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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소송 지난주 후기 (4/19) +2
걷는이 / 2017-04-24 / 조회 1,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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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 블로크 ⋅ 변호사와의 해약]

밤늦은 시각, 변호사의 집을 찾은 K는 문을 열어준 한 남자와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남자의 이름은 블로크. K와 마찬가지로 변호사에게 소송을 맡긴 상인이다. 블로크는 소송이 5년째 이어지는 동안 그의 상황이 어떻게 변해 갔는지, K를 본 적이 있던 법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한다. 또 다른 인물 레니. 그녀는 변호사의 개인비서쯤 되는 모양이다. 레니는 변호사에게 수프를 끓여다 주고, K에게 신체적 접촉을 시도하다 뿌리침을 당하고, 상인의 바지에 묻은 촛농을 닦아주느라 끊임없이 움직인다. 블로크는 쉼없이 제 얘기를 떠들어 대고, 레니는 바쁘게 제 할 일을 한다. 두 사람은 딱히 K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두 사람을 향한 K의 시선은 계속 흔들리고 속마음은 온통 뒤죽박죽이다.

 

마침내 K는 변호사와의 해약을 통보하기 위해 변호사의 방으로 들어간다. 침대에 누워서도 바깥 사정을 다 꿰고 있는 듯한 노회한 변호사. 그는 레니와 K의 미묘한 관계를 두고 피고인이 매력적인 것은 죄 때문만은 아니고 그들을 따라다니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소송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K는 물론, 그의 주변 인물들은 K가 무슨 죄로 소송을 당했는지 알지 못한다. 게다가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K와 블로크도 한참동안 얘기를 나누면서도 서로의 죄에 대해서는 전혀 묻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소송 그 자체인 것이다.

 

K는 적극적인 대응을 위해 해약을 하겠다고 말한다. 변호사는 K를 설득하려는 듯이 소송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둘러댄다. 뜻을 굽히지 않는 K. 변호사는 블로크를 불러들여 모욕적으로 대한다. 그리고 무릎까지 꿇어가며 비굴한 태도로 매달리는 상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일상을 잃어버리고 소송 외에는 남은 것이 없어 그저 변호사의 발밑에 깔린 카펫의 털을 쓰다듬고 있는 블로크의 모습은 가까운 미래의 K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성당에서]

사무실 안에서도, 사무실 밖에서도 불안해하며 집중을 못하는 K에게 이탈리안 고객에게 문화유적을 안내하라는 지시가 내려진다. 그 고객과 만나기로 약속한 대성당에 먼저 도착해 성당 안으로 들어간 K는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 신부와 만난다. 신부는 자신이 교도소 신부라고 밝히며 K의 소송에 대한 관심과 걱정, K가 여자들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신부는 법의 문 앞을 지키는 문지기와 문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시골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부의 이야기를 들은 K는 시골남자가 문지기에게 기만을 당했다고 말한다. 신부는 문 앞을 지키고 있으나 내부의 모습이나 의미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오히려 문지기가 기만을 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모든 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신부. 허위가 세계 질서가 되어있다고 대꾸하는 K.

 

신부가 K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따로 떼어내서 1915년에 ‘법 앞에서’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카프카가 ‘소송’에서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여기에 담겨있는 것 같긴 한데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남자는 문 앞에서 안으로 들어갈 날을 기다리며 늙어간다. 죽음에 이른 순간, 법의 문에서 흘러나오는 광채를 알아 본 시골남자. 이 문은 그 사람만을 위한 것이었으니 이제 그 입구를 닫겠다는 문지기. 과연 저 문은 법 안으로 들어가는 문일까? 어쩌면 법 밖으로 탈주할 수 있는 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골남자는 K의 다른 얼굴일 것이다. 아니면 또 다른 A이거나 X일 수도 있다. 하긴 카프카를 읽고 있는 나, 너, 우리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건조하면서도 연극적인 카프카의 글에 익숙해지려니 이제 종말 부분만 남았다. 어떤 결말로 치닫게 될지, K는 그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몹시도 궁금하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세미나 시간에 무자비한 스포를 당하고 말았으니...... 일단 맑스 선생님을 먼저 만나 뵙고 숙제를 후딱 해치운 뒤, 아껴둔 ‘소송’의 끝을 펼쳐봐야겠다.

 

댓글목록

주호님의 댓글

주호

'법 앞에서'라는 성담은 여러모로 해석할 여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
세미나 시간에도 말했었지만 저도 그 시골남자가 우리들 개개인들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시골남자 앞에 놓인 문처럼, 각자에게만 열려있는 문들이 있는 것 같아요.
무자비한 스포를 좀 당하면 어떻습니까. 결말을 알고 봐도 이야기할 것은 많으니까요.
전 뒷부분을 읽으면 읽을 수록 카프카가 어렵게 느껴집니다. 정말 우울한 암호문을 읽는 기분이거든요.
오늘 그 암호문의 마지막 시간이네요. 조금 이따 뵙겠습니다.

삼월님의 댓글

삼월

무자비한 스포! ㅎㅎ 듣고도 자꾸 까먹는 결말이라...
전 카프카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읽을수록 그 찌질함에 정이 들어갑니다.
우울함 따위 모르겠네요. 소송의 결말은 강렬하고 시원했습니다. 전 이 결말 이외에 다른 것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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