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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소송> 4/12 후기
삼월 / 2017-04-18 / 조회 1,103 

본문

 

법은 어디에 있나

 

  이 장에서 카는 세 인물 ‘변호사, 제조업자, 화가’를 만난다. 세 사람은 모두 법과 연관되어 있다. 카가 만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이 법과 관련이 있고, 그의 소송에 대해 알고 있다. 여기에서 법은 법전 안에 담긴 형식으로서의 법이 아니다. 법은 어떤 과정처럼 끊임없이 흐르고 있고, 카가 가는 곳 어디든 따라 움직인다. 카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체포된 것도, 태형리의 매질이 카의 직장 창고에서 일어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 법이 적용되는 범위도 너무 넓고 불분명한 탓에 도대체 무슨 죄를 처벌하려는지도 알 수 없다.

 

  카의 소송을 맡은 변호사는 소송에 실제로 도움이 되고 있지 않다. 변호란 법률상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묵인될 뿐이라는 이상한 말도 늘어놓는다. 변호가 원칙상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소송에 관해서는 변호사가 필요하다면서, 변호사는 이 소송이 ‘외과의사가 말하는 깨끗한 상처’가 되도록 도울 수 있다고 다짐한다. 이 깨끗한 상처를 인위적인 상처인 수술자국으로 본다면, 소송과 처벌은 인간의 삶 전체에 작용하는 외과적 수술과 같은 것이다. 이는 외부에서 강제하는 교정과도 같다. 카는 이에 저항하고 반감을 품으며, 자신이 정말 죄(혹은 병)가 있는가 하고 묻고 있다.

 

  변호사, 제조업자, 화가. 세 인물은 그 물음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연극 속 인물처럼 입체감이 없는 이들은 단지 법의 목소리, 혹은 이에 저항하는 카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그들은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 너는 죄가 있는가. 각자의 직업과는 관계없이 이 물음을 던지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그 물음은 어쩌면 모두 카 자신의 물음이기도 하다. 법의 목소리와 이에 저항하는 목소리 모두 카 자신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카는 죄와 비극의 숙명성에 저항하면서도, 그 죄와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화가는 카에게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이를 한 번도 보지 못했노라고 말한다. 무죄판결, 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형식적이고 제한적인 무죄판결을 받거나, 판결 자체를 계속해서 지연시키는 방법뿐이다. 언제든 다시 체포될 수 있고, 평생 동안 불쾌한 심리와 심문에 시달려야 한다. 모든 건물의 다락방에는 법률사무소가 있고, 카를 쳐다보는 지저분한 어린애들까지도 법원에 소속되어 있다. 모두가 감시자이고, 모든 곳에서 법을 다룬다. 법은 늘 우리 머리 위에 있고, 하찮은 시선들에도 법의 감시가 섞여있다. 위엄 대신 초라하고 터무니없는 형상으로. 그 법은 노인들의 지겨운 잔소리, 혹은 어린애들의 어설픈 공격을 닮아있다. 그 법이 당장 우리를 죽일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거기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도 없다.

 

* 조금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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