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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캘리번과마녀> 3장 0717 발제
올리비아 / 2017-07-17 / 조회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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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캘리번과마녀> 3장 0717 발제

 

2016.07.17.      3장 대캘리번 반란자의 신체에 대한 투쟁 193       발제 올리비아

 

미셀 푸코 : 자본주의 발달의 전제조건 중 하나는 "신체의 규율"과정이다. 이 과정은 개인의 힘을 노동력으로 전환시키려는 국가와 교회의 시도로 구성된다.

 

● 16세기 서유럽 배경

중상주의적 부르주아지의 출현과 청교도 개혁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아, 무대, 연단, 정치, 및 철학적 상상등의 모든 영역에서 "개인" 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출현했다.

예)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1612) - 한 인간 안에서의 이중적인 면

이성의힘 : 인색함, 신중함, 책임감, 자기통제

육체의 저급한 본능들 : 방탕함, 게으름, 생명에너지의 체계적인 탕진-이성은 육욕에 눈이 먼 자아의 공격 앞에서 방심해서는 안되며 "살덩어리의 지식" 이 마음의 힘을 더럽히지 못하게 해야 하기 대문에 극단적인 경우 인간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이 된다.

 

막스베버 : 신체의 개혁은 부르주아 윤리의 핵심이다. 왜냐면 자본주의는 부의 획득을 필요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삶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여기기 대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모든 자연스런 삶의 즐거움을 우리에게서 박탈하고자 한다.....노동일을 태양, 계절적 순환, 신체 그 자체의 한계 이상으로 연장함으로써 "자연상태"를 극복하고자 한다.

 

맑스 : 신체로부터의 소외를 자본주의적 노동관계의 고유한 특성으로 보고 있다. 자본주의는 노동을 상품으로 변형함으로써 노동자들의 활동을 노동자 자신의 통제 밖에 있는 외적 질서에 종속시킨다......노동과정은 자기소외의 기초가 된다........자신의 노동을 자유롭게 분리하는, 혹은 자신의 신체를 최고의 입찰자에게 양도할 자본으로 받아들이는 노동자의 이미지는 자본주의 노동규율을 통해 만들어진 노동계급을 의미한다.

 

* 시초축적시기 상황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새로게 출현한 부르조아지들은 "노동력의 해방", 다시말해 소농으로부터의 공유지 몰수만으로는 프롤레타이아트들에게 임노동을 받아들이도록 강제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16세기와 17세기에는 임노동에 대한 혐오가 너무 극심해서 많은 프롤레타이라트가 새로운 노동조건에 굴복하느니 차라리 교수형에 처할 위험을 감수했다. 이것은 자본주의 위기였다.......부르주아지는 처벌을 강화함으로써 특히 재산권을 침해 하는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과거에 농노들이 토지에 구속되었던 것처럼 노동자들을 강제된 노동에 속박시키기 위해 부랑자들에 대한 "피의법령"을 도입했다.-잉글랜드에서 헨리 8세가 집권하던 38년동안 교수형에 처해진 사람의 수가 7만 2천 명에 달했다.

 

* 지배계급의 폭력은 범법자들에게만 가해진것이 아니었다. 개인의 급진적인 개조를 목표로, 프롤레타리아들이 더엄격한 노동규율을 시행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일체의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개인의 책임감과 "노동윤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게임은 금지되었다. 공중목욕탕, 선술집들이 폐쇄되었고, 노출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졌다. 섹슈얼리티와 사교행위, 술마시거나, 욕을하거나, 악담 모두 금지됨.

신체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정책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신체를 모든 악의 근원으로 공격했던 점이 새로운 지점이었다. 

 

● 신체라는 것이 왜 국가 정치와 지적인 담론에서 그렇게 중요했던 걸까?

→ 지배계급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공포를 느껶다는 사실을 반영한것이다.

→ 가난하고 반항적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사실 모든 부의 원천으로 등장하게 된 사회 주체들과 동일한 집단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중상주의자들 -> 너무많은 신체가 교수대에서 낭비된다고 개탄할때 아쉬워햇던 바로 그 신체의 소유자들. 자연적인 부가 아닌 노동이 축적이 중요한 원천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해도가 이미 높았다. 당시 기술발전 수준이 낮아서 생산성이 있는 자원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예)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중 프로스페로가 한말 : 우리는 그놈 없이는 살아갈 수도 없어, 그놈은 불을 때주고 나무를 해오고,,,

 

→ 중세의 신체를 보는 관점 : 금욕주의에서 신체의 저속화는 부정적인 기능만을 가질뿐, 즉 세속적인 즐거움이 일시적이고도 환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결과적으로 신체를 부정해야 함을 강조하고자 했을 뿐이었다.

→ 기계론적 철학에서 보는 신체 : 신체의 종속을 강화할 뿐 아니라 사회적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목적 하에 그 능력을 합리화 하기 위해 신체를 계산하고 분류하며 특징을 찾아내고 저속화하는, 신흥 부르주아 정신을 감지한다. 신체를 비난하지 않는 대신 신체의 작동을 이해가능하고 통제가능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개념화하고자 한다.

 

● 신체는 사회정책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노동기계로 보기시작했다

데카르트 : 신체에 사고능력이 있을까? 당연히 없다. 이 기계는 자동장치일 뿐이며 인간의 죽음대 대해 기계의 고장보다 더 슬퍼할 이유가 없다. 기계적 물질로 축소되었기 대문에 신체를 의지의 문제로 만드는 자기관리 메커니즘의 발달이 가능해졌다.

홉스 : 신체는 기계적 움직임에 집합이다..... 심장은 펌프일 뿐이고,,, 관절은 수많은 바퀴일 뿐이다.

신체의 기계화는 개인이 국가권력에 전적으로 종속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다. 

→ 이런 관점들의 결과로

- 인간 본성/자연에 대한 탐구가 새롭게 나타난 자본주의 과학의 연구에 크게 공헌했다.

- 신체의 장치들이 분해되고 신체 자체가 기계로 환원되고 나면 신체는 그 힘과 가능성에 대한 무한한 조작에 노출될 수 있다. .....기계론적 철학은 자연계에 대한 지배계급의 통제를 강화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인간본성에 대한 통제가 최우선적이다....

신체적 속성을 재정의 함으로써 신체를, 이상적으로 ,최소한, 자본주의적 노동규율이 요구하는 자동기법과 규칙성에 걸맞게 조정하는 결과를 낳음. 두 철학자의 사색속에서 신체의 노동기계로의 발달이 처음으로 개념화된 것을 확인할수 있다.

 

* 인체해부는 인체의 어떤 속성들을 살리고 어떤 부분을 죽일지를 결정하는데 활용된다. 평범한 금속을 금으로 바꾸려는 것이 연금술이라면, 육체적 힘을 노동력으로 바꾸려는 것은 사회적 연금술이라 할수 있다.....신체는 뉴턴 물리학의 질량과 운동사이에 설정해 놓은것과 유사한 조건에서, 오직 의지만이 움직일수 있는 운동성이 없고 척박한 물질.....토지처럼 신체는 경작되어야만 하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분해 되어야 한다.....신체가 죽어야만 노동력이 살수 있다.

 

* 국가가 기계론적 철학이 약속한 물질적 행위의 규칙화와 모순되는 사회적 주체와 광범위한 전자본주의적 신념 및 관습을 파괴하지 못한다면, 신체기계가 사회적 행위의 모델이 되지 못했을것이다, "이성의세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신체에 대한 격력한 공격이 일어나고, 새로운 교리를 빋는 많은 이들이 이를 지원한 것은 바로 이 떄문이다.

 

 

● 중세 전반에 걸친 대중적으로 확산된 마법적인 세계관, 과학적 합리화 과정.

* 마법의 근간에는 물질과 정신을 구분하지 않고, 따라서 우주를 주술적인 힘으로 채워진 살아있는 유기체로 상상하는 자연에 대한 애니미즘적 관념. 마법주문으로 타인의 의지를 구속할 수 있는 힘을 부여 하는 우주라는 개념은 자본주위적 노동규율과 양립하지 못함. 규칙화된 노동과정을 불가능하게 하는 시공간에 대 한 질적 개념을 근거했다. 예) 결혼하기 좋은날. 그래서 마법이 비판받고 억제 되었지만 오늘날에는 더이상 사회적 위협이 아니기 대문에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17세기 지배계급에게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이니였다...... 마법적인 힘이 실재하는가 아닌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마법에 대한 신념이 존재한다느 사실 자체가 사회적 저항의 근원이었기 대문이다. 마법과 자본주의적 노동규율이 양립 불가능하고 사회적 통제가 필요했기 대문에 국가는 마법에 대한 공포와의 전투에 착수했다. 

 

프란시스 베이컨 : 미법이 근면함을 해친다며 개탄함. 이마에 땀을 흘리는 대신 게으른 몇 가지 처방만을 가지고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만큼 화나는 일은 없다.

 

홉스 : 유물론자이지만 마녀사냥과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그 필요성을 인정했다.

"미신을 제거하면 "인간은 훨씬 더 복종을 잘하게 될 것" 이라고 말함.

 

* 마녀들과 다른 마술사들이 죽어간 말뚝과, 이들에 대한 고문이 자행되던 고문실은 수 많은 사회적 규율이 누적되고, 신체에 대한 많은 지식을 얻어 낸 실험실이 되었다. 개인의 신체와 사회를 일단에 예측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메커니즘으로 변형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던 불합리가 바로 이곳에서 제거 되었다. 고문의 과학적 이용에 태동한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이 맥락에서 중요한 요점는 낙태와 피임을 사악한 행위라면서 비난했고, 이로 인해 여성의 신체(노동의 재생산 기계로 축소된 자궁)가 국가와 의료전문가의 손에 맡겨지게 된 점이다.

 

* 국가가 이러한 폭력을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롤레타이아트에 대한 규율은, 박해의 공포마저도 억누를 수 없었던강한 저항에 직면하게 되면서 17세가를 지나 18세기 까지 느리게 진행 되었다.

이유는 사형수의 시체를 외과의의 조수들이 시체를 해부용으로 사용했고. 해부에 대한 공포가 죽음의 공포 못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신체에 대한 마법적인 사고 확산되어있었다. 사후에도 계속 살아 있꼬, 죽음을 통해 신체는 해로운 힘으로 더욱 풍요로워진다. .....해부는 사형보다 더 심한 오명이자 더 심각한 이차 살해로 인식되었다.

과학적 합리화의 과정은 고분고분하지 않은 노동력을 통제하려는 국가의 시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 사회적 통제의 필요한 지극한 힘은 천문학 분야에서 마저 분명하게 나타난다.

예) 헬리혜성 - 자연현상이 예측가능함을 보여줌 (그 전에 혜성은 사회적 혼란을 주는 마법적인 것이였다)

과학적 합리화의 경로가 사회적 신체의 규율과 교차한다는 사실은 사회과학에서 훨신 더 분면하게 나타난다. 실제로 사회과학의 발달은 사회적 행위의 동질화와, 모두가 순응하는 모법적인 개인의 구축을 전제로 했다.

 

* 개인이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에 겪었던 추상화 과정의 측면에서 보았을때 "인간기계"의 발달이 중요한 기술적 도약이었음을 알수 있다.

 

● 인간이 기계라면 어떻게 작동시킬것인가?

기계론적 철학이론중 신체의 통제에 대한 두가지 상이한 모델

데카르트 모델 : 순수하게 기계적인 신체라는 가정에서 출발하여 동의에 기초한 통치와 자발적인 노동관계를 가능테 하는 자기규율, 자기관기, 자기조절 같은 개별 매커니즘들의 발달 가능성을 상정한다.

홉스의 모델 : 신체에서 벗어난 이성이 존재할 가능성을 부정하면서 통제기능을 외부화하여 국가의 절대적인 권위에 이 통제기능을 위임한다.

 

데카르트 : 정신과 육체간의 위계적인 관계를 설정하면서 자본주의 경제의 발달에 필요한 노동규율의 이론적 전제를 진전시켰다.....즉 의지는 육체의 중요한 기능에 규칙적인 질서를 부여할 수도 있고, 육체가 그 욕망에 관계없이 외부적인 조건에 따라 작동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의지의 우위는 권력 메커니즘의 내부화를 가능케 할 것이라는 점이다. 자기관리, 자가소유, 법, 책임성이라는 부르주아적 주체성의 기원과 이거 및 정체성이라는 그 부산물들을 발견하게 된다......데카르트 이원론의 주된 장점은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기독교적 방어와, 자연마법에 내재한 무신론을 무찌를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 왜 유럽에서는 유독 데카르트 철학의 장악력이 그렇게 강했을까?

배경은 뉴턴의 물리학을 통해 주술적인 힘이 전혀 없는 자연계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종교적인 관용이 나타난 이후에도 데카르트 철학은 지배적인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기지배 프로그램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자기소유권이 기본적인 사회적관계로 상정되고 규율은 더 이상 외압에만 좌우되지 않기 때문이다....데카르트의 철학이 자본주의 체제를 지적으로 정당화시켜 준다느 사실에서 기인한다.......자신의 신체를 관리하고 지배함으로써, 나아가 다른 동료의신체를 관리하고 지배함으로써 생성되기 대문에 영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자기통제의 역학에 대한 통찰력은 주인과 노예의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잇는 새로운 인간 모델의 구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 데카르트 홉스가 진 이유.. 다른점

생물학적 일원론, 인간 행위는 정확히 자연법칙을 따르는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부단히 타인에 대한 지배와 권력을 추구하게 만드는 반사행위의 입합니다.....공포와 체벌을 통해 사회에서 개인의 생종을 보장해 주는 적대적인 권력의 필요를 이야기함. 홉스의 모델에서 국가의 손에만 맡겨져 있던 통제의 기능을 개인의 의지로 확장시킴으로써 사회적 규율 매커니즘을 민주화하려는 적극적인 경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홉스의 무신론과 유신론에 대한 당대에 비판이 일어던 것은 종교적인 우려 때문만은 아니었다. 개인은 욕구와 혐오감만으로 작동한느 기계라는 홉스의 관점에대한 거부감은 그 속에 신의 피조물로서의 인간이라는 개념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가 국가의 철의 규율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또 다른 사회적 통제의 가능성을 배제한 데서 기인한다.

 

* 데카르트의 "일신론"과 홉스의 "유물론" 간의 갈등은 결국 상호동화를 통해 해결된다. 국가권력이 집중되어야만 최종적으로 통제 메커니즘을 개인에게 분산시킬 수 있다. 

 

푸코 : 신체의 기계화는 욕망, 감정 그 외 뿌리 뽑아야만 하는 행위의 억압과 관련되어 있는 동시에 신체의 타자로 출현하며 신체의 변형을 매개하는 개인의 새로운 역량들의 발달과도 무관하지 않다. 즉 이와 같은 신체로부터의 소외는 개인 정체성을 발달 시키는데, 이는 정확히 신체와는 다른 "타자성"으로 사고되며, 신체와는 꾸준히 적대적인 관계에 놓이게된다. 

 

* 17세기 내내 자기관리는 부르주아의 특권이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아예 다른 인종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거대한 야수, 머리가 무수하게 달린 괴물, 거칠고 목소리가 크며 어디든 접근할수 있는 존재

엘리자베스시대의 문헌에 하층계급을 거론할때는 건장한, 건방진 성마른, 난폭한 같은 단어들을 자주 쓰였다.

이 과정에서 신체는 완전히 관계적인 용어가 되었다. 신체는 더이상 특정 실체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지배를 방해 하는 존재일 뿐이다.

 

 

* 엘리자베스시대 문학의 핵심주제 : 본능과 이성간의 갈등.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쟁, 교육에 대한 논쟁은 인간이 자발적인 주체인가 비자발적인 추체인가를 핵심문제로 하여 심신의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 되었다.

 

* 신체와의 새로운 관계애 대한 정의는 이데오로기적인 수준에만 머물지 않앗다.

나이프, 포크 사용, 벗은 신체에 대한 수치심, 웃는법, 걷는법, 재채기하는법,등 "매너" 가 등장

 

* 신체는 공포와 혐오감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인간의 신체는 오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인간을 동물성과 직접 마주하기 만드는 신체의 기능들을 혐오했다.(생리적인것들)

아이들이란 너무나도 천박하고 비열한 존재들이라고 생각하였다. 오물과 숨은 위험을 담은 그릇으로서의 신체.

배설물에 대한 분석과 비난이 그렇게도 많았던 것은 그것이 우리 신체 안에 있는 "나븐기운"의 상징이며, 인간의 모든 비딱한 성향이 거기서 기인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청교들에게 배설물은 본성의 타락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표식이 되었다....일종의 원죄와 같았다. (악마성을 몰아낼 때 정화제, 구토제, 관장제 같은 것을 사용함)

 

* 신체를 지배하려는 집착은, 부르주아들이 프롤레타리아트라고 하는 이질적이고 위험하며 비생산적인 존재를 정복 할때 보여준 것과 똑같은 열정을 확인할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당대의 대 칼리번이었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캘리번처럼 사회적 신체 안에 숨은 "나쁜 기질"의 화신으로 게으름과 알코올중독을 감추고 있는 괴물로 출발했다. 

 

* 자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보았을때 통제에 대한 무기력은 욕망과 자율적인 의지의 박탈로 변형되고, 성애적인 힘은 노동의 힘이 되며, 필요는 결핍과 금욕, 영원한 가난이라는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 발달 초기의 특징이었던 신체에 대한 전투는 오늘날 까지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 마녀사냥-> 개인의 재능에 대한 청교도의 꼼꼼한 탐구 -> 기계론적 철학의 사유

사회적 입법행위, 종교개혁, 우주의 과학적 합리화처럼 겉으로 봐선 연관관계를 찾을 수 없는 경로들이 하나의 실에 묶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체는 이 과정에서 점점 정치화되었다. 즉 사회적 규율의 외적 한계, "타자"로 탈자연화되고 재정의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17세기 신체의 탄생은 역설적으로 신체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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