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소송> 03-29(수) 체포~첫 심문, 발제
주호
/ 2017-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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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소송》 체포 ~ 첫 심문, 발제
2017-0329(수) 주 호
아리스토텔레스는 희극을 ‘독자보다 대체로 낮은 수준의 인물이 겪는 여러 가지 소동’이라고 말했다. 대체로 카프카의 주인공들은 자기의 어리석음으로 자기를 옭아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는 한다. 《소송》의 요제프 카 역시 마찬가지다. 자기 스스로는 아주 똑똑한 이야기를 여기는 듯하지만 사실 몹시 바보같은 이야기가 연속될 뿐이다.
카프카는 1914년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소송》을 쓴 동기가 펠리체 바우어와의 약혼과 파혼때문임을 시사한다. 《소송》을 집필하기 시작한 것은 1914년 8월 11일로 추정되는데 그 몇 달 전 카프카는 펠리체 바우어와 약혼을 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향한다. 그러나 약혼을 하기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고자 하는 소망과 결혼에 대한 불안감이라는 이 이중감정은 같은 해 6월의 일기에 고스란히 담긴다.
베를린에서 돌아왔다. 범인처럼 포승줄로 꽁꽁 묶인 듯한 느낌이다. 실제로 나를 포박하여 구석에 처박아 놓고 경관들은 시켜 감시하도록 한다 해도 이렇게 괴롭지는 않을 것 같다. - 카프카의 일기, 1914년 6월 6일
결국 카프카는 그해 7월 베를린을 재방문하였고 펠리체 바우어와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끝에 파혼을 선언하기로 한다. 이때의 감정 역시 그의 일기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호텔의 법정’, ‘무죄임에도 불구하고 유죄임’이라는 극단적 표현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스스로 얼마나 큰 죄책감에 시달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결혼에 따른, 당시로서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시민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처벌받아 마땅한 범인으로 규정하게 한다. 이런 감정들이 모여 《소송》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소송》 또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담고 있는 작품이므로 위의 전기적 해석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으로 지나쳐야 한다.
서른 살 생일, 요제프 카는 평소와는 다른 아침을 맞이한다. 그루바흐 부인의 가정부 안나는 평소와 달리 그에게 아침 식사를 가져다 주지 않고, 웬일인지 건너편에 사는 노파의 모습만 생생하게 눈에 들어온다. 카의 방으로 자신을 감시원이라고 밝히는 낯선 남자가 들어온다. 그는 카에게 ‘체포되었음’을 알린다. 처음에 카는 자신의 생일을 맞아 은행의 동료들이 꾸민 장난쯤으로 여기기도 한다. 카는 자신이 체포된 이유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지만 감시원들도 카가 왜 체포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이유를 알지 못하는 건 감독관도 마찬가지이다. 카는 체포는 되었지만 구금되지는 않아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하고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었다. 같은 집에 세들어 살고 있는 뷔르스트너 양의 방을 어지럽힌 것에 대해 사과하기 위해 찾아간 카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그녀와 입맞춤까지 하고 방을 나온다. 뷔르스트너 양은 곧 변호사 사무실에 출근하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다. 이것이 입맞춤의 이유인 걸까? 그 후 카에게 교외의 어느 집에서 심문이 열릴 예정이니 일요일에 어김없이 참석하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어렵게 찾아들어간 심문장소에는 비집고 들어갈 틈없이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있었고 그곳에서 요제프 카는 자신이 어떤 오류로 체포되었으며 체포의 순간부터 지금까지 부당한 일 뿐이었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심문은 결국 요제프 카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끝나게 되며, 카는 앞으로의 모든 심문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한 뒤 그곳을 떠나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