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공백 속으로] 시즌4 :: 0704 후기 +1
희음
/ 2017-07-08
/ 조회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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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모임에서 이야기된 내용은 계간 <시와반시> 2017년 가을호에 실리게 됩니다.
그것에 대한 정리의 일부를 후기로써 올려 놓습니다.
이어지는 보완된 내용은 가을에 지면을 통해 선보이겠습니다.
그날의 세미나에 대해 몇 마디로 요약하자면, 많이 생각하고 떠들고 웃으며
넘치게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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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오늘은 내가 수두룩했다.
스팸 메일을 끝까지 읽었다.
난간 아래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물방울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떨어지라고 응원해 주었다.
내가 키우는 담쟁이에 몇 개의 잎이 있는지
처음으로 세어보았다. 담쟁이를 따라 숫자가 뒤엉켰고 나는
속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술래는 숨은 아이를 궁금해하고
숨은 아이는 술래를 궁금해했지. 나는
궁금함을 앓고 있다.
깁스에 적어주는 낙서들처럼
아픔은 문장에게 인기가 좋았다.
오늘은 세상에 없는 국가의 국기를 그렸다.
그걸 나만 그릴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서
벌거벗은 돼지 인형에게 양말을 벗어 신겼다.
돼지에 비해 나는 두 발이 부족했다.
빌딩 꼭대기에서 깜빡거리는 빨간 점을
마주 보면 눈을 깜빡이게 된다.
깜빡이고 있다는 걸 잊는 방법을 잊어버려
어쩔 줄 모르게 된다.
오늘은 내가 무수했다.
나를 모래처럼 수북하게 쌓아두고 끝까지 세어보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말은 얼마나 오래 혼자였던 것일까.
- 이 시에서는 숫자에 대한 이야기가 거듭됩니다. 수두룩한 스팸 메일, 담쟁이에 달린 몇 개의 잎들, 돼지의 발과 나의 발에 대한 개수 비교, 수북하게 쌓인 모래에 비유되는 나. 그 숫자들을 세면서 시적 화자는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확인하고 싶어 하는 그 무언가란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닐까요. 메일도 분명 나를 수취인으로 해서 보내진 것이고, 담쟁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키우는 것이며, 돼지 인형에게 내가 신고 있던 양말을 신겨 주는 행위란 곧 나를 벗어서 돼지 인형에게 입히는 과정이기도 하니까요. ‘나를 모래처럼 수북하게 쌓아두고’라는 언급에선 직접적으로 ‘나’를 지시하고 있기까지 하고요.
- 만일 그렇다면, 그런 행위를 반복한다고 해서 애초의 목표를 이루게 되는 것 같진 않아요. 자꾸 미끄러지고, 더 멀어지는 것만 같은, 더 깊은 소외가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마지막에 내뱉게 되는 문장이 ‘혼자가 아니라는 말은 얼마나 오래 혼자였던 것일까.’라는 점에서 말예요. 우리가 버릇처럼, 일상처럼 타인에게, 혹은 나 자신에게 되풀이하는 ‘혼자가 아니라는 말’은 그저 말일 뿐이었던 거죠. 무수한 혼자의 순간들을 흘러오고 있을 뿐이었던 거죠. 자기 자신을 확인하려 안간힘 써 보지만 그 많은 스팸 메일 중 ‘나’들에게 제대로 말 걸고 있는 상대편이란 건 없을 거예요. 스팸 메일을 보낸 쪽은 누군가라기보다는 일종의 시스템일 테니까. 그리고 나 자신조차도 나의 분신들은 모래산의 전혀 특별할 것 없는 모래 한 알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거든요.
- 이 시의 종합적인 전개 양상을 보면 긍정에서 부정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극단적으로 첫 연의 ‘수두룩했다’라는 말과 마지막 연의 ‘무수했다’라는 말의 비교를 통해서도 그 점을 알 수 있죠. 수두룩하다는 건 어찌 됐건 무엇의 수나 양이 많다는 걸 의미해요. 그런데 무수하다는 건 ‘많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 단어 자체를 뜯어 봤을 때, 수의 ‘없음(無)’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거든요. 세는 행위의 무의미함을 뜻하게 되는 거죠. 그것이 ‘나’이든, 혹은 나를 향해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타자이든, 처음에는 많았다가 나중에 가서는 없어져 버리거나 무한제로의 상황에 이르게 되는 걸 볼 수 있어요. 시의 중간쯤에 ‘돼지에 비해 나는 두 발이 부족’하다는 언급이 나오는데, 그건 나의 결핍을 인식하는 대목같이 보여요. 그 부분이 어쩌면, 마지막 연에서 무한제로로 표상되는 어떤 절대적 결핍에 대한 인식의 다리 역할을 하는 거겠죠?
- 전체적 흐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제 경우에는 이 시를 수동에서 능동으로의 나아감이라고 보고 있어요. 시의 초반에는 주어진 것에 대해 수를 세는 행위가 이어져요. 이를 테면 나에게 ‘보내진’ 스팸 메일, 매달려 ‘있는’ 물방울, 원래 ‘키우고 있던’ 담쟁이의 잎에 대해 그것들의 개수를 궁금해 하거나, 그것들에게 나를 투사하는 데 그치고 있죠. 반면 마지막 연에서는 내가 ‘나를 모래처럼 수북하게 쌓아두고 끝까지 세어보았다’고 하거든요. 모래산이란 게 애초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내가 그런 모래산을 쌓고 만들었다는 점에서, 화자가 그 개수들을 생산하는 존재로 이행했다고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돼요. 수동의 화자가 능동의 행위자로 변태하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죠.
- 그런데 시가 하나의 정돈된 흐름, 순차적으로 계단을 밟아 나가는 방식으로 정리되지 않게끔 방해하는 대목들도 꽤 있어 보여요. 예를 들어 ‘떨어지라고 응원해 주었다’는 대목. 앞에서 말했듯, 이 시는 자기 자신, 즉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노력이 커다란 하나의 줄기가 되고 있어요. 타인을 통해 내가 호명되고, 또 그 호명을 통해 나의 다양한 정체성이 형성되며,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이 세계에 단단히 뿌리 내리고 있음을, 그리하여 내가 ‘혼자가 아닌’ 존재임을 확인하려는 노력이기도 하겠고요. 그런 안간힘, 혹은 바람이 실패의 과정을 차례로 거듭하면서, 이 시의 마지막에 가서야 완전히 흐트러지고 깨져 버리는 것이 시의 전체적 흐름이라는 데 동의해요. 그런데 이미 두 번째 연의 ‘떨어지라고 응원해 주었다’는 구문이 그 순차적 흐름을 조금은 흔들고 있는 듯 보이거든요. 물방울들이 떨어지도록, 그 안간힘이 실패로 돌아가도록 바라는 것은, 화자가 하나의 관계에 대한 회의적인 자각을 하고 있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타자에게서 이름이 불리고,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나의 외로움이나 공허함을 채울 수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고 있다는 뜻으로 보이니까 말이에요.
- 이야기를 듣고 보니 ‘깁스에 적어주는 낙서들처럼/아픔은 문장에게 인기가 좋았다’는 연 또한 의미 없는 관계에 대한 자각으로 읽혀요. 하나의 방 안에 아픈 친구, 혹은 환자를 위로하고 다독이는 장면 대신, 문장이 깁스에게 끌리는 장면이 들어와 있으니까요. 누군가의 ‘아픔’ 앞에 숱한 위로들이 바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사실은 하나의 사건으로서의 깁스가 장난스러운 낙서들이나 문장들을 불러들인 결과일 뿐인 거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 듯하거든요.
- 시적 화자는 어쩌면 깁스 위에 새겨진 글자들까지도 세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시를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행위가 ‘세는’ 행위인데, 끝에서 두 번째 연에 가면 그 행위는 ‘깜빡이는’ 행위로 변주되기도 해요. 시적 화자에게 있어 세는 행위란 자기 고독, 자기 소외, 자기 상실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는 안간힘으로 상정되었던 듯해요. ‘빌딩 꼭대기에서 깜빡거리는 빨간 점을/마주 보면 눈을 깜빡이게 된다’는 두 행을 참조했을 때, 수를 세거나 깜빡이는 행위를 거듭하다 보면 자기 상실이라는 현실을 망각하게 됨으로써, 잠시간의 안식이라도 얻게 되리라는 믿음이 시적 화자에게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지요. 그런데 화자는 ‘깜빡이고 있다는 걸 잊는 방법을 잊어버’렸다고 말해요. 깜빡이고 있다는 걸 잊어버려야만 무아지경에 들어갈 수 있고, 또 혼자가 아니라는 헛된 믿음 속에 잠시나마 발을 담글 수도 있을 텐데, 화자는 그렇지 못해요. 잊어버리는 방법을 잊어버렸으니까, 잊는 걸 못한다는 뜻이죠. 대신 고독 자체, 자신이 고독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존재가 되는 거죠. 깜빡이고 있고 세고 있다는 자각을 잠시라도 멈출 수 없는 존재가 되죠. 자기 고독, 자기 소외, 자기 상실로부터 빠져나가려는 자신의 안간힘을 스스로 다 지켜보고 있는 존재가 된다고 할까요. 결국 화자는 ‘혼자’인 자신의 분신만을 무수히 쌓아 놓게 돼요. 모든 절망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완전한 ‘혼자’의 몸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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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두둥! 이어지는 우리의 심오한 이야기(희음님의 정리로 다시 부활하는.....ㅋ)는 <시와 반시>가을호에서......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