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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진실의 용기 13, 14강 발제문 (0831) +3
올리비아 / 2017-09-02 / 조회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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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코] 진실의 용기 13, 14강 발제문 (0831)

13강
견유학파의 역설 혹은 철학의 추문적 범속함으로서의 견유주의
세네카: 견유주의자 자기시대 가장 중요한 철학 중 하나라고 표현함
율리아누스황제: 견유주의자를 비판하면서 견유주의를 철학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보편적인 철학적 입장이라고 주장
루키아누스: 페리그리누스같은 견유주의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모든 철학자들까지 경멸하면서도, 데모낙스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묘사
견유주의철학의 범속성: 철학자들은 견유주의 안에서 그들 자신을 쉽게 인식하면서도 견유주의를 조롱하면서 자신과 견유주의를 격렬하게 구분한다. 모든 철학자가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고 인색해야 하는 깨진 거울로, 그 안에서 그들은 철학의 이미지자체를 인식해야 하며, 철학의 본질이고 본질이어야 하는것, 철학자들이 그러하고 그러고 싶어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전도된 효과를 갖는 절충주의
견유주의는 전도된 효과를 갖는 절충주의이다, 자기 동시대 철학들 안에서 발견되는 가장 근본적인 특질들을 취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도된 효과를 갖는 것은 이런 특질들을 재활용하여 철학적 상식의 확립과는 완전 다른 철학적 실천 안에 이질적인것, 외부적인것, 전쟁도입하는것 조차 실천으로 전환시키기 때문이다.

 

진실을 말하는 용기의 세가지 형식
1.진실-말하기의 정치적 용기
2.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을 돌보게 이끄는 진실의 형식을 도입(소크라테스적 아이러니)
3.견유주의적 스캔들
1.2번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삶이 위험해 지는 것을 내포
3번 살아가는 방식에 의해서 초래된 위험 (자신의 삶을 '드러냅니다')자신의 담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 자체를 통해서 삶을 들어낸다.

 

철학적 삶의 문제
견유주의적 실천 안에서, 견유주의적 스캔들 안에서 견유주의는 고대철학과 기독교, 혹은 근대세계의 철학에 대한 끊임없이 곤란하도록 계속해서 당혹스럽게 만드는 질문, 항구적이고 어려우며 계속해서 철학적 삶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견유주의는 일관되게 진실-말하기를 실천하는 삶이란 어떤 형식을 취할 수 있는가를 묻는 철학형식이다.

 

철학적 삶의 전통적 구성요소
 : 삶에 대한 애호, 자기 돌봄, 유용한 지식, 적합한 삶

철학의 기원으로부터 지금까지 서양에서는 철학이 철학적 실존과 분리될 수 없고, 철학의 실전은 반드시 삶의 훈련이라고 인정해 왔다. (철학과 과학을 구분시키는 점)
철학은 근본적으로 담화의 형식이 아니라 삶의 양식이라는 것, 철학적 실천과 뗄 수 없는 것
철학적 삶의 문제를 망각하고 외부화 시켜온 것: 진실한 삶이란 주제와 실전이 종교에 의해 흡수되거나 몰수되었다. 진실-말하기의 실천이 과학의 형식 안에 제도화되었다. 진실한 삶의 문제는 종교기관에 몰수되어 왔고 과학제도 안에서 무가치화되어 왔다.
스피노자: 철학적 삶의 인도라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기획이 철학적 실천을 고무시키는 마지막 위대한 인물
라이프니츠: 철학적 삶의 근대적 형태, 일상적인 삶과 전혀 다른 유형의 진실한 삶을 내포
- 서양철학에서 being(존재)의 물음에 대한 망각을 통해 형이상학이 가능했지만, 철학적 삶의 문제가 무시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과학적 모델에 의존한 철학적 실천은 잉여처럼 보여져 왔으며, 철학적 삶의 문제는 철학적 실천의 그림자처럼 무가치해졌다.
- 푸코의 흥미점: 견유주의는 철학적 삶의 문제를 독단적인 형태로, 스캔들의 형식으로 제기 했고, 견유주의가 언제나 철학의 안과 밖 둘다에 있다는 사실, 스캔들로서 철학적 삶의 견유주의적 구성은 철학, 철학적실천, 철학적담론의 실천과 관련하여 철학적 삶의 문제의 위대한 외화라고 생각되는 것의 출발점

 

견유주의적 격언의 해석 : 가치의 변형
1.철학은 삶을 위한 준비이다.
2.준비는 무엇보다 자기 돌보기를 필요로 한다.
데모낙스: 몸을 위해서는 많은것을 지불하면서 정작 자기자신에게 소홀한 사람들을 질책함
율리아누스황제: 견유주의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디오게네스와 크라테스처럼 자기를 돌보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3.자기를 돌보기 위해 실제로 우리의 실존에 유익한 것만을 연구해야 한다.
:웅변가-말을 잘하려고 애쓰면서 좋은 행동은 애쓰지 않는것, '당신은 우주의 질서에 대해서는 그토록 관심가지면서 정작 당신 자신의 내적 무질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군요'
4.우리의 삶을 우리가 짜낸 계율에 따라 구성해야 한다. 부를 경멸하면서 부자를 질투하는 사람들, 신에게 건강을 구하기 위해 희생하면서 희생제의에서 연회를 즐기는 사람들을 꾸짖음.
'우리는 통화의 가치를 바꿔야 한다' '네 통화의 가치를 재평가하라'
자기 자신을 앎으로써만 발생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한 타인과 자기 자신의 견해라는 위조된 통화를 자기-지식의 진정한 통화로 대체한다.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디오게네스는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하며(진실한 가치의 동전) 타인에게도 인정받아야 한다.
Nomisma: 통화, 법, 관습,규칙, 습관
노미스마를 바꿔라, 관습을 바꿔라, 규칙, 습관, 관습, 그리고 법을 깨라 그것과 단절하라

 

"개"라는 칭호 p283
1.부끄러움이 없는 삶
2.무관심한 삶
3.식별하는 삶
4.경비견의 삶
진실한 삶은 , 그것을 할 모든것이 동시대 철학적 실천에서 가장 공통적으로 수용된 원리들을 실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이고 역설적으로, 다른 삶이 되는게 아닐까요?p285
원칙을 수행하는 철학. 철학은 세계체제의 사유, 일상적인 삶의 형식 안에서 완수 된다(신들은 여기 화덕에도 있다.) 소크라테스적 자기 돌봄'너 자신을 돌보아라'

진실한 삶의 두가지 발전경로 : 알키비아데스적 경로, 혹은 라케스의 경로
알키비아데스: 자기돌봄은 진실에 대한 물음으로, 돌보아야 할 특이한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귀결. 영혼의 자기 관조를 통해 서구 형이상학의 기원을 세움(신플라톤주의)
라케스: 돌봄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자기를 돌보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 견유주의적 조야함 이상의 것은 아무것도 일으키지 않는다.
-두 발전 경로가 서로 완전히 이질적인 것은 아니고, 둘 간의 상호 작용은 있다. 서구철학, 도덕, 영성의 역사 안에서 중요한 사실로, 기독교 주변의 모든 영지주의적과 기독교가 정확히 다른 세상과 다른 삶 사이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일관되게 사고 하고자 시도해 온 운동이 있었다. (단절, 금욕의 삶)

 

14강
숨김없는 삶 : 스토아적 버전과 견유주의적 가치전도

세네카: 서신-서신의 저자와 수신자를 서로에게 들어나게 함으로써 실존을 타인의 감시하는 눈 아래 두는것. 편지의 저자는 일종의 눈, 그가 보낸 충고와 의견의 수신자를 위한 감시의 원천 현실적인 동시에 잠재적인 타인의 시선에 던져진 삶
에픽테토스: 숨김의 부재는 영혼안에 있는 로고스의 신성한 원칙이기 때문에 인간 존재의 존재론적 구조가 낳은 결과가 됩니다. 숨김의 부내는 자기 자신을 내적응시 아래 두는 삶
비-은닉의 원칙을 삶 자체 안에, 삶 자체로 극화하는것, 견유주의자에게 비-은닉의 규칙은 더 이상 세네카나 에픽테토스에세서 처럼 품행의 이상적 원칙이 아니다. 삶은 현실적으로, 물리적으로 공적이라는 의미.
디오게네스: 아무 장소에서나 먹고 자고 말하는것을 해결했다. 집의 부재, 옷의 부재
페레그리누스의 죽음: 견유주의적 삶의 절대적인 가시성
이런 극화의 효과가 전도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견유주의적 삶, 비-은닉의 가자 진실된 실천인 삶은 그 극단성으로 인해 다른 모든 이의 삶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환원 불가능한 것이 된다.
비-은닉은 사람들이 남들 앞에서 악을 저지르는것을 부끄러워한다는 의미의 전통적인 예의범절의 규칙을 수용하는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자연스러움을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들어내는 불꽃이어야 한다. 전통적인 예의범절에 의해 제한된 실존의 비-은닉을 스캔들로 전도 시키는 자연스러움의 불꽃

 

혼합되지 않은 삶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 : 독립성과 순수성
플라톤주의: 순수미학-무질서함이나 비자발적인 혼란을 이끌 수 있는 일체의 요소로 부터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것
독립성의 스타일-자기 충족과 자립의 스타일론으로 외부적 요소나 불확실한 사건들에 의존하게 만들 수 있는 일체의 것으로부터 삶을 자유롭게 하는것을 의미합니다.
-어쨌든 우리가 결코 통제할 수 없는 그런 사건들로부터 전적으로 분리된 태도
견유주의: 무심한 삶은 독립적 삶에 관한 여러 주제들에 공통된 전통을 따르지만, 원칙을 교체하는 형태로 한다.통화를 재평가한다.철학적 삶을 근본적으로 다른 삶으로 보이게 한다, 뒤섞임과 의존성이 없는 삶의 원칙을 물질적으로 육체적으로 실질적으로 극화 시키는것에 의해서. 이렇게 독립의 원칙을 삶 자체의 형태로 삶의 형태를 그화 시키는 것은 가난한 형식을 취한다.

 

견유주의적 가난 : 실제적이고 현실적이며 무한정한 가난
돈을 소유 유무가 아니라 돈에 대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관한것.
부에 마음이 좌우되지 않는것, 부를 잃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혹은 실제로 부를 상실 했을 때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것. 행운, 불운의 변화에 일정한 태도를 취하는것,
세네카: 가상적 빈곤, 쾌락의 역량 회복을 위한 가난의 가상훈련-x
소크라테스: 중용의 가난, 자기 삶의 일상적 소박함에 만족하는 것-x
견유주의적 가난은 실질적이고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가난이며 현실적이며 무제한적이다.
무자비하고도 불만족스러운 가난으로 절대적으로 필수불가결한 것은 최저기준을 항상 갱신하려는 분투
실제적인 박탈로서의 가난, 자기자신에 가하는 끊임없는 작업으로서의 무한정한 가난

 

불명예의 추구
혼합되지 않는 삶, 순수하고 자기충족적인 삶의 가시적 형식인 이 현실적인 가난의 원칙을 충실히 수행한 결과 견유주의자는 현실에서 추한 삶, 의존된 삶, 모욕의 삶을 살게 된다.
개인의 태도와 자세에 있어서 아름다움의 가치, 조형적 가치에 집착하는 사회에서 이처럼 더러움, 추함, 우아함의 결핍 등 견유주의적 삶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육체적 가치들의 역전은 확실히 가볍지 않은 역할을 한다.
소크라테스: 인간은 육체의 아름다움에 집착해서는 안되고, 몸을 장식하고 단련하는 것보다 영혼의 훈련에 더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
견유주의적 가난: 육체적 추함, 더러움, 비루함의 특이하고도 내적인 가치를 확신. 절대적 가난은 결국 개인의 의존 상황에 처하기 된다. 혼합 없는 삶 예속이 없는 삶, 모든 것에서 독립된 삶이 결국 전도되는 것이다. 견유주의자들에게는 노예상태에 대한 직접적이고 긍정적인 수락과 같은 태도가 있다.(생선)
구걸은 자발적 추문의 지점으로까지 밀고 나간 견유주의적 가난 구걸을 넘어, 물질적 의존을 넘어 견유주의적 가난은 노예나 구걸보다 심각한 상태로 넘어간다
Adoxia 아독시아
어떤 긍정적 가치도 갖지 않는 치욕의 이미지
소크라테스: 비록 다수가 그를 유죄로 보고 사형판결을 내렸어도, 진실을 아는 자들은 그가 옳다는 것을, 어떤 불명예도 그의 삶에 결부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안다 - x
견유주의자의 체계적 불명예의 실천: 독립적 삶의 원칙이 절대적 가난의 지점으로까지 극화 될 때, 의존과 불명예가 만날 수 밖에 없다는 점, 독립적 삶의 원칙의 전도에 기반하여 정당화되고 이해 될 수 있다는 점. 그들은 모욕적인 상황을 추구한다. 이런 치욕의 상황이 가치 있는 것은 그들의 견해들, 믿음들, 관습들에 관련된 모든 것에 저항하면서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견유주의의 모욕게임

 

견유주의적 굴욕과 기독교적 굴욕
견유주의적 굴욕: 모욕의 테스트를 통하여 자신의 주권, 자신의 주인됨을 증명
기독교적 굴욕 내지 겸손: 자기의 포기

 

올바른 삶의 견유주의적 전도
전통적 올바른 삶: 로고스에 일치하는 삶, 본성에 따르는 삶, 법률, 규칙, 관습들에 따르는 삶
견유주의적 올바른 삶: 올바른 삶의 원칙으로 순종하는 것은 오직 자연법의 차원에 근거 해야함.
결혼, 가족을 거부하며 자유로운 결합을 실천하고 실천할 것을 주장한다 (카니발리즘, 근칭상간)

 

동물성의 스캔들
고대적 사유: 동물성에 인간존재와의 절대적인 차이점의 역할을 부여했다. 인간존재가 자신의 인간성을 확신하고 천명한 것은 자신을 동물과 구별지음으로써이다.
견유주의: 동물에게 없어도 되는 것을 인간은 욕구해서는 안 된다는 관념에 따른 행위모델. 욕구란 것이 약함, 의존, 자유의 결핍인한, 인간은 동물이 가진 욕구, 자연 자체에 의한 충족되는 욕구와 다른 욕구를 가져서는 안 된다. 동물보다 열등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축소되었지만 규제적인 삶의 형식으로 동물성을 채택할 수 있어야 한다. 동물성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의무이다. 동물성은 주어진 것, 자연에 의해 직접적으로 부여 받은 것인 동시에 계속해서 추구해야 할 도전이다.
올바른 삶으로서 철학적 삶은 도전의 형태로 받아들여지고 훈련으로서 실천되며 타인의 면전에 추문으로 던져진 인간 존재의 동물성이다.

댓글목록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오타수정 끝 ~~ 쿄쿄쿄

소리님의 댓글

소리

오오 고생하셨습니다! 찬찬히 읽어보며 백업하는데 도움이 되었어요!

제이님의 댓글

제이

와우~ 찾았다.ㅎㅎ 이렇게 들어와서 내용을 다시 읽어보니 도움이 되네요. 난 거꾸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은 뭘까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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