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인간적인1 > 3. 종교적 삶 108~110
오라클
/ 2017-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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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3장 종교적 삶 > 아포리즘 108~110 _발제 ▪2017-0307(화)
108. 재앙에 대한 이중의 투쟁
재앙을 벗어나는 감각에 대한 작용 > 어떤 재앙에 대하여, ① 재앙의 원인을 현실적으로 제거하거나 ② 우리의 감각에 미치는 영향을 바꿈으로써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다. ① 재앙은 나중에 이익으로 돌아오는 좋은 것이라는 새롭고 올바른 해석을 붙임으로써 ② 종교ㆍ예술ㆍ형이상학적 철학은 감각을 변화시키는 작용을 통해. 체험에 관한 판단을 바꿈으로써(ex. 신은 그가 사랑하는 자를 응징한다), 고통과 정서에 쾌감을 깨움으로써(ex. 비극적 예술)
재앙을 벗어나는 감각에 대한 작용_평가 > ① 재앙에 대해 새롭고 올바르게 해석할수록, 재앙의 원인을 직시하게 되어 재앙의 원인을 제거하기 힘들다. ② 종교ㆍ마취술의 지배가 줄어들수록, 재앙을 현실적으로 제거하는 것을 강하게 직시하게 된다. 이것은 비극의 시인에게는 나쁜 일인데, 냉정하고 극복하기 어려운 운명의 영토가 좁아지므로 비극의 소재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신부들에게는 더 나쁜 일인데, 인간의 재앙을 마취해주는 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109. 인식은 슬픔이다.
신의 존재와 진리의 존재 > 사람들은 신이 존재한다고 착각하기를 좋아한다. (착각: 우리에게 선을 요구하는 모든 행위ㆍ순간ㆍ생각에서 증인인 신,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의 최선을 바라는 신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잘못된 주장과 상처를 치유하는 진리를 바꾸기를 바란다. 그런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치료제 종교와 인식된 진리 > 이것은 비극이다. (비극: 사람들이 진리의 엄밀한 방법을 지니고 있으면, 종교와 형이상학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것. 인간은 인류의 발전으로 최고의 치료제ㆍ진정제가 필요할 정도로 약하고 민감한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 이 비극에서부터 인간은 인식된 진리로 인해 피를 흘려야 할 위험이 생겨난다. (바이런의 시: 인식은 슬픔인데, 가장 많이 아는 자들은 진리를 탓해야 한다.)
그리스도교와 지적 양심 > 그리스도교에 낭만적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나쁘다. 왜냐하면 현재의 인식상태에서는 사람들이 지적 양심을 더럽히거나 포기하지 않고는, 그리스도교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지적 양심을 포기하는 아픔은 고통스러울 것이지만, 아픔 없이 인류의 지도자와 교육자가 될 수 없다.
110. 종교에서의 진리
계몽주의와 종교적 해석 > ① 계몽주의 시대에 사람들은 종교의 의미를 해석할 때 공정하지 못했다. 계몽주의에 맞선 시대에도 종교를 사랑이나 연애로 취급하고, 세계를 깊이 해석하는 일을 종교에게 인정해줌으로서 정의를 넘어섰다. ② 그런 해석은 ‘진리’를 인식하기 위해 겉치레를 벗겨내고 학문을 되찾아야 한다. (계몽주의 반대자들의 주장) 종교들은 대중의 이해를 고려하여 고대의 지혜를 논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인류 최초의 현자들과 모든 후세의 현자들 사이에는 통찰의 일치가 지배하고 있으며, 인식의 진보는 본질이 아니라 본질의 전달과 관련 있다.
쇼펜하우어의 종교적 인식 > 우리가 쇼펜하우어의 종교적, 도덕적 인간해석 및 세계해석에서 그리스도교와 다른 종교를 이해할 수 있는 많은 것을 얻는다. 이것은 쇼펜하우어가 인식에 대한 종교의 가치에 대해 잘못 생각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낭만주의에 경의를 표하고 계몽주의와는 인연을 끊었던 학문적 교사들의 제자였다. 쇼펜하우어가 우리 시대에 태어났다면, 종교의 비유적 의미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진리에 경의를 표했을 것이다. “종교는 아직까지 한번도 ······ 진리를 가진 적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는 두려움과 필요에서 태어나 이성의 미로를 통해 현존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신학자들의 재주 :: 종교와 철학 > 종교는 한때 학문에게 위협당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철학이론을 숨겨들여옴으로써 훗날 사람들이 철학이론을 발견하도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가 이미 자신에 대해 회의하던 시대에 나온 신학자들의 재주다. 신학의 이러한 재주는 비유적 의미의 미신으로 유도되었다.
철학자들의 습관 :: 종교와 철학 > 더 심한 것은 자신 속에서 발견되는 모든 감각을 인간 일반의 본질로 취급하고, 종교적 감각을 사상체계를 구축하는 데 중대한 영향을 허용했던 철학자들의 습관이었다. 철학자들은 종교적 습관의 전통 아래에서, 형이상학적 욕구의 힘 아래에서 철학을 했기 때문에, 유대교-그리스도교-인도의 종교이념과 비슷한 학설에 이르게 되었다. 그들은 종교와 학문의 가족적 유사성을 순수함 속에서 이야기를 꾸며냈다.
종교와 학문의 근친성_비판 > 종교와 학문 사이에는 친족관계도-친구관계도-심지어 적대관계조차 성립하지 않는다. 종교와 학문은 서로 다른 별에서 살고 있다. 종교적 혜성의 꼬리를 자신의 마지막 전망 너머에 있는 어둠 속에서 반짝이게 내버려두는 모든 철학은 학문으로 설명되고 있는 모든 것을 의심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학문의 탈을 쓰고 있다 하더라도 종교와 마찬가지다.
종교에 대한 민족의 일치, 지식인들의 일치_비판 > ① (민족의 일치) 모든 민족이 신의 존재 같은 종교문제에 일치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신의 존재에 대한 반론에 지나지 않는다. 민족의 일치와 인류 일반의 일치라는 것은 바보짓으로 간주될 수 있을 뿐이다. ② (지식인들의 일치) 이에 반해 모든 지식인들의 일치는 종교문제에 민족의 일치가 바보짓으로 간주되는 바로 거기에서 성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