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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주체의 해석학> 1982.3.17 강의 전반부 발제
삼월 / 2017-06-08 / 조회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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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주의에서 정숙 규칙이 갖는 의미에 대한 부가 설명

  피타고라스학파에서 정숙은 관상학에 의해 기간이 차등 적용되었다. 학생들은 정숙하는 동안 청강생이라 불렸고, 이 기간에 정숙과 경청을 터득하여야 했다. 그 이후에야 말하고 메모할 권리가 생겼다. 피타고라스에게 영감을 받은 철학자 토로스는 자기 시대 철학 학원들에서 정숙이 지켜지지 않음을 개탄한다. 정숙은 파레지아의 규칙을 통한 참된 담론의 연구와 장비 구축에 중요한 고행의 첫 번째 초석이다.

 

‘금욕실천론’의 정의, 그리스 자기 수련에 대한 역사 인종학의 결산

  고행의 다음 단계는 참된 담론과 진실을 에토스로 변형시킨다. 푸코는 여기서 ‘ascétique'(금욕적 자기수련)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여기서 고행-수련의 체계는 본질적으로 기술적 문제이다. 절제-수훈의 체제, 절제-시험 체제, 사유와 호흡의 집중 기술, 신체와 영혼 분리, 숨 참기 등으로 이루어지는 이 수련들은 샤머니즘적 수련과 연속성을 가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수련들은 영적인 실천 내에서 순서가 바뀌고 변형된다. 본질적으로는 마술적이고 신체적 실천이었지만, 철학적이고 영적인 실천으로 변형된 것이다.

 

《알키비아데스》의 환기: 신성의 거울인 자기 인식으로 자기 수련의 후퇴, 1,2세기의 자기 수련: (자기 인식의 원칙과 신성한 것 내에서 인정의 원칙과 관련한) 이중적 분리

  《알키비아데스》에서 기술된 것은 영혼 자신에 의한 자기 인식이었다. 이 대화는 플라톤의 ‘회수’, 자기 인식에 의한 자기 배려의 회수를 실행해버린다. 그 결과 ‘너 자신을 배려하라’는 ‘너 자신을 인식하라’가 된다. 그러나 스토아-견유주의의 자기 수련은 자기 인식의 원칙을 중심으로 조직되지 않았다. 자기 인식이 배제되었다기보다는 다른 유형의 인식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 단절 아래에는 신과의 동일시 원칙이 있다. 플라톤주의에서 중요했던 자기 자신의 신성에 대한 재인식은 기독교 문화에서 다시 한 번 단절된다.

 

헬레니즘‧로마 자기 수련의 기독교적 운명: 그노시스의 거부

  4,5세기 전반까지 수도원 제도 내에서 기독교 영성이 추구한 것은 신플라톤주의적 그노시스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이런 영향으로 수도원 훈육은 신플라톤주의와 구분되며, 스토아·견유주의에서 속성과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자기 수련을 사용하였다. ‘ascétique'(금욕적 자기수련)는 기독교가 그노시스의 영성으로부터 자기를 분리하려는 기술적 보증이었다. 절제·시련 등 수련의 중요성은 인식 혹은 자기 인식과 관계를 가지지 않았다. 이 수련을 통한 자기 인식은 신성을 인식하는 활동이 아니라 지속적 의심의 불안으로 나타났다. 훈련은 자기에 대한 의심에 집중된다. 이 수련이 기독교 내부로 이동하여 이식되며, 종교개혁은 물론 반종교개혁 내에서도 다시 나타난다.

 

인생의 작품

  기독교적 수련과 달리 철학적 수련은 생활의 기술의 틀 속에서 발생하고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자신의 삶을 테크네의 대상으로 삼는 것, 자신의 삶을 작품으로 만드는 작업은 테크네를 사용하는 사람의 자유와 선택을 필연적으로 전제한다. 철학적 삶은 règula(규칙)에 따르지 않고 forma(형식)에 따른다.

 

실존의 기술, 두 영역의 설명: 사유를 통한 훈련, 실제적인 상황 속에서의 훈련

  meletan과 gumnazein. meletan은 사유가 자기 자신에 가하는 노동이지만 개인이 곧 해야 할 바를 준비시키는 작업을 의미한다. gumnazein은 개인이 하는 신체적 훈련이며 실제상황에서의 실천과 관련되어 있다. 둘의 구분은 명확하면서도 불확실하다.

 

단식의 실천: 플라톤에 있어서의 건장한 신체와 무소니우스 루푸스에 있어서의 인내력 있는 신체

  플라톤에게 용기와 자제를 확보해주는 것은 신체적 수련이다. 반면 무소니우스 루푸스에게서는 체조가 사라지고, 절제가 강조된다. 절제를 위한 인내, 끈기의 신체는 스토아·견유주의 텍스트에서 대부분 재발견된다.

 

시험의 실천과 그 특성들

  실제로 가난하지 않았던 세네카는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에게 인위적인 가난을 권고한다. 그 가난은 실제적이며, 생에 형식을 부여함으로서 개인에게서 적절한 태도를 이끌어내는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훈련이다. 이 훈련들은 생활의 양식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지 절제 훈련이 아니다. 절제와 달리 시련에서는 자신의 역량에 대해 아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시련은 자기 인식과 향상에 대한 물음이며, 현실 속의 수련임과 동시에 사유에 관련된 수련이다. 자제는 자기 자신에 의한 자기의 사유를 수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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