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세미나 발제(0310강의)
소리
/ 2017-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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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세미나] <주체의 해석학> 1982년 3월 10일 강의 20170602 발제자 : 소리
Parrhesia
그리스·로마적 의미에서의 주체는 자신의 완결된 형식에 도달했을 때, 그것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덕을 소유하기 위하여 주체와 진실 간의 가능한 한 견고한 관계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주체의 진실 말하기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하여 고행을, 즉 고대 그리스로마적인 의미의 금욕을 필요로 합니다.
여기서부터 참된 담론을 지닌 스승과 그것을 수용하여 자신의 장비를 만들려는 제자 간의 소통의 문제가 대두됩니다. 제자는 정술, 경청, 독서, 글쓰기 등의 기술을 도덕과 기술적 절차로써 필요로 하게 되고, 스승은 참된 담론을 실천하고 말하는 자로서의 도덕적 자질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이때 스승의 입장에서 Parrhesia의 문제가 나타납니다. 도덕적 자질과 태도인 ethos가 중요해짐과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진실을 말하는 주체로서 자기 자신을 구축하는데 참된 담론을 필요로 하는 자로서 그것을 전승하기 위해 필요한 tekhne 또한 중요해집니다.
parrhesia는 어원적으로 모든 것을 말하기를 의미하지만, 실천적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해야 할 바를 말하고 싶기 때문에 그것을 말하고 싶은 순간에, 그것을 말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형식 속에서 말하게 만드는 솔직함·자유·개방과 같은 것입니다.” 즉 parrhesia(이하 파레지아)라는 말은 말하는 자의 선택과 결정·태도와 긴밀한 연결이 있습니다.
파레지아의 적 –아첨 & 분노, 수사학
에토스와 테크네로 이뤄진 파레지아는 도덕적 적인 아첨과 기술적인 적인 수사학이라는 두 가지의 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레지아는 아첨과의 대립, 전투, 투쟁이 있고, 수사학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첨과 수사학은 긴밀한 연관이 있습니다. 아첨의 도구는 수사학이며, 수사학의 도덕적 기반은 아첨이기 때문입니다.
이 아첨이란 무엇일까? 아첨은 분노라는 악덕의 문제와 쌍을 이룹니다. 분노는 어떤 타자에 대한 어떤 사람의 통제되지 않은 격렬한 분노입니다. 타자에게 분노하는 자는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고 남용하는 권리와 입장의 문제에 처합니다. 분노에 대한 당대의 많은 논설을 살펴보면, 가장인 아버지가 부인과 자녀, 식솔, 노예 등에 대해 갖는 분노 혹은 보호자가 피보호자에게 갖는 분노, 군주가 신하에게 갖는 분노들이 나와 있습니다. 즉, 분노는 자기 제어와 타자의 제아, 자기 통치와 타자의 통치의 접점에 위치하는 것입니다.
분노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가하는 권력 남용이라면, 아첨은 하급자가 상급자에게서 발견하는 권력의 잉여를 얻어내고 총애와 호혜를 얻어내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분노와 아첨의 주제가 중요시되는 이유는 당대 권력 영역에서의 개인의 위치가 중요시 되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세네카 쓴 <자연의 의문들>의 아첨에 대한 성찰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이 자기 자신과 적절하고 만족스러운 관계를 설정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자기기술인 면학적 여가는 중요합니다. 면학적 여가가 개인이 자아와 주체성을 실제적인 자신의 직분을 넘어서는 권력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개인은 자신이 행사하는 모든 주권을 자기 자신의 내부에, 자기와 자기와의 관계 내에 위치시킬 수 있게 됩니다.
이와 대비되어 자기들 자신과 더불어 홀로 있을 수 없는 자들 - 자기애나 자기혐오로 빠지는 사람들-은 더욱 쉽게 아첨의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첨으로 인해 아첨꾼이라는 타자에 의존하게 되기도 하고, 아첨자의 담론의 오류에 빠지기도 합니다.
파레지아는 반 아첨입니다. 파레지아의 궁극적인 목표는 말을 듣는 자가 어떤 순간에 타자의 담론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며, 아첨꾼에 대한 예속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플라톤의 텍스트에서도 아첨에 대한 경계가 나타나지만, 여기서는 늙은 철학자가 소년에게 하는 사랑의 아첨에 더 초점이 맞춰져있다고 푸코는 말합니다. 헬레니즘 시대의 아첨은 사회적, 정치적 아첨이며, 이것의 근간은 성욕이 아닌 권력적 관계를 전제로 한 아첨입니다.
이제 더 큰 권력적 관계에서의 아첨이 문제가 됩니다. 즉 지도자에게 있어서의 아첨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군주에 대한 도덕적 지도가 쟁점이 됩니다. 로마제국 시대에서의 이 문제는 의사표현의 자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군주에게 있어서의 진실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절대 권력자인 군주의 윤리, 그의 ethos의 문제는 조언하는 자의 파레지아에 중요한 자리를 부여하게 됩니다.
수사학
이제 파레지아의 또 다른 적수인 수사학을 검토합니다. 수사학은 청중을 설득하는 추측적 기술입니다. 퀸틸리아누스는 수사학을 하나의 테크네이며, 진실과 관계하지만 이 진실은 말하는 자에 의해 알려진 바로서의 진실이지 말하는 자의 담론에 담긴 진실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실상 거짓이 가능한 기술로서 파레지아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파레지아는 진실밖에 없으며, 진실된 담론을 소유한 자로부터 그것을 받고, 영향을 받아 paradosis를 확보해야합니다. 파레지아는 장식없이 간결한 힘으로 진실된 담론의 진실을 말하게 하는 전승의 도구입니다.
수사학은 기술입니다. 규칙화된 절차들로 조직됩니다. 그렇지만 파레지아는 기술이 아닙니다. 참된 담론의 특수한 실천으로 규정하는 파레지아는 신중과 능란의 규칙에서 작동됩니다. 이 규칙들을 규정하는 것은 kairos, 계기입니다. 말을 듣는자와 그에게 말해야하는 계기에 따라 파레지아는 참된 담론의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말하는 형식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파레지아는 대체로 경험적 조언이기도 합니다.
수사학과 파레지아의 또 다른 차이점은 그것의 목적성에 있습니다. 수사학은 타자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화자의 의도를 관철시켜 청자를 유도하고, 명령할 수 있게 합니다. 따라서 화자가 가장 큰 혜택을 받습니다.
반면 파레지아는 타자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청자가 복락에 도달하고, 지혜롭고 덕있는 주체로서 자기 자신과의 숭고한 관계를 형성하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구축하는데 성공하도록 하는게 근본적인 관건입니다. 파레지아를 실천하는 자는 그 수행에서 어떤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이해를 갖지 않습니다. 아첨은 파레지아의 진정한 반대자이자 적입니다. 이것의 제거가 필수적입니다.
Kairos
필로데모스에 의하면 파레지아는 추측의 방법론적 기술로 중점적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Kairos 즉 상황에 대한 고찰이 필요합니다. 파레지아를 실천하는 사람은 진실을 듣는 자에 대한 많은 배려가 필요하며, 직접 개입하는 것은 가능한 한 늦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잘 추측하기, 계기를 잘 포착하기는 항해사의 기술과 실천과 의사의 실천과 닮아있다고 필로데모스는 말합니다.
필로데모스는 철학적 파레지아와 의학적 실천을 같은 선 상에 놓습니다. 파레지아는 적절한 치료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넘어가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파레지아의 실천과 그것을 행하는 주체인 스승의 도덕성에 대한 내용에서, 이제 제자들 사이의 관계에서의 파레지아가 중요시되는 상황으로 넘어옵니다.
파레지아를 전달하는 스승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제자들 간의 호의를 바탕으로 파레지아를 실천할 수 있는 관계,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 의해 구원될 수 있는 관계가 중요해집니다.
에피쿠로스에게서 스승의 파레지아는 중요하며, 스승과 제자라는 수직적 관계라는 계보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정의 관계에서의 파레지아라는 수평적 관계의 계보도 함께 존재합니다. 이 이중적 체계에서 파레지아가 순환합니다.
갈레노스
갈레노스는 의학적 치료와 파레지아를 같은 선상에서 놓습니다. 따라서 무엇을 치료할지 먼저 알아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자기애로 인해 자기 자신에 대한 환상을 갖는 것이 자신에 대한 의사 역할의 자격을 박탈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자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치료하는데 꼭 필요한 관용적이지도 않고 적대적이지도 않는 타자를 선별하기 위해서는 용의주도해져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을 시험하고 테스트 해야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인간관계와 세력가들을 대하는 태도를 봐야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상세하게 치료를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후 푸코는 세네카의 편지들을 분석하면서 파레지아 혹은 libertas(솔직히 말하기)의 의미를 분석합니다. 그러면서 대중적 웅변술의 감정적이고 퍼포먼스적인 기능들 때문에 이에 반대합니다.
그리고 파레지아, 리베르타스의 특징에 대해 말합니다. 이것은 주체 혹은 발화 주체와 행위주체의 일치를 필수적으로 요합니다. 또한 듣는 사람의 상황과 계기 그리고 특수성에 맞아야 합니다. 말하는 순간 발화 주체와 행동 주체 간의 약속과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며, 발화자의 진실에 스스로 부합하는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약속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진실의 예를 보여주지 않는 진실 교육은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관계 구축을 필요로합니다. 이 관계는 삶의 공유, 살아있는 모범의 긴 연쇄를 포함합니다. 그러나 에피쿠로스들과 세네카 갈레노스에게서 발견되는 파레지아의 양식은 각기 다르며, 이 외에도 다양한 파레지아의 양식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