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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뮨] 거대한 전환_1.백년평화_후기 (0819.토) +7
오라클 / 2017-08-21 / 조회 2,305 

본문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1장 백년 평화 _후기

 

   [1] 백년 평화 :: 요약          

 

거대한 전환. 시장 자유주의의 몰락 >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이란, 19세기 문명의 몰락을 가져온 1930~1940년대의 ‘시장 자유주의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19C 문명은 무너졌다 이 책은 이 사건의 정치적ㆍ경제적 여러 기원들과 이것이 불러들인 거대한 전환을 다룬다. ······ 이 세계경제의 파탄은 우리문명의 붕괴가 시작된 시점이며,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100년도 전에 벌어진 사회적 기술적 대변동(자기조정 시장이라는 관념이 생겨난 시점)이다. (시장 자유주의를 시험하는) 모험이 시작된 것은 이때였으며, 우리는 그 모험(시장 자유주의)의 종말을 목도했을 뿐이다. 그 모험의 종말과 함께 산업문명의 역사도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다.”

 

백년 평화 1815~1914 > 폴라니는 “어째서 1815~1914년 오랜 기간에 걸쳐 평화와 번영을 누리던 유럽이 갑자기 세계대전에 빠져들고 경제적 붕괴가 이어졌는가?” 질문한다. 1장 백년 평화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인 셈이다. (백년 평화는 1815년~1914년까지 세계대전 이전까지 강고한 단결을 보여주었던 서양문명의 백년에 걸친 평화를 말한다. 이 기간 사소한 국지전은 있었지만, 전세계적 수준의 전면전은 존재하지 않았다.) 폴라니는 백년 평화의 종말을 가져온 ‘시장 자유주의의 죽음’을 말하기 위해, 백년 평화의 과정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19C의 두 기간 동안 중간계급의 역할 > 백년 평화의 배경을 제공한 것은 새로운 경제생활 조직(국제금융, 오트피낭스)이었다. ① (신성동맹의 반동적인 평화) 처음 기간에는 나폴레옹 시대의 대격변체에서 보듯이 떠오르는 중간계급(부르주아지. 자본가계급)이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혁명세력이었고, 민족주의라는 새로운 동요와 싸우면서 신성동맹이 반동적인 평화를 조직했다. ② (유렵협조체제의 평화 수호) 두 번째 기간은 새로운 경제체제가 승승장구하던 기간이었다. 중간계급은 이제 평화라는 이익의 담지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경제체제의 일국적ㆍ국제적 성격애서 자양분을 공급받아 평화를 지키는 능력도 반동적인 전임자보다 훨씬 강력했다.

 

세력균형체제를 관리하는 사회기관 > ① (사회기관의 제공) 하지만 두시기 모두 평화가 실효를 거둘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경제조직의 역할 때문이었다. 본래 세력균형체제란 평화가 아닌 각국의 독립을 목표로 하는 체제였지만, 평화의 이해세력들은 준동하는 세력들을 관리하는 사회기관들을 제공하여 세력균형체제가 평화에 복무하도록 만들었다. ② (신성동맹과 유럽협조체제) 두시대 모두 마찬가지였다. 신성동맹 체제 아래서는 봉건제와 군주들이 가톨릭 권력의 지원을 얻어 그러한 사회기관의 역할을 했다. 유럽협조체제 기간 동안에는 국제금융과 각국 내 은행체제들이 사회기관의 역할을 맡았다. 


평화의 요인 :: 정치조직과 경제조직 > ① (정치조직 vs 경제조직) 평화가 유지되었던 것은 강대국의 재상들(정치조직의 외교 등) 때문만이 아니라, 보편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구체적인 조직행위자들(국제금융 같은 경제조직) 때문이었다. 세력균형체제가 세계적인 대전란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새로운 경제체제(시장경제)라는 배경에서만 가능했다. ② (신성동맹 vs 유럽협조체제) 유럽협조체제가 신성동맹보다 성취가 훨씬 크다. 신성동맹이 평화를 유지한 것은 본격팽창 이전의 제한된 지역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유럽협조체제는 전 지구적으로 사회적 경제적 진보가 이루어진 시기에 전 세계 규모에서 평화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대한 과업이 가능했던 것은 오트피낭스가 국제사회의 정치조직과 경제조직의 연결고리였기 때문이다. 

 

   [2] 백년 평화 : 토론          

 

[1] 국제적 차원에서의 평화의 가능성

오트피낭스가 백년 평화를 수호한 유럽의 지도부였다면, 각 나라의 국제적 영리활동을 위한 사적 이익이 백년 평화를 가져온 토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는 경제적 이해에 기반하지 않는 평화는 가능한가?  

“이렇게 여러 국가의 경계선을 넘어선 문명화된 공동체들의 생활 전반에 침투한 국제적 영리활동이라는 사적 이익의 말없는 압력이야말로, 국제관계에서의 쌍무적 관계를 유지해준 닻줄이었으며, 세력균형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게 효과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원천이기도 했다.” 《거대한 전환》 1장 백년평화. p129

먼저, 백년 평화를 가져온 것이 영리활동이라는 사적 이익에 기반한 것이므로, 국제적 차원에서의 평화란 사적 이익이 침해되면 언제든지 파괴될 수 있는 일시적인 것이다. 

다음, 세계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착취하는 집단과 착취당하는 집단으로 나누어져 있다. 국제적 차원에서는 선진국과 후진국과 같이 발전정도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은 약소국의 착취를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상류층, 중산층, 빈민층과 같이 재산의 정도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의 축적은 노동자계급의 착취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국제적 차원에서 뿐 아니라 국가적 수준에서도 두 집단은 화해불가능하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화란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지구촌공동체나 국가공동체 같은 말에서는 세계나 국가를 단일한 하나의 주체로 상정하고 있지만, 실제 세계나 국가는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대립적인 두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고 이 경제적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2017년 현재 세계 1%가 가진 경제적 부가 나머지 99%보다 크다. 세계에서는 70억 인구 2배에 가까운 식량이 생산되고 매년 식량의 절반이 폐기되고 있다. 한편 전세계 인구의 50%가 굶주리고 있는데도, 폐기되는 식량은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제공되지 않는다! 

 

[2] 시장 자유주의의 죽음

폴라니는 19C 문명은 무너졌다고 했는데, 19C 문명을 떠받치고 있던 4개의 제도는 지금도 여전히 존속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거대한 전환》은 시장 자유주의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책인데, 시장경제는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잇는 것이 아닌가?

“19C 문명은 무너졌다. 19C 문명을 떠받치던 것은 4개의 제도였다. 유럽 강대국들 간의 파괴적인 전쟁을 한세기 동안 방지한 세력균형체제. 세계경제라는 19C 조직체의 상징이었던 국제 금본위제. 물질적 복지를 낳았던 자기조정 시장. 자유주의적 국가.” 《거대한 전환》 1장 백년평화. p93

관점1> 시장경제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 시장경제에 기대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즉 시장경제를 향한 인간의 욕망, 물질적 부의 축적을 위한 인간의 욕망.

관점2> 19C 시장경제가 몰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까닭에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관점3> 폴라니가 19C 시장경제의 죽음을 선언한 것은, 시장경제가 자본축적의 한계에 봉착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현재의 시장경제는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작동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상품이 쌓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실업이 누적되어, 상품은 주기적으로 폐기된다. 자본축적이 진행될수록 한편에서는 자본이 과잉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빈곤이 가속화된다.   

 

댓글목록

요고마고님의 댓글

요고마고

이번 텍스트 읽으면서, 오히려  평화라는 것 자체가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무섭기도 하네요. 역시.. 공짜는 없군용;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댓글의 댓글

'백년 평화'가 가능했던 국제금융의 작동방식을 생각하면 '평화'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노동력의 상품화과정에서의 '생산수단으로부터의 자유'가 의미하는 것도 동일하지요!
<자본>에 이어 <거대한 전환>도 함께 공부하게 되어 반갑고 기뻐요, 요고마고 ^.^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발제랑 후기랑 나눠서하니 다른 사람이 정리한것 보면서 다시한번 상기 되어 좋습니다.^^

칼마르크스 명언중에
"인간의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인간은 본인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 전쟁도 평화도 불사하는 존재인것 같습니다. 전에 저 명언을 들었을때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경쟁이 아닌 협력하며 살아가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이번 백년평화를 보면서 표면적인 평화만을 볼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들여다 보는것이 중요하다는걸 느꼈습니다.
저번시간에 자유가 정반대의 다른 뜻으로 쓰였는데 이번에는 평화가 그러했습니다
평화라는 것에 방점을 두기 보다는 본인들의 이익을 위한 평화를 지키기위한 통제와 규제,희생에 방점을 두어야, 불가능하겠지만, 화해의 길이 가까워질것 같습니다. 종국엔 약자의 해방이 강자의 해방이기 때문에 두집단의 화해는 필수 불가결할것입니다.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댓글의 댓글

1.
"인간의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이것은 칼 맑스의 역사적 유물론을 정식화한 테제입니다.
"사회의 물질적 힘을 지배하는 계급은 동시에 사회의 정신적 힘도 지배한다."는 것인데,
'정신에 대한 물질의 선차성'을 말하는 변증법적 유몰론을 인간역사에 적용한 것입니다.

2.
올리비아의 말이 니체가 말한 긍정의 철학, 강자의 철학입니다.
자신의 해방을 통해, 타자의 해방을 여는 방식! 두번의 긍정을 통한 자기극복의 방식!

자본의 이해를 중심으로 할 때는 자본과 노동은 화해불가능하지만,
노동의 이해를 목적으로 할 때는 노동뿐 아니라 자본까지 해방하는 것이지요^^

다만 니체는 현재 누가 힘을 많이 갖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주도하는 힘을 강자라고 했고, 변화에 반동적인 힘을 약자라고 표현했지요.
곧 니체를 읽으면서 함께 공부해요! 올리비아^^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댓글의 댓글

오 ~ 짬뽕된 생각과 지식을 정리해 주셔서 쪼아욥 ^^
니체 니체 ~~ 기대 댑니닷 .. 쿄쿄

널깊님의 댓글

널깊

읽으면서 지난 시간 공부했던 내용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칼 폴라니의 말처럼 19세기의 시장 자유주의는 이미 몰락했지만, 인간 스스로 그것을 자꾸만 붙잡고 놓질 않는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밖은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그 밖을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높은 벽을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몰락을 덤덤히 받아들이고 그 바깥의 다양한 가능성들을 탐구해야하는 시기가 오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본주의라는 하나의 제도에 구속될 이유가 없는, 무한한 가능성들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요..
다음시간도 즐거운 공부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댓글의 댓글

1. '시장 자유주의는 몰락했지만, 인간이 그것을 붙잡고 있는'
... 맞습니다. 문제는 체제(시스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동조하는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닐까!

2. '자본주의 밖은 존재하지만, 그 밖을 사유할 수 없게 만드는 높은 벽'
... 그 벽은 누가 세운 것일까. 혹시 내가 그 벽을 구성하는 하나의 벽돌은 아닐까?
... 자본주의에 살면서, 자본의 외부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3. '몰락을 위한 다양한 가능성들을 탐구하는... 우리는 자본주의에 구속될 이유가 없는 무한한 존재'
... 감동적인 표현입니다. 코뮨주의를 향한 실험 속에 우리는 '무한한 존재'를 이해하게 됩니다.
... 세미나에서는 조용한 듯 했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랬군요. 함께 공부해서 좋아요. 널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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