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공백] 파블로 네루다의 시 후기 +3
자연
/ 2017-04-12
/ 조회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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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는 파블로 네루다를 읽었습니다. 데리다 반장이신 최원 샘과 실험자들의 오랜 회원이신 소소 님이 새로 오셨는데, 환영합니다. 그래서인지 시에 대한 의견들이 더욱 풍성했던 시간이었요. 시라는 것이 웬지 진지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네루다의 사랑에 관한 시를 읽을 때는 폭소도 터트렸죠. 나이를 불문하고 사랑의 시를 같이 읽는다는 것이 다들 좀 수줍긴 했습니다.
네루다는 칠레의 시인이자 공산주의자입니다. 레닌평화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았죠. 공산주의를 흠모한다는 세로토닌 님이 생각나네요. 공산주의를 외치고 싶지만 주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말에 모두 웃고 말았습니다. 공산주의자로 인정받을 그날까지 세로토닌 님을 응원합니다. 네루다는 19살에 첫 시집을 냈는데,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일상의 언어로 표현하는 시를 써서 대중적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의 시 <충만한 힘>에는 낮과 밤을, 존재와 비존재를, 밀물과 썰물을, 빛과 그늘을 교차하면서 충만한 힘에 대한 화자의 의지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쓴다 밝은 햇빛 속에서, 사람들 넘치는 거리에서, 만조 때, 내가 노래할 수 있는 곳에서;" 시는 긍정적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표현으로 시작을 합니다. 시의 중간쯤 가면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내 모든 광물성의 의무를 어디에서 물려받았을까-. 아버지나 어머니일까 아니면 산들일까." 묻고 있죠. 충만한 힘을 느끼는, 느끼고 싶은 존재의 근원에 대해서 질문하고 있습니다. 질문과 부딪힘을 통해 삶의 의미와 에너지를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시인의 대표작으로 뽑힐 만큼 힘이 있고, 대자연의 넓이과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시입니다. 그 에너지가 시를 읽는 우리들에게도 전달되는 것 같았어요.
두 번쩨 시를 읽다가 분위기가 묘해진 것 같은데요. 사랑을 표현한 시인데, 은유적 표현이지만 느낌으로 오는 솔직한 표현들 때문이었겠죠... 멤버 중 남성이 단 한 분이어서 그냥 다음 시로 넘어가려 했지만, 이 시를 읽으신 성혜님의 정성도 있고 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다보니 의외로 할 얘깃거리가 많았습닏. 남성 한 분은 끝까지 노코멘트 하셨지만요...
세 번째 시는 건너뛰고 네 번째 시 <배회>. 때로는 사람으로 사는 게 지긋지긋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이 시에서는 그렇다고 말하고 있죠. "내 발이 내 손톱이 내 머리칼이 내 그림자가 꼴 보기 싫을 때가 있다. 때로는 사람으로 사는 게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화자 자신만이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서도 묻는 것 같습니다. "당신들은 지금 어디를 배회하고 있는가?"라고요. 개인이나 집단이나, 삶의 어느 조건에 처해 있든지간에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기에 이 시는 다층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축 늘어진 어깨로 멍하게 동네를 배회하면서 자신의 삶에 절망하다가 어느 순간, 소리를 지르며 인생에 반격을 준비하는, 그러면서 불생 속에 갇혀 죽고 싶지 않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삶의 의지를 다지면서 화자 자신을 세상의 구석으로, 축축한 집으로, 갈라진 틈처럼 무시무시한 거리로 밀어붙인다고 합니다. 마지막 연에 가면 화자는 오히려 태연하게 걷는다고 하죠. 태연하게 걷는데, 어떻게 걷느냐면 "눈을 부릅뜨고, 구두를 신은 채, 분노하며, 망각을 벗 삼아, 걷는다."고 말합니다. 역설적이죠. 눈을 부릅뜨고 , 구두를 신은 채, 분노하면서 태연하게 걸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읽었던 시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네루다의 시 <詩>를 읽었습니다.
바슐라르는 "시는 순간의 형이상학"이라고 했습니다. 포착된 순간이 말로 튀어 나올 때 시가 된다는 것이죠. 네루다에게도 시는 불쑥 불쑥 찾아왔나 봅니다. <詩>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 무렵이었다... 시가 날 찾아왔다. 난 모른다.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날 부르고 있었다....느닷없이...갑자기 보았다. 하늘이 걷히고 열리는 것을." 시인은 화자가 서 있는 지점, 그곳으로 끝없이 몰고 가, 결국 우주를 보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허공에 취해 스스로 순순한 심연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라고 말하죠. 우주적 인간이 되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화자는 고백을 합니다. "나는 별들과 함께 떠돌았고 내 가슴은 바람 속에 풀려났다."고. 네루다는 무한한 상상과 끝없는 질문 속에서 우주를 볼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네요. 우리 모두 시인이 될 필요는 없지만, 될 수도 없구요. 시적인 인간이길 노력하면 세상이 더 평화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자칭 공산주의자, 세계주의자, 자연주의자가 멤버로 있는 <詩의 공백>에서 네루다에 대해 우주적으로 얘기했는데, 회원님들이 했던 말들이 머리에서 멤돌뿐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멤버도 오셨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재미있게 들뜬 분위기로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그 현장감을 생생하게, 밀도 있게 전달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담주에 뵙겠습니다~~~~~~~~~~
댓글목록
희음님의 댓글
희음
자연 님의 이 후기 덕분에, 며칠 기억에서 떠나 있던 그날의 생생했던 현장이 살아나는 듯합니다.
개인적으론 우리가 첫번째로 읽었던 <충만한 힘>이 가장 좋았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부르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근원 없음 혹은 세계 자체라는, 전부로서의 근원을 말하기 위함인,
그의 독특하고 광활한 화법에 매료되었어요. 시적 주체의 충만한 힘과 동시에 시인 자신의 충만한 힘 또한 어필하는 듯한 시였죠.
새로 오신 그 '남성 분'으로부터의 발견, 즉 이 시의 화자는 '파도'라는 그 지적이 우리의 시 읽기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기도 했고요.
공산주의자와 세계주의자와 자연주의자가 모여 네루다의 시를 우주적으로 읽어낸 시간이었다는 자연 님 말씀에도 열광합니다!!!^^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베란다 창가에서 마루바닥 깊숙히 들어오는 따뜻한 봄햇살 같은.....
자연님 글에는 늘 편안한 휴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날의 유쾌하고 진지했던 시간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미소짓게 됩니다~~^^
세로토닌님의 댓글
세로토닌후기 잘 읽었어요~~ 역시 네루다는 정열이 있는 사람이었네요... 사랑도, 일상도, 정치도.... 하루하루 일상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배회'도, 시를 만난 기쁨을 포착한 '시'도, 에너지에 대해 빠져들에 하는 '충만한 힘'도.... 결국에 네루다라는 한 사람으로 귀결되는 느낌이예요~~ 후기란 이렇게, 시간을 연장시켜주는 도구네요~~ ^^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