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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어느 투쟁의 기록> 후기 (0906) +2
삼월 / 2017-09-08 / 조회 1,549 

본문

 

처음 이 소설을 읽고 떠올린 단어는 ‘인정욕망’이었다. 그러다 최근 누군가가 한 말이 떠올랐다. ‘인정욕망을 넘어선 인정투쟁’ 그것은 정말 욕망을 넘어선 투쟁이다. 카프카가 20대 초반에 썼다는 괴물 같은 소설을 읽으며, 나와 세미나 멤버들은 그 인정투쟁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젊은 시절인 동시에,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기괴한 묘사와 도식은 그렇게 현실을 압축해놓은 듯 어느 순간 절묘하게 들어맞아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불편했다. 견유주의자처럼 벌거벗은 진실을 토해놓는 카프카가 느꼈을 고통과 불편을 조금씩 체험했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을 조금씩 불편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카프카가 그랬듯, 현실에서 탈주에 대한 고민들이 시작되는 순간들이었다.

 

카프카는 약한 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카프카 소설 속 인물들은 장애인과 여성과 비천한 신분을 가진 자들을 혹독하게 대한다. 그의 욕망은 누구보다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기를 원하며, 세계 안의 사물과 타인들을 마음대로 다루고 싶어 한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싶어 하며, 남성에게는 존경받고, 여성들에게는 사랑을 받길 원한다. 그러나 실제로 아름답지도 않으며, 원하는 만큼 사랑받지도 못한 카프카는 스스로가 척도 밖으로 밀려난 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소수자이다. 들뢰즈가 지적했듯, 독일어로 소설을 쓰는 체코인인 카프카는 명백하게 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그 감각을 숨기고, 혐오한다. 소수자는 소수성에 대한 혐오를 통해 소수성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하게 자기혐오이다. 약한 자의 약함은 그렇게 공격적으로 표출된다.

 

소설 속 화자들은 불안하고 위태롭다. 자신을 전지전능한 상태라고 느끼는 몽상 속에서도 그들은 나무 위로 쫓겨올라가야만 잠들 수 있다. 잠든 와중에도 누군가 나무에 톱질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 속에서도 주시는 계속된다. 카프카 소설의 힘 중 팔할은 주시의 힘이다. 광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집요하고 끈질긴 주시가 소설 내내 계속된다. 주시는 도피의 상태에서 이루어지지만, 이것은 명백하게 생존을 위한 관찰이다. 카프카에게 세계는 위협으로 가득하고, 사람들의 시선은 끝나지 않는 소송처럼 그를 괴롭힌다. 투쟁은 사는 동안 내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엄청나게 많은 말들, 세미나 시간에 나누었던 뜨거웠던 그 말들을 열렬히 기록하고 싶었는데 투쟁은 사는 동안 내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말을 적고 나니 이미 중요한 모든 말을 마친 것 같은 기분이다. 문학 혹은 소설이라는 주어를 사용하여 우리가 나눈 말들은 카프카의 표현대로 전혀 독립적이지 못하다. 그 말들은 늘 철학이나 신학 같은 다른 학문들에 기대어 있고, 삶이라는 예로 표현하지 못하면 의미가 죽어버린다. 정말로 그랬다. 우리는 ‘목표나 진리에 도달할 의사도 없고, 단지 농담과 환담만을’ 하기 위해 이 세미나의 중요한 시간을 써버렸다. 그리고 그 사실을 뿌듯해하며, 감탄했다. 이 후기는 세미나를 통해 이루어진 우리의 소중한 투쟁에 대한 기록이다. 그 시간을 함께 해 준 일당백의 멤버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자연, 희음, 그리고 토라진.

 

댓글목록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어떤 인물을 떠올릴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죠. 특히 긴 여정의 텍스트를 여행할 때면 더욱 그래요.
사마천은 봇짐을 등에 매고 어깨를 내려뜨린 채 아무 것도 없는, 먼지 날리는 흙길을 걸어가고 있는 뒷모습으로......
도스토예프스키는 상기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나가는 누군가를 다시 불러 세우는 모습으로......등등 말이죠.
그런데 이제 카프카는 높은 나무 위에 올라 앉아 피흘리며 골목을 돌아가는 사람들을 끝까지 지켜보는 모습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어느 순간에는, 피 흘리는 사람이 카프카 자신이 되어 있기도 하고, 높은 곳에 떨어져 기형이 되거나 동물로 변해있기도 하는 카프카를 떠올리게 되기도 하겠죠.
그런데 왜 우리는 카프카의 이런 모습이 자신의 모습인 듯 공감하게 되었던 걸까요?
그 공감이 막막하고 슬프게 다가왔지만,
세마나 시간에 오갔던 뜨거운 공감이 서로에게  말없는 위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일당 백으로 각자의 싸움에 소리 없는 박수를 보내주는 삼월, 자연, 희음님!
감사합니다. ~~^^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싸워나가는 그대들의 불굴의 전투력에 건배!!!!! (카프카를 이야기 할 때는 맨정신으로는 힘들다는.....알코올이 필요하다는 삼월의 말을 떠올리며 잔 높이 들어~~~ㅋ)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지난 시간에 나누었던 이야기들에 대한 메모를 간략히 올립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들을 구체화시켜 비평글을 함께 나누어도 좋을 듯합니다. ~~

카프카 <어느 투쟁의 기록>
1. 상대의 내면에 댓구하는 방식 – 상대의 심리를 읽고 그에 반응하는 방식
2. 연극적인 요소 – 제스쳐들. 배경처럼 보이는 셋트 묘사 (파리), 배우들처럼 묘사되어 있는 인물들.
3. 공부-기도-하지 않음으로써 하는 방식
4. 사색하는 자와 술취한 자의 경계에 선 태도,
5. 끝까지 지켜보는 시선의 중요성 – 싸우는 방식
6. 높은 곳에 올라가 있는 상태 – 관찰, 두려움, 흔들림
7. 가치의 전복과 태도와 상태의 끊임없는 전복
8. 세계의 한계와 개별자인 인간의 한계, 속도의 문제 – 문을 들어가느냐, 들어가기 위해 문 앞에서 분투하는냐 하는 문제는 각자의 속도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와 연결되어 있음. 결국 제스쳐의 문제와 연결, 각자 투쟁의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음 ---- 끝까지 살아남는 것 자체가 투쟁의 가장 적극적인 방식일 수 있는 것
9. 아름다움의 통념 – 새로운 희망이 없다는 것 자체가 아름다움일 수 있음 : 희망이 없다는 것에서 분투의 필요성이 생기며, 그 한계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이 생길 수 있음 – 죽음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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