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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사기세가 #2 - <노주공세가>, <연소공세가>, <관채세가>, <진기세가>…
기픈옹달 / 2017-04-25 / 조회 1,444 

본문

노주공세가

 

노魯나라는 주공과 공자의 나라로 유명하다. 주공周公 단旦은 문왕의 아들이며 무왕의 동생이다. 그는 무왕을 도와 은을 정벌했으며, 무왕 사후 어린 성왕을 보필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린 조카를 보필한 숙부.

 

아아! 경은 주공(周公)의 훌륭한 재질이 있고, 또 주공의 큰 공을 겸하였고, 나는 성왕(成王)의 나이의 어림으로 또 성왕의 다난(多難)함을 만났다. 이에 성왕이 주공에게 책임하는 것으로써 숙부에게 책임하였으니, 마땅히 주공이 성왕을 돕는 것으로 과궁(寡躬)을 도와서 위와 아래가 서로 닦으면 무슨 근심을 구제하지 못하랴. 네 충성과 공렬을 돌아보니 의지함이 실로 깊다.”

이는 단종 3년 1월 24일 기사이다.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하교하는 글인데, 이때 수양대군은 ‘분충 장의 광국 보조 정책 정난 공신(奮忠仗義匡國輔祚定策靖難功臣) 수양 대군(首陽大君)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영집현전 경연 예문 춘추관 서운관사(領集賢殿經筵藝文春秋館書雲觀事) 겸판이병조사(兼判吏兵曹事) 중외 병마 도통사(中外兵馬都統使)’였다. 단종실록은 그해 윤6월까지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훗날 주공에 빗대어졌던 수양대군과 주공 본인은 달랐다. 그는 주나라의 기틀을 닦는데 관심이 더 많았다. 더불어 주공은 주나라 초기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덕분에 그에게 봉해진 노나라는 천자의 예악을 사용할 수 있었다. 훗날 공자가 주공을 흠모한 데는 이런 이유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노나라의 혼란은 환공 시대에서 시작한다. <제태공세가>에서 보았듯 노환공의 부인과 제양공은 배다른 남매였는데 이 둘은 정을 통하고 있었다. 노환공과 부인이 제나라에 갔을 때 환공이 이 사실을 알게 되는데, 제양공은 이를 이유로 그를 죽인다. 환공 사후 노나라는 크게 어지러워진다. 환공을 이어 자리에 오른 장공과 그의 형제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때문이다. 형제들 사이의 복잡한 치정사의 결과 삼환三桓, 계씨, 숙씨, 맹씨의 세 세력을 만드는 출발점이 된다. 간단히(?) 정리해보면 이렇다.

 

환공의 아들: 장공, 경보, 숙아, 계우

장공 : 맹녀와의 사이에서 반을 낳고 그에게 자리를 물려주려 한다. / 제나라 여인 애강을 얻었으나 아들은 없었고, 그의 동생 숙강에게 개를 낳았다. 

반 : 장공을 이어 노공의 자리에 오르나 어인 낙에게 죽임을 당한다. 젊은 시절 양씨를 좋아했는데 어인 낙이 양씨를 희롱하는 것을 보고 채찍질하였다. 장공은 그를 죽이라 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결국 그의 손에 죽었다. 

개 : 민공, 애강과 경보가 간통을 벌이며 그를 죽이고 경보를 임금을 세우려 한다. 

경보 : 적자가 아닌 반을 대신하여 군주의 자리를 탐냈다. 정공의 부인 애강과 사사로이 정을 통하며 그 동생의 아들 개를 노공으로 삼으려 한다. 결국 반을 죽이고 개를 노공으로 앉히나 그도 죽이고 직접 자신이 노공이 되려 한다. 거나라로 도망갔다 돌아온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후손은 맹씨가 된다. 

숙아 : 장공이 병이 들었을 때 자리를 어떻게 이을지 상의했다. 장공의 동생 경보를 세우려 했으나, 계우의 협박으로 짐독을 먹고 죽는다. 후손이 숙씨가 된다. 

계우 : 반의 죽음 때 진나라로 도망갔다. 이후 경보가 민공(개)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자, 민공의 동생 신을 데리고 돌아와 그를 세운다.(희공) 후손이 계씨가 된다.

애강 : 정공의 부인이었으나 아들이 없었다. 동생의 아들 개를 노공으로 삼으려 했다. 경보와 정을 통하다 경보가 죽은 뒤 주나라로 달아났다. 제환공은 그를 잡아 죽이고는 노나라에 들어가 그의 시체를 찢었다.

 

맹씨, 숙씨, 계씨 가운데 가장 세력인 큰 것은 계씨였다. 소공은 계씨의 세력을 꺾을 기회를 엿보았는데, 계씨와 후씨가 투계 놀이로 다투는 일이 있었다. 이때 소공은 계씨를 쳤다.

 

郈氏曰 必殺之 叔孫氏之臣戾謂其眾曰 無季氏與有 孰利 皆曰 無季氏是無叔孫氏 戾曰 然 救季氏 遂敗公師 孟懿子聞叔孫氏勝 亦殺郈昭伯 郈昭伯為公使 故孟氏得之 三家共伐公 公遂奔 己亥 公至于齊

결국 이 사건의 결과 계씨를 중심으로 숙씨와 맹씨의 힘은 더욱 강하게 뭉쳤고, 이를 어떻게 해보려던 노소공은 노나라에서 쫓겨나 제나라에서 목숨을 잃는다. 공자를 비롯하여 이 삼환의 셰력을 꺾으려는 노력이 여럿 있었지만 모두 실패한다. 결국 주공의 노나라도 초나라에 멸망당하고 만다.

 

연소공세가

 

결론 먼저. 연은 주나라 왕실과 성씨가 같은, 희씨姬氏 성의 제후국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라였다. 그러나 대체로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소진의 활약으로 한 때 합종의 우두머리가 되나 잠시였다. 이후, 연왕 쾌가 선왕을 흉내 낸다고 자지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 했다 크게 나라를 어지럽게 만드는 일도 있었다.

 

鹿毛壽謂燕王 不如以國讓相子之 人之謂堯賢者 以其讓天下於許由 許由不受 有讓天下之名而實不失天下 今王以國讓於子之 子之必不敢受 是王與堯同行也 燕王因屬國於子之 子之大重 或曰 禹薦益 已而以啟人為吏 及老 而以啟人為不足任乎天下 傳之於益 已而啟與交黨攻益 奪之 天下謂禹名傳天下於益 已而實令啟自取之 今王言屬國於子之 而吏無非太子人者 是名屬子之而實太子用事也 王因收印自三百石吏已上而效之子之 子之南面行王事 而噲老不聽政 顧為臣 國事皆決於子之

연왕 쾌는 선왕의 일을 흉내내고 싶었을 뿐 자지에게 정말 왕위를 물려줄 생각은 없었다. 허유처럼 자지가 거절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그러나 자지는 덥석 수락하고 연은 크게 어지러워진다. 이를 계기로 제나라의 공격을 받는다.

 

당시 제나라에는 맹자가 와 있었는데, 사마천은 맹자가 연나라를 치라고 말했다 기록한다. <맹자>의 논조와는 다른 부분. 연은 제나라의 공격에 크게 패하나, 이후 왕위에 오른 소왕은 여러 인물을 끌어들인다. 이때 연으로 온 인물 가운데는 악의와 극신이 있었다.

 

악의는 제나라를 쳐서 크게 승리한다.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제나라를 건진 것은 전단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악의열전>과 <전단열전>을 보자. 한편 태자 단이 원한을 갚겠다고 형가를 불러 진시황을 암살하려 한 사건도 유명하다. 이는 <자객열전>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관채세가


관채세가는 무왕의 형제들이었던 관숙 선, 채숙 탁, 조숙 진탁 등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러나 관숙은 채숙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 뒤 죽임을 당하는 바람에 기록을 남기지 못하다시피 되었다. 채나라와 조나라의 기록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채나라의 기록이 많다.

 

채나라의 기록 가운데 흥미로운 것 가운데 하나는 제환공에게 시집간 목후의 동생 이야기이다. 그는 환공과 뱃놀이를 갔다가 환공을 노엽게 만들고 말았다. 천하의 패자인 환공도 물이 무서웠나 보다. 결국 환공은 그를 채나라로 돌려보내나, 목후는 화가 나서 동생을 다른 나라로 시집보냈다. 이일로 환공은 채나라를 쳤고 목후는 환공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소후는 초나라 소왕에게 조회하러 가는 길에 가죽옷 두 벌을 가지고 갔다. 한 벌은 소왕에게 바치고 한 벌은 자신이 입었다. 초나라 재상 자상이 탐냈으나 주지 않았다. 이에 자상의 모함으로 소공은 삼 년 동안이나 초나라에 억류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자상에게 가죽옷을 바치고서야 채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문제는 이때부터 소후(?)의 복수가 시작되었다는 점. 소후는 초나라를 칠 방법을 찾는다. 결국 자신의 아들을 오나라에 볼모로 맡겨두고 함께 초나라를 치기로 한다. 합려가 오자서, 백비 등과 초나라 수도를 무너뜨렸을 때 그는 자상을 찾았다. 그러나 자상은 이미 정나라로 도망친 뒤였다.

 

그 결과 초나라와 사이가 나빠졌는데, 오나라의 힘을 빌어 초나라의 침입을 막고자 했다. 소후는 대부들과 논의 없이 오나라의 요청대로 오나라 가까이 도읍을 옮겨 버린다. 이에 화난 대부들은 이후 소후가 오나라로 조회하러 갔을 때 도적 이로 소후를 암살하게 했다. 그리고 소후를 죽인 도적 이를 죽여 흔적을 없애버린 것은 덤.

 

昭侯十年 朝楚昭王 持美裘二 獻其一於昭王而自衣其一 楚相子常欲之 不與 子常讒蔡侯 留之楚三年 蔡侯知之 乃獻其裘於子常 子常受之 乃言歸蔡侯 蔡侯歸而之晉 請與晉伐楚

소후의 이야기는 초, 오, 진 주변에 속한 소국의 안타까운 운명을 보여준다. 다른 나라 재상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은 물론, 다른 나라의 힘을 빌어 자신의 원한을 갚을 수밖에 없는 현실. 게다가 끊임없이 다른 나라 눈치를 살피며 자리를 보전해야 하는 어려움까지. 결국 채나라는 초혜왕에게 멸망당하고 만다.

 

진기세가

 

이어지는 소국의 이야기. 진은 순임금의 후예라 전해진다. 주 무왕이 은을 멸망시키면서 순의 후예를 얻어 진에 봉했다 전해진다. 진의 이야기는 그 내부의 이야기보다 여공의 아들 경중 완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다. 진의 궁실도 마찬가지로 애첩의 문제로 시끄러웠다. 선공은 애첩이 아들을 낳자 그를 태자로 삼고자 이전 태자를 죽였다.

 

죽임 당한 태자 어구와 친했던 완은 자기에게 화가 키칠까 두려워 제나라로 도망친다. 제환공은 그를 받아들여 경으로 삼는다. 그리고 훗날 이 경중 완의 후예 전씨가 제나라를 차지한다.

 

영공과 신하인 공녕, 의행보가 함께 음란한 짓을 벌인 이야기는 흥미롭다.

 

十四年 靈公與其大夫孔寧 儀行父皆通於夏姬 衷其衣以戲於朝 泄冶諫曰 君臣淫亂 民何效焉 靈公以告二子 二子請殺泄冶 公弗禁 遂殺泄冶 十五年 靈公與二子飲於夏氏 公戲二子曰 徵舒似汝 二子曰 亦似公 徵舒怒 靈公罷酒出 徵舒伏弩廏門射殺靈公 孔寧 儀行父皆奔楚 靈公太子午奔晉 徵舒自立為陳侯 徵舒 故陳大夫也 夏姬 御叔之妻 舒之母也

영공, 공녕, 의행보는 징서를 두고 서로 닮았다며 농을 부린다. 군신이 서로 이렇게 농을 치는 모습이란. 결국 영공은 징서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영공을 몰아내고 스스로 진후에 오른 징서는 초장왕에게 목숨을 잃는다. 초나라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진 역시 초혜왕에 멸망당한다.

 

기우杞憂로 유명한 기나라는 우 임금의 후손이다. 주 무왕이 후손을 찾아 기 땅에 봉해주나 세력은 매우 미비했다. 사마천도 매우 단순히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국토도 작고 힘도 약해 기술할 것이 없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결국 기도 초혜왕에게 멸망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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