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꽃테문학』 중 「칼의 ‘스타일’」~~「글쓰기」 2018. 9. 19 손미경
손미경
/ 2018-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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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꽃테문학』 중 「칼의 ‘스타일’」~~「글쓰기」 2018. 9. 19 손미경
기시감, 혹은 데자뷰
황지, 바이다오, 덩당스, 만쉐, 멍원, 궁한, 창건, 미쯔장, 모전, 장청루, 스비, 캉바이두 등등. 위의 이름들은 루쉰이 사용했던 필명 혹은 가명의 일부이다. 『꽂테문학』은 1934년 한해에 쓴 글을 모은 책인데 짧은 기간 사용했던 필명이 이리 많다는 것은 세상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밝힌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적들은 이런 루쉰의 이름 바꾸기를 나쁜 풍조라고 공격하면서 자신들은 다른 문인의 글을 버젓이 베껴 작품을 내놓고 본인이 가명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등 비열한 짓을 서슴치 않는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인 것이다.
‘문득 드는 생각’같은 글을 읽으면서 한 세기 전에 쓴 글에 기시감이 드는 것은 어쩐 일인가. 세상은 여전히 겉만 바뀐 것인 하는 절망감을 맛본다.
“과학은 결코 중국 문화의 부족한 부분을 충분하게 보충해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중국 문화의 심오함을 더욱 증명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지리학은 풍수와 관련 있고 우생학은 문벌과 관련있으며....중략” (문득 드는 생각)
생활고로 아이들과 자살한 「친리자이 부인 일을 논하다」에서 때때로 암흑의 힘이 외로운 병사를 압도해 버리는 세태를 고발하며
“어둠을 만드는 주변의 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하면서 그쪽을 향해서는 화살 한 개도 쏘지 않으면서, 단지 약자에 대해서만 시끄럽게 떠벌릴 뿐이라면, 그가 제아무리 의로움을 보인다 할지라도 나는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정말 참을 수 없게 된다. 사실 그는 살인자의 공범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친리자이 부인 일을 말하다)
당연 이 부분은 삭제된 글로 나중에 복구된 글이다.
거꾸로 매달기
「거꾸로 매달기」는 꽃테 문학 이란 비아냥을 듣게 된 글. 조계지에서 학대당하는 중국인의 처지를 두고 루쉰이 쓴 글을 랴오모사 (린모와 원궁즈는 랴오모사의 필명)가 매판 작가라 비판 한다. 그래서 루쉰의 필명 중 캉바이두 (매판이라는 뜻)도 있다.
루쉰은 외국인이 중국인을 닭, 오리 보다 더 좋게 대해 주길 바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반해 적들은 중국인들은 닭, 오리 보다 더 좋게 대해 줘야 한다고 한다.
자신의 처지를 더 좋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지 외부인이 아닐 터. 하지만 중국인은 지금까지 “태평시기의 개가 되도 무방하지만 전시에 유리걸식하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차라리 개로 살지언정 여럿이 힘을 합쳐 개혁 또는 혁명과 같은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지금의 상태라면 거꾸로 매달리는 사람들은 더 많아지게 될 것이라고. 아직도 중국인은 주체가 되어 부당함에 맞선 개혁 보다 고전 속에서 정의롭고 자애로운 인사가 또는 영웅이 거꾸로 매달린 것을 풀어주러 온다고 하는 헛소리를 지금가지 귀에 익도록 들어 수동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이런 태도들은 복고를 부르는 법.
“중국을 정복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그것은 침략을 철저하게 중지함으로써 중국인의 마음을 정복하는 것” (후스. 베이핑에서 기자간담회 1933)
정신승리법의 극한을 보여주거나
공자묘 재건, 노봉탑 재건, 남녀 동행금지, 사고진본 발행과 같은 시대에 퇴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상황은 엄중한데 적은 내부가 아니라 외부로 돌리며 공격을 가하는 지점은 적수의 치명적인 곳이 아니라 모두들 엉뚱한 곳을 노리고 있어, 종국에는 누가 몰락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되었다고 한다.
「농담은 그저 농담일 뿐 (상, 하)」에서 백화와 문언의 논쟁도 이런 연장선에 있다.
저자를 공격하는 이들에게 제발 한번 이라도 생각이라는 걸 하고 행동할 것과 행동할 때는 적어도 기본 속성이라도 파악을 하고 움직일 것을 주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