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캘리번과마녀> 3장 0717 후기
올리비아
/ 2017-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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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캘리번과마녀> 3장 0717 후기
3장 대 캘리번 : 반란자의 신체에 대한 투쟁
데카르트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코기토 코기토 하는것이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홉스보다 더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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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기계론적 철학이 약속한 물질적 행위의 규칙화와 모순되는 사회적 주체와
광범위한 전자본주의적 신념 및 관습을 파괴하지 못한다면,
신체기계가 사회적 행위의 모델이 되지 못했을것이다,
"이성의세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신체에 대한 격력한 공격이 일어나고,
새로운 교리를 빋는 많은 이들이 이를 지원한 것은 바로 이 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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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자본주의적 신념및 관습을 파괴해야만 신체를 기계화할 수 있고 그에 사회적 행위의 모델이 될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하기 위해 신체에 대해
격렬히 공격해야만 새로운 신체윤리를 부여할수 있고, 지배할 수 있었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일신론 vs 홉스의 일원론적 기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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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일신론"과 홉스의 "유물론" 간의 갈등은 결국 상호동화를 통해 해결된다.
국가권력이 집중되어야만 최종적으로 통제 메커니즘을 개인에게 분산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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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 전제 되어야 하는 타인의 지배를 합리화 시키기위해 데카르트와 홉스의 이론을 사람들은 지지했고,
이 주장은 기존의 종교 및 신념을 넘어설 수 있는 든든한 받침이 되어주었다.
(본인의 이익이 된다면 신념과 종교 따위는 내다 버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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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신체의 기계화는 욕망, 감정 그 외 뿌리 뽑아야만 하는 행위의 억압과 관련되어 있는 동시에
신체의 타자로 출현하며 신체의 변형을 매개하는 개인의 새로운 역량들의 발달과도 무관하지 않다.
즉 이와 같은 신체로부터의 소외는 개인 정체성을 발달 시키는데,
이는 정확히 신체와는 다른 "타자성"으로 사고되며, 신체와는 꾸준히 적대적인 관계에 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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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이 이번 장의 핵심 내용이란 생각이 들었다.
왜 내가 정체성을 찾아야만 하는가..... 내가 나대로 살면 찾을 이유가 없다. 내가 곧 나니까.
그러나 이런 신체의 소외로 부터 개인의 정체성이 발달되었고,
이는 신체와는 다른 "타자성"으로 사고 되고, 이런 관계는 꾸준히 지속된다.
계속 정체성에 혼란을 격는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좋아하는것, 내가 하고 싶은것..
모든것이 정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것인가...... 타인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착각하는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