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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후기 +2
자연 / 2018-10-02 / 조회 1,291 

본문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장을 읽고 있습니다.

초기 저작인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 이후 <인간적인...>은 니체의 철학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시기의 작품입니다. 바그너와의 관계도 회복할 수 없는 단계에 이릅니다. 니체는 바그너와 결별 이후 심리학자와 같은 사유를 하게 되는데, 이때 나온 책 중 한권이 <아침놀>입니다. <인간적인...> 출간 직후 니체는 대학을 떠나 병든 몸으로 방랑하며 사색하는 철학자의 길을 걷습니다. 이제까지 그 자신이라고 여겼던 모든 것에서 것들로부터의 탈주가 <인간적인..>에서 터져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니체의 반항적인 문체가 뚝뚝 묻어나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1장에서는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느끼는 진리, 도덕, 철학, 언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담긴 아포리즘이 많았습니다. 니체는 헤겔의 변증법을 반대하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수많은 표상들과 감각들의 다양한 화학작용들뿐이라고 말합니다. 2장 제목은 <도덕적 감각의 역사에 대하여>입니다. 니체는 2장을 통해 역사적으로 철학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2장의 첫 아포리즘 35 제목이 심리학에 관한 거네요.

 

아포리즘 35 <심리학적 관찰의 장점들>에서

니체는 심리학적 관찰을 통해서 사람들이 삶의 짐을 덜 수 있는 수단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오류과 한계에 대해서 비판합니다. 심리학이 인간 개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전체 인간의 행복을 위해 유용하다는 점에서만 유용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죠. 심리학적 관찰의 경솔함이 인간의 판단과 추리에 위험한 함정을 만들어 왔고, 끊임없이 함정을 파게 될 것이 때문에, 이제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에 관한 개별 관찰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노동을 위해서 작업하는 냉철한 사상가로 니체 자신을 말하는 것 같은데..기억이 나지 않네요..여러분, 오독한 부분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이 작업(노동)으로 인간 행위에 대해 얻게 되는 명제(사상), 미래에 인간의 형이상학적 욕망의 뿌리를 내리치는 도끼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읽어보니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라는 니체의 확신이 느껴지는 문장이입니다.

** 18872월 초에 니체는 우연히 도스토옙프스키 프랑스어판 <지하인간의 수기>를 읽게 되었는데, “도스토옙프스키는 내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던 단 한사람의 심리학자였다...”고 말했을 정도로 인간 개인의 심리 분석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아포리즘 42 선의 위계와 도덕에서

누군가가 정의보다 차라리 복수를 선택할 경우, 과거 문화의 척도로 볼 때 그는 도덕적이고, 현재 문화 척도에 의하면 비도덕적이다.” 선의 위계가 어느 시대에나 확고하고 동일한 것은 아니라고 니체는 말합니다. 동일한 충동도 역사가 바뀌면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이제 알게 되었네요. 그때그때의 결정에 따라 어떤 행위가 도덕적인지 아니면 비도덕적인지 결정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도덕과 윤리에 대해 되묻는 훈련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추석 명절 문화와 관련해서 생각해 본다면 어쨌든 시대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낙후된 문화, 인간들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아포리즘 50 <동정을 유발시키려고 하는 것>에서

아프거나, 불행하거나, 약자이거나, 그들이 갖고 있는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직 어떤 힘(강자를 괴롭힐 수 있는 힘)이 동정을 유발시키는 힘이 된다고 합니다. 그 힘은 자신이 아직도 세상에 고통을 줄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라는 자만심도 키웁니다. 우리가 흔히 행위들(이웃사랑, 호의, 배려 등)에서 발현되는 욕구, 즉 동정심이라는 것이 자기애가 아닌가 관찰할 필요가 있겠네요. 니체는 자기애라고 확실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 아포리즘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내용이 있는데요, 사교에 대해 말하는 부분입니다. 니체는 사람들이 사교를 갈망한다고 해요. 사교에서 주고받는 질문과 대답의 대부분이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한 것인데,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즐거움이기 때문에 사교를 갈망한다는 것이죠. 알면서도 그렇게 하는 행위가 자신에게 힘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래서 사교는 삶의 가장 강력한 자극제가 된다고 합니다. 호의가 치료제 역할을 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사교를 하면서 자신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고백할 정직한 인간이 있을까요? 프로스퍼 메리메가 악한 일을 한다는 쾌감 때문에 악한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일반적인 것은 없다는 사실도 알아두는 것이 좋다.”라고 했다는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중요한 지식이니 잊지 말고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후기 쓰려고 다시 읽어봐도 어렵네요.

세미나에서 뵈요^.^

 

 

댓글목록

선우님의 댓글

선우

"알아두면 쓸모 있는 중요한 지식이니 잊지 말고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네~~^^
잘 읽었습니다 자연 님. 복습도 되고, 자연님의 마음 생각도 들여다보게 됩니다.
어렵더라도, 우리가 다 이해하고 해석할 수 없더라도, 니체의 문장을 직접 읽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지난한 '과정'을 겪어 낸 것들이 남는 거 같아요...
책도 사람도.

걷는이님의 댓글

걷는이

자연님 후기 잘읽었습니다~
아하! 지난 세미나에서 읽고 공부한 내용이 이거였군요. ㅋ
후기 쓰는 사람은 힘들어도 읽는 사람은 복습으로 은혜받습니다요.
니체... 어떻게 읽어야하나 그게 많이 고민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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