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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진실의 용기> 0824 후기 +7
삼월 / 2017-08-29 / 조회 1,826 

본문

 

견유주의에 대해 말하기 어려운 이유들

  푸코가 견유주의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쉽지 않다. 그 쉽지 않은 이유에서부터 견유주의의 특징들이 드러난다. 견유주의는 무어라고 ‘말하기’ 어려운 철학이다. 모든 철학이 그렇겠지만, 견유주의에는 더욱 그런 점이 있다. 푸코가 견유주의 연구가 어려운 이유, 지금까지 활발하게 연구되지 못했던 이유로 드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한 시대에도 견유주의라 불렀던 태도와 품행이 무척 다양하다.

2. 견유주의를 바라보는 태도들이 모호하다. 칭송과 비난이 동시에 존재한다.

3. 이론적 텍스트가 없다. 견유주의는 대중적이지만, 이론이 빈약하다.

 

견유주의에 대해 말한다는 것

  견유주의에 대해 말한 이들은 대개 자칭 ‘견유주의자’가 아니다. 자신이 견유주의자가 아니며 견유주의를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전제하면서, 견유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용은 대개 견유주의의 공격성과 폭력성에 대한 비난이다. 가끔은 이것이 진정한 견유주의라 치켜세우며, 몇몇 견유주의자의 검소하고 진실한 삶의 태도를 칭송한다. 견유주의가 비난받거나 칭송받을 때 모두 견유주의는 사유의 첨단, 혹은 첨점에 있다. 견유주의를 통해 인간이 용인할 수 있는 행위의 범위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소하고 진실한 태도를 보여주는 견유주의를 비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스스로가 인간이기에 앞서 동물이라는 사실을 두려워한다. 인간의 동물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견유주의의 폭력성, 광기처럼 보이는 태도들은 우리 가슴 밑바닥의 진실을 콕콕 찔러온다.

 

진실한 삶에 대한 두 가지 태도: 플라톤주의와 견유주의

  견유주의자들의 진실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플라톤이 말한 진실한 삶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견유주의는 삶의 가치를 전도시키는 철학이므로, 그에 앞서 기존의 가치와 질서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철학을 공부하고 사유하기에 앞서 자신 안의 통념과 맞닥뜨려야 하는 것처럼. 플라톤이 말하는 진실은 숨김없음, 순수함, 올바름, 변함없음을 그 특징으로 한다. 견유주의는 이 가치들을 단절시키지 않는다. 플라톤이 말하는 진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극단적으로 밀고나가 진실을 확장하고, 전도시킬 것이다. 견유주의는 진실에 대한 사유의 첨점, 진실한 삶의 찡그림이다. 인간 안에 있는 광기와 동물성을 드러내고, 사유의 전복성과 폭력성을 극대화시킴으로서 견유주의는 결코 온화하지 않은 진실들을 드러낸다.

 

디오게네스의 등장

  디오게네스가 나타났다. 소크라테스와 비교해 대칭성과 근접성을 동시에 가지는 견유주의자 디오게네스는 어떤 면에서 소크라테스의 대결자이며, 전도된 소크라테스의 형상을 보여준다. 일화 속에서 디오게네스가 받은 신탁은 ‘통화의 가치를 바꿔라’이다. 소크라테스가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써 ‘너 자신을 알라’는 신탁을 받았고 그 일을 수행했다면, 디오게네스가 할 일은 가치를 바꾸는 일이다. ‘통화’는 어원 상 법, 규칙, 관습과 연관되어 있다.   

  아주 기본적인 이론 틀만을 유지하는 견유주의가 디오게네스의 모토로 ‘통화의 가치를 바꿔라’라는 문장을 전승해왔다면, 여기에 견유주의의 핵심이 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또 견유주의는 모든 삶의 주변부에 있지만 철학의 기본개념들을 포괄하고 있으므로, 이 문장을 철학의 기본정신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인간은 통념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사유를 시작한다. 사유를 철학의 시작으로 본다면, 철학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가치의 가치를 문제 삼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드디어 디오게네스가 나타났다. 사유가 시작되고, 실존이 힘을 얻었다.

 

 

좀 늦었쥬? 죄송합니데이~ 

댓글목록

유택님의 댓글

유택

진실의 용기에 나오는 견유주의를 읽으면서 누구는 좀 힘들다고 했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 견유주의라고 하는 삶의 방식들 실천들을 지금의 내 삶에 비추어 이리저리 생각하다보니... 좀 아득해지고 넘 겁나고 고로 몸살 날것처럼 힘들어지는게 아닐까 싶어요. 하나마나한 소리 그만하기 나에게 진실해지기 남의 시선에 무감해지기 등등. 견유주의 알고보면 참 피곤하고 사람 괴롭히는 무엇인거 같어요. 진실의 용기 읽고 전 그냥 읽고 땡 될거 같은 예감이... ㅠ 그 예감 뒤집어지게 스스로 무언가를 해나가야겠쥬? ㅎㅎ

삼월님의 댓글

삼월 댓글의 댓글

힘듦 *100의 상태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쉬고 싶어요. ㅠㅠ
그러나 나의 모든 선택들이 생존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절실한 믿음으로... 오늘도 갑니다. ㅎㅎ (울다가 웃음서)
우리는 선택이라는 것이 가능하다고, 적어도 둘 이상의 선택지가 있는 줄로 믿을 때가 많지만
사실은 그저 이 모든 게 생존을 위한 긴 서사의 일부분일 뿐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가는 거죠. 선택 그런 거 없는 거죠. 안 하면 안 되는 거죠.
무엇보다 푸코세미나가 그런 거 같네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능. 살려면 해야겠다능.

아라차님의 댓글

아라차

나왔지요. 디오게네스.
ㅎㅎㅎ
용기, 호기심, 배려. 정말 좋은 덕이죠.
턱밑까지 '통화의 가치를 바꿔보라'는 시대의 전언이 도착했는데도
멀뚱멀뚱..'그게 좋은 건지는 알겠는데..'하면서 어물쩡거리는 것은
아무래도 살아왔던 습관들에 익숙해져서, 그간에 정든 '나'와 이별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겠지요. 살던대로 살면 평타는 칠 것 같으니까...
용기, 호기심. 배려..이런 거 장착하는 것도 엄청난 정신적 체력이 필요하니까요.
저는 푸코를 마주하면서
준비없이 광야에 들어섰지만 '그래도 버텨는 보겠는데..'하면서
어디 쉴만한 물가는 없나 하면서 두리번 거리고 있는 원피스입은 어린이가 된 듯한 기분입니다.
얘 언제 전사가 될까요?

ㅎㅎㅎ

소리님의 댓글

소리 댓글의 댓글

지금까지의 나와 결별하시 싫다는 말에 공감요. 사실은 변화가 제 생존을 위협하는 것일까봐, 그게 너무 피곤할까봐 쉽사리 변화를 추구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견유주의자들의 파레지아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변화가 필요하면서도 그것의 결과가 두려운 상태. 그것이 솔직한 제 상태인 것 같네요.
끊임 없이 추구하지 않으면 또다시 고인물이 되어 멈춰버리는 것.

삼월님의 댓글

삼월 댓글의 댓글

하하 아라차! 이 뭐 전사가 애기원피스 입고 잠깐 쉬는 듯한 형상인데요. ㅎㅎ
셉니다, 세요.
그치만 더 세지고 싶어하면 세질 테지요.
타성을 거스르는 실존력이란 그런 거일 테니까요.
'정신적 체력'이란 표현에도 다시 한 번 공감의 끄덕거림을 보냅니다.
'변화가 필요하면서도 결과가 두렵다'는 소리에게도 역시.
더불어 변화가 내 생존을 위협하는 것일까, 아니면 타성이 내 생존을 위협하는 것일까,
사실은 의문이 아니라 견유주의를 공부하며 더 명확해졌다는 말과 함께.

뉴미님의 댓글

뉴미

발제자료 올리느라 오랜만에 접속해봅니다. (부끄부끄)
그러다 삼월의 후기 보니 넘 반가웠어요~~~ 모두들 여기 계시네요!
아~~~ 푸코 세미나가 그리워지는 밤입니당 :-)
반가워서 몇 줄 남겨봅니다 별 내용은 없구요, '주체와 해석학'에 대한 고민은 틈틈히 하지만
진도가 더디네요~ 그에 대한 할 말이 생기면... 그 할 말이란게 세상에 나올 (기회를 맞는) 날이 오기를...

삼월님의 댓글

삼월 댓글의 댓글

오 뉴미 오랜만이예요. 반가워요!
발제 올리셨길래 나도 반가워서 들어가봤더니,
데리다에 루소에 어쩌고, 뭔 소린지 도통 알 수 없어서 기냥 조용히 나왔지요. ㅎㅎ
푸코세미나가 그리워지는 밤이라니 ㅋㅋ 공감공감
저도 한 달 여 쉬다가 푸코세미나 다시 왔더니 좋네요.
<주체의 해석학>에 대한 뉴미의 고민들이 세상에 나오는 날을 저도 기다려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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