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진실의 용기》 0831 후기 +11
유택
/ 2017-09-01
/ 조회 2,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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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용기》 0831 후기
세미나 풍경 스케치
오랜만에 세미나에 참석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사이 세미나 시간에 너무 불성실히 졸았었나봐요. 이미 세미나원들 사이에서 언급 되었던 이야기들인데도 처음 들은 것처럼 화들짝 ‘대체 그거 뭐냐며’ 묻고 구박 받으며 ㅎㅎㅎ^^; 환절기라 울 소리 반장 포함해서 몇몇 분들이 아픈 것 같네요. 다들 잘 회복하세요. 그런 와중에 푸코 원년멤버이자 텍스트 아작녀 울 선우님의 깜짝 푸코밥상 & 세미나 참석으로 탄력 받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참, 푸코의 밥상은 삼월의 빠르고 맛있는, 멸치국물 우려낸 떡만두국 이었습니다. 어찌나 맛있고 시원하던지요. 쩝쩝쩝 게걸스럽게 두그릇을. 술은 안 마시지만 여튼 속 시원히 그리고 따뜻하게 내려갔습니다. 꼭 가을날씨 같은 8월의 마지막날을 멋지게 장식해주는 순간들이었어요. 제 옆에서는 꼭 가을 하늘 같다며 석양빛 받아 멋진 남산을 정신 없이 찍어대던 연두가 있었고요.
노숙자에 대한 이야기
견유주의 요새 우리 많이 이야기 하잖아요. 대체 견유주의가 뭐냐고 스스로 물었을 때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통화의 가치를 바꾸는 자, 정찰병, 척후병, 개, 가치를 전도하는 자, 극한까지 밀어내는 자, 철학적 삶이 곧 진실한 삶인 자. 사는 것으로 그냥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자. 뭐 많습니다. 그러면서 노숙자분들은 과연 자기 선택에 의한 벌거벗은 견유주의자들인가? 아니면 자본의 욕망 전쟁터에서 밀려난 자들인가?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인상 깊었어요.
가치의 전도
그리고 가치의 전도라고 하는 것. 이 개념이 참 어려웠어요. 뭐지? 누구나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과연 가치 있는 것일까 견유주의자는 반문합니다. 가치.. 그 가치를 매기는 기준이 무엇인가.. 니가 가치 있다고 칭송해 마지 않는 그거 극한까지 밀고나가보셔 정말 아름다운가. 추함만 남았다고? 추한건 과연 나쁜건가? 미와 추를 나누는 그 기준은 뭐지? 뭐 이런식으로 밀고나가다가 갑자기 기존의 가치를 뒤집어져 버립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기 생의 주권자가 되어 자기 스스로의 계율을 만듭니다. 그것이 가치의 전도. 통화의 가치를 바꾸는 것이겠지요.
동물성
인간의 동물성 이야기 하면서 재미난 이야기가 오고 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동물이다. 도덕? 윤리? 그거 인간이 동물로 태어났건만, 후천적으로 만든거잖아. 이 동물 같은 인간아 이 짐승 같은 인간아. 이건 안 좋은 말이라고 배웁니다. 동물적이다는 말에는 말초적이고 단순하고 단편적이고 생각이 없는 것으로 배우고 내면화하고 있는데요. 맑스 자본에서도 인간이 노동하는 이유가 결국 (조금 결이 다르긴 하지만) 인간 자기 동물성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함이라고도 하잖아요. 이럴땐 이렇고 저럴땐 저렇고, 흥. 결국 제가 푸코 공부 어설프게 하면서 느끼는점은… “이러쿵 저러쿵 말 좀 그만하시고 좀 제발 직접적으로/몸으로 좀 살아봐라. 되고 싶은 무언가를 꿈꾸고 또 노력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니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라. 하고 싶은 것을 해라. 삶은 지금이다. 욜로족 되라는 말은 아니다.”. 왜 이렇게 무식하게 간단하게 정리를 해버린건진 저도 잘 모르겠지만 ㅎㅎㅎ 결국 제 안의 동물성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이렇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항상 균형이 중한한거죠??? 담론으로써의 철학이 있고 삶으로써의 철학이 있다고 갈라서 생각하고 그럼 난 삶으로써의 철학쪽으로 가겠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분법적 구도를 내면화 한 발상이지 않냐던 아라차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진실 그리고 911 테러 .
잊어버려지지도 않습니다. 2001년 뉴욕의 911테러. 큰 시험을 앞두고 기분 전환차 텔레비전을 켰다가 실시간 방송되는 그 사건에 대한 기억. 폭력에 대한 생각들. 왜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이 무장을 하고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자신들의 진실이 그런 식으로 터져 나올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말이에요. ‘아름다운 테러’라고 이름 붙일 수는 없겠지만,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그건 그들의 진실이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정세에 대한 문제는 <진실의 용기>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거니까 패쓰 ^^; (제가 잘 모르기도 하고)
푸코의 새 책 ‘진실의 괴담’ 출간? 과연 진실?
삼월이 세미나 시간에 잠시 언급한 금년 7월30일에 발간 되었다는 콜레쥬 드 프랑스 새 강의록(1981년) 번역본이 나왔다는 말은 진실이 아닌걸로. ㅋㅋㅋ 궁금해서 방금 찾아보니까 선집 시리즈더라고요. 1권은 <비판이란 무엇인가? 자기수양>이고 2권이 삼월이 ‘진실의 괴담’이라고 말한 <담론과 진실, 파레지아> 입니다. 고로 강의록 번역 아니라는 진실을 알리며 후기 이상입니다.
추신
이번주 후기 담당 올리비아님, 제가 후기 쓴 거 무시하고 후기 써주세요. 그냥 후기 오랜만에 쓰고 싶어서 썼어요. 댓글로 달기가 좀 그래서 ㅎ ^^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역쉬 후기전문가다운 알찬 후기!
후기쓰는 유택으로 돌아와줘서 기쁩니다. 맥락도 이렇게 잘 잡고 있으믄서 말이야.
노숙자, 견유주의자, 소수자, 다수자 등 인간을 규정하고 묶어버리는 방식이 매우 서툴고 폭력적으로 보이는 요즘입니다.
그 규정 안에서 개별성들은 무시되고, 어떤 대상으로만 대하게 되는 것 같아서요.
그렇게 아득하게 감지되는 개별자들의 진실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집에 오는 길이 참 짧게 느껴집니다.
피곤한 수요일과 금요일을 잇는 목요일 밤은 매번 푸코뽕을 맞으며 돌아오느라 피로조차 체감하지 못하나 봅니다.
오늘의 하루를 유택의 후기에 댓글 다는 일로 마무리하니 무척 보람 있네요. 진심으로. ㅎㅎ
그리고, '진실의 괴담' 뭐야! 납량특집입니까! 난 진실과 대담이라고 기억했던 듯.
그리고 저 두 권은 모두 강의록이 맞아요. 콜레주 드 프랑스가 아니라, 각각 소르본과 버클리에서 강의한 거예요.
저의 진실을 밝히며, 이상.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ㅋㅋㅋㅋ 진실의 괴담이 더 끌립니다......ㅋㅋㅋㅋㅋㅋ
아라차님의 댓글
아라차
삶-철학의 부분을 종교로 이전시키고, 진실말하기를 과학의 영역으로 빼앗겨버린 철학은
자꾸 인간의 삶을, 인간을 축소시켜버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종교와 과학이 있어서 인간이 자유로워졌느냐 하면 그 반대지요.
게다가 인간의 본성인 동물성은 비정상이라고, 인간적이지 않다고 비난받게 되는 상황까지.
인간은 본인들이 만든 가치에 의해 얽매이고, 가치의 도구가 되어
기껏 자유롭게 태어나 '동일한' 삶을 살며, 굳이 이 생을 살면서 '다른 세계'를 열망하게 되지요.
푸코는 '통화의 가치를 바꿔라'를 온 몸으로 극한까지 보여준 견유주의자들을 통해
그 가치가 얼마나 헐벗고 기반이 약한 가치였는지, 나아가 무가치한 것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스스로 어떤 가치에 둘러쌓여 있는지, 그 억지스러운 가치부여로 인해 얼마나 부자유한 삶을 살고 있는지
디오게네스의 퍼포먼스같은 삶을 통해 또 알게 되는 장이었습니다.
간만에 빙꼬뼝이 아닌 유택으로 돌아온 후기 반갑습니다.
글쓴이를 '유택'으로 썼다는 것이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겠지요 ㅎㅎㅎ
선우님의 댓글
선우와 아라차 귀에 쏙쏙 들어오는 요약!!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동물보다 열등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축소되었지만 규제적인 삶의 형식으로 동물성을 채택할 수 있어야합니다. 동물성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의무입니다.]265-2
이 부분이 많이 느낌 왔습니닷~~
그러게요 .. 인간답게 살라고 얽매는것들이 말하자면 더 '비정상'인데 말이죠~
선우님의 댓글
선우
근 6개월만에 갔는데 여전히 구박받고 있더군ㅋㅋㅋ
누군가가 변함 없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구박한다는 건 애정의 다른 얼굴이겠지?^^
성의 역사도 잘 하고 있으셔, 나도 들뢰즈 잘 배워올테니까.
어제 셈니에 대한 내 느낌.
"다른 세상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지금 여기 나의 다른 삶이 다른 세계를 만든다."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ㅋㅋ 그 구박받는 유택님 뒤에 숨어서 갸우뚱 했던 한사람으로써 쫌 찔리지만 유택님과 여러분 덕분에 제게 도움이 많이 댔습니다. 쿄쿄
소리님의 댓글
소리
여러가지를 아우르는 후기네요! 흑흑 이렇게라도 백업합니다. 고마워요!
선우샘도 왔다니!! 반가워요. 같이 세미나는 못했지만,..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소리님 못뵈서 아숩 아숩 ~~ 몸조리 잘하세욥 ~~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전 가치전도 보다도.. 좋음을 추구해야 한다라는 굳은 관념이 절 괴롭혔습니다.
견유주의의 실천으로 끝가지 밀고 나가면 추함이 남는다....
그럼 왜 견유주의를 실천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물론 고대(?)견유주의처럼 살라는것은 아니여도 현대형식의 견유주의를 실천하라는 것이더라도)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제가 이해하게 된것은
견유주의는 추함을 추구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추함이 나쁘다 좋다를 말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기존의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소박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그들이 주장하는것 처럼 좋은 삶이 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보여주려한것 같습니다. 그런대도 불구하고 이런 실천들을 하는 이유가 중요한데요.
['치욕의 상황이 가치있는 것은 그것이 그들을 견해들, 믿음들, 관습들에 관련된 모든 것에 저항하면서 훈련시키기 때문입니다']261-1
전에 삼월님이 말씀하신것처럼 보편진리에 의문을 갖고 저항하는 일들을 말하는것 같습니다.(통화를 재평가하라)
사실 실제 삶에서 이런 통화를 재평가 하기란, 기존 관습에 저항하면서 사는일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항상 나에게 모난돌이 정맞는다고들 했고, 내 삶은 그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가 맞다고 주장하는것도 아니고, 나처럼 살라고 한것도 아니고, 그냥 나로 살고 싶었을 뿐이였는데 말이죠.
내가 아는 사람중에 돈을 많이 벌어야 성공한 인생이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눈에 저는 실패한 인생이 되는것이겠조. 제가 만약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많은 수의 사람들이 말하는 돈에 기준되는 삶을 살면서 괴로워 할것입니다.
['네 통화를 재평가하라' 이 재평가는 '자기 자신을 앎'으로써만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가 자기 자신을 알기 시작했을 때 그는 진실한 가치의 동전을 갖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디오게네스는 자기 자신을 인식 할 수 있어야 하며 타인에게도 인정받아야,
알렉산더 자신보다 탁월한 자로 인정받아야 합니다.]241-3
(타인에게도 인정 받아야 한다는 부분이 아직 이해가 쫌 덜 되지만요. 그때당시 견유주의자들 그닥 타인에게 인정 못받고 살았을꺼 같고 또 무관심한 삶을 살라고도 했는데 말이죠)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직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평생 알수 없을지도 모름니다. 그러나 내가 돈의 이익 추구만하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는것은 알겠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어렵풋한 실루엣일지라도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점점 알게 되는것 같습니다.
본의 아니게 타고난 천성 탓에 남의 기준이 아닌 내 자신의 기준으로 살아 왔기 때문에 어느정도 견유주의자처럼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가르치려하고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들 하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저에게 효를 강요하는 사람도 있고, 열심히 돈을 모아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사람등등 많습니다. 점점 내가 이상한건가 잘못된것인가 라는 의심이 들기도 하고 괴롭지만 철학책들은 다시한면 내 편에 서서 '괜찮아' 라고 말해주는것 같아 너무 좋습니다.
* 후기.....쿄쿄쿄..... 유택님 뒤에 숨어 적극적인 댓글로 퉁쳐보겠습니닷 ~~ 생유yo
유택님의 댓글
유택
이 강력하고도 멋진 올리비아의 후기,
왜 댓글로 이렇게 숨겨버렸는지!!
게시판 새 글로 빼라에 강력하게 주장한다에 한 표~~! ^^
내 주위엔 왤케 이리도 배울게 많은 친구이자 스승들이 많은지
지복이지머 "지복"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