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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어느 투쟁의 기록> 발제문 (0906)
삼월 / 2017-09-05 / 조회 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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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투쟁의 기록>은 카프카가 20대 초반에 썼다는 악명 높은 소설이다. 서로 잘 연결되지는 않으나 수미일관을 구사하는 몇 개의 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기도자와의 대화>와 <술 취한 자와의 대화>라는 두 단편이 액자 구성으로 조금 변형된 채 삽입되어 있기도 하다. 두 작품은 출판되지는 않았으나, 잡지에 발표된 적이 있다. 다소 길고 복잡하며 몽상에 대한 묘사가 과도하지만, 카프카 작품 전반에 나타나는 특유의 분위기나 어휘들 역시 발견할 수 있다. 카프카가 소설에 조금씩 섞어서 풀어내는 전기적 사실들 역시 이 작품에서도 포착할 수 있다. 전체 구성은 다음과 같다.

 

Ⅱ 오락 또는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증명

1 무동 타기

2 산책

3 뚱보

(1) 풍경에게 말을 걸다

(2) 기도자와 대화를 시작하다

(3) 기도자의 이야기

(4) 뚱보와 기도자와의 계속되는 대화

4 뚱보의 몰락

 

 Ⅰ과 Ⅲ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Ⅱ 안의 이야기들은 ‘무동 타기’와 ‘산책’, 그리고 ‘뚱보’로 연결되는 흐름이다. ‘뚱보’ 안에는 뚱보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삽입된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Ⅰ과 Ⅲ의 등장인물들과 조금씩 겹치는 부분이 있으며, 카프카 자신의 삶과도 닮아있다. 이후의 작품들이나 카프카 삶의 여정에서 그것이 드러난다. 텍스트 이외에 컨텍스트들의 도움을 받는 것을 최대한 배제하고 작품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어렵다. 어쩔 수 없이 이후의 삶이나 작품들에서 이해의 실마리를 조금씩 얻을 수밖에 없다. 그 이해에 기반을 두고 몇 가지 특징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남성들의 세계

 여자친구와 있던 남자가 화자를 찾아와 산으로 가자고 하면서 소설이 시작된다. 소설 속 화자는 소녀에게 사랑받기를 원하지만, 그 이상으로 남성의 인정과 사랑 또한 갈구한다. 소설의 마지막에, 소녀들의 사랑을 받던 남자는 실제로 사랑을 해본 적 없다고 고백한다. 그는 이미 약혼을 했다는 화자의 말에 충격을 받아 자살을 시도한다. 그들은 여성과의 관계가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이어질 거라는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움 속에서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은 늙고 교활한 괴물의 형상으로 변한다. 한편으로 남성에게 사랑받고 칭찬받을만한 매력 넘치는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대화하는 두 사람의 구분은 흐릿해진다. 그들은 원래 한 사람이었던 것처럼 서로의 욕망을 알아듣고, 두려워하며, 함께 걸어간다. 그들은 서로에게 타인이지만, 또한 아버지 대신이기도 하며, 그런 한에서 자기 자신과 다름없다.

 

몽상은 뻔뻔하다

 카프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폭력성이나 뻔뻔함은 몽상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Ⅱ 부분의 이야기들은 대체로 몽상 속에서 진행된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화자는 스스로를 마치 전지전능한 존재처럼 묘사한다. 이때 그가 지금껏 보여주었던 현실에서의 비굴하고 소심한 모습은 사라진다. 화자는 전능한 존재로서 사물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죄책감 없이 타인에게 폭력을 가한다. 친구의 어깨에 무동을 탄 채 배를 발로 걷어차고 목을 조르거나 머리를 때리다가, 그가 넘어졌을 때는 독수리를 불러 감시하게 한다. 몽상 속에서 누군가 운다거나 하는 약한 모습을 보일 때나 귀찮게 할 때는 가차 없이 분노를 표출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그는 울음소리에 몰입한 채 자신의 슬픔 속으로 빠져든다. 누군가의 울음은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환기시키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누가 말하고, 누가 듣는가

 몽상 속에서 가마에 실린 채 물 속으로 가라앉는 뚱보의 이야기를 듣는다. 어쩐지 화자는 뚱보를 구하고 싶어 한다. 뚱보는 자신과 자기 친구인 기도자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하는데, 이야기 속 화자는 산으로 길을 떠났던 처음 소설 속 화자와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기도하는 자와 그를 붙잡아 이야기를 듣는 자도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온화한 날씨 속에서 파괴된 사물과 죽은 사람의 형상을 본다. 그러나 서로에게 자신은 보통사람이며 아주 행복하다는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 뒤에는 상대방의 옷차림과 외모에 대한 칭찬이 뒤따른다. 심술궂은 카프카는 냉정하게 한 문장을 덧붙인다. ‘고백이란 그것을 취소할 때에 가장 솔직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자신이면서도, 그는 상대방이 자신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려 애쓰며 억지로 말을 이어간다고 확신한다. 지난 사교모임의 기억 속에서 그는 구애하던 소녀에게 다시 한 번 거절을 당했다. 술에 취해 피아노를 치겠다고 난동을 부리다 모임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거의 환각 속에서 그는 자신을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하며, 술주정꾼에게 배우는 일이 유익할 거라 믿는다. 그러나 그는 술주정꾼에게 허무맹랑한 이야기만 계속해서 늘어놓을 뿐이다. 더구나 어느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술주정꾼이 아닌가! 그들의 대화는 전혀 독립적이지 못하다. (p. 443) 그들은 ‘목표나 진리에 도달할 의사도 없고, 단지 농담과 환담만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카프카의 소설뿐만 아니라, 과장하여 말하면 문학 전체가 바로 그렇다. 문제는 카프카 자신이, 소설가가, 남성들이 그런 자신을 견디지 못한다는 데 있다. 소녀들의 사랑을 갈구하는 이상으로 소녀들과의 미래가 두렵고 혐오스러운 자신, 평범하고 규칙적인 일상을 영위하고 명예를 얻는 것을 원하는 이상으로 그런 삶을 죽음처럼 절망스럽게 느끼는 자신, 그리고 무엇보다 원하는 만큼 소녀들에게 사랑받지도 못하고 현실에서 명예를 얻지도 못했다는 사실로부터 오는 자괴감.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북돋워주다가 싸우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자신을 찌르기도 한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과 투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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