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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주체의 해석학》 0428 세미나 후기 +3
삼월 / 2017-05-02 / 조회 1,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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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 자기배려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헬레니즘·로마 시대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헬레니즘·로마 시대의 자기배려 개념들을 그리스와 기독교의 개념들과 비교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영성과 구원, 타자와 우정의 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개종과 전향, 진실-말하기와 주체의 실천, 지식(자연과학)에 대한 철학자들의 견해가 이어졌습니다.

 

 헬레니즘·로마 시대의 자기 배려는 자기 배려 자체를 목적으로 삼습니다.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 정치를 통한 타자 배려를 하기 위해 자기 배려를 추구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푸코는 이런 변화를 ‘자기 자신을 향한 급선회’라고 부릅니다. 자기 자신을 돌보고, 자신에게 몰두하고, 자신에게 되돌아가기. 이 회귀를 개종이나 전향이라 부릅니다. 우리에게 개종은 종교적 의미로, 전향은 정치적 의미로 이해되기 싶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철학에서 시작된 개념입니다. 전향은 프랑스대혁명 이후 19세기에 정당활동이 본격화되면서 정치적 개념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개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원래 전향(epistrephein)은 플라톤이 epistrophê라고 불렀던 것으로, 외관으로부터의 방향전환, 본질이나 진실, 절대존재로의 회귀를 뜻합니다.

 

 플라톤의 전향에서 자기 자신은 영혼이며, 그 영혼의 목표는 진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육체로부터 해방되고, 자신의 영혼과 완벽한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헬레니즘·로마 시대의 자기 배려는 영혼이나 인식의 문제가 아닌, 자기 수양의 문제입니다. 자기 수양은 우리 자신을 스스로가 주관하지 못하는 문제에서 스스로가 주관할 수 있는 문제로 이동시키려 합니다. 인식보다는 훈련이나 실천이 중요합니다. 기독교의 개종metanoia이 내부의 단절에 의한 자기 포기로 나타난다면, 우리가 헬레니즘·로마 시대의 전향conversion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자기 주변과 단절하고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가는 행위입니다. 기독교의 개종을 타동-주체화라 한다면, 이 전향을 능동-주체화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푸코는 이 시선의 변화를 통해 진실-말하기와 주체의 실천 문제를 연결시킵니다. 이 실천은 자기와 타자에 대한 통치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나무에 대한 앎과 인간에 대한 앎 중 인간에 대한 앎을 선택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선택이 서구의 철학을 지배해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구철학에서 인식하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섣불리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회에 잘 적응한 견유주의자 데메트리우스는 자연에 대한 앎을 무용하다고 말하면서, 자연에 대한 앎은 인간의 실존방식, 즉 에토스에 영향을 미치는 한에서만 유용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견유주의자가 자연과학을 배격했던 것은 아닙니다. 견유주의자 디오게네스는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는 데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점은 견유주의자 데메트리우스가 유용한 지식과 무용한 지식을 구분하는 기준을 에토스의 생산에 둔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실존방식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앎, 에토스를 생산하지 못하는 앎은 장식적 앎에 불과합니다.

 

 에피쿠로스에게 앎의 구분은 교양과 생리학의 대립으로 나타납니다. 에피쿠로스에게 있어 생리학은 자연과학의 한 분야가 아니라 인간 행실의 원리로 사용되는 앎입니다. 생리학은 인간을 자유로운 주체로 만들고, 자신 안에서 관능의 가능성과 원천을 발견하게 합니다. 자연에 대한 앎이 인간에 대한 앎과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자유를 파레지아(진실-말하기)와 연결시키며, 생리학자의 자격으로 파레지아의 테크닉을 연구합니다. 파레지아는 주체의 변형을 위한 놀이의 자유이며, 진실을 드러냄과 동시에 명령하는 담론을 지시합니다. 주체의 변형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는 의학과 유사하며, 생리학자가 구사할 수 있는 기술과 자유입니다.

 

 에피쿠로스학파와 견유주의자들에게는, 소크라테스에게 있었던 선택의 순간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연에 대한 앎과 인간에 대한 앎 중에서 선택하지 않았으며, 자연에 대한 앎과 인간에 대한 앎은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자연에 대한 앎, 세계에 대한 앎은 인간이 자신에게 가하는 변형에 관여합니다. 이 앎은 사물과 세계, 신과 인간의 관계에 근거하여 주체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진실 혹은 진리는 주체가 획득하는 무엇이 아니라, 주체에게 충격을 주어 변형시키는 무엇입니다. 진실 혹은 진리처럼 주체도 발견하고 탐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변형시켜나가야 할 무엇입니다.

 

 이 시대에 신에 대한 믿음만큼이나 가지기 어려운 것이 인간이 변한다는 믿음입니다. 주체는 변형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서로에게 삶을 조언하는 의사처럼 명령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 말을 듣고 기꺼이 따를 수 있습니까? 참 어려운 말들이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철학공부 대신 교회로 향하게 되나 봅니다. 어쨌든 저는 우리의 능동-주체화를 목표로 가보려고 합니다. 신체에 새긴 지식이 우리를 변형시키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댓글목록

소리님의 댓글

소리

맨 마지막 문단을 읽으며 마음이 찡해졌습니다.
평소 말 습관인, 혹은 제가 믿고 있는 믿음이기도 한 말인
"인간 쉽게 안 변한다~"라는 말에는 뿌리깊은 인간 불신이 기반해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여전히 자기구원에 대해 말하는 푸코가 꼰대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불신이겠지요.
나를 포함한 많은, 특히 성인의 인간이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현실적 경험들과 그에 기반한 깊은 절망감이 이유이기도 하고요.

어릴 적부터 고집 세다는 말을 듣던 나는 여전히 좋게 말하면 자신의 줏대가 강한, 혹은 고집 센 인간으로 자랐습니다. 이런 내가 변화 할까? 나는 타인의 말을 수용하며 변화하는 것인가, 그저 눈치를 보게되는 것인가, 팔랑귀가 되어가는 건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결국 고집 센 인간으로 돌아와 있기도 합니다.

나는 나를 변화 시킬 수 있는지, 나는 타인의 변화를 믿을 수 있는지, 그 변화의 말들에 내가 동참할 수 있는지, 수용할 수는 있는지...
삼월 님 말씀처럼 참 어려운 말입니다.
저는 <주체의 해석학>을 2번째 읽지만 여전히 능동-주체화의 현실화가 너무도 어렵습니다. 좀 더 공부와 고민이 필요하겠다는 교조적인 결론을 두고 댓글을 마무리 지어야겠습니다.
좋은 후기 감사합니다.

아라차님의 댓글

아라차

삼월님 후기를 뒤늦게 봤네요.

이 철학자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새긴다고 해서 자기 배려가 되는 건 아니겠지요. 
이 텍스트 잘 이해했다고 자기 배려가 저절로 되는 건 아니겠지요.
실체적으로 자기배려가 되지 않으면
이 아름답고 충격적인 텍스트들도 모두 장식적 앎으로 끝나버리는 거겠지요.
언제나 저멀리 날아가버릴 듯한 팔랑귀 자세로,
미련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붙잡고 싶은 구름기둥 하나 발견한 기분입니다.
구름기둥 타고 내려가 땅바닥이라는 것에 발바닥을 좀 대보고 싶기도 하고요.
능동적으로요.
(그런데, 요즘같으면 그 땅바닥에 맑스가 있어서리...나 다시 돌아갈래...뭐 이러는 중)

언제나 정독을 부르는 후기! 감사합니다.

유택님의 댓글

유택

자기배려.. 실존의 미학, 참으로 어려운거 같아요. 왜 이렇게 <주체의 해석학> 읽기가 이리 힘이 드는지. 여태까지의 강의록5권(비정상인/정신의학의 권력/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안전 영토 인구/생명관리정치의 탄생)과 비교해서 가장 감정적으로 힘든 읽기네요. 책 내용 자체가 힘든건지, 아니면 개인적 상황이 이 내용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지 헷갈려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것 같고 완전 뜬구름 잡는 관념의 절정인것 같고(한때 수학문제 푸는걸 즐겼던 자연계 출신 나로썬). 한편으로 보면 꼭 정신승리법 같기도 하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푸코 전반장 소리 말처럼 'You are what you do' 자기의 행위/자기 실천이 곧 자기 자신이다 정해져 있는 자신은 없다 그러니 내가 누군지 제발 묻지말라 심지어 호흡(pneuma) 한번 할때마다 공기가 내 신체에 들어왔다 나가는 그 순간 순간 변하는게 인간이다라는 미리 읽은 8강 예습내용에 정말 혼이 나갈 지경.ㅎ 기원전후의 (대략 2000년전의) 로마헬레니즘 자기 사유방식들을 공부하면서 대체 난 뭘 얻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나날들입니다. ^^ 애정하는 푸코 세미나 언제나 화이팅~! 후기 잘 읽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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