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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진실의용기> 0706 발제문
소리 / 2017-07-06 / 조회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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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1984년 2월 1일 첫 번째 시간 ~ 2강. 두 번째 시간

 

파레지아(Parrhesia)

푸코는 늘 그랬듯이 첫 강에서 한 학기동안 다룰 진실-말하기의 양식으로서의 파레지아(parrhesia)의 개념과 연구 방향에 대해 개괄합니다. 푸코가 하려는 것은 진실 된 말을 하고, 그 말이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구조에 대한 분석입니다. 주체가 말하는 행위 속에서 진실담론의 주체로 구성하고, 타인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자가 되는 그 형식을 분석하려는 것입니다.

진실-말하기의 실천은 기독교의 고해의 역사보다도 더 오래전의 고대문화에서부터 수행되던 것이었습니다. 피타고라스에서부터 세네카와 아우렐리우스에 이어지기까지 많은 문헌에서 그 역사를 알 수 있는데, 자기에 대한 진실 말하기 실천형식에는 일정한 경향성이 존재한다고 푸코는 말합니다. 진실-말하기의 실천의 중심축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원칙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흔히 알려진 의미와는 달리 이 말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의미로 해석 가능합니다. 이 말은 자기에의 배려(epimeleia heautou)라는 주제의 맥락과 맞닿아 있습니다. 자신을 올바르게 돌보기 위해서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알아야 발화자 자신의 진실-말하기가 가능해지고 궁극적으로 자기에 대한 배려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가능하려면 필연적으로 타인의 존재가 필요 합니다. 진실-말하기라는 실천 안에는 타인의 존재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진실-말하기 실천에 있어서 타인의 존재는 기독교 문화에서는 영혼지도자나 고해신부로 나타나고, 근대문화에서는 의사나 정신의학자, 심리학자, 정신분석가가 그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대문화에서 이 타인의 지위는 굉장히 다양하고 모호합니다. 명확한 위상, 지위, 역할, 기능, 경력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타인은 이들은 의료적, 정치적, 교육적 측면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철학자일 수도 있고, ‘아무나’ 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이 타인이 진실-말하기의 실천에서 실질적인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자질이 필요했습니다. 이 자질은 특정한 말하기 방식인데, 이것이 파레지아(솔직하게-말하기)입니다. 파레지아는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개념입니다. 자기와 타자의 통치라고 부를 수 있는 정치적 실천영역 안에서, 파레지아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어원적으로 파레지아는 모든 것을 말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상반된 방식으로 평가 받습니다. 경멸적 의미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것이나 아무렇게 말하는 것을 뜻합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파레지아는 진실에 결부된 것을 모두 말하는 것을 뜻합니다. 진실을 숨기지 않고 말하는 것입니다.

푸코는 여기서 긍정적의미의 파레지아의 용례에 더 집중합니다. 진정한 파레지아를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파레지아의 ‘진실’은 말하는 사람의 개인적 의견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자발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진실에 자신이 구속되는 것입니다. 주체의 의견, 생각, 믿음으로 서약한 진실로 인해 따르는 위험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위험은 그의 말을 듣는 사람과의 관계에 관한 온갖 위험입니다.

진실의 행위는 말해진 진실과 말하는 사람의 사유 사이의 결속을 표명하는 것이며, 진실을 말하는 자와 듣는 간의 결속에 대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이 때의 듣는 자는 말하는 자와 우정의 관계에 있는 자입니다. 우정의 관계 속에서 진실을 사용하는 영혼지도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실-말하기의 행위에는 어떤 형태의 용기가 필요하게 됩니다. 파레지아스트(진실을 말하는 자) 자신의 말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가 파탄 날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용기는 우정이 깨지는 데에 멈추지 않고, 파레지아스트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이 오기도 합니다. 듣는 자가 압도적인 권력을 가진 자일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파레지아가 가능하려면, 그 진실의 위력과 여파가 어떻든 간에 그것을 듣는 자 도한 진실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협약과도 같은 것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말하는 자와 그것을 듣고 받아들이겠다고 동의한 사람 간의 약속이 파레지아적 게임의 핵심입니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가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파레지아는 타인을 설득시키는데 목표가 있는 수사학과 다릅니다. 수사학은 말하는 자의 말과 신념이 결속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수사학은 말하는 자와 듣는 자 사이의 구속, 권력의 구속을 목표로 합니다.

파레지아스트는 테크닉한 면이 있지만 기술(skill)을 구사하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파레지아는 어떤 자세(stance) 혹은 존재방식(way of being)으로, 덕(virtye)·행동양식(mode of action) 같은 것입니다. 파레지아스트의 존재는 국가와 개인들에게 유용하고 가치 있으며, 없어서는 안 되는 어떤 역할입니다. 이 역할을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푸코는 고대사회에서 나타나는 세 가지의 진실-말하기의 기본양태들을 살펴봅니다.

 

첫 째로 예언자적 진실-말하기입니다. 그는 중개자의 태도로 진실을 말합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 통상적으로 신의 목소리를 중개합니다. 또한 미래와 현재 사이에 위치하여 중개자적 입장에서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언자의 진실-말하기는 모호하고 수수께끼 형식으로 말함으로써 중개자적 위치에 있습니다. 따라서 듣는 이에게 해석의 과제를 남깁니다.

반면 파레지아스트의 진실-말하기는 다릅니다. 파레지아스트의 진실-말하기는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의견과 생각, 그리고 신념을 표명합니다. 또한 현재의 일을 말합

니다. 존재론적 구조에서 기인한 무지가 아니라, 도덕적 결함이나 방심, 훈육의 결핍이나 부주의, 방종 혹은 약함으로 인해 생기는 무지로 인해 갇힌 사람들을 도와줍니다. 또한 명확하고 직설적으로, 그 말 안에 담긴 가치가 그대로 전해질 수 있도록 말합니다. 따라서 듣는 자로 하여금 그 진실이 그의 행동원리로 삼는 과제만을 줍니다.

두 번째로 지혜의 진실-말하기, 현자의 진실-말하기입니다. 현자의 진실-말하기는 예언자보다 훨씬 파레지아에 가깝지만 파레지아스트의 말하기 양식과 차이를 보입니다. 현자는 자신의 지헤를 본질적인 은폐 혹은 보유의 상태로 유지합니다. 그는 말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질문하거나 국가의 긴급한 상황이 아니면 말 할 의무도, 필요도 느끼지 못합니다. 기본적으로 침묵의 상태에 있으며, 말 할 때도 수수께끼처럼 말합니다. 또한 현자의 말은 현재적인 존재(What is)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따라서 충고의 형태가 아닌 품행의 일반원칙의 형태로서 말합니다.

반면 파레지아스트는 근본적으로 숨지 않습니다. 말하는 것이 그의 의무이자, 책임이자 과업이기 때문입니다. 파레지아스트는 제한 없이 항구적으로 참을 수 없이 질문을 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가능한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또한 현 존재 사이에 개입하여 개인들의 독특성과 관련하여 어떤 사태가 일어난 구체적 상황과 관련하여 말합니다. 현자는 사물의 존재를 폭로하지만, 파레지아스트는 듣는 이로 하여금 그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폭로하거나 스스로 알게끔 도와줍니다.

세 번째로 테크네의 진실-말하기, 즉 교사의 진실-말하기입니다. 이들은 의사, 음악가, 화공, 목수, 무장전투 교관, 체육교사 등과 같이 테크네를 소유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테크네가 문화의 전통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말해야하는 명확한 의무를 가집니다. 그러나 이들의 진실-말하기에는 어떤 위험도 갖지 않습니다. 따라서 용기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들의 진실-말하기의 행위에는 사적인 인정이나 우정의 결속을 수립하고자 합니다. 또한 이들의 진실-말하기에서의 가르침은 지식의 생존을 보증합니다. 반면 파레지아스트는 생존의 위험을 감수해야하며,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파레지아는 이처럼 예언자나 현자, 교사처럼 운명과 존재, 테크네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파레지아스트는 각각의 개인과 상황에 특유한 형식의 진실을 말합니다. 따라서 그리스인들이 에토스(Ethos)라 부르는 것을 사용하여 진실을 말합니다.

 

푸코가 이렇게 네 가지의 진실-말하기 양식을 고대사회에서 찾은 이유는 비교적 고대에는 이 말하기 양식들이 비교적 명확히 구별되어 제도화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양식은 단순히 고대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본질적인 진실-말하기 양식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양식들은 매우 자주 서로 결합하여 나타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푸코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대의 예를 통해 구분해 둔 진실-말하기 양식은 고대 속에서도 결합하여 나타납니다. 소크라테스가 그 예인데, 그는 예언적·지혜의·교육의 테크네적 면모가 혼합되어 나타나는 파레지아스트입니다.

 

따라서 파레지아는 어떤 인격적 특성이라기보다 진실-말하기의 근본적 양식(modality)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담론 속에서 진실을 말하는 주체가 스스로에 의해, 타인에 의해 구성되는 한 이 네 가지 진실-말하기 양식은 담론 분석에 있어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각기 다른 문화와 사회 속에서, 한 사회의 ‘진실체제’로서 진실-말하기 양식은 다양하게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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