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 세미나 후기]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2017. 07. 18.) +1
박우현
/ 2017-07-24
/ 조회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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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세미나 세번 째 시간은 역사철학테제로 알려져 있는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를 읽었습니다.
크게 20개의 테제로 구성된 <역사의 개념의 대하여> 전체를 논의할 수는 없었지만 벤야민의 생각을 읽어보고자 노력했습니다.
수많은 은유로 점철된 테제에 관한 독해는 테제 1번부터 여러 논의를 야기합니다. 자동기계로 시작되는 테제1번의 이야기를 해석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논의가 오갔습니다. 테제1번에 대한 의미부여를 글 전체를 아우르는 중심내용을 함축하고 있다는 의견이 먼저 제기되었는데 역시 '자동기계'로 설명되는 역사적 유물론의 특성이 글 전체를 상징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글의 해석을 위해 지속적으로 의지한 미카엘 뢰비의 글에서 힌트를 얻어 테제1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신학을 유물론과 연합시키는 마지막 문장이라는 의견도 제기되었습니다. 이와 달리 테제 1번에 대한 지나친 의미부여를 경계하면서 이 글은 글 전체의 도입부로서 근대성, 근대적 인과성의 신화에 빠져 있으면서 신학은 '구닥다리'라고 여기는 당대의 이항대립 관계를 균열내는 사전 작업으로서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당대에 대립관계로 읽히거나 무시당했던 신학을 유물론과 같은 선상에서 혹은 연합의 대상으로 놓았다는 점입니다.
테제 2번에서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그렇다면 우리는 이 지상에서 기다려졌던 사람들이다"라는 구절이었습니다. 흔히 메시아주의로 설명되는 벤야민 철학의 특징인데 동시에 현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을 보여주는 구절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구원을 위해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구원을 위해 기다려졌던 사람이라는 현재성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우리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세대와 마찬가지로 미약한 메시아적 힘이 주어져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의 연결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테제 3번에서는 '사건들을 그것들의 크고 작음을 구별하지 않고 헤아리는 연대기 기술자'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랑케 등으로 대표되는 역사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을 시작합니다. 테제 17번에서도 이야기 하듯이 역사주의자가 추구하는 보편사는 이론적 장치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가산적 방법을 통해 사실의 더미를 모으는 데 급급하다는 것이 벤야민의 주요한 비판 중 하나입니다. 벤야민에게 과거의 시간은 매 순간순간 상실되어서는 안되는 진리가 아닙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프로이트의 '시간성의 역전'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잠복해 있었던 기억이 특정한 순간에 다시 떠오르는 것처럼 과거에 대한 나의 기억은 시간성을 담보하기 보다는 선택의 결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간순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마르크스에 훈련된 역사가는 계급투쟁과 관련해 역사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테제 4번은 이와 관련해 맑스의 학교에서 교육받은 역사가 즉 역사적 유물론자는 지배자의 수중에 떨어져 축하받은 일체의 승리에 의문을 제시하고 이러한 승리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변화를 감지해야 한다는 지점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유물론자의 임무에 대해 테제 5,6번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결국 역사의 진짜 얼굴은 불현 듯 등장할 뿐이고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경우 사라질 위험이 있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역사적 유물론자가 발견해내어야 하는 역사의 현재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현재성에 입각해 역사를 발견하지 않으면 벤야민의 말처럼 결국 '과거를 기록하는 역사가가 헐떡이며 가져다주는 희소식은 어쩌면 입을 여는 순간 이미 허공에 대고 말하는 입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미나에서 다루지 못했던 후반부 테제에서는 본격적으로 당대 현실에 입각해 스탈린주의, 사회민주주의의 문제들에 직접적 비판을 제기하며 테제1번에서도 언급한 유물론과 신학의 연합을 끄집어냅니다.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라는 글 하나로도 세미나를 여러 번 진행해야 할 만큼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미카엘 뢰비의 저서로 진행할 다음 세미나가 기대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댓글목록
희음님의 댓글
희음
미카엘 뢰비의 <화재경보>를 참조해 가면서, 또 거기에 실린 '역사 철학 테제'의 번역을 비교하기도 하면서 충일하게 발제를 준비해 와 주신 우현 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후기도 우리가 나눈 논의 위주로 잘 정리해 주셨네요.
'기다려졌던 사람'으로서 현재의 우리들이 호명되는 대목에 있어서는 눈물마저 찔끔 맺혔습니다.^^; 느닷없이 과거의 한 순간이 지금의 장면과 만나 번개처럼 내리 꽂힐 때,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준비된 자가 되어야만 하겠다는 생각.
뢰비의 책을 함께 읽으며 벤야민의 역사관을 좀 더 꼼꼼히 들여다 보게 될 시간도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