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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공백 속으로] 김기림, 《바다와 나비》 후기 +1
승운 / 2017-08-21 / 조회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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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 바다와 나비


지난 시간에는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를 보았습니다. 해방 전후에 활동한 모더니스트라는 점, 동명의 시 <바다와 나비>를 제외하고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기림이 소개되고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최근에 들어서입니다. 6.25중에 납북된 이후로 정치적인 이유로 그동안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1. 판본의 유형
<<바다와 나비>>는 60여년 전에 쓰여진 시집이라는 점에서, 당대의 표기를 따른 판본과 오늘날의 표기법을 따른 판본간에는 눈에 띄는 차이들이 많습니다. 전자가 세로쓰기, 한자어 표기, 옛 폰트, 당대의 어법을 사용한다면 후자는 가로쓰기, 한글 표기, 오늘날의 폰트와 어법을 사용합니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제가 주목한 지점은, 두 판본의 시가 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제가 보기에 두 판본에 실린 하나의 시는 다른 시입니다. 오늘날의 표기법을 따른 판본은 당대의 판본을 편집, 교정하는 과정에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지간에 상당수의 시어들을 수정하였고 그에 따라 시어가 주는 어감과 결이, 시어가 주는 즐거움의 정도가 판이해졌다고, 아주 많이 손상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매끄럽게 다듬어진 오늘날의 판본은 옛스러움을 담은 당대의 판본보다 더 매력적이지 않다고 느끼기도 하였구요. 하여 저는 당대의 판본으로 김기림의 시를 읽는 것이 보다 좋다고 생각하고, 세미나에서는 당대의 판본을 바탕으로 한자어의 음가를 병기하여 만든 별도의 텍스트를 보았습니다.

2. 역사적 맥락
바탕 판본으로 채택한 <<원본 김기림 시전집>>(깊은샘, 2014)는 초반본을 스캔하여 인쇄한 이미지와 함께 시의 발표년도와 수록지를 주석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주석을 세미나 텍스트에 포함시켰고, 이때문에 시를 읽을 때 텍스트가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는 독해방식을 장려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3. 선택한 시:모다들 도라와 있고나/여인도/바다와 나비/못/쥬피타의 추방

3-1) 모다들 도라와 있고나
- 시집은 1.2.3.4.5 총 5부분으로 이루어져있고, 이 시는 그 중에서 1.의 가장 처음에 나옵니다. 시인이 어떤 이야기로 시집을 열고 있는지와 시인과 시집의 인상이 어떤지가 궁금했고 제목이 주는 확인, 회한의 어조가 인상적이어서 골랐습니다. 
- 10행으로 이루어진 시는, 앞의 5연에서는 동포-세계-민족-역사의 시어를 연결하여 시의 배경을 설정하고 뒤의 5연에서는 월계관-자유-가시관의 시어와 마지막 행 ‘새벽 서리ㅅ길 즐거히 거러가리.’를 통해 화자의 태도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앞 5행에서 무겁고 거대한 시어들이 등장했지만, 시 전반에서 그러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인데, 이는 시의 진술이 5연을 전후로 조형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것과 1946년에 발표되었다는 역사적 배경이 작동하였다고 보입니다. 
- 이 시를 특별하게 만드는 지점은 뒤의 다섯 행입니다. 시적 상황을 마주하는 화자의 태도가 나타나있기 때문입니다. 화자는 “눈부시는 월계관은 우리들 본시 바라지도않은것”이라며 “찬란한 자유의 새나라”가 “첩첩한 가시덤불 저편에 아직도 머니” ‘가시관을 달게 쓰고 즐거히 거러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 9, 10행의 ‘달게’, ‘즐거히’라는 시어가 시의 전반적인 정서를 이끌고 있습니다. 시를 경쾌하게 만들기 때문에, 시가 무거운 느낌을 주지 않는데에도 기여를 합니다. 
- 5행의 ‘여기 다시 우리들 모다 도라 있노라.’는 인상적입니다. 제목의 구절이 반복하기도, 그 맥락이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5행에서는 제목의 구절에서 ‘여기’ ‘다시’ ‘우리들’이라는 세 시어가 추가됩니다. 제목에서 빠져 있는 세 시어들은, 앞의 5행들을 통해 나타나 시간과 공간, 내 주변 존재들에 대해 상기시킵니다. 앞의 5행이 비추는 시,공간, 존재의 경과는 ‘지금의 여기-예전의 여기/이번-지난번/지금 이번의 우리들-예전 지난번의 우리들’이라는 비교와 대조로 시어에 빈 공간을 만듭니다. 따라서 ‘여기 다시 우리들’은 생략된, 또는 누락된 ‘예전 여기의 지난번 우리들’을 포함하고, 이는 현재를 확인하는 진술이자 한 숨(breathe)을 포함한 지나간 것들에 대한 회고입니다.

3-2) 여인도
- 여인을 주제로 설정한 이 시에서, 화자가 여성을 어떻게 서술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선정하였습니다.
- 제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5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에서 마지막 행마다 강조부호들을 동반한 <자유로운 조선>들이 다소 그로테스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시의 제목이 여인도임에 비해, 시가 끊임없이 방점을 두는 지점은 ‘자유로운 조선’이고, 여성은 자유로운 조선을 위해 돕거나 또는 봉사하는 존재로 나타납니다. 한편으로, 반복하는 <자유로운 조선>이 단순한 반복이라고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 <자유로운 조선>이 무엇이냐, 이 시에서 여성은 어떤 존재이냐에 대한 논의가 홍미롭게 이어졌습니다. 자유로운 조선은 1) 국가 2) 나 3) 화자의 부인이라는 의견들이 나왔고, 각자마다 그 해석을 지지하는 근거들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3) 화자의 부인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흥미로웠는데, 시 전반에서 나타나는 당신-어머니-누님-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존재를 나타내는 시어들과 3연 첫행의 ‘부형회(학부모회)’가 시에서 드러나지 않은 존재들, 예컨대 화자의 부인을 암시합니다. 2연의 ‘누님’은 화자가 남성임을 나타내며, 3연의 ‘부형회’, ‘세무소’, 2연의 ‘사식’은 화자가 성인, 그리고 어쩌면 결혼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줍니다. 3)의 해석은 시에서 숨겨졌지만, 화자와 아주 가까운 존재를 확인하는 여정을 가는듯하여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 이 시의 여성에 대해서, 화자와 시인의 성취와 한계에 대해 비판적으로 논의했습니다. 시에서의 여성서술에 대해 평가가 엇갈렸지만, 막바지에는 모순적인 평가들이 양가적으로 함께하고 있다는데에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시의 여성들, 즉 어머니-누님(, 그리고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과 부인)은 화자 또는 화자를 통해 <자유로운 조선>을 돕는 조력자이거나 생략된 존재로만 나타납니다. 즉 <여인도>에서 여성은 여성 외의 존재들을 위한 이들로 나타나며, ‘전통적인’ 아름답고 가정적이며 자애로운 모습 외의 여성의 묘사와 서술은 없습니다. 심지어 이 시에서 여성은 시를 작동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도 보입니다. 여성을 주제로 설정한 시에서 여성을 다른 주제를 보조하는 존재로 설정했다는 점, 비판적으로 검토해야할 ‘전통적인 여성상’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는 실망스럽고 비판적인 지점들이 많습니다. 한편으로, 이 시는 <자유로운 조선>을 향하는 여정에서 여성을 조력자로 설정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기도 합니다. 여성은 현실에 등장하고 참여하며, 이야기되는 사람들입니다.
- 화자가 토로하는 고난과 감정을 통해 화자의 한계를 살펴본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예컨대, 화자는 “옥수수 날날이 밀고 담으신 힌밥/풋멱과 고사리 복어무침 송어찜/누님의 철따룬 사식으로/자유로운 조선은 모진 고비고비 넘겨왔읍니다.”라고 말합니다. 누님이 넣어준 형형색색의 철따룬 사식들과 모진 고비, ‘속옷’ ‘목도리’와 같은 시어는 묘하게 어긋납니다. 즉, 화자는 시 전반에 걸쳐 자신의 모진 여정을 감성적으로 이야기하나, 그 여정의 모진 정도가 시의 상황에 처해있을 다른 이들에게 적용했을 때에도 정말 모진 것인지는 알수 없다는 점에서, 화자의 진술에 공감할 수만은 없습니다.

3-3) 바다와 나비
- 김기림의 시에서 가장 중요하고 유명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정했습니다.
- 3연 7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거의 모든 시어 하나하나를 살폈고, 시의 정교함과 빼어남, 아름다움에 대해 이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흥미로웠던 문제제기는 이 시가 1939년 <<여성>>에 실렸다는 점을 통해 ‘나비’를 ‘힌’, ‘어린’, ‘공주’, ‘허리’와 연결한 비판과 시의 시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 시어들은 특정한 성별을 연상시키고 이를 통해 시의 “서거푼”, “시”린 정서를 극대화하지만, 이러한 기획이 바람직한지 또는 이를 고려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문제적입니다.
- ’삼월’을 통해 연결되는 엘리엇의 <황무지>와의 연관성, ‘새파란 초생달’으로 시작한 퇴락과 죽음에 대한 논의도 흥미로웠습니다.
- 시의 서술은 화자가 나비를 관찰한 모습을 묘사한 것이며, 나비의 시선이 반영된 구절은 없습니다. 1) 시가 관찰자 시점이라는 점, 2) 관조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 3) 죽음으로 연결짓고 있는 상황을 심미적으로 지켜보고있다는 점은 비판적으로 논의할 수 있을듯 합니다.

3-4) 못
- <<바다와 나비>>에서는 자연물을 주제로 설정한 시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물을 다룬 시들도 많아 못을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 이미지에 대한 논의들이 주로 오갔습니다. 정적, ‘침묵’, 그 중에서도 죽음에 대한 이미지가 주요하게 다루어졌습니다.

3-5) 쥬피타의 추방
- <<바다와 나비>>에서 이 시가 가장 중요하고 빼어난 시라고 생각했고, 꼭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하여 선정하였습니다.
- 이 시는 이상의 추모시입니다. 시는 부제의 “이상의영전에바침”으로 시작합니다. 추모시는 시집의 다른 시에서도 있지만, 이 시는 그와 각별한 사이였던 이상의 추모시라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 시 곳곳에 박힌 이상에 대한 김기림의 각별한 마음에 대해 많이 논의했습니다. 시 전반에 걸친 시의 초현실적인 정경과 폭력, 절망의 정서 가운데 화자는 이상의 모습을 마지막까지 좇고 묘사합니다. 김기림과 연결짓게하는 화자의 이러한 태도는, 이상의 시를 그의 추모시 속에서 재현하고 그의 모습을 충실히 기록하고, 죽음을 승천으로 승화함으로써 이상을 긍정합니다. 
- 쥬피타임에도 불구하고 "누덕이불로라도 신문지로라도 좋으니/저 태양을 가려다고. 눈먼 팔레스타인의 살육을 키질하는 이 건장한/대영제국의 태양을 보지 말게 해다고"라는 이상의 말은 역설적입니다. 하늘의 지배자임에도 불구하고, 쥬피타는 태양을 피하며, 부탁합니다. 이러한 빛의 이미지가 지난 시간에 읽었던 박상순 시에서의 빛의 이미지와 연결된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시 마지막 행의 사연을 들은 것도 좋았습니다. 화자는 “어둠을 뚫고 타는 두 눈동자를 끝내 감기지 못했다.”라고 마지막으로 서술합니다. 이상은 죽었을 때 친구들이 감기어도 두 눈을 감지 못했고, 생전에 그가 좋아했던 가게에 들어가서야 눈을 감을수 있었다고 합니다. 

댓글목록

희음님의 댓글

희음

아, 이렇게 꼼꼼한 후기라니. 너무 감사합니다.
김기림의 시를 손수 골라 주시고 사람 수에 맞게 카피까지 해 와 주신 그 정성은 물론이고
그의 매력과 그만의 문체, 그 특유의 표현형식이 잘 드러난 시와 비판할 여지가 있는 시를
고루 골라 와 주신 안목에 대해서도 감탄을 했더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 '쥬피타의 추방'을 가슴으로 읽어 와 그 슬픔의 감각을 나누어 주시던 모습도
무척이나 인상 깊었습니다. 자신의 스타일을 최대한 축소하고 그가 사랑했던 추모의 대상인 이상의
언어를 흉내 내고 재현하고 기록함으로써 이상을 긍정하는 김기림을 재발견할 수 있었던 데에도
승운 선생님의 몫이 컸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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