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생명관리정치의 탄생> 0310 후기 +7
유택
/ 2017-03-11
/ 조회 1,391
관련링크
본문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11,12강 후기 (3월10일)
어찌하다 보니 이번 책 마지막까지 스스로 후기를 쓰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전 진실로 감개무량합니다. 그만큼 이번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정희진 샘의 말마따나 온몸으로 책 한 권을 통과 하는게 이런 건가 하는 느낌도... 김대중 정부(이 본인은 김대중 찍음)와 노무현 정부(이 본인은 노무현 찍음)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렸다고 그러지요. 진보라고 생각했던 그 두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많은 깨시민 사회 활동가들과 많은 생각있는(?)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꼈다고 그러기도 했던게 저의 20대의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그 두 정부가 과연 국민의 신의를 저버리고 배신을 한 것일까요. 우리의 푸코는 그렇지 않다고 논박합니다.
신자유주의(쇄신된 자본주의-참 많이도 써먹네 ㅋ)는 특정 정부의 악한 이론/정책이 아닙니다. 그것은 ‘통치’(푸코적 의미)를 하기 위한 이 시대의 아주 필연적인 프로그램입니다. 시장이 있고, 최소의 국가가 있고, 이해관계(경제적 분석/경제적 관계)가 있으며 그 큰 경제게임을 돌리는 것이 신자유주의 통치술 입니다. 그것은 이의 제기 하기 힘들 정도의 너무나 당연한 이 시대의 귀결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어떤 진보성향의 정부가 정권을 잡더라도 신자유주의의 큰 흐름을 거스를 순 없습니다. 오히려 더 좋은 복지정책 심지어 기본소득 까지 만들어 줘 가면서 까지 우리들을 소비의 주체, 경제 주체에서 탈락되지 않도록 만들어 이 경제게임이 굴러가게끔 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통치 입니다. 불공평이 만인에게 평등하게 돌아가도록 함으로써 편재하는 통치, 탈중심화된 통치, 그럼으로써 시작과 끝도 없는, 어디에 따따부따 따져 물을 수도 없는 거대한 통치 회오리가 신자유주의라고 저는 이해됩니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었습니다. 모두들 환호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푸코는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이 시대의 모순이 박근혜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선한 지도자/정부로 대체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닌 것처럼요. 경제적 관계(경제적 이해 관계)과 그 무엇보다도 제1의 격자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라고 우리가 굳게 믿는 여러가지(깨시민사회, 복지제도, 풀뿌리 민주주의, 중소기업육성 기타 등등)가 놀라울 정도로 신자유주의를 돌리는 믿받침이자 그 효과/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푸코 세미나원들은 넥타이 부대가 퇴근길에, 유모차 엄마부대가 촛불시위에 자발적으로 나가는 모습도, 시국을 걱정하며 민주주의의 만세를 제창하는 열혈 행위자들도, 심지어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라며 앵무새처럼 짹짹대는 목소리에도 애매모호한 웃음과 의심의 눈초리를 (우리끼리) 조심스럽게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뒤에서 말이지요. 살살 쪼개며.
호모 에코노미쿠스. 경제적 주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체의 해석학>에서 그리 노래하는 정말로 자기 자신, 자기 배려와 자기 테크놀로지의 그 주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통치의 규칙화를 내면화한 신자유주의적 주체, 지금 대한민국 이 시대의 주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슬프지요. 모든 것이 이해관계망 속에서 자리 잡는다. 주권자 너는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왜냐? 너는 못하기 때문이다. 못하는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다. ㅎㅎㅎ 정말 푸코식 어법 멋있고 대단합니다. 이 이해 관계는(즉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경제 주체) 법권리의 주체로 환원 불가능 합니다. 양립 가능하지 않습니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정말로 큰 판의 경제게임에서 경제적 관계만이 고려 대상입니다. 세미나 시간에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그렇다. 동남아와 아프리카를 보아라. 서구와 동북아시아에 비해서 경제적 규모와 질이 작고 낮지 않느냐. 그런 사회일수록 주권/국가의 입김이 쎄다. 독재 국가가 상대적으로 많다. 그러나 시장과 경제가 발달한 유럽의 경우 소위 민주주의라 명명되는 나라가 대부분이다. 이유는 모든 것이 이해관계(경제적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통치 자체도 시장을 존중하고, 교환이 아닌 경쟁을, 그래서 방임된 경제적 주체,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스스로 통치 규칙을 내면화 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경제적 세계는 본성상 불투명하고 그것은 본성상 ‘전체화’가 불가능 하다. 그래서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라고 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사회의 주체가 됩니다. 실은 통치 규칙화를 내면화했을 뿐인 허울뿐인 그 이름, 주체로써! 박근혜가 탄핵이 된 이유는 헌법을 어겨서가 실은 아니다. 그녀가 국민의 재산권을 강탈했기 때문이다. 이것도 경제적 관계(이해관계)의 격자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시대는 신자유주의 시대이니까. 세미나 같이 안 한 사람들은 이것들이 미쳤나 하겠지요? ㅎ^^; 저도 지금 타자기 두드리면서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나 하고 있는중입니다.
11강에서 딱 하나 인상 깊은 것은, 프랑스와 영국의 북아메리카 식민지 건설 당시의 비교입니다. 프랑스는 국가가 계획하고 능력 있는 정치가들이 식민지 건설을 주도한 반면, 영국은 근시안적인 사람들 그리고 상인들이 마구잡이 식으로 (즉 자유롭게) 북아메리카에 정착을 할 수 있어서 영국의 북아메리카 식민지가 결국 대부분의 땅을 정복하고 식민지 따먹기 게임에서 프랑스를 이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에서 뽑아낼 수 있는 푸코의 논점은, 또다시 경제입니다. 시장입니다. 그것이 통치의 개입 유형으로 이해되는 경제입니다. 경제적 자유주의. 그것은 소위 경제학이지만 통치술 옆에서 항상 알짱거리는 정치경제학적인. 뭐랄까. 정치적인 것이 따로 있고 경제적인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어떤 애매모호한 복합체로 뭉뚱그려 통치 도우미로써 작동하고 있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이제 12강으로 넘어가죠. 시민사회가 무엇입니까? 시민사회는 철학적 이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통치테크놀로지적 개념입니다.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시민사회는 동일한 총체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것, 요컨대 그것들은 자유주의적 통치테크놀로지 총체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에 대항하는 깨어 있는 시민 사회(소위 ‘깨시민’ㅎㅎㅎ)라는 말이 유행이었지요. 우리 시민이 똑똑해져야 한다. 그래서 국가 권력을 감시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 그러나 푸코는 다릅니다. 시민사회는 국가 내지는 정치제도와 대립하기 위한 원리 같은 역할을 하거나 하는 역사적/자연적 소여가 아니라고 합니다. 시민사회는 본래적이고 직접적인 현실이 아닙니다. 시민사회는 근대적 통치테크놀로지의 일부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깨시민’이라며 일정 정도 자조적인 느낌의 자기 주체화된 스스로의 명명법이, 역설적이게도 그대로 자조일 수 밖에 없는/귀결되는 양상이네요. 신자유주의적 통치 안에서 말이지요. 자조적이라.. 그럼 우짜라고.. 깨시민도 실은 신자유주의 복무자이자 톱니바퀴의 하나야! 개인적으로 대략 난감하네요.
16~7세기 이래로 권력의 현명함이 아니라 계산에 따라 규칙화된다고 여겨졌습니다. 힘의 계산, 관계의 계산, 부의 계산, 지배력이라는 요소들의 계산에 따라 권력의 행사가 규칙화된다는 것, 즉 이제 진리가 아니라 합리성에 기초해 통치를 규칙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통치를 합리성에 기초해 규칙화하는 것, 이것이 통치테크놀로지의 근대적 형식이라고 푸코는 생각합니다. 피통치자들의 합리성이 곧 통치합리성에서 규칙화의 원리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푸코는 그럽디다. 정치란 무엇일까요? 상이한 통치술의 상이한 연동을 수반하는 작용인 동시에 그런 상이한 통치술들이 불러일으키는 논쟁이 아니라면 정치가 달리 무엇이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대단원의 막이 내립니다. 비장하네요.
휴.. 정말 어쩔꺼야.. 푸코.. 이런 푸코 세미나를 떠나려고 했던 제가 무척 변덕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통치에 대해서 엄청 이야기 했는데,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자기 통치(윤리)로 나아가기 위함이었던가요? 그래서 <주체의 해석학>은 또다시 나의 필독 1순위에 오르는 기함을 토하고 있는 것일까요? 자본주의에 내 혼과 육체가 이제 그만 강탈당했으면 좋겠다는 염원이 베이스에 깔리고, 공정한 사회 그리고 민주복지사회 수호하는/감시하는 <깨시민>이 되고자 노력한다면, 그 노력은 눈물겨우나 우리 푸코적 의미에서는 그거 ‘삑사리’입니다. 그것조차 신자유주의의 통치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것이거든요. 그러면 우째라고?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푸코책을 읽어 왔겠지요. 그 다음 푸코 세미나 책 <주체의 해석학>을 이 신자유주의 시대 온몸으로 살아가는 임금노동자인 저 개인의 체력적 한계로 그 끈을 놓으려고 했는데… 판단 미스였음을 인정하는 아침입니다. 푸코책을 계속 읽고자 하는 이유는 내가 내 정신으로 살아가고프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다는 내 방식의 푸코의 논리를 이제는 제에~발 좀 넘어서서… 좀 다른 것이 보일 듯 말 듯 하기도 한 것 같고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마지막 후기 이상입니다.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푸코가 개미지옥임을 아침부터 간증하는 유택!
유택의 정연한 글발과 논리에 감탄하면서,
혼자 알았다고 하산하지 말고 공부한 거 딴 사람들한테도 좀 베풀어줘요~
그럼 난 이만 유머감각 수련에 매진하러 가야 해서.
그리고 뉴미님, 혹시 이 글 보고 있다면, 딴 생각 말고 돌아와요.
이미 푸코 개미지옥에 가입이 되셨습니다만...?
작별인사도 없이 이렇게 사라지기 있기, 없기?
여기는 작별인사 장렬하게 마쳐도, 곧 다시 돌아오는 곳이라는 걸 곧 깨닫게 되실 검니당.
유택님의 댓글
유택
사실 삼월님,
유머감각 수련 많이 필요할거에요. 본인이 더 잘 아실거에요. 그렇지 않나요?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조심해서 남들한테 댓글 정성스레 달아줬더니
정작 돌아온건 '영혼 없는 댓글이다' '하나마나한 소리 하지 마시라' 등등
상처 마니 받으셨잖아요. ㅋㅋㅋ 이제부턴 그냥 되는대로 하셔요 ^^
아라차님의 댓글
아라차
이야~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이 한권을 아주 제대로 씹어먹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후기네요.
똑똑한 유택으로 다시 보기 싫은데 다시 봐야겠어요 ㅋㅋ
어쨌거나 이렇게 해서
푸코는 국가를, 통치를 보여주면서
그 안에 나를, 그 외부의 나를 다시 사유하게 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당분간 푸코의 논리에 넋놓고 휘둘릴랍니다.
감사합니다.
유택님의 댓글
유택
나도 푸코안에서 완전 휘둘리고픈 일 인!
그런데 우리 언제 푸코책 다 읽냐...
소리 반장의 페미니즘 세미나 소개에서 나왔지만
그 쪽보다 갈길이 우리가 더 먼 듯 ㅠ
뉴미님의 댓글
뉴미
'푸코'와 '개미지옥' 을 동시에 키워드로 넣고 검색(네이봐)을 해보았네요.
그 와중에 검색된 오마이뉴스 기사 잘 읽었고요(책을 잘 읽어야 할텐데)...
삼월이 쇠고랑 채워주신 덕분에 아무일 없었다는듯 천연덕스럽게 - 개미지옥으로... 가던길 쭈욱 가보겠습니다!
어짜피 여긴 헬조선 이잖아요? 그러니 개미지옥을 피할 이유도 없고요.
유택의 후기에 삼월의 댓글까지 그날 아침, 확인했지만 이제서야 답글을 남깁니다~ 마음은 따질것도 없이 예쓰~! 였지만,
주어진 시간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 확신따위 여전히 오리무중 이지만 일단 가봅니다. 곧 뵈어요~~~
유택님의 댓글
유택
뉴미님 다시 돌아오는군요. 반갑~ ^^
저도 실은 다음책 <주체의 해석학> 세미나부터
빠질려고 했다가 마음 돌려먹은 일인입니다. ㅎㅎㅎ
그냥 자기가 짤~리는 범위내에서 읽고 독해하며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전 그럴려구요. ㅋ
뉴미님의 댓글
뉴미저는 '주체의 해석학'이 읽고 싶어서 무작정 푸코세미나에 뛰어들었어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은 정치-경제-역사적 배경이 부족해서 저에게 어려웠던거 같고요. '주체의 해석학'은 지금 읽고 있고요, 꼼꼼히 읽어보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