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뮨] 거대한 전환_제1장 백년평화_발제 (0819.토) +3
올리비아
/ 2017-08-19
/ 조회 1,556
관련링크
본문
[코뮨] 거대한 전환_제1장 백년평화_발제 (0819.토) Olivia
제1장 백년 평화
* 19세기 문명을 떠받쳤던 4개의 제도
1.세력 균형 체제 balance of power system -정치제도
2.자유주의적 국가 liberal state -정치제도
3.국제 금본위제 international gold standard -경제 제도
4.자기조정 시장 self-regulating market -경제 제도
* 19세기 문명의 붕괴에 가장 결정적인 것은 국제 금본위제의 소멸이었다
자기조정시장 : 19세기 체제가 나오게 된 원천이자 모태
금본위제 : 국내의 시장 경제체제를 국제적 영역으로 확장하기 위한 노력
세력균형체제 : 금본위제에 기초하여 세워진 상부구조, 부분적으로 금본위제에 의존
자유주의적 국가 : 자기조정 시장의 피조물
* To allow the market mechanism to be the sole director of the fate of human beings and their natural environment would result in the demolition of society.
존재할순 없으나 만에 하나 이런 "자기조정 시장이 실현될 경우 사회를 이루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내용물은 아예 씨를 말려 버리게 되어 있다." p94
* 국제 체제의 붕괴
세력균형체제의 기반은 세계경제 였고 따라서 세계경제가 파탄을 맞게 되면 세력균형체제 또한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 세계경제의 파탄은 우리 문명의 붕괴가 벌어진 시점을 결정했을 뿐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니다. 붕괴의 여러 기원은 100년도 더 오래된 시대에 벌어진 사회적, 기술적 대변동에서 부터이다. 즉 서유럽에서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관념이 처음으로 생겨났던 때 부터이다.
* 백년평화 (1845년~1914년)
강대국간의 전면전은 거의 없었다. 기간을 모두 합치면 18개월정도, 보불전쟁도(1870-71) 1년이 채 안된다.
그러나 식민지의 사건이나, 작은 국가들의 국지전은 많았고, 권력변화와 이동도 많았다.
1. 구식 식민 제국의 소멸
2. 자유무역 시대의 도래에 이은 금본위제 시대.
새로운 형태의 무역이 나타남에 따라 전쟁을 목적으로 하는 이해관계는 급격하게 줄어든 반면, 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적극적인 이해관계가 금본위제와 결부된 새로운 국제통화 및 신용체제의 결과로 생겨나게 되었다. 모든 나라의 국민 경제의 이익은 이제 자국통화 가치의 안정과 또 세계 시장이 순조롭게 작동해야 자국 모든 계층의 각종 소득과 일자리 창출이 이루어지고 그것은 자신의 이익으로 여기게 되었다.
* 위기를 낳은 여러 제도의 기원들
세력균형체제
"진보와 평화"의 이름으로 왕권과 교권, 주식시장과 수표책의 은총, 타락과 뇌물, 도덕적 주장과 계몽의 호소, 함포사격과 총검을 통해 "평화의 보존"이라는 결과가 달성되었다.
강한 쪽을 놓고서 약한 쪽들이 서로 힘을 합쳐 맞서는 식으로 행동하게 된다는 공리에 불과하다. 세력균형에서 독립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은 참여하는 나라들이 계속 짝을 바꾸어가면서 끊임 없이 서로 전쟁을 벌이는 것뿐이었다.
- 베스트 팔렌조약 (1648), 유트레히트 조약 - 근대 국제 체제가 탄생한 사건으로 여겨짐
전통적인 평화는 관심밖, 평화와 그것이 가져올 기술과 예술의 융성같은 것들은 그저 삶을 아름답게 하는 장식품 정도로나 가치가 매겨졌을 따름이다. 여러정부들에게 최고의 목적은 안보와 주권이고, 평화는 거기에 종속되는 목적일뿐이였다.
① 영국의 국가제도이다. 독특한 지리적위치 때문에 스스로의 안전을 보장하기위해 추구했던 방식, 이런 정책으로 대륙에서 주도권을 쥐는 강대국이 나올 때마다 거기에 맞서는 동맹을 형성하도록 대륙의 다른 강대국들을 설득하기가 아주 쉬워졌다.
② 역사적 법칙으로서의 세력 균형 : 세력 균형의 다른 의미는 근대 주권국가라는 권력의 단위 성격에 직접적 기반을 두고 있다.
- 데이비드 흄 : "행위자들이 비록 다양한 행동 동기들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들이 권력 추구라는 목표를 체현하는 존재들인 한 그 여러 동기와 무관하게 현실에서 작동하는 법칙"
- 슈만 : "그 가장 기초적인 형태로 보면 국가 간 체제의 단위 하나하나가 스스로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것"
- 아널드 토인비 : 권력단위들이 함게 모여 있을 때에 그 중심부에서는 강한 압력이 작동하므로 오히려 팽창이 용이한 것은 주변부이다.
③ 원리로서 또 체제로서의 세력균형
모종의 인간적 이해 관계가 정당한 것으로 인정 되고 나면, 또 그것으로 부터 모종의 행동원리가 도출된다.
큰나라들이 작은 나라들을 흡수 또는 지배하게 되면 세력 균형이 무너지게 되므로, 이 체제는 간접적으로 나마 작은 나라들의 독립을 보호하는것이다. 200여년 동안 크고 작은 나라들이 모두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세력균형체제 덕분이다.
신성동맹
1815년이후,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동 + 막 일어나고 있던 산업혁명 = 평화로운 영리활동을 전 세계적인 보편적 이익으로 확립하려는 강력한 흐름이 나타남.
- 메테르니히: 유럽인들이 원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평화다 라고 주장함
- 프리드리히 폰 겐츠 : 조국을 위한 전쟁을 불사하는 애국자들이야말로 새로운 종류의 야만인들이다.
전쟁 위협이 없는 영구적 평화를 보장하려면 불균형 요인을 나타나는 순간에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전쟁의 원인 자체를 제거해야 한다. 그러게 하기 위해서 인간들의 삶의 흐름을 근원부터 통제해야 한다.
혈통 + 신의은총 = 사회적 위계서열들이 전 유럽의 작은 마을에 까지 촘촘히 효력을 미치는 지배 도구를 형성했다. 여기에 물리력만 갖추면 대륙 전체에 평화를 보장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신성동맹의 군대는 유럽 전역을 어슬렁 거리면서 소수자들은 짓밟아 버리고, 다수자들은 억눌렀다.
유럽협조체제 (1846~1871)
산업주의의 힘이 증가 하게 되면서 평화의 확립이 불안정 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보불전쟁 이후 다시 평화에 대한 이해가 되살아남. 신성동맹의 뒤를 이은 이 체제는 봉건적 관계와 교회 조직이라는 유럽 전체에 촘촘히 뻗친 촉수를 갖고 있지 못했다. 기껏해야 느슨한 국가연합에 불과하여 응집력이 떨어졌따.
*** 신성동맹이나 유럽협조체제는 독립된 주권 국가들이 무리지어 뭉쳐 있는것일 뿐, 세력균형과 그 내재된 전쟁이라는 메커니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것들이다 그렇다면 평화를 유지해 준 것은 무었이었을까??
권력 배분의 형재 상태는 게속 변화를 격었지만 그럼에도 강대국들 사이의 전쟁은 궁극적으로 피해갈 수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기전에 이미 실적으로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화는 세력균령체제의 반가운 부산물이다.
오트피낭스
19세기 후반이 몰락하며 이 자리를 로스차일드 가문으로 대표되는 오트피낭스, 일종의 국제금융이 차지했다. 로스차일드는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제적인 평화를 유지했고, 이는 각국 정부와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치가들과 국제적 투자가들은 함께 신뢰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관이 필요했고 로스차일드가 누리던 독립성이란 바로 시대적 필요에 의한 것이였다. 영국과 독일이 협정을 했는데도 1차세계대전이 일어난것은 조약으로 양쪽의 경제 구역들이 형성되었지만, 그 둘이 팽창함에 따라 서로 정면 충돌로 이어지는 사태는 필연적이였다. 국제 금융은 각 나라들의 야욕과 음모들을 극복해야만 했다. 국제금융이 힘을 가지려면 각국내의 은행 조직들과 협조가 필요했지만, 각국내 은행 조직들도 종종 자국 정부와 공모하여 한패가 되어 움직였따. 정부와 국제금융 간의 관계는 단순한 위계이기보다는 공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주도권은 국가권력이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익이 달린 오트피낭스 처럼 각 국가 역시 생존을 위해 평화가 필요했기 때문에 오트피낭스의 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채무를 지고 있는 정부들은 자국통화의 외환 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그를 위해 전쟁처럼 정부 재정상태의 건전성에 영향을 끼칠만한 정책을 피해야 했다. 어떤나라든 금본위제를 받아들이는 이상 이는 업격한 구속력을 갖는 행동 준칙으로 발전하게 된다. 특히, 약소국은 오트피낭스에 의해 금본위제나 헌정주의라는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이며 국제질서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오트피낭스는 터키 등의 반식민지 국가의 비공식적 금융 행정까지 맡아보며 자신들의 이익에 복무했고, 이는 평화의 유지로 이어졌다.
물론 레닌의 주장처럼 국제금융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일으기도 했지만, 무역을 통한 이익과 연결되어 있는 국제 금융은 상황에 따라 평화를 유지하였다. 강대국간의 전면전은 극도로 엄격하게 방지하는 반면 국지전은 끝없이 벌어지게 내버려두면서 그 가운데에 평화로운 영리 활동이 벌어질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것이 본질적 성격이다.
19세기 내내 평화를 지탱한 정치제도인 세력균형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를 직접 관리할 수 있는 사회기관을 제공한 존재에 의해 유지될 수 있었다. 후반 들어 오트피낭스에 의해 지지된 이 체제는 전 반세기에 비해 훨씬 더 큰, 전 지구적인 규모로 이뤄졌다. 1890년대 오트피낭스의 힘이 절정에 달했고 평화도 보장되었지만 여러 이해관계가 상충하면서 세력균형은 삼국동맹으로 유지해 갔지만 두 개의 적대적 강국 집단만 남아 세력을 견제해줄 제3세력이 사라져리면서 오트피낭스의 영향력도 급속히 감소 하고, 결국 백년 평화가 끝났다.
결론 및 정리
1.평화의 기초는 경제 조직이였다.
2.19세기 경제 조직이 지극히 인위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3.그 인위적 성격의 진정한 본질이 무엇인가? 가 중요하다.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이런 모범스런 올리비아 같으니라구... ㅎㅎㅎ
세미나 전에 발제문을 올린 것이나 발제문내용 모두,
우리세미나의 활력-활성화된 에너지-이라 할 만하군요!!
요고마고님의 댓글
요고마고발제에, 아니 세미나에 최적화되어 있으신 분 같아요. ^^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하하하 최적화 좋네욥 .. ㅋㅋ
제가 말하는것도 다른 의견 듣는것도 너무 좋아 합니다.
계속 좋은 시간 같이 해욥 ~ 쭉~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