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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차이와 반복> 사유의 이미지 Ⅱ 후기 (0908) +5
삼월 / 2017-09-09 / 조회 1,851 

본문

 

문제는 차이를 증식시키고, 명제는 동일성으로 수렴한다

 

후기 때문에 골머리 싸매고 있는 저에게 오라클님이 던져준 문장입니다. 감사합니다. 엄두도 안 나던 후기를 이 문장 덕에 시작했고, 어떻게든 끝내볼 작정입니다. 주말에 여행을 떠나 다음 주 초에나 돌아올 예정이기 때문에 사실상 오늘이 아니면 시간이 없습니다. 무슨 전래동화 속 콩쥐도 아닌데, 여행 한 번 가려니 발제에 후기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슬쩍 미뤄볼까도 싶었지만, 그래봤자 살림살이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슬프게도) 금방 깨닫습니다. 유난히 공부하기 싫고, 해도 잘 되지도 않고, 초심 따위 개나 준 요즘이지만 후기라도 끝내놓고 놀러 가면 떠나는 발걸음이 한결 사뿐사뿐 할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차이와 반복의 철학을 가로막는 장애물로서의 공준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여덟 가지 공준들을 일단 한 번 정리해보지요.

1) 원리의 공준 혹은 보편적 본성의 사유

2) 이상(理想)의 공준 혹은 공통감 (인식능력들의 조화로운 일치로서의 공통감과 이 일치를 보증하는 할당으로서의 양식)

3) 모델의 공준 혹은 재인 (모든 인식능력들을 똑같다고 가정된 하나의 대상에 대해 적용되도록 유도하는 재인, 그리고 할당의 수준에서 한 인식능력이 자신의 대상들 중의 하나를 다른 인식능력의 어떤 다른 대상과 혼동할 때 일어나는 오류 가능성)의 공준

4) 요소의 공준 혹은 재현의 공준

5) 부정적인 것의 공준 혹은 오류의 공준

6) 논리적 기능의 공준 혹은 명제의 공준

7) 양상의 공준 혹은 해들의 공준

8) 목적이나 결과의 공준, 앎의 공준 (앎에 대한 배움의 종속성과 방법에 대한 교양의 종속성)

 

이 공준들은 모두 함께 힘을 합쳐 사유의 독단적 이미지를 형성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5)부터 7)까지의 공준들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8)은 다음 시간에! 사유의 독단적 이미지는 오류를 사유 안에서 유일하게 ‘부정적인 것’으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이런 질문이 가능합니다. 사유는 오류를 어떻게 다루는가? 무엇을 오류로 보는가? 초월적 사유인 어리석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리석음은 사유의 구조와 관계의 문제라고 볼 수 있으며, 형상이 부여되지 못한 바탕이 상승하게 되는 것이 바로 어리석음입니다. 공준에 맞춘 사고 안에서 우리가 사유되어야만 할 것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어리석음에 대해 사유하게 됩니다. ‘우리가 아직 사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거나 ‘어리석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게 되는 것이지요.

 

의미에 대해서는 명제와 문제라는 화두가 제시됩니다. 의미는 명제에 의해 표현됩니다. 그러나 의미는 문제 자체 안에 있습니다. 명제가 논리학의 닫힌 질문과 같다면, 문제는 해가 없이 열린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명제가 동일성으로 수렴될 때, 문제는 생성의 힘을 발휘합니다. 문제는 풀렸을 때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문제가 장악되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 모든 사람들이 문제의 중요성을 인정합니다.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헤겔식 변증법이 아닌 소크라테스의 변증론은 문제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문제를 찾아가는 과정을 집요하게 계속함으로서, 답을 찾는 사유의 방식을 깨뜨립니다.

 

사유하기는 사유의 생식성, 생성의 힘을 발휘하는 문제들 속에서만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수긍하면서, 세미나가 끝나고 점심시간을 맞습니다. 세미나의 그 시간들이 왜 그토록 괴로웠는지 돌아보니, 질문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해를 찾으려 한 습관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습관, 이 사유방식을 깨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이 문제일까? 왜 후기 쓰기가 힘들었을까? 질문들이 이어지고, 계속 이어지게 해야만 할 것 같은 밤입니다. 역시나 고달프네요. 다른 세미나원들도 고생 많으셨지만 특히 발제자님, 고생 많으셨어요.

 

댓글목록

선우님의 댓글

선우

어떤 답을 주어진 시간 안에 잘 숙지하는 능력에 점수를 매기고 서열화했던거 같아요.  학교 교육은.
결과르서의 앎(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구성해내는 능력에 참된 배움이 있다는
들뢰즈의 말이 참 해방적이기도 하면서 도전을 줍니다. 그러고보면 정말 그런거같아요. 
어떤 글을 읽을 때, 책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 보다 그 내용과 마주쳐 그 사람이
무엇을 문제로 규정하고 있는지, 다시 무슨 질문으로 향하는지를 보여주는 글에 마음이 더 끌리는 걸 보면요.
게다가 그가 문제로 규정한 것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게 되면.  ㅎㅎ 사랑받겠지요?
통념에 갇히지 않고,  통념 속에 갇혀 보이지 않았던 것을 문제로 끄집어내는 능력!

선우님의 댓글

선우

가벼운 맘으로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놀아요 삼월 님~
공부하는 능력,  밥 하는 능력만큼이나 잘 놀 줄 아는 능력은 소중해요!

유택님의 댓글

유택

세미나 시간에 살짝 조는것처럼 정밀히 관찰 되었으나
이렇게 멋진 후기로 마무리 지으시는군요. ^^
사유란 무엇인가, 말해질 수 없는 것으로써의 진정함.
왜 나는 근대적 사유 방식에서 벗어나야 하는가.
나를 돌보기 위해 무엇부터 시작해야할까.
들뢰즈 텍스트는 전혀 이해 안되었지만
세미나 시간에 들은 이야기들이 자꾸 되새김질성 울림이 되어
자꾸 사람들 따라가고 싶은 호기심 많은 초등생이 되어 가는것만 같습니다.
감사해요 ^^

연두님의 댓글

연두

삼월의 신속하고 깔끔한 후기! 여행 가서 편히 놀겠다는 의지가 보입니다. ^^
아, 정말 들뢰즈의 글에서는 힘이 느껴집니다.
어떤 통념에도, 어떤 명제에도 구속되지 말고 매 순간 새롭게 살라는 이야기처럼 느껴져요.
어리석음은 사유의 바탕 속에 있는 그 운동성이고
의미는 문제 속에 있다. 문제는 해결됨과 동시에 규정된다.
열린 구조에서 사유하는 자가 되라.

삼월님의 댓글

삼월

허접한 후기가 여러분들의 멋진 댓글 덕에 배 부른 한 술이 된 것 같습니다.
댓글들을 자꾸 곱씹어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가끔 그럴 때가 있는데, 어떤 질문을 누군가에게 해 놓고는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고 한참이 지난 후에,
들은 대답이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내가 한 질문과 질문했다는 사실만 기억이 나고요.
그 질문과 대답 사이에 놓인 것들이 무엇이었나 새삼 궁금해지는 밤입니다.
여러 궁금함들 안고, 이번 주에도 금요일 아침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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