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 : 아즈마 히로키 <존재론적, 우편적> 제2장 앞부분 후기 (4월18일 세미나 후기입니다) +2
김은정
/ 2017-04-25
/ 조회 1,861
관련링크
본문
[데리다] 후기
아즈마 히로키 <존재론적, 우편적> : 제2장 두통의 편지, 두 개의 탈구축 (~ P113 첫 벌반 부분)
김은정
이 장의 앞 부분은 제목이 시사하고 있듯이 <두 개의 탈구축>에 대한 설명에 할당되어 있다.
아즈마 히로키가 명명하는 두 개의 탈구축이란 데리다의 초기 탈구축(괴델적 탈구축)과 데리다의 후기 탈구축으로 데리다의 ‘탈구축’을 둘로 나누어 해석하고 있다.
이에 데리다의 초기 탈구축(괴델적 탈구축)에 대한 이해를 위해 괴델적 탈구축에 관한 사전적 정의부터 인용해보고자한다. 또한 이날 발제자이신 최원 선생님께서는 ‘러셀의 패러독스’를 예로 들어 설명해 주셨기에 ‘러셀의 페로독스’ 또한 함께 첨부합니다.
이 정리가 발표되기 이전까지 B.러셀과 A.N.화이트헤드를 포함한 대부분의 논리학자들은 주어진 수학적 명제의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절대적인 지침이 있다고 믿었다. 즉, 참인 모든 명제는 증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괴델은 참이지만 증명이 불가능한 식을 제시하여 그렇지 않음을 보였다. 괴델은 산술을 형식화한 형식체계에서 그 체계가 무모순적인 한, 참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문장(논리식)이 적어도 하나 이상 존재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괴델의 제1불완전성정리이다. 제1불완전성정리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어떠한 형식체계도 그 체계가 무모순적인 한, 그 체계 안에서 주어진 공리와 규칙들만으로는 그 일관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 제2불완전성정리이다. 이 정리는 튜링 기계(Turing machine)와 처치 설정(Church thesis), 괴델의 무모순성(consistency)정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괴델의 불완전성정리 [─不完全性定理] (두산백과)
러셀의 패러독스
[ Russell's paradox ]
요약영국의 수학자 B.러셀이 1901년에 발견한 집합론의 패러독스.
러셀의 역리(逆理)라고도 한다. 자기 자신에 속하지 않는 집합, 즉 자기 자신의 원소가 되지 않는 집합들의 집합인 Z={x l x¢Z}에서, “Z는 자기 자신에 속하는가, 또는 속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만일 Z가 Z에 속하지 않는다면 Z의 정의에 따라 Z는 자기 자신에 속한다. 또 Z가 Z에 속한다고 하면, Z의 정의에 따라 Z는 자기 자신에 속하지 않는다. 어느 경우이든 모순에 도달한다.
이 패러독스의 직관적인 비유로서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어느 시골 마을에 스스로 머리를 깎지 않는 모든 마을 사람들의 머리를 깎아주는 한 이발사가 있다. 그러면 이발사 자신에 관해서는 어떻게 될까? 이 이발사가 자신의 머리를 깎는다면 그는 자기 자신의 머리를 깎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머리를 깎을 수는 없다. 만일 자기 자신의 머리를 깎지 않는다면 그는 그가 깎아 주어야 할 마을 사람들의 집합에 속한다. 따라서 어느 경우이든 그는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다.
러셀의 패러독스는 순수 논리적인 것이므로, 논리학의 기초를 위태롭게 한다고 하여 한 때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러셀 자신의 계형이론(階型理論)과 J.노이만의 공리론적 집합론이 나왔으며, 이것이 새로운 논리학과 수학기초론의 근저를 이루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러셀의 패러독스 [Russell's paradox] (두산백과)
즉, 모든 형식적인 것(하나의 시스템)은 그 자체내에 ‘자괴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괴델식의 ‘탈구축’ 이론이라는 것이기다. (이에 아즈마 히로키는 가라타니의 데리다 해석을 인용하는데) 이에 관해 가라타니는 “하나의 시스템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자괴하도록 함으로써 근원적 차이를 발견하는 데리다의 방법은 최종적으로 차이의 신비화나 초월화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라는 것이다.
이에 아즈마 히로키는 초기 데리다 탈구축 이론에 관한 가라타니의 해석에 동의하며 만약 데리다가 여기서 멈추었다면 우리가 데리다를 읽을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다시말해 여전히 데리다를 읽어야하는 이유는 데리다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두번째 (후기 데리다) 탈구축”으로 초기탈구축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데리다의 후기 탈구축에서 데리다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자괴점을 갖고 있는 시스템의 ‘기원’이 아니라 “경로”다.
이에 관해 데리다는 라캉의 <도둑맞은 편지>의 예를 들고 있다. 즉, 편지는 반드시 항상 수취인에게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편지의 구조에 속하는 이상, 그것이 진정으로 수취인에게 도달하는 일은 결코 없고, 또 도달할 때도 ‘도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편지를 어떤 내적인 표류로 힘들게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
펴지의 분할가능성은 그것이 장을 주여하는 시니피앙의 분할 가능성이며 따라서 그에 종속되어 그것을 ‘대리’하는 여러 ‘주체’,‘등장인물’,‘위치’의 분할가능성이다.
다시 말해, 라캉에게 주체는 지극히 분할되어 있지만 팔루스는 결코 분유되는 일이 없다. 세분화는 팔루스에 관여하지 않는 사고, 라는 것이다. 최원 선생님의 설명을 덧붙이자면 “라캉은 구조 자체의 자괴점(불가능성)을 초월화 시키고 있다. 즉, 라캉은 자괴점은 분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데리다와의 차이가 있다. 데리다는 자괴점 역시 나뉘어진다고 하면서 자괴점의 초월성을 부정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데리가가 주목하고 있는 “경로”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라캉에게 ‘불가능한 것’은 ‘단수’ 즉, 하나이다. 그러나 데리다에게 ‘불가능한 것’은 복수이지 결코 하나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직면한 ‘불가능한 것’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직면할 수 없다. 어딘가에서 ‘행방불명’되어버린 편지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행방불명’된 우편물을 모델로 ‘불가능한 것’에 대해 사고하는 데리다에게 있어 문제는 시스템의 기원이 아닌 ‘경로’에 있다. (그런데 이부분에 있어 데리다의 역사성... 뭐 이런 이야기들이 세미나 시간에 나왔었던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제가 이해를 못해서 ... 잘 모르겠습니다.. )
*** 제가 이번 세미나에서 이해한 부분들을 후기로 작성하였습니다.
제가 이해한 것은 여기 까지입니다.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이해가 부족하여 후기에 서술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그리하여 데리다의 후기 탈구축은 뭔가? 하는 데리다에 대한 관심은 충만히 증폭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 본 후기는 아즈마 히로키 2장 앞부분에 할당되는 것이나 히로키의 원문 구성에 따른 요약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으로 제가 이장에서 또한 우리의 세미나에서 이해한 부분에 대한 요약문입니다.
댓글목록
최원님의 댓글
최원후기가 안 올라와서 펑크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는데, 결국 올려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오늘 세미나에서 여기서 나온 이야기들, 특히 잘 이해가 안 된다고 말씀하신 부분을 더 논의할 예정입니다. 우리 모두 더 많은 이해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희음님의 댓글
희음
바쁘신 와중에도 후기 약속 지켜주신 김은정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하시는 작업도 무한 응원합니다! 무대의 깊고 진하고 환한 그림자로 드리워져 있는 선생님도 얼른 만나고 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