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의 엽서]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 첫 번째 시간 후기 +2
희음
/ 2017-06-20
/ 조회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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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화요일은 데리다의 입술을 직접 처음으로 따라가 보았던 첫 시간이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입술이 남긴 흔적들을 따라갔다고 해야겠죠. 그는 이 책에서 서양철학이 예로부터 너무도 단단하게 확립해 놓은 음성 언어의 특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하니까요. 그러면서 서양철학의 석학들이, 그 귄위의 중심에 있는 자들이 한켠으로 밀어두었던, 음성 언어의 매개적이고 보조적인 수단, 즉 그것의 ‘단순한 대리보충’으로밖에 보지 않았던 문자 언어를 재발명하기에 이르죠. 그리고 그가 ‘다시 보는’ 문자 언어는 그에 의해 에크리튀르라는 더 넓은 개념으로 확대됩니다. ‘음성 언어의 외피, 기표의 기표를 지칭하는 것을 멈추면서 언어의 외연을 넘어서기 시작하는 것처럼 일어나고’ 있으며, ‘우발적인 중복이나 이차성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언어를 포함’하는 것이 바로 에크리튀르입니다.
그는 에크리튀르를 말하면서 ‘언제나 이미(toujour deja)’ 그것은 모든 기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언제나 이미’라는 부사구는 그가 자주 가져다 쓰는 표현인데, 그 표현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데리다의 사유의 핵심적인 맥락들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에크리튀르를 하나의 ‘흔적’이라고 말할 때, 그 개념은 어떤 것에 ‘대한’ 흔적, 즉 어떤 행위에 대한 사후적인 결과로서의 흔적이면서, 동시에 그것은 어떤 것의 ‘처음’이 되는 아무렇게나 그어진 선, 혹은 실수로 생긴 자국이나 얼룩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나의 흔적을 만나게 될 때 우리가 그것을 발견한 컨텍스트 속에서 그것은 생경한 어떤 것으로 의미지어지지만, 그것은 ‘언제인가부터 이미’ 있었던 것이기도 하죠. 다시 말해 그 ‘흔적’이란 사후적이면서 기원적입니다. 그의 사유 속에서 에크리튀르는 절대적이고 단단한 돋을새김인 동시에, 시간과 장소를 떠다니며 아무것도 아닌 것, 혹은 어떤 것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원적이면서 동시에 제 기원을 지우는 무엇.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그것을 빼고는 어떤 의미도 구성될 수 없게 하는 무엇. 그런 의미에서 ‘언제나 이미’라는 표현은 에크리튀르에 대한 그의 사유를 조용하고 부드럽게 드러내 주는 어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데리다는 또한 에크리튀르의 새로운 도래, ‘언제나 이미 있었던’ 그 도래를 증거하는 것으로, 음성 언어의 퇴보와 죽음의 상황을 그 언어의 ‘종말적인 헐떡거림’이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것이 책의 문명이 죽어가고 있음을, 특히 도서관의 발작적인 증가에 의해 나타나는 그 죽음의 현상을 언급하고 있지요. 그런데 저는 여기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책인가, 왜 도서관인가, 그것은 오히려 문자 언어가 새겨진 페이지들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그것이 어째서 음성 언어의 죽음과 연결되어 이야기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지요. 이 문제는 데리다가 그에 앞서 말했던 언어라는 기호의 인플레이션과 관련지어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데리다 엽서>의 신진 멤버인 영수 님이 해 주었습니다. 언어라는 낱말 자체의 평가절하, 이 낱말에 부여하는 신뢰 속에서도 어휘의 무기력을 고발하는 모든 것, 낱말에 대한 낱말들을 무차별적으로 양산하는 유행의 확산이라는 인플레이션이 바로 그 종말적인 헐떡거림이라는 것이지요. 이 현상은 단순히 음성 언어의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런 헐떡거림을 통해 에크리튀르의 시대로 나아가려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어를 넘어서고자 하는 모든 거칠고 방대하고 카오스적인 움직임들이 다시 언어에 붙들리는 상황은, ‘언제나 이미’ 이곳에 있었던, 아무것도 아닌 하나의 기호, 혹은 기록을 다시 돌이켜 바라보게 하는 지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댓글목록
최원님의 댓글
최원지난주엔 파레지아 때문에 힘드셨을 텐데, 이번주엔 또 후기를 두 편이나 올려야 해서 너무 고생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언제나 이미'의 시간성을 에크리튀르와 연결시켜 설명하신 것이 참 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부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기원에 놓여 있어야만 한다는 이 기이한 시간성. 감사합니다.
희음님의 댓글
희음아즈마 히로키가 살짝 스치듯 이야기했던 '흔적'에 대해 이상하게도 특별히 오래 눈길이 머물었던 게 괜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음 읽을 부분에도 '흔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니 무척 설렌답니다. 선생님 표현처럼 그 '기이한 시간성'을 따라서 가게 될 기이한 시간을 위해 준비운동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