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와 반복] 세미나 후기 +7
lizom
/ 2017-09-04
/ 조회 2,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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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유방식, '재인'의 모델에 따른 사유방식을 비판하면서, 전적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사유, 전제에 기대지 않는 철학적 사유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았다. 보통, 사유는 진실을 향한 선한 의지 속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공통감각에 근거하여, 사유 대상에 대해 '그것은~ 이다'의 형태로 명석 판명하게 그 정체를 확정하는 것이라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런 사유능력을 본성으로 갖고 있으며, 잘 계발하여 잘 사용하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여긴다.
들뢰즈는 그런 건 행위로서의 '사유'가 아니라고, 더군다나 철학적 사유는 아니라고 본다. 진정으로 새롭게 시작하고, 그래서 실질적으로 반복하는 그런 철학적 사유는 무엇보다 '지하생활자'의 사유이다. 근거 아래의 심층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탐사하는 지하생활자, 도스토예스키의 주인공이 그렇듯 지하생활자의 사유는 선한 의지가 아니라, 오히려 악한 의지로, 과격한 시작, 완고한 반복을 통해 까다롭고 엄격한 물음을 제기한다.
철학적 사유가 극복해야 할 주류 사유모델을 '재인'(recognition)으로 본 게 재밌다. 물론 재인은 재현적 사유와 연관되지만 '재현'의 문제점은 딱 안 와닿은 데 반해(재현이 왜 문제야? 재현이 왜 불편하지?) '재인'의 문제점은 실감난다. 칸트에 따르면 "재인을 정의하는 것은 똑같은 것으로 가정된 어떤 대상에 대해 적용되는 모든 인식능력들의 조화로운 일치'이다. 그것의 함의는 발제자가 골라 놓은 말 속에서 잘 파악된다. "재인의 기호 속에서...확립된 것은 그 정체성이 파악되기까지 약간의 경험적 시간이 필요하다해도 애초부터 확립된 것이었다." 인식 대상이든 어떤 가치이든 '재인'의 사유는 사유되어야 할 것은 이미 사유될 필연성, 사유될 가능성 속에 이미 확립되어 있던 것이라고 본다. 칸트에게 재인은 지각된 것들을 지성의 범주형식들 속에, 상상력의 통합 형태들 속에, 이성의 추상체계들 속에, 조화의 형태 속에 등록시키는 것이다. 이런 재인의 사유에는 그래서 '새로움'이, '차이'가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다. 이미 확립된 사유 체계의 설명능력에 대한 찬미만 있을 뿐. 이런 재인적 사유를 나는 남성 특유의 설명본성, '맨스플렌'에서 본다. 맨스플렌은 총과 함께, 남성이 가진, 총보다 정확하고 효과적인 무기이다. 그들에게 낯선 것, 새로운 것이 주는 충격에 대항하여 그 새로운 대상을 낯선 사건을 이미 확립된 감성, 기억, 상상, 이성 체계 속에 통합시켜 버리는 것, 그래서 새로운 사건이 주는 충격을 흡수하여 소멸시켜 버리는 것이 그 기능이다.
진정으로 '새로운 것'은 어떤 힘들을 통해 사유 안으로 도래하는 걸까? 그것은 사유가 지닌 원래의 능력에 의해 저절로 파악되는 게 아니다. 그것은 "강제와 강요를 통해" 재인 체계의 와해와 더불어 출현한다. 그것은 강요된 힘, 거친 힘, 한마디로 '폭력'에 의해 발생하며, 지각, 기억, 상상력, 지성 등 인식능력들 간의 조화가 아니라 불화를 통해, 재인의 법칙이 파괴되는 특이한 경험에 의해 출현한다.
'재인'한다는 것은 인식능력들의 조화로운 통일으로 '같음'의 형식을 도출하는 것이다. '지각'된 것에 대해 상상이, 기억이, 판단이 동시에 작용하여 '그것은 무엇이다'는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 기억된 것에 대해 감각이, 상상력이, 판단력이 동시에 작용하여 그것은 무엇이었다고 판정하는 것. 이런 재인의 구조가 와해될 때 그래서 어떤 대상이 재인(인식)되지는 않고, 그저 '마주치기'만 할 때. 인식능력들은 불화한다. 그래서 감각된 것은 오직 감각만 될 뿐 다른 인식능력들의 협력에 의해 무엇이 감각된 것인지 앞 수 없게, 단지 뭔가가 강력하게 감각되었다는 경혐을 남긴다. 또한, 어떤 강렬한, 새로운 것은 때로는 오직 기억되기만 할 뿐, 정확히 기억의 형태로 마주치게 될 뿐 다른 인식능력들의 협력을 통해 무엇인 기억되었 것인지 모른 채, 그저 뭔가가 기억되어야 한다는 경험으로 다가온다.
새로운 것과의 마주침은 그래서 감각되는 것이 아니라 뭔지 모르지만 감각되어야 할 것, 기억되어야 할 것, 사유되어야 할 것, 그 강제된 힘으로, '폭력'으로 다가온다. 새로운 것의 존재, 마주침의 대상은 우리에게 '사유하도록 강요하는 폭력'으로 다가온다. 그게 뭔지, 그것의 정체가 뭔지, 그것의 종류와 성질과 본질이 뭔지 '재인'되지 않으면서도 '사유하라'고 폭력을 행사하는 그런 사건, 그런 존재, 그런 대상을 유념해야 한다. 그게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고, 혁명적 실천이 일으려야 할 사건이자, 그 주변에 있는 우리가 발꿈치를 치켜들고 쳐다 봐야 할 것이다
매번 의아스러운 것은 왜 이 욕지기나는 책, 뭐 파 먹을 게 있다고, 뭔 맛 난다고, 매주 금요일 아침 먼 곳에서 오시는 건지...들.
댓글목록
ㅇㅌ님의 댓글
ㅇㅌ
푸코 세미나의 자칭 마스코트 빙꼬뼝(빈꽃병) ㅇㅌ 입니다. ㅎㅎㅎ
"사유는 폭력이다"라며 뜬금없이 지난주 푸코 세미나 간만에 깜짝 컴백한 선우님 말이 하도 신기하고 궁금해서 그 자리에서 즉시 따지듯 그게 뭐냐며! 물어보니 다음에 말해주겠다고 해서 "쳇!~" 하고 있었거든요. (공짜로는 어림없다는거지?ㅋㅋ) 들뢰즈 책을 들춰볼 엄두는 안 나고 해서 혼자 곰곰히 며칠동안 대갈통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하다가 지금 정수샘의 이 후기를 읽으며 '아..하..'하는 탄성이 나옵니다. (내가 제대로 이해된건가? ^^;) 그런말이었구나.. 들뢰즈와 푸코의 '사유'라는 것은 그런거였구나.. 그런것도 모르고 작년 2월 스피노자 파레지아 개강전 인터뷰할때 자신만만하게 머릿칼 넘기며 "사유를 넓히러 왔다"면서! 자신있게 병권샘앞에서 떠버렸던게 이제서야 넘나 부끄럽네요.ㅋㅋㅋ ㅠㅠ 정말.. 어쩜조아.. ㅎㅎㅎ 후기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해요~!
선우님의 댓글
선우
공짜로 어림없는 게 아니라, 내가 그때 설명을 잘 할 자신이 없었던 거겠지?
으이구... (나두 한 주 전에 들은 얘긴데... ㅋㅋㅋ)
혼자서 들뢰즈 책을 보는 것 보다, 나같으면 정수샘이랑 할 수 있을 때 빨리 몸을 움직이겠네...
(차이와 반복 책 있는 거 다 알고 있음)
삼월님의 댓글
삼월
ㅇㅌ ? 이티? 외계에서 오신 낯선 존재? ㅎㅎ
'사유는 폭력이다' 고샘한테서만 백번은 들은 말 같은데, 어디서 뚱딴지같은 소린지...
역시 빙꼬뼝의 매력은 끝이 없습니다그려. 자신만만하게 (없는) 머리칼까지 넘기면서! (아침부터 빵 터짐 ㅋㅋ)
선우님의 댓글
선우
생각하게 만들어요 들뢰즈는. 그래서 저는 계속 읽는 거 같아요. 어려워도.
가슴에 파고 들어오는 문장들도 만나고요.^^
들뢰즈의 매력 + 정수샘의 매력, 아니겠어요?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도 이 놀라운 출석률을 보면... ㅎㅎㅎ
후기 잘 읽었어요 샘~ 두고 두고 몇 번 더 읽어야겠어요.
삼월님의 댓글
삼월
다 포기하고 막 놀려고 했는데, 다들 정성스러운 발제와 후기로 보살펴주셔서 묻어갑니다. ㅠㅠ
저는 책 파는 것보다는 밥하려고 가는 거, 많이들 아시죠?
밥하다가 주워들은 말로 가끔 발뒤꿈치도 치켜들고 그래야지. ㅎㅎ
연두님의 댓글
연두
글 감사 드립니다.
리좀님은 누구길래 이렇게 후기를 잘 쓰셨지? 했는데 정수샘이셨네요.
정수샘 후기로 인해 한층 더 이해가 됩니다. 고 믿고 싶네요.
강제된 힘. 감각되어야 할 그것을 감각하고, 사유를 시작하라.
그것이 해방의 출구를 열어주는 듯 새로운 공기가 느껴집니다.
여전히 잘 모르겠으나 강렬하고 강력한 들뢰즈의 텍스트.
20년 전 감각의 논리를 읽었을 때의 막막함을 다시 마주해 보고 싶네요.
차이와 반복을 읽고 나면 다시 한 번 들춰볼지도.
유혜진님의 댓글
유혜진
유념 정도로는 너무나 어려워 보이는 마주침은 단지 마주치지 못했을 뿐 따지고 보면 새로운 것도 아닐 수 있겠지요. 마주침일 뻔 할 수도 있었던 무수한 지나침 속에서 폭력적인 들이닥침에 대한 무방비상태의 위험을 감수하고, 필사의 노력으로 모든 감각의 세포들를 다 열어 놓는 정도나 돼야 가능한 건지... ㅠㅠ
이 욕지기 나는 책 튜터 하시느라 매 번 고생이 많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