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와 근대철학] 니체와 철학 :: 0914 발제
올리비아
/ 2018-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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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니체와 철학 中 2장 적극적인 것과 반응적인 것 – 발제 Olivia
2장 적극적인 것과 반응적인 것
2-7. 니체의 용어 Nietzsche’s Terminology -p107
* 작용과 반작용, 긍정과 부정
(1) 힘의 계보학적 요소를 권력의지라고 부른다. 힘들의 미분적 요소, 즉 관계 속에 있고 둘 혹은 여러 힘들 사이의 양적 차이의 생산 요소이다. 힘의 생성적 요소(관계 속에서) 각각의 힘에 귀결되는 성질의 생산 요소이다. 우연은 힘들을 관계 짓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의지는 그 관계를 규정하는 원리이다. 필연적으로 힘들이 부가되지만 우연에 의해서 관계 맺어지는 힘들에만 부가된다. 권력의지 자신의 중심에서 우연을 이해하고, 그것만이 우연을 긍정할 수 있다.
(2) 양적차이에 의해 힘들은 지배적이고 지배받는다. 힘들은 본질적으로 구분되고, 성질이 부여되어 있다. 자신들의 양적 차이를 각각에 귀결되는 성질에 의해 표현한다. 해석의 문제는 어떤 현상이나 사건에서 그것에 의미를 제공하는 힘의 성질을 평가하며, 현재 나타나 있는 힘들의 관계를 측정하는 것이다.
(3) 힘들의 성질은 권력의지 속에서 원리를 갖는다. 해석하는 자는 권력의지이다.
군림하는 것은 권력의지의 아주 순간적인 성질이다.
힘의 원초적 성질-적극적임, 반응적임 / 힘의 표현-행동하기, 반응하기(이것 역시 힘)
권력의지의 원초적 성질들-긍정적임, 부정적임 / 권력의지 표현-극정하기, 부인하기, 극찬하기, 비하하기
(허무주의도 권력의지에 속한다.)
작용과 긍정 사이에, 반작용과 부정 사이에 유사성과 결탁은 존재하지만 혼돈은 없다. 모든 작용 속에 긍정이, 모든 반작용 속에 부정이 존재한다. 작용과 반작용은 (긍정하고 부인하는) 권력의지의 수단들, 도구들과 같다. (반작용적 힘들은 허무주의의 도구들이다)
긍정과 부정은, 생성 그 자체의 직접적인 성질들이기 때문에, 작용과 반작용들이 넘쳐난다.
긍정은 작용이 아니지만, 적극적 생성의 잠재력, 적극적 생성의 화신이며, 부정은 단순한 반작용이 아니지만, 반응적 생성이기 때문이다.
(4) 권력의지는 해석하는 것일 뿐 아니라, 평가하는 것이다. 해석하기는 사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힘을 결정하는 것이다. 평가하기는 사물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 권력의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의미가 자신의 의미화를 이끌어내는 견지에서 자신을 추상적으로 방치하지 않듯이, 가치들도 그것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이끌어내는 견지에서 자신을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계보학적 요소로서의 권력의지는 의미의 의미화와 가치들의 가치가 그것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다. 하나의 가치는 그것이 우리에게 믿고,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의 우아함 혹은 저속함이 의존하고 있는 하나의 계보학을 가지고 있다. 이런 하나의 가치 속에서 자신의 표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계보학만이 밝힐 수 있는 능력이고 미분적 요소를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가치가 무엇을 담고 있는지 보기 위해 가치개념에서 (우아함이건 비속한 것이건)모든 의미를 박탈하고 파괴해야한다. 일반적인 가치들의 우아함을 말하는 것은 고유한 비속함을 숨기기 위함이다.
(the notion of value loses all meaning if values are not seen as receptacles to be pierced, statues to be broken open to find what they contain, whether it is the most noble or the most base. -p111)
가치철학의 망치질로 흔들어야 할 것은 현행 가치의 개가 되는 것, 계보학이 노예의 손에 포획되는 것 (성질들의 망각, 기원들의 망각이다.) 이다.
(권력의지 : 힘과 힘의 관계를 규정하고 힘의 성질을 생산하는 미분적 요소, 계보학적 요소 –p121)
2-5. 영원회귀의 첫 번째 측면 : 우주론 그리고 물리 이론으로서 -p98
Fist Aspect of the Eternal Return: as cosmological and physical doctrine
* 최종 상태의 비판
영원회귀의 설명은 최종 상태나 균형 상태에 대한 비판을 가정한다. 지나가는 순간으로서의 실제 순간이 최종 상태에 도달하지 못함을 입증해 주고 있기 때문에 힘들의 균형은 불가능하다.
* 생성
실제 순간은 존재 순간도, 현재 순간도 아니라는 것, 그것은 지나가는 순간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생성을 사유하도록 강제한다. (정확히 시작할 수 없었던 것, 생성을 끝낼 수 없는 것)
* 생성과 영원회귀의 종합
돌아오는 것은 존재가 아니지만, 되돌아옴 그 자체는 그것이 자신을 생성으로, 지나가는 것으로 긍정하는 한에서 존재를 구성한다. 차이나는 것을 위해 되돌아오는 상태이다. 영원회귀는 하나의 종합이다, 시간과 그것의 차원들의 종합, 다른 것과 그것의 재생산과의 종합, 생성과 자신을 생성으로 긍정하는 존재의 종합, 이중적 긍정의 종합. (vs 기계론)
2-14. 영원회귀의 두번째 측면 : 윤리적이고 선택적인 사유로서 –p132
Second Aspect of the Eternal Return : as ethical and selective thought
감각되지도 인식되지도 않는 반응적 생성은 선택의 산물로서만 사유될 수 있다. 우리는 물리이론으로서의 영원회귀가 사변적 종합의 새로운 진술이었음을 보았다. 윤리적 사유로서의 영원회귀는 실천적 종합의 새로운 진술이다. <네가 의욕하는 것, 그것을 네가 영원회귀를 의욕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 원하라.>
* 위안적 사고로서의 영원회귀
단 한번만 스스로에게 동의하는 모든 것이 니체를 역겹게 한다. <...행동을 선택하듯 게으름을 선택하기 결심하다니!..., 당신들은 내 말을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항상 하라고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우선 원할 수 있는 자들에 속하라.>
* 첫번째 선택 : 불완전한 의욕의 제거
영원회귀의 사유는 의욕에서 영원회귀 밖으로 떨어지는 것을 제거하고, 의욕=창조라는 등식을 실현한다. 가장 발전하지 못한 것들 사이에서 몇몇 반응적 상태, 반응적 힘들의 몇몇 상태를 제거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나 그것도 자기 식으로 끝까지 가면, 허무주의적 의지 속에서 강력한 동력을 발견한다. 그리고 최초의 선택을 저항한다.
* 두번째 선택 : 허무주의의 완성, 부정의 전환
(1)만약 영원회귀가 허무주의의 극단적 형태라면, 영원회귀에 분리되고, 따로 떼어낸 허무주의는 아무리 강력해도 그 자체로 하나의 불안전한 허무주의이다, 영원회귀만이 허무주의적 의지를 완전하고 전적인 의지로 만든다.
(2)왜냐하면 무의의지가 반응적 힘들과의 동맹 속에서 항상 나타나기 때문이다. 무의의지는 적극적 힘을 부정했고,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한다. 반응적 힘들의 보존, 승리, 전염에 기초한다. 무의의지는 보편적 반응적 생성이며, 힘들의 반응적 생성이다. 이 점이 허무주의가 자기 자신으로 항상 불완전한 이유이다.
(3)허무주의를 완전한 허무주의로 만드는 것이 영원회귀이다. 부정을 반응적 힘들 자체의 부정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영원회귀에 의해서 허무주의는 더 이상 약자들의 승리의 보존으로서가 아니라 약자들의 파괴, 그들의 자멸로 표현된다.
(4)사람들은 자신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과 그런 자기의 파괴, 자멸을 혼동하지 않을 것이다. 반작용의 과정인 자신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 속에서는 적극적 힘은 반응적이 된다. 자멸 속에서는 반응적 힘들 자체가 부인되고 무로 인도된다. 자멸은 적극적 활동, 적극적 파괴이다. 적극적 부정, 적극적 파괴는 자신들의 몰락에의 의욕을 각오하면서, 반응적인 것을 영원회귀의 시련에 종속시키고, 자신들을 제거 하면서, 반응적인 것을 자신 속에서 파괴하는 강한 정신들의 상태이다. 이것이 반응적 힘들이 적극적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실상 부정은 스스로 반응적 힘들 자체의 부정이 될 때 적극적일 뿐 아니라, 전환된다.
* 반응적 힘들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5) 영원회귀 안에서의 두번째 선택은 영원회귀가 적극적 생성을 낳는다는 데 있다. 반응적 힘들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영원회귀에 의해서, 그 속에서 권력의지의 성질로서 부정은 긍정으로 전환되고, 부정 자체의 긍정이 되고, 긍정하는 힘, 긍정의 힘이 된다. 영원회귀에 의해서 본성의 변화 없이 그 속으로 들어 갈수 없는 것을 존재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 문제이다, 선택적 사유가 문제가 아니라, 선택적 존재가 문제이다, 영원회귀는 존재이고, 존재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선택=서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