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2장 발제문 -주호
소리
/ 201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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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호가 건강이 악화된 관계로 발제문 대신 올립니다.
캘리번과 마녀
2017-0710(월) 주호
2장 노동축적과 여성의 지위하락(2)
노동인구 재생산에 대한 국가개입 : 노동계급의 범죄자화와 빈민구제
민중들의 생계수단 파괴에 대한 저항은 앞서 말한 식량투쟁 뿐 아니라 토지사유화, 관습권의 폐지, 새로운 세금의 부과, 임금에의 의존, 상비군의 촌락 주둔에도 해당됐다. 이주와 부랑 역시 저항의 일부였다. 유럽 전역에 매우 많은 수의 부랑자가 돌아다녔고 국가는 법을 제정해 부랑자를 강제노동 시켰고 그래도 교화되지 않는 경우 극형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19세기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곤궁과 폭동은 끝나지 않았으며 다만 식민지배를 통한 노예제의 제도화로 인해 약화되었을 뿐이었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이행기 동안 격렬한 사회갈등을 겪었고, 국가는 주도적으로 정책을 만들어갔다. 국가주도 정책의 주된 목적은 첫째, 더 잘 훈육된 노동력의 창출, 둘째, 사회적 저항의 분쇄, 셋째, 노동자들을 강요된 일자리에 묶어두는 것이었다.
국가는 노동자들의 유대와 단결을 공격했다. 모든 형태의 집단적 사회성과 성을 공격하기 위한 법안이 쏟아져 나왔다. 또한 국가의 개입을 통한 공공부조 체계가 도입되었다. 이는 노동자들을 최소한의 굶주림으로부터 보호해 도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주들은 노동자계급의 연대를 감당하기 어려웠으므로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국가에 의한 인구재생산 관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공공부조에 대한 갈등은 팽팽했으며, 또한 부조는 매우 불충분하게 이루어졌다. 수혜자가 부조를 받기 위해서는 나라마다 정해진 일정한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했고 이것은 결국 노동계급의 범죄자화를 야기했다.
인구감소, 경제위기, 그리고 여성의 훈육
여성노동의 평가절하
중세의 여성은 약초로 제조한 피임약을 이용했다. 피임 관련 지식은 여성이 출산에 대해 일정한 자기통제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나 이는 국가와 자본에 의해 불법화되었다. 이로 인해 여성은 자기 신체에 대한 권리를 부정당했으며 재생산 노동에 구속되었다. 여성은 곧 비노동자로 정의되었다. 노동자계급의 여성은 최하층의 직업에만 국한되어 종사했다. 여성의 노동은 평가절하되었다. 가내여성노동은 모두 집안일로 분류되었고 가외여성노동 또한 남성노동에 비해 적은 보수를 받았다. 결혼만이 여성의 진정한 직업처럼 인식되었으며 임노동에서 배제당한 여성들은 매춘에 종사했다. 중세 후기에는 매춘을 필요악으로 받아들였으나 16세기 이후 매춘은 불법화되어 창녀들은 추방되거나 처벌 받았다. 심지어 창녀를 성폭행하는 것은 죄가 아니게 되었다.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이 같은 공격은 동업조합에 의해 이루어졌다. 상인자본가들이 여성을 저임금으로 고용하였으므로 동업조합들은 작업장에서 여성들을 축출하고 배제하려 했으며 여성의 일을 가사노동에 국한시키고 싶어했다. 여성노동자들을 창녀, 마녀 등으로 부르는 등의 여성혐오증은 일터와 시장으로부터 그들을 몰아내려는 동업조합의 시도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시도들에 국가의 협조가 있었음은 물론이었다.
새로운 공유재산이자 상실한 토지의 대체물로서의 여성
새로운 성적 계약에 따라 프롤레타리아트 여성은 남성노동자가 상실한 토지의 대체물이자 가장 기초적인 재생산 수단이 되었으며 공유재로 여겨졌다. 여성의 활동이 비노동으로 정의되자 여성의 노동은 마치 공기처럼 누구나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천연자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여성은 고용주와 남성이라는 이중적 종속관계에 얽매이게 되었다.
임금 가부장제
‘가족’은 노동인구 재생산기지라는 근대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또한 시초축적 시대에 여성노동의 전유와 은폐를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기구로서 등장한다. 노동자계급에서 남편이 부인과 자식에게 휘두르는 권력의 원천은 여성의 임금으로부터의 배제에 있었다. 이것을 잘보여주는 것이 가내수공업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인구 감소기에도 수가 배로 늘어났는데, 가내수공업 남성노동자들은 결혼을 통해 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성욕을 해결할 창구가 생기는 동시에 &자식&이라는 노동인구를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부인이 만든 물건을 시장에 내다팔아도 그에 대한 댓가는 남편이 독차지했으며 아내가 받는 보수의 직접 수취인은 남편이었으므로 여성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가질 수 없었다. 이것은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됨과 동시에 남성노동자가 여성노동을 전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물질적 조건을 창출했다. 19세기에 들어서는 임금을 최소화하고 노동시간을 극대화하는 형태의 착취(절대적 이윤의 추구)에서 노동생산성과 작업속도의 향상으로 고임금과 노동시간 단축을 보상하는 체제(상대적 이윤의 추구)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또한 여성의 임금배제에 기초하고 있었다. 프롤레타리아트 여성은 항상 내다 팔기 위한 노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집안일은 최소화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 분업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남성노동자들은 부인의 노동과 임금의 수혜자였다. 프롤라타리아화의 초기단계에 매춘부들은 남성노동자 곁에서 요리, 빨래와 더불어 부인의 역할까지 했다. 노동자계급 여성의 처지는 노예와 다를 바가 없었다.
여성 길들이기와 여성성/남성성의 재정의 : 유럽의 야만인으로서의 여성
16-17세기에 여성은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입지를 상실했다. 특히 법률분야의 변화가 핵심적이었다. 여성의 법적 권리는 지속적으로 박탈되어 독립적 인간으로서 단독으로 경제활동할 권리를 상실했다. 여성에 대한 공간적 성차별이 나타나 여성을 거리로부터 쫓아냈고 홀로 거리를 걷는 여성들은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을 감수해야했다. 이 시기 남성성과 여성성은 재정의되기에 이른다. 남성과 여성 간의 차이는 극대화되었고 남성성과 여성성의 전형을 더욱 명확하게 구분지은 새로운 문화적 규준이 구축되었다. 또한 여성은 감정적이며 욕망이 충만하기 때문에 남성의 통제하에 놓여야 한다는 인식이 일반화되었다. 특히 순종하지 않는 아내는 가장 악한 것으로 간주었다. 수많은 문학작품에서 여성혐오증을 드러냈으며 여성의 복종을 찬양했다. 또한 집 안팎에서 여성의 행실을 다스리기 위한 새로운 법률과 고문이 도입되었다. 이렇게 여성에 가해진 공격은 여성노동에 대한 남성의 착취와 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통제 불법화를 정당화하는 데에 쓰였다. 유럽에서는 주로 마녀사냥이 여성의 새로운 사회적 기능을 구성하고 사회적 정체성을 깎아내리는 역할을 했다. 마녀사냥으로 여성성에 대한 새로운 모형, 즉 수동적이고 순종적, 알뜰함, 말이 적고 항상 바삐 일하며 순결한 아내의 이미지가 여성에게 덧씌워졌다.
식민지 건설, 지구화, 여성
식민지에서의 성, 인종, 계급
자본주의와 노동의 성적 분업
새로운 가부장적 질서의 구축, 즉 여성을 남성 노동인구의 하인으로 만든 것은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양상이었다. 노동의 새로운 성적 분업은 강제되었고 이것은 남성과 여성의 업무에 차별을 두는 것을 넘어서 노동계급 내의 다른 부문들과의 권력관계에서도 차별을 두었다. 성적분업은 즉 권력관계였다. 이것은 자본의 축적을 촉진시켰다. 남녀간의 권력 차이와 여성의 불불노동 은폐 덕택에 자본주의는 보수가 지급되지 않는 노동시간을 확대할 수 있었다. 계급적대는 남녀간의 적대관계로 굴절되었으며 많은 경우 남성노동자들은 이 과정의 공모자였다. 그러나 남성노동자들 또한 종국에는 시원적 탈축적이라는 자기소외의 대가를 치를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