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세미나 > 세미나자료
  • 세미나자료
  • 세미나발제문, 세미나후기를 공유하는 게시판입니다.
세미나자료

[詩의 공백] 0512(금) T.S.엘리엇의 <황무지> 편 +4
최원 / 2017-05-17 / 조회 2,507 

본문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유명한 구절이 무슨 뜻인지도 전혀 모르는 채로 엘리엇의 <황무지>를 펼쳐 들었고, 앞부분을 읽어 봤지만 엘리엇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거의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시 세미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미나 구성원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니 조금씩 엘리엇이 보이는 놀라운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희음 반장님이 이정호 교수의 <황무지 새로 읽기>라는 책에 나와 있는 엘리엇을 읽는 여섯 가지 방법에 대해서 귀에 쏙쏙 들어오게 강의를 해주시자 그 다음부터 <황무지>가 새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희음 선생님에 따르면,  <황무지>의 출간 연도인 1922년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출간 연도이기도 합니다. 조이스의 <율리시스>의 18편도 모두 다른 장르로 이루어져 있듯이 엘리엇의 <황무지>도 많은 장르가 녹아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황무지>는 7~80%가 인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시, 오페라, 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서 인용이 행해지고 있지요.  이 두 작품은 모더니즘을 여는 작품으로 거의 동시에 탄생되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이 두 작품에는 방법론적 유사성이 보입니다. 둘 다 고전 신화의 인용이 많을 뿐만 아니라, 인용할 때 그 고전들을 다르게 배치함으로써 그 의미를 비틉니다. 신성한 것에 대한 찬사를 아주 가볍고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희음 선생님은 그래서 이러한 인용은 자크 데리다의 에크리튀르와 같은 산종적 효과로도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엘리엇의 <황무지>는 시의 맥락이 일관되게 이어지지 않고 모든 구절들이 툭툭 던져져 있거나 카오스적으로 섞여 있는데, 이런 형식 또는 배치 자체가 파편화된 현대세계에 대한 알레고리를 이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정호 교수에 따르면 엘리엇의 <황무지>에서 죽음 충동을 보려는 시도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희음 선생님은 오히려 엘리엇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허물고 두 가지를 섞어 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황무지>의 또 다른 특징은 저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이 이루어진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엘리엇 이전의 기존 문학은 너무 이쁜 것, 아름다운 것들만을 그림으로써, 숙녀들이 교양을 쌓기 위해 읽는 것으로나 여겨졌지만(지금이나 과거나 여혐은 팽배ㅜㅜ), 엘리엇은 완전히 다른 정서를 보여주는 작품을 써서 문학을 모두의 전유물이 되도록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난해하고 파편적으로 배치된 표현들을 통해 오히려 시인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에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고 자기 자신만의 해석을 추구하는 능동적 독자들을 생산해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시 세미나에서는 <황무지>에 나오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논의되었습니다.  

특히 제사에 나오는 '무녀'에 대한 구절, 곧 "애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네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가 시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어주었습니다. 번역자인 황동규 시인에 따르면, "이 무녀는 희랍신화에서 앞날을 점치는 힘을 지닌 여자인데, 그녀(그네)는 아폴로신에게서 손안에 든 먼지만큼 많은 햇수의 수명을 허용받았으나 그만큼의 젊음도 달라는 청을 잊고 안 했기 때문에 늙어 메말라 들어 조롱 속에 들어가 아이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황무지'란 바로 이런 삶, 죽음과도 같은 삶, 죽음보다도 못한 삶의 은유가 아닐까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우리는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말의 뜻이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요. 사월은 죽음의 계절인 겨울이 끝나고 생명이 시작되는 봄을 여는 달이지만, 그 생명이 죽음과도 같은 것에 불과하거나 죽음보다도 못한 것이라면, 그 사월이야말로 잔인한 것일 테니까요. 그것은 어쩌면 생의 허무함과 비극성을 포착했던 고대 그리스의 실레누스(Silenus)가 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연상시키는 것 같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최선의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고, 두 번째로 좋은 것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죽는 것이다." 니체가 지적했듯이 고대 그리스의 사람들은 이런 허무의 심연을 본 후에도 여전히 생을 긍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능동적 역량을 가진 존재들이었지만, 아마도 엘리엇은 그 허무의 심연을 더욱 더 강조했다는 점에서 고대 그리스인들과는 다른 모더니티를 사유했던 시인이 아니었나 합니다.

 

<황무지>의 두 번째 시편인 "체스 놀이"에서는 나이팅게일에 얽힌 전설이 논의의 초점이 되었습니다.  

 

그 고풍의 벽난로 위에는

마치 숲 풍경이 내다보이는 창처럼

저 무지한 왕에게 그처럼 무참히 능욕당한

필로멜라의 변신 그림이 걸려있다

나이팅게일은 맑은 목청으로 온 황야를 채우지만,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그 짓을 계속한다.

그 울음은 더러운 귀에 "젹 젹" 소리로 들릴 뿐.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제6권 <필로멜라>에서 엘리엇이 원용하는 이 신화는 무지한 왕에게 능욕당해 나이팅게일로 변한 필로멜라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엘리엇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랑은 '맑은 목청'으로 우는 나이팅게일처럼 아름답게 보이지만, 사실 그 속에는 인간의 더러운 성욕이 들어 있고, 사람들은 그 더러운 성욕을 만족시키는 그 짓(능욕)을 계속한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은 일방적으로 허무주의적으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반대 되는 것이 동시에 그 안에 섞여 있는 일종의 이중구속 상태로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보석 같은 것 안이나 그 뒤를 잘 보면 잿빛 어둠만이 있다고도 말할 수도 있지만, 이 말은 정반대로 잿빛 어둠만이 있는 것 같은 이 삶 속에 또한 보석 같은 순간이 있다는 식으로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죠. 오히려 이 아이러니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엘리엇의 의도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혜님은 이 시 <황무지>가 1차 대전 이후에 쓰여졌다는 점에 착안해서 읽어보면, 기계문명의 발달 속에서 점점 건조해지고 비참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게 되니 더욱 더 <황무지>라는 시의 분위기가 이해가 되더군요. 황무지는 결국 그 당시 사람들이 삶을 느끼는 방식이었을 것 같고, 엘리엇은 그 점을 포착하여 시로 만든 것이 아닌가, 또 그랬기 때문에 모더니티라는 새로운 장을 여는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기계와 인간을 그렇게 꼭 대립적으로 보는 것이 과연 올바를까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기계는 인간의 역량을 더 크게 만들어주는 어떤 것일 수 있고,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을 넘어선 포스트인간으로 나아가게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이렇게 해서 이번 시즌 시 세미나를 마무리 하고, 우리는 모두 뒤풀이 자리로 이동했습니다. 작은 와인바 겸 이태리 레스토랑이었는데, 술과 음식이 모두 훌륭했습니다. 특히 저는 개인적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찾던 와인을 하나 거기서 발견해서 너무 기뻤습니다. 그래서 그걸 사서 세미나 회원들과 나누어 마셨지요. 더 폭풍 감동이었던 것은 그 와인 한 병을 제외한 일체의 뒤풀이 비용을 성혜님이 대셨다는 것! ㅠㅠ 눈물이 앞을 가리게 만드는 선물이었습니다. 황무지에도 이런 보석 같은 순간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 꽃과 웃음 꽃이 잔뜩 피어있던 뒤풀이 자리였습니다. 그 순간을 사진으로 찰칵! 남겨봤습니다.^^ 

 

c36f993d4852684f7057f6f97c80a2f9_1494977


c36f993d4852684f7057f6f97c80a2f9_1494977
 

 

 

댓글목록

세로토닌님의 댓글

세로토닌

참 좋은 시간이었네요`~~ 무엇보다 '5만원' 으로 수치화하면서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너그러운 와인 한턱과!
또한 성혜님의 한없이 품어주는 듯한 '한턱'도 참 복에 겹고~ 행복한 시간이었네요~

세미나에서도 이렇게 많은 생각들이 우러나왔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어요.
정말 희음님의 설명이 아니었으면 닿지 못했을 지대에 다다랐었다는 걸 알겠네요
또한 세미나회원분들과 같이 파고들었던 시간들...
잊지 못할 겁니다!
덕분에 확장된 세미나 & 그 이후......를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최원님의 댓글

최원 댓글의 댓글

하하 저도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또 이렇게 제가 밝히지 못한 5만원이라는 수치를 세로토닌님이 밝혀주시니 저 와인병이 뭔가 더 빛이 나는 듯합니다. ㅋㅋ 비록 후기에는 일일이 못 썼지만, 세로토닌 님과 소소님의 말씀도 엘리엇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도요님이 함께 하지 못하셨지만, 뒤풀이에 와주셔서 너무 고마웠고요. 앞으로 시 세미나가 더욱 번창하길~~~

희음님의 댓글

희음 댓글의 댓글

"세미나 & 그 이후......를  느낍니다"라는 구절에서 감동이 쏴아아아아~~
세로토닌 님 멋쟁이!!!^^

희음님의 댓글

희음

괴테의 <파우스트>에도 인용되었던 생의 허무에 대한 저 유명한 구절이 실레누스의 것이었군요. 덕분에 하나 배웠습니다.^^
늘 세미나 자리에서 즉석으로 시를 읽고 나누던 것을, 시집 한 권 분량을 미리 읽고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처음 시도해 본 것이라
적잖이 걱정이 되었거든요. 그런데 모두들 어렵지 않게 일관된 정서로 묶이고 모이는 경험, 어느새 공간 속에 '황무지'가 들어차는 경험을 했어요. 
그런데 함정은, 몸이 기억하는 그 느낌과는 달리 그 나눔의 내용은 일주일쯤 지나니 가물가물해지고 말았다는 것.ㅎㅎ
이 후기가 아니었다면 '황무지'는 영원히 몸으로만 기억하는 것이 되었을 겁니다. 생생하고 세세하고 지적인 후기 너무 감사합니다.
그날 함께했던 시공백 세미나 멤버들께, 함께하진 못했어도 마음 보내주신 회원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특별히, 와인과 일용할 양식을 멋지게 쏴 주신 최원 선생님과 성혜 선생님께는 더욱 깊은 인사를!!^^
비록 당연한 수순처럼 생의 한때가 우리를 배반하고 돌아서더라도 그날의 보석 같은 반짝임, 그 적적 소리는 끝내
작고 맑고 아름다운 나이팅게일의 노래로 우리 안에 남아 있을 거라 믿어요!(오글오글 오글오글~~~~~~~~~
시공백 시즌3의 마지막 세미나이자 마지막 후기의 (어쩌면) 마지막 덧글이므로, 너른 마음으로 돌은 던지지들 말아 주시길.ㅎㅎ)

세미나자료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