 받아들이고, 통제하기 쉬운 동일한 삶으로 살아가면서 경쟁하는 지금의 우리 삶을 돌아보게 만들지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안전, 영토, 인구 이 두 책은 푸코 세미나 기간 중 가장 읽기 힘들었고 불성실했던 개인적 시간이었습니다. 기독교 이야기가 당연히 밑에 깔리면서 사목권력에 대한 이야기, 인종이라는 말의 등장, 국가/민족의 형성,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작동되었던 우리가 미쳐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권력작용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인구라는 통계치로 묶어 생각함으로써 작용된다는 말이 기억이 납니다. 이전의 권력은 즉 주권권력은 죽게 하고 살게 내버려두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권력은 살게 하고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도 이때 즈음의 강의록에서 나옵니다. 정말 소스라치게 놀라운 말이었습니다. 잠실 세모녀 사건도 그렇고 지금 우리 주위에 그대로 적용 가능한 푸코의 말들이었지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은 제 개인적으로 그나마 이해 가능하고 살갗에 와 닿는 이야기들인지라인상 깊게 그리고 열심히 읽었습니다. 사회제도등등 이 모든것들이 절차들의 총체속에서 권력효과를 낳고 있다고 말합니다. 최저생계비나 기본소득 이야기를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그것도 실은 호모에코노미쿠스즉 인간 하나 하나를 자본주의의 그물망에서 빠져나가지 않게끔 최저 수준의 생활을 보장해줌으로써 여전히 초라한 그러나 경제적인(소비하는) 주체로 살게 하는, 이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구성원으로 영원히 살아가게 하는 기제입니다. 우리 모두들의 인식과 감각이 자본주의적이라면 그렇게도 입이 마르도록 비판하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유토피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드리야르는 implosion(내파)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요. 즉 내부에서 모순에 모순을 거듭하며 내부 폭발해 버린다는 뜻이겠지요. 푸코는 여기서도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이 책에서는 끊임없이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정말이지 미친듯이 끝까지 뚫어지게 응시합니다. 우리가 대체 어떤 경제적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요.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전율했던 것 같습니다. , 나는 이런 세상에 살고 있었지 이런 세상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었지 하는 깨달음의 순간들도 여러 번이었고요.

 

드디어 주체의 해석학에 이릅니다. 주체의 해석학은 책 제목부터가 사람을 끌어당겼습니다. 1년전부터 이 책을 읽고 싶어서 달려왔던 시간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빡센 2017년도 1학기 맑스 자본 수업과 겹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포기를 할까 말까 정말 끝까지 망설였던 책이었던 만큼 참 소중하다고나 할까요. 자기 돌봄 자기에 대한 배려가 이 책의 주제이였지요. 그럼으로써 타인 돌봄까지 확장됩니다. 이때까지 우리 근대인은 코키토(사유나는 나)라는 데카르트의 개념의 세례로 우리는 여전히 인격적 주체로서 스스로를 상정하고 살아갑니다. 푸코는 반대합니다. 들뢰즈처럼. 주체는 해석해야 하는 어떤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만들어져가는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해석이 필요치 않습니다. 해석을 한다는건 무언가의 관점으로 평가된다는 말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겠지요.  

 

진실의 용기는 뭔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푸코 책 읽는 근기도 좀 떨어지고 푸코가 말년에 이르러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다는 개인적 건방짐과 합쳐져서 조금 읽기 힘든 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비슷비슷한 말들의 반복적 느낌도 들었지요. ‘파레지아라는 말이 이 책의 핵심 키워드 입니다. 진실하게 나를 대하고 타인을 대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는데요. 시시콜콜하게 오지랖 넓게 간섭하며 살자는 말은 아닐 듯 합니다. 타인을 속일 순 있어도 마지막 내 자신을 속일 수 없는 법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나 자신부터 돌아보고 거기서부터 시작하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리에겐 진실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주체의 해석학》진실의 용기》는 연결되는 책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주체와 진실과의 관계에 대해서 결국 푸코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것이겠지요. 진실이라는 것이 따로 저 멀리 있어서 우리가 힘들게 노력해서 발견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진실을 만들어가면서 스스로 주체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푸코는 말하고 있습니다. 정해져 있는 나라는 주체는 없습니다. 어떤 순간, 어떤 상황과의 접속에 따라 나는 또 바뀌어갑니다. 정작 중요한 건 왜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나는 누구인지 심각하게 철학적으로 고뇌하는 코스프레는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보다 지금 이 순간, 실존이라는 말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실천입니다. 밥숟가락 잘 놓기, 양변기 쓰고 뒤에 사용할 사람을 위해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오기처럼 조목조목 찌질해 보이지만 사실 정작 중요한 실존의 기술’, ‘지금의 기술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삶이고 그것들이 주체를 만듭니다. 과거는 지금으로부터 회상하는 것이고 미래는 지금이라는 시점에서 땡겨 생각한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 손에 남는 건 지금 이 순간 이 현재뿐인 것 같습니다.

 

흔히 말하는, 성적을 매기고 줄 세우는 공부가 아닌, 나이 마흔이 넘어 한 이 공부들은 결국 내 삶을 잘 돌보고 타인과 잘 어울려 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상향과 이상화된 내가 되기 위해 어떤 목표점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푸코가 말하는 다른 삶을 살면서 이 세계에서 다른 세계를 구축해 가는 것, 더 이상 동일한 삶을 반복하지 않는 것. 다른 감각으로 기존의 것들을 새로 다르게 느끼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기 변형의 시작일 것 같습니다. 쓰나미 같이 덮쳐왔던 푸코의 무수한 말들의 범람 속에서 어느덧 1년이 지나고 다시 내 삶을 돌아보니 시작도 끝도 잘 모르겠고, 그냥 이 순간 햇빛에 얼굴 탈새라 곱게 썬크림 바르고 즐겁게 룰루랄라 친구 만나러 나가는 길이 내 실존이요 내 삶이요 그래서 더 이상 기존의 의문들은 희미하게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나는 여전히 죽기전까지는 살아 있고 죽으면 나는 없으니 더 이상 따따부따가 필요가 없는 것이겠죠. 지금을 위해서. 그리고 나에게 자신감을 부여해준 멋진 나의 푸코를 위해서 건배하고 싶은 오후입니다. 이상입니다. ^^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길고 멋진 세미나 후기 잘 읽었습니다.
간결한 문장 자체에서 힘과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그러니 따따부따는 접어두고..
조금 감정기복이 심하긴 했지만, 늘 일관되게 성실하고 따뜻하고 매사에 열심이었던 유택에게 1년 2개월 동안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라차님의 댓글

아라차

너무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후기입니다.
그 모든 기복과 변덕이 이렇게 수렴되는 모습을 보니, 왠지 눙물이...는 아니고 ㅎㅎㅎ
어쨌든 푸코와 푸코세미나를 만나게 해 준 유택에게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이후로도 나에게 푸코는 빙꼬뼝 유택이라는 이름과 함께 기억될 것 같습니다.
너의 따따부따에 나도 건배하고 싶네요. ㅋㅋ

뉴미님의 댓글

뉴미

후기를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후기 쓰는 유택~ 유택의 그러한 성실함과 근기에 놀랍고 부러울 따름입니다.
글 재미있게 잘 읽었고요 저도 감사합니다 건배~~~~~! ^^

소리님의 댓글

소리

멋지고 와 닿은 후기 잘 읽었습니다. 그동안 잘 모르겠다와 다 알겠다 사이의 얘기들이 이렇게 쌓여 멋진 후기로 나왔네요.
푸코의 밥상에서 밥을 만들어주고 챙겨주는 유택을 통해, 사소하지만 그래서 중요한 실존의 기술을 봅니다.
멋지고 든든한 회원들 덕분에 저도 여기까지 잘 올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유택님의 댓글

유택

"다들 왜 이래들?? 평소 안 하던 겸손한 말투와 덕담.. 평소 우리 모습들 아니자나~~ 진짜 어색해~~ 그냥 하던대로 해~그냥!"(음성 지원)

10월부터 들뢰즈-가타리 <천의 고원> 수업에서 또 주구장창 얼굴 마주 보고 찌지구 볶아야 할터인데 ㅎㅎ 푸코 세미나가 저의 일생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그 '세미나'라는걸 해 본 건데... 지복론이 맞는것 같아요. 참으로 지 복이었지요. 그런데 사실 '지(You~) 복론'은 에티카 수업 뒷풀이 할때 병권샘한테 배운건데..ㅎㅎ  좋은 사람들 곁에서 많이 배우고 느끼면서 매주 보냈던 그 시간들을 뭐라고 할 수 있을런지요. 그걸 말로 다 표현 할 수가 없네요. 가족도 친한 친구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안 보자나~~~ ㅋㅋㅋ 올 여름 기픈옹달님의 인상 깊었던 <장자> 수업에서 들었던 말이 기억납니다. '지자불언 언자부지 : 아는 자는 말을 하지 못하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고. 다들 건강하게 또 서로 격려하면서 가르쳐주고 배우고 나누면서 계속 같이 공부해나가요. 그 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울 푸코 세미나원들!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오우 ~ 멋찝니닷~
저는 비정상인부터 찬찬히 따라가겠습니다.~
유택님 댓글에 정말 음성지원이 되내요 . 쿄쿄 잘 들립니닷...

전 처음 접하는 푸코였는데 모든분들의 배려로 잘 읽었습니닷~
저 자신을 돌아 보는 좋은 시간이였고, 모두들 감사해욧~~

유택님의 댓글

유택 댓글의 댓글

저에게도 푸코는,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주는 것 같아요.
어찌 푸코를 잊을 수 있을까요.. ㅎㅎㅎ
우리 또 들뢰즈-과타리 에서 만나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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