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성의 변증법 7장 발제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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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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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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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로맨스 문화
양립 불가능한 권력과 사랑
현대 세계에서 경제적, 사회적 억압만으로는 더 이상 남성에 대한 여성의 심리적 의존이 지속되기 어렵다. 로맨티시즘romanticism은 바로 이러한 억압의 지속을 유지하기 위해 도입된 장치다. ‘낭만적romantic 사랑’은 성적 계급제도를 강화시킨다. 그것은 성적 계급제도라는 권력의 맥락context 속에서 병적인 형태로 타락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로맨티시즘은 여성이 생물학적 본성biology에서 해방되는 것에 비례해서 발전한다. 문명이 진보하고 성적 계급의 생물학적 기초들이 무너지면서 남성 우월주의가 지탱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해졌다. 때문에 핵가족이라는 제도를 통해 가부장제를 더 바짝 조인다든지 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전의 제도를 과장하거나, 인위적인 제도를 만들어내는 전략이 고안되었다. 로맨티시즘도 그런 전략들 중 하나다. 그것은 여성이 자신들의 조건을 알지 못하게 막는 남성 권력의 문화적 도구로서, 산업화율이 가장 높은 서구사회에서 사상 최고조에 달해 있다.
문화적 도구로서의 로맨티시즘이 성적 계급제도를 강화하는 방식들
1) 에로티시즘
에로티시즘은 로맨티시즘의 으뜸가는 구성 요소다. 사랑과 온기를 필요로 하는 모든 동물은 생식기적 성으로 향한다. 에로티시즘은 다른 사회적-애정 욕구를 생식기적 섹스로 전치하는 것을 의미하는 섹슈얼리티의 집중이다. ‘섹스’만 좋은 것이다. 정력과 성적 행위는 사회적 가치와 혼동된다.
남성의 섹슈얼리티 중에서도 가장 정상적인 경로로 발산되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끊임없는 에로틱한erotic 자극은, 남성이 여성을 보는 어떤 방식을 부추기도록 고안된 것이다. 그 방식이란, 남성을 매혹하는 여성의 저항은 틀림없이 극복된다고 보는 방식이다. 이 에로티시즘은 오직 한 방향으로만 작용한다. 여성은 단지 ‘사랑’의 대상이고, 그런 만큼 여성은 자신을 에로틱하다고 여긴다. 여성은 그들을 즐기는 남성과 대리적 동일시에 의해서만 성적으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직접적인 성적 쾌락을 남성을 위해 보존하려는 여성의 기능은 여성이 의존성을 강화한다. 이렇게 에로티시즘은 성적 계급제도를 보존한다.
2) 여성의 성의 사유화
에로티시즘은 여성의 열등성을 강화하는 로맨티시즘의 상층부topmost layer일 뿐이다. 하층부에는 여성의 성을 사유화privatization(사적영역화, 개별화, 개인화?)하는 현상이 존재한다. 여성의 성의 사유화는 여성이 계급으로서의 ‘여성’의 일반성을 보지 못하게 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남성의 눈에 여성이 ‘개인’으로 보이지 않게 만든다. 이는 계급으로서의 여성의 집단의식을 둔화시키는 것이다. 이때 집단의식이란, 여성들이 모두 똑같이 성적으로(‘성기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계급으로서의 여성의 착취를 구별하는 특성이 성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스스로 이 집단의식을 의식하지 못하게끔, 남성은 조심스레 ‘한 명’의 여성을 선택하고는 그녀가 다른 여성들과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그녀를 구별 짓는 것인 양 한다. 따라서 그녀의 섹슈얼리티는 그녀의 개성과 동일한 것이 된다.
이 과정은 교활하다. 여성은 자신들의 성이 사유화(개인화, 개별화, 집단에 반대되는…)되어 왔기 때문에 남성의 성적 발언을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ex. 나는 금발머리를 좋아해). 금발머리니 가슴이니 하는 육체적 속성들은 다른 많은 여성들과 공유되는 것이고, 그 속성들은 열심히 꾸며 창조해낸 것이 아니라 우연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은 육체적 속성이 자신의 가치를 다른 여성들과 구별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금발머리가 좋다는 남성의 말에 대해 금발머리 여성이 개인적으로 찬사를 받았다고 느끼는 이유다. 그러나 그녀를 다른 여성들과 구별시켜주는 그녀만의 개성이 온전하게 인식된다면, 금발은 다른 방식으로 사랑받을 것이다.
성의 사유화 과정은 섹슈얼리티와 개성을 교란시킨다. 남성은 그것을 귀중한 조작 기술로 의식하고 있기에, 그들의 게임이 누설될 것에 대비해 여성에 관한 이야기는 지들끼리만 하려는 경향이 있다. 남성끼리의 잡담 속에서 여성은 ‘년’ 등등으로 집단화, 즉 하나의 계급으로 회자된다. 이를 엿들은 여성이 자신이 다른 여성과 전혀 구별될 수 없다는 사실, 즉 여성의 성의 사유화라는 역겨운 과정에 놀아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그녀에게 총체적인 파멸로 다가온다. 이런 엿듣기보다 여성이 성의 사유화에 더 자주 직면하게 되는 때는 아마도 연인과의 싸움에서 남성이 진실을 털어놓을 때일 것이다(ex. 내가 진짜로 좋아한 건 네 가슴이야).
성의 사유화는 여성을 정형화한다. 그것은 남성이 여성을 피상적인 속성들로만 구별되는 ‘인형’으로 보게 만들고, 여성이 계급으로서의 성적 착취를 보지 못하게 그리하여 서로 단결해 그것에 대항하지 못하게 만든다. 여성은 그러한 책략을 돌파할 수 있는 강인한 개성을 발달시키기가 어렵다. 사회적으로 여성은 ‘허위의 개성’을 통해서만 인식되기 때문이다. 만약 (개별적인 대상으로서의 여자가 아닌) ‘여성의 일반성’ 속에서의 여성이라는 존재가 인식되는 유일한 존재라면, 여성은 허위가 아닌 진짜 개성을 발달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3) 미적 이상
이상이란 정의상 드문 성질을 본보기로 삼는다. 때문에 어떤 이상이든 다수를 배제한다. 혹시라도 인위적인 방법으로 다수가 그 이상에 맞게 된다면, 그때는 이상이 변화한다. 배타적인 미적 이상은 명백한 정치적 기능을 제공한다. 대부분의 여성은 배제될 것이고, 배제된 여성은 그 이상을 얻으려고 다툰다. 여성은 외모를 통해서만 개성을 성취하도록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외모는 외적 기준의 근사치에 어느 정도 다다랐냐에 따라 ‘좋은 것’이라고 정의된다. 남성에 의해 정의된 이 이미지가 이상이 되고, 그 결과 여성은 다이어트와 성형수술 등등으로 죽어나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는 여성의 사회적 정당성은 위기에 처한다. 이제 여성들은 점점 더 닮아 보인다. 그녀들은 외모를 통해 개성을 표현하려 하고, 자신들의 유사성과 독특성을 표현하려고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한다. 성의 사유화에 대한 요구는 미적 이상에 대한 요구와 모순되며, 개인의 외모에 관한 심각한 여성적 신경증을 일으킨다. 이러한 갈등 자체가 중요한 정치적 기능을 한다. 여성은 비슷하지만 너무 어리석어 서로 비슷하지 않다고 믿는 계급으로 정형화되는 것이다.
로맨티시즘의 증폭
실존하는 것들에 대한 아주 미세한 사항들을 문화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개인의 경험과 그 인식 사이의 거리가 방대한 해석망에 의해 확대된다. 만일 우리의 직접 경험이 도처의 문화적 망에 의한 해석과 모순되면, 경험은 부정되어야 한다. 이미지의 확산은 남성조차 대상화하지만, 이러한 구체화는 여성에게 더 복잡하다. 여성은 단순한 이미지일 뿐만 아니라, 성적 매력의 이미지다. 여성에 대한 정형화는 확장된다. 모든 여성은 끊임없이 자신의 외모를 어떻게 개선시킬지, 관련 상품을 어디서 살지, 열량을 어떻게 계산할지에 관한 정보를 얻는다. 모두가 그렇기에 경쟁은 광적일 정도로 심해진다.
에로티시즘은 이상성욕이 된다. 모든 미디어에 여성의 젖가슴과 허벅지가 튀어나온다. 남성은 끊임없는 성적 흥분 상태에서 걸어 다닌다. 이제 성적 흥분을 위해서는 일반적이지 않은 더 센 수단들이 필요하다. 여성의 옷차림은 더 도발적이 된다. 이 모든 에로틱한 자극의 공세 속에서 여성의 에로티시즘은 남성과 여성 모두를 향하게 된다. 고도로 효과적인 이런 선동 체계의 내적 모순 중 하나는 남성도 여성이 겪는 정형화 과정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남성 역시 TV를 보며 식스팩 남성을 접하게 된다. 근육질 남자가 힘도 더 있고 더 잘 할 것이다. 이러한 성적 유희와 폭로는 남성이 여성을 혐오하게 만든다.
현대의 미디어를 통한 로맨티시즘의 확장은, 에로티시즘, 성의 사유화, 미적 이상을 통해 남성우월주의를 유지하는 문화적 과정을 너무나 효과적으로 잘 수행한다. 역사상 이 시점에서 여성운동이 재건된 것은 현대 문화적 주입 제도의 내적 모순이 가져온 역효과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미디어는 무의식적으로 여성성에 대한 비하를 노출시키며 성적 주입을 증폭시키고 있다.
성의 대상은 아름답다. 문제는 그 아름다움이 인간적인 방식으로 아름다운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장과 변화와 쇠퇴를 허용하는가, 긍정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들도 표현하는가, 인위적인 뒷받침이 없으면 허물어지는가, 금속이 되려고 하는 나무처럼 무생물적 대상의 다른 아름다움까지 거짓으로 모방하는가 등의 문제인 것이다. 에로티시즘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왜 모든 기쁨과 흥분이 단 하나의 좁고 찾기 어려운 인간 경험의 한 구석으로 몰아넣어지고 나머지들은 초토화되는가 하는 것이다.
댓글목록
소리님의 댓글
소리와 일찍 올려주셨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이따 만나요!!
소리님의 댓글
소리저희가 같이 공부하는 내용을 모두와 공유하기 위해서 본문 내용도 함께 올리도록 제가 조금 수정했습니다. ^^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오 ~~ 빠른 발제문 감사 합니다 ~~ 이따 뵈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