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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소수자와 소수자의 만남 (3/6 세미나 후기) +2
삼월 / 2017-03-08 / 조회 2,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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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올가와 K의 대화로만 이루어지는 이 세 개의 장을 읽으면서 ‘소수자와 소수자의 만남’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요즘 들뢰즈-가타리의 《천의 고원》을 읽고 있는 터라, 거기서 언급된 소수성의 개념도 다시 떠올려보았다. 성을 향해 나아가려는 K와 바르나바스 가족의 모습에서 어떤 부분이 겹쳐졌다.


발제문에 적은 부분을 다시 가져와보면 이렇다.

들뢰즈-가타리는 소수성을 ‘사회의 척도에서 벗어남’으로 정의한다. 여기서 소수성은 수의 많고 적음과는 관계가 없다. 오히려 척도가 추상적 개념인 한에서, 우리의 실존은 모두 척도에서 조금씩은 벗어나있다. 그러므로 만인은 소수자라고 말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드러난 소수자와, 숨어있는 소수자가 있을 뿐이다. 들뢰즈-가타리가 말하는 ‘되기’의 개념은 이 소수성과 관련이 있다. ‘되기’는 단순히 소수성을 자각하는 문제를 넘어 한 존재가 자신을 (소수적인) 무엇인가로 생성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그렇다면, 마을의 외부자인 K와 마을 안의 고립자인 바르나바스 가족은 어떻게 스스로를 규정하고, 서로를 만나서 관계를 맺으며, 그 관계 안에서 어떤 존재가 되어 가는가.

이들의 만남은 서로의 절박함으로 인해 단단해진다. 애초에 마을에 정착하려는 K는 편지를 전달하러온 바르나바스의 옷차림에 그가 충실한 심부름꾼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올가와 바르나바스는 바로 그 믿음을 얻기 위해 급히 옷을 수선하여 K의 눈을 속였다. 이들을 만나게 한 것은 클람, 혹은 클람의 대리자, 그것도 아니면 성 안의 누군가이다. 성은 이들을 만나게 하고, 서로 관계를 맺게 했다. 애초에 이들을 불러들이거나, 몰락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은 정착과 집안의 회복을 위해 서로가 필요해졌다. 어쩌면 서로에게 가장 도움이 되지 않는 이들끼리 힘을 합쳐야만 한다. 이들이 서로 만났을 때 받는 모욕과 비난은 따로 있을 때보다 더욱 강도가 세어진다.

마을 사람들이 이들을 비난하고 모욕하는 이유는 사실 이들이 자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서 올 수 있다. 올가는, 프리다가 아말리아의 편지 사건을 퍼트린 데 대해 반감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상황에서 자신도 다르지 않게 행동했을 것이기 때문에, 프리다와 자신들에게 등 돌린 마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수성을 자각하거나, 그 소수성이 외부에 드러나는 일을 경계한다. 때문에 타인들의 소수성에 공명하지 않으려 하며, 필요 이상으로 두려움을 느껴 그 소수성을 혐오하기도 한다. 사회의 척도(다수자)를 지향하며 살아가는 한, 소수자(만인)는 스스로 늘 외부에 있거나 고립되어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외부성이나 고립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척도에서 멀어질수록 더욱 척도를 지향하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성을 척도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마을 사람 모두 성을 의식하고 언급하지만, 누구도 성의 실체나 관리들의 실체를 알지 못한다. 베스트베스트 백작, 클람, 조르티니, 갈라터 등의 이름이 언급되지만, 이들은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인물처럼 묘사된다. 외부자 혹은 고립자로써 소수성을 벗어나기 위해 추상적 척도를 지향하는 K와 바르나바스 가족은 결코 성(척도)에 도달할 수 없다. K는 임명되었지만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라서 성에 갈 수 없다. 바르나바스 가족은 벌을 받고 있는 중인데, 공식적으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기에 공식적으로 용서받을 방법도 없다. 이들이 절박하게 성에 가고자 하는 이유가 자신들의 외부성과 고립감이라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들은 더욱 강하게 성으로부터 거부당한다. 정확히 말하면 성으로부터가 아니라, 척도를 기준으로 삼는 다수자(인척 숨어있는 소수자)들로부터이다.

 

세미나 시간에 나눈 이야기들을 조금 더 언급해보자면, 먼저 카프카 소설에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와 여성 캐릭터들의 전형성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이전 시간에 희음 님이 K가 클람의 그림자처럼 보인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 이야기를 확장하면 결국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남성 캐릭터가 마치 한 인물처럼 닮아 보인다고 말할 수도 있다. 여성 캐릭터는 K에게 대체로 친절하고 호의를 보인다는 점, 사건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욕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비슷할 수 있다.

올가의 이야기를 통해 K가 마을에 도착한 사건이 다시 언급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한 가지 사건이 K의 입장과 올가의 입장에서 다르게 서술되면서, 온통 K를 중심으로만 전개되던 이야기의 축이 바르나바스 가족 쪽으로도 이동하였다. 이는 소설 전체의 입체감이 확 살아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번 시간에 읽은 세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두 명의 조수 중 하나였던 예레미아스가 등장하는 장면이 가진 힘도 매우 컸다. 바닥에 대충 그려놓은 종이인형처럼 평면적이었던 예레미아스라는 인물이 현실의 인간으로 돌아오면서 보여준 입체감은 소설 전체를 압도적으로 다시 느끼게 했다.

이와 관련해서 카프카의 글쓰기 방식에 대해 더 이야기들이 오가기도 했다. 다음 기회에 다른 분이 여기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시리라 믿고 이번 주의 후기를 이쯤에서 마치려 한다.

 

댓글목록

namu님의 댓글

namu

잘 읽었습니다.  요점이 아주 선명해서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희음님의 댓글

희음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수성을 자각하거나, 그 소수성이 외부에 드러나는 일을 경계한다. 때문에 타인들의 소수성에 공명하지 않으려 하며, 필요 이상으로 두려움을 느껴 그 소수성을 혐오하기도 한다.'라는 삼월 님의 발견에 무척 공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로부터 소외되었던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는데요, 정말이지 어떤 조직에서 누군가가 배제되는 건 순식간이고, 소설에서처럼 명확한 이유나 잘못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삼월 님 말씀처럼 자신의 소수성을 서둘러 은폐하기 위한 급박하고도 자동적인 움직임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마치 한 마리의 양을 불태우는 제의처럼, 그래서 모두(다수)의 죄를 그 양에게 투사하여 그것을 재로 만들어 없애버리는 과정처럼 은밀하고 비논리적이고 부조리합니다.
발제에서부터 이미 이런 부분들을 언급하고 파고들어 준 삼월 님 덕분에 세미나 시간, 논의가 더욱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고맙고, 수고하셨습니다, 삼월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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