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공백3]신동엽의 시 후기 +1
성혜
/ 2017-04-06
/ 조회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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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의 시
신동엽 시인의 후기에 뭘 쓸까를 고민하다, 봄비 내리는 늦은 오후 신촌의 어느 대학 캠퍼스 도서관에 들러 그에 관한 자료를 뒤적이다 발견한 책에 흠벅 빠져버렸는데요.
<껍데기는 가라>란 그의 시 제목 인용한 이 평전은 신동엽의 시와 아포리즘 그리고 그에 대한 평전과 연구 자료를 하나로 묶어놓은 책이었습니다. 닫힌 시대와 현실을 치열한 '의식'으로 열고자 온몸으로 부딪쳤던 우리 시대의 민중시인 신동엽, 진정한 '자유와 통일'을 꿈꾸며 우리 민족시의 새로운 깃점을 펼쳐 보인 신동엽의 작품세계와 함께 그의 삶과 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었지요. 살아있음에 대한 그의 열정적이고도 진지한 태도와 뜨거운 사랑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지요.
지난 시간 함께 읽었던 몇 편의 시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 시 <껍데기는 가라>는 그의 사유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문턱을 상징한다 할 수 있는데요, 장엄하고도 무거운 이 시를 통해 짭게 머물다 떠났지만 우리와 함께 머물러있는 그를 떠올리며 감상 해 보겠습니다.
<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 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껍데기가 가 버린 후의 세상은 사악함이나 무력이 사라지고 순수함만이 살아남는 향기로운 땅이 될 것이라고 노래한 이 시는, '가야 할 껍데기=쇠붙이'의 공식을 통해, 부패와 불의에 항거했던 동학 농민 운동이나 4·19 혁명의 순수한 민중적 열망이 변질되고 있는 서글픈 현실에 대해 개탄하면서 조국 분단이라는 민족적 아픔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껍데기는 알맹이와 대립되는 개념인즉, 속이 텅 비어 있거나 오롯한 속성을 갖추고 있지 못함을 의미하지요. 즉 순수에 대립된 불결, 진실에 대한 허위, 가식, 정의에 대한 불의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껍데기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데 이러한 껍데기의 거부는 곧 제거해야 할 사회악으로 비추어지고 있고 그것은 곧 껍데기로 비유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면 이 시의 핵심 이미지를 이루고 있는 '알맹이'는 시인이 지향하는 세계이며 대상으로 표현됩니다, 여기서 알맹이는 순수의 의미를 가지며 그것은 개인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의 지향 가치입니다. 4.19 혁명과 동학 농민 운동등의 민중 혁명을 상징하고 있고 또한 그의 시의 주요 주인공들인 아사달과 아사녀를 통해 순수를 지향하며 향그러운 흙을 통해 분단의 극복과 평화에의 염원을 강렬한 어조로 노래하고 있는 시입니다.
민주와 자유를 외치는 그의 강렬한 염원이 지금 우리 민중들의 촛불을 통해 어둡고 암울한 그림자를 조금씩 밝게 비추고 있는 듯합니다. 아릿한 여운이 남지만 진정 멋진 시인을 만날 수 있어 훈훈했던 오후였습니다. - 성혜.
댓글목록
희음님의 댓글
희음
개인적으론 신동엽 시인에 씌인 '운동권 시'라는, 선입견과도 같은 기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시간이라 좋았습니다.
자연 지향성, 무정부주의에 가까운 자유 지향성이 그의 시 안에 숨은 매력 포인트라는 생각.
느린 걸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 그 세계 안의 어둠의 빛을 함께 더듬어 찾는 일은 언제까지나 기쁨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