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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선집읽기:: 0704 후기 +2
희음 / 2017-07-10 / 조회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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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여"

<신학적·정치적 단편>, <종교로서의 자본주의>, <경험과 빈곤> 후기

 

 

우리는 먼저 벤야민이 말하는 종교로서의 자본주의의의 네 가지 특징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즉, 제의종교로서의 자본주의와 그 제의가 영원히, 휴일도 없이 지속된다는 특성, 또한 죄로부터의 구원이 아닌 죄의 가중이나 죄 자체의 부여의 결과만을 낳는 자본주의, 마지막으로 그것의 신이 숨겨져 있어야 하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여기서, 자본주의 체제 위에서 그 실질적 제의란 무엇인가, 하는 화두가 던져졌죠. 휴일도 없이 모든 시간 안에 제의의 형식이 들어와 있다는 말은, 자본주의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활동들이 바로 제의로 치환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를 가동시키는 모든 생산 활동과 재생산 활동이 그에 해당할 것입니다. 물론 생산 혹은 재생산이란 그런 표준의 이름을 덮어쓴 피착취 활동에 다름 아니겠죠.

 

벤야민은 그것을 죄를 입거나 부풀리는 과정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자본주의라는 종교에서 죄(shult)는 부채에 상응하니까요(죄라는 말의 중의성 니체가 <<도덕의 계보학>>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죠. 벤야민 또한 이 글에서 니체를 몇 차례 언급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조금 더 구체화시켜 본다면, 노동자가 노동활동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부채를 늘려가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요. 부채를 갚기 위해 재차, 그리고 끝없이 일터로 돌아가지만 그런 행위가 부채를 줄이거나 상환하게 하긴커녕 기존의 부채에 다시 부채를 더하는 결과를 낳게 할 뿐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자본주의라는 운동의 본질은 종말까지 견디는 것이라고 벤야민은 말하죠. 존재를 붕괴하게 하는, 신도 없고 교리도 없고 구원도 없는 자본주의 위에서 우리가 할 것은 그것을 끝까지 따라가는 것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절망의 집의 지붕을 뚫고 나가게 되는 어떤 존재를 벤야민은 니체의 ‘초인’에 비유합니다.

 

 

이러한 절망과 파국의 운동은 <신학적·정치적 단편>에서 그 논의가 조금 더 확장되는 듯했습니다. ‘모든 지상의 존재는 행복 속에서 자신의 몰락을 추구하며, 그러면서 행복 속에서만 그 지상의 존재는 몰락을 발견하도록 예정되어 있’다고 말하죠. 이 말은 벤야민이 마르크스의 말을 비유적으로 빌려와 이야기하는 ‘회귀하지 않는 자본주의는 죄의 기능으로서의 이자와 이자의 이자와 함께 사회주의가 된다.’라는 말과도 통합니다. 우리를 굴레 지운 어떤 법칙을 쉼없이 따라가고 그 법칙 안에서 어딘가로 치달아갈 때, 그것은 종국에 가서 전혀 다른 국면을 불러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법칙과 체계라는 풍선이 한 순간 터져 버릴 것이라는 말이죠. 예컨대 자본주의를 가속화할 때 그 안의 모순들은 스스로 폭발할 것이라는 말.

 

물론 벤야민이 해당 단편에서 말하는 ‘세속적인 것의 질서’란 비단 자본주의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여기의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층위의 세속적인 그물망들을 다 일컫는 것이죠. 자본주의와 젠더와 세대와 가족과 예술과 정치와 사랑, 이 모든 것 속의 목소리와 리듬과 짜임들이 그것에 해당할 것입니다. 이러한 세속적인 것의 질서는 행복의 이념에 정향해야 한다고도 벤야민은 이야기하죠.

 

세속적 그물망들을 살피는 중에, 최원 선생님의 도움으로 중요한 구분이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종교적인 것과 메시아적인 것 사이의 구분입니다. ‘세속적인 것의 질서는 신의 왕국에 대한 생각에서 구축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신정정치는 아무런 정치적 의미도 가질 수 없고 오로지 종교적 의미만을 갖는다.’는 문장을 보더라도 그 둘은 엄밀하게 구분됩니다. 여기서 신정정치란 것은 현실적으로 구현된 신앙과 종교로서, 벤야민이 말하는 메시아적인 것, 메시아적 왕국과는 오히려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정정치, 즉 종교적인 것은 오히려 세속적인 것에 속하는 것일 테죠. 종교적인 것을 목적론으로 본다면 메시아적인 것은 종말론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벤야민은 세속적인 것은 메시아적 왕국의 범주와는 전혀 다른 극점에 있지만, 세속적인 것의 질서를 따라갈 때 그것이 자신의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힘 또한 가중시킨다는 의미에서, 그 세속적인 것이 메시아적 왕국의 적확한 범주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희망의 방향이 바로 절망의, 몰락의 방향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그 희망과 행복으로 대표되는 세속적인 것의 질서를 따라갈 때 파국과 몰락의 메시아적 왕국의 도래 또한 끌어당기게 되리라고 벤야민은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품었습니다. 그런 메시아적 왕국이 도래했을 때 우리는 과연 그것이 왕국의 때임을 알아볼 것인가, 그리고 그 순간은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구원을 줄 수 있는가, 그 왕국의 때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식으로 그 환희에 값해야 하는가 하는. 거대한 물과 불이 우리를 덮칠 때, 오물의 파편들이 우리의 모든 구멍들을 막아올 때 우리는 어떤 표정으로 그것을 마중하게 될까 하는 질문 말입니다.

 

댓글목록

최원님의 댓글

최원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멋지게 정리하셨네요~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감사~^^ 신학과 정치의 관계는 참으로 어려운 주제인데, 이번 벤야민 세미나를 통해 조금이나마 그 문제를 고민해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크네요~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멋진 후기, 잘 읽었습니다. ~~
마지막 단락에서 '디스토피아'적인 회색빛 전망이 눈 앞에 그려지는 듯합니다
철저히 붕괴되는 미래를 직시할 수 있는 힘은 과연 어디에서,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 것일까요?
벤야민이 던지는 질문들과 우리들이 품은 화두를 놓치지 않고 잘 따라가야겠습니다. (불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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