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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 후기 -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2017년 8월 29일(화) 세미나
뉴미 / 2017-09-01 / 조회 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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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761년에 있다’ 


동문선 판본을 읽기 시작한지 불과 몇 줄 지나지 않아 문제의 글을 마주하고는 ‘아오오~~~ 

발번역  또, 벌써? 나왔네~ 그래도 이건 쫌 너무하지 않나?…’ 

그렇지만 ‘쪼오~끔’ 화가 났을 뿐이다. 그러려니 하고 스킵, 또 스킵~ 하면서 분량을 다 읽긴… 했는데 도대체 남는게 없는거다. 

내가 이 책을 읽긴 읽은 건가? 발제를 해야 하는데 무슨  뜻인지 도무지 맥락조차 파악되지 않는 난해한 텍스트 앞에서 한참이나 막막했다. 

 

민음사 판본을 펼쳤다.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그래도 근성을 발휘해서 엉덩이를 의자에 딱 붙인채로 차분히 읽어내려갔다. 나는 책을 읽을 때 곳곳에 책을 펼쳐두고 텍스트를 교차시켜 가면서 읽는 버릇이 있는데, 때마침 (데리다가 백발이 다 되어 쓴) ‘법의 힘’을 읽게 되었고, 그 책 뒷 부분에 역자 주석이 데리다의 사유를 이해하는데 (시의적절하게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전에 데리다의 평전과 책들을 챙겨 읽었던터라 데리다를 쪼오~끔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이 데리다의 텍스트로부터 오는 감격은 언제 그것들을 읽었는가싶게 매번 새롭다. 최원 쌤께서도 잠깐 언급하셨지만, 데리다의 텍스트, 데리다의 편집은 (내 느낌대로 표현하자면)​  녹다운? 카운터 펀치? 하여간 '쨘하게 뒷골 땡기는 감동'을 준다. 정말이다.

 

민음사 판본을 읽을 때까지, 읽고 나서도 발제 텍스트를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그런데 뒷 부분에 있는 주석과 해제문을 읽고 나서야 거짓말처럼 맥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민음사 판본의 도움을 받아 발제문을 써 내려가면서 동시에 동문선 판본을 훑어보았다. 영어 판본까지 세밀하게 살펴볼 여력은 없었다. 다만, 그렇게 읽으면 제대로 읽었다고 말 할 수 있겠지? 했다. 그러다가 ’우리는 1761년에 있다’ 가 틀린 번역도 아니구나, 오히려 충격을 배가시키는-임팩트 있는 번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타임머신을 타고 순식간에 1761년에 가 있는 느낌이랄까? 

 

루소의 <언어기원론>이 언제 쓰여졌는지가 왜 그토록 중요하단 말인가? 그리고 <고백록>은 왜 그렇게 뜬금없이 등장하는거지? 그 단락은 정말 웃기게도 나에게는 루소가 책을 팔아서-평생 룰루랄라 책이나(?) 쓰면서-편하게 살 생각을 했구나, 로 받아들여졌는데 말이지…

 

어쩌면 루소는 라모와의 논쟁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루소와 라모의 논쟁은 꽤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그렇게 추측을 하고 보니까 퍼즐 맞추듯이, 실타래 꿰듯이… 맥락이 그렇게 또 꿰어지더라. 루소와 라모... 루소는 그 당시 유행하던 음악의 형식주의와 화성-음정 체계에 대한 저항으로 <언어기원론 - 선율 원칙에 관한 시론>을 조금씩 써 내려갔던게 아닐까? 결국 루소는 선율을-인간의 정념을, 언어의 기원-음악의 기원으로 보고 싶었던거고 '라모의 예술은 시원에서 떨어져 나간, 나쁜 형식의 예술이다.' 그 말을 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내가 항상 틈나는 대로 작업을 한 나의 <음악사전> 외에도, 나는 중요성이 좀 덜한 몇명 다른 저작들도 있었다. 이것들은 모두 출간될 수 있는 상태에 있으며, 내가 언젠가 시도하게 된다면, 분리된 형태로 혹은 전집으로 내놓고 싶었던 것들이다. 대부분이 아직 원고 형태로 뒤페루의 손에 있는 이 작품들 가운데 주요한 것은 <언어기원론>이다. ...(중략)... 어딘가 지방으로 깊숙이 들어가 함꼐 살 생각이었다...”    

- 동문선 판본 336쪽 루소의 <고백론> 인용 부분

 

데리다의 치밀하면서도 무심한 듯한 편집에 다시한번 존경을 보내며 짧은 후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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