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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0825 <백래시> 세미나 자료
소리 / 2018-08-25 / 조회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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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영화 치명적이고 치기 어린 상상

할리우드는 미디어보다 몇 년 늦게 반격의 대열에 합류했다. 1932년 거침없이 말하는 독립적인 여성 메이 웨스트의 등장으로 ‘제작윤리 강령’이 만들어졌다. 웨스트는 <나는 천사가 아니다>라는 작품을 내보이고, 여기서 그녀가 직접 쓴 “너 자신을 위해 목소리를 키워라. 그렇지 않으면 모두에게 밟히는 깔개 신세를 면치 못할테니.”와 같은 대사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1930년대의 영화사들은 40세의 웨스트와 같은 성인 여성 배우들의 입을 틀어막고 말 없는 착한 소녀들을 데려왔다.

1940년 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강인한 직장 여성에 대한 열광이 터져 나오면서 근육질의 속사포처럼 말을 하는 여성 캐릭터, 독립적이고 당당한 캐릭터, 전문직, 정치인, 임원인 여성 캐릭터들이 나왔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여성상도 급부상하며 경쟁을 벌였다. 주로 말을 못하거나, 귀가 들리지 않거나, 뇌종양, 척추 마비, 정신질환, 독 중독 등의 기력을 상실한 여성 캐릭터들이 침대에 누운 채로 나왔다. 병원 환자 같은 이들에게는 동일한 의학처방이 내려졌는데 그것은 ‘결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캐릭터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1950년대가 되자, 수동적인 포즈와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를 가진 메릴린 먼로로 상징되는 굴복당한 여성의 이미지가 승기를 잡았다. 강인한 여성 캐릭터들은 순종적인 소녀 캐릭터로 대체되었다. 1950년대는 1930, 40년대 보다 해방된 여성에 대한 영화의 편수가 적었다. 대신 지금의 한국 영화의 모습처럼, 여성 없는 풍경 속에서 남성들이 마음껏 스크린을 누볐다. 다만 50년대는 전쟁과, 서부를 배경으로, 인디언과 나치를 상대로 싸워 승리하는 모습이었다.

1980년대 말 할리우드에서도 영화 제작자들이 독립적인 여성들을 진정시키고, 여성들을 물에 빠뜨려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데 다시 한 번 집착하면서 같은 역사를 반복했다. <위험한 정사(1987)>의 유부남 내연남에게 살해당하는 집착어린 싱글 직장 여성, <나인 하프 위크> 에서의 싱글 직장 여성은 주식중매인의 사랑의 노예가 되고, 그녀에게 “말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일부 영화의 플롯들은 강압을 통해, 혹은 여성 인물 자신의 ‘선택’을 통해 자기 의지를 가진 성인 여성이 말 없는 혹은 죽은 소녀로 퇴화하는 역변태를 완성시킨다. 1980년 대의 영화에서 여성은 오직 가정사가 원인일 때(가족과 모성을 위해)에만 소리칠 수 있고,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할리우드에서 1987년은 여성의 독립을 상대로 반격을 감행하기 위한 주홍글씨의 해였다. 그 해 가장 흥행한 영화 네 편인 <위험한 정사>, <언터쳐블>, <세 남자와 아기>, <비버리힐스 캅2>은 여성을 두 집단을 분류하여 보상과 벌을 내린다. 좋은 여성은 모두 비굴하고 밋밋한 가정주부거나, 아기이거나 말 없는 아가씨다. 여성 악당은 남자 같고, 아기를 혐오하는 성질 더러운 여자나, 총잡이 여성, 살인을 저지르는 직장 여성과 같이 자신의 독립심을 버리지 않는 여성들이다. 이 네 영화 모두 파라마운트가 제작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반세기 전에 이 영화사를 파산에서 구해 준 것은 메이 웨스트였다.

이 영화들 중 팔루디가 주목한 영화는 <위험한 정사>이다. 전국 미디어가 이 영화에 주목했고, 이 영화의 예시가 될 만한 실제 사례의 여성들을 찾아내어 이러한 내용을 기정사실화했다. 영화 안의 직장 싱글 여성은 “미국에서 가장 미움 받는 여성”으로 호명되었고, 많은 잡지 기사들은 이 영화가 일부일처제 트렌드를 만들어 냈다고 칭송했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살해와 폭력의 범인은 현실에서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음에도 불구하고, <피플>의 중요한 기사를 배당받은 여섯 기자 중 5명은 여성이 공격자인 기사만을 실었다.

<위험한 정사> 전과 후

이 영화의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제임스 디어든은 선을 넘은 남성이 벌을 받는 도덕적인 내용으로 썼고, 폭스에서 일하던 최초의 영화제작 사장인 셰리 랜싱은 싱글 여성의 관점에서 이 시나리오를 지지했다. 이 싱글여성이 혼자 욕을 먹어서는 안 되며, 간통을 저지른 남성은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야기 전개에 참여한 영화사의 임원들은 더 부드러운 남성 캐릭터를 원했고, 싱글 여성을 가여워할 필요가 없다며 시나리오를 고쳐갔고, 남자 주인공 역을 맡은 남자 배우 마이클 더글라스 또한 영웅적이지 않고 유약한 남성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 피력을 통해 지금의 <위험한 정사>가 완성되었다. 순박한 유부남이 한 때의 실수로 간통을 하지만 독하고, 집착으로 미친 싱글여성을 죽이고 본부인에게 돌아온다는 영웅적인 이야기가 담긴 영화로 말이다.

 

1983년 춤추는 여성들의 얼굴보다 엉덩이가 더 많이 나오는 MTV스타일의 인기 뮤지컬 <플래시댄스>의 감독을 맡은 라인 감독은 그 유명한 <나인 하프 위크>의 감독을 맡았다. 이 영화는 사도마조히즘을 화려하게 묘사하감독은 주인공 여성을 연기한 배운 킴 베이신저를 영화 속 연인 앞에서 뿐만 아니라, 여성 며, 삭제된 에피소드들로 인해 주목을 받았다. 삭제된 에피소드에서는 피학적인 성향의 여성은 돈을 위해 주식중매인 남자 친구의 발밑에서 억지로 기어다닌다. 촬영 이후에도 라인 감독이 ‘공포의 강렬함’은 그녀가 배역에 몰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론을 근거로 그녀를 위협하는 식으로 행동하며 가학적 행동이 이어졌다. 무너져 내리게 만들어야 한다”라는 라인 감독의 지시에 따라 남자 주인공 미키 루크는 킴이 감정을 잡을 수 있도록 그녀를 움켜쥐었다가 내동댕이 치기도 했다. (배우 故이은주 씨의 자살과 영화 <주홍글씨>의 변혁 감독 사례와 흡사하다.) 이 스토리는 원래 자신의 참담한 추락을 성적인 마조히즘으로 녹인 어떤 실존 여성의 1978년 회고담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여성이 굴욕을 거부하고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을 떠난다. 그러나 라인 감독은 여성이 학대를 사랑하게 되는 것으로 결론을 바꾸려 하다가, 세트에 있던 여성들의 집단 항의로 무마되었다.

그 이후의 라인의 영화에서는 직장 싱글 여성에 대한 외곡된 상을 통해 그려지고 있었다. 라인의 분석에 따르면 가장 비여성적인 여성은 동등한 권리를 시끄럽게 요구하는 이들이었다. 남자 배우 마이클 더글라스도 페미니즘과 그 영향에 대해 라인과 비슷한 악감정을 품었다.(p.210)

결국 이 영화의 메시지는 간결하다. 유혹에 빠진 남성은 “인생이 송두리째 참혹한 악몽으로 바”뀌지만 털 끝 하나 다치지 않은 채로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고, 이 유혹은 싱글여성에게만 치명적이다. <위험한 정사>의 결말이 말하는 것처럼 결론은 “최고의 싱글 여성은 죽은 여성”이라는 것이다.

1970년대: 결혼하지 않은 여성과 빛나는 경력

서양의 영화들은 자국의 엄격한 법률과 분위기 하에서 감히 만들지 못하는 여성혐오적인 영화들, 여성을 폭행하거나, 어린 소녀들을 강간하는 내용의 영화는 만들지 못하는 대신에 동양의 여성혐오적인 영화를 가져와서 소비한다. 이 소비에 대한 비판은 다문화 존중, 인종차별 반대의 무적의 단어들로 무시한다. 그렇게 타국의 여성혐오적인 미디어를 소비할 수 있는 구실로 오리엔탈리즘을 다문화 존중의 고귀함으로 변모시킨다. 우리는 ‘다른 나라의 문화’이기 때문에 존중해야한다는 말을 조심해야하는 상황까지 오게되었다. 이 말을 방패로, 인종차별을, 문화 존중을 방패로 외국의 각종 여성혐오적인 문화가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며, 비판조차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에는 가시적인 현상이 아니지만, 외국에서 자주 목격되는 경우이다. 서양에서는 절대 만들지 못하는 여혐 미디어를, 외국의 미디어를 통해 우회해서 여성혐오를 하는 것, 그것이 서양에서 보이는 여성혐오적인 현대의 영화계의 현상으로 보인다.

1970년대에는 여성 참정권 운동 영화가 흥행하면서, 영화 제작자들은 여성들의 페민즘적 독립투쟁 안에 있는 이윤 잠재력에 눈을 떴다. 모든 것을 결혼으로 마무리 짓는 영화에 야유를 쏟아내고, 페미니즘적인 목소리를 가장 많이 냈다. 이 영화들에 열광한 사람들은 남자 품귀 현상으로 전전긍긍하다 30세를 넘긴 여성들이었고, 복종과 억압, 멸시와 단조로운 일상으로 힘들어하던 교외 주부들이었다. 이러한 주제를 잘 담아낸 <스텝퍼드 와이프>는 남편이 만들어낸 로봇 같은 주부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같은 시기 <미친 주부일기>와 <영향 아래 있는 여자>도 이러한 신경쇠약의 주부들과 습관적 약물복용에 대해 말했다.

1970년대 영화에서의 주된 분석대상은 결혼이었고, 결혼관계의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헤집는 영화들이 나왔다. 해방된 전문직의 여성들이 나왔으며, 이들은 페미니즘 문제와 한께 인권에 대해서, 동등한 임금과 핵 안전 등에 대한 사회 변혁적인 주제를 얘기했다.

1980년대: 영화 속 여성의 굴복

1980년대부터 여성은 모멸족인 보조 노동의 직업군에 있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지치고 수동적인 여성상을 그려냈다. ‘포스트 페미니즘’의 상황을 정확히 그려내는 <결혼소동>이라는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페미니즘의 열망에 대한 공감을 앵무새처럼 읊어대다가 그 말이 실언이라고 재빨리 인정한다.

이 시기의 여성 캐릭터들에게는 직업은 고된 노동이며, 결혼하지 않고 애가 없는 것은 비참하고 비극적인 일로 여겨진다.

이러한 반격적인 영화에서는 귀여운 외모로 자신의 지성을 감추는 멍청한 혹은 그런 척을 하는 여성만이 직업상의 성공을 거머쥐며, 사랑도 성공한다. 성공 지향적인 여성은 냉혈한이나 인간미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리고 영화 <베이비 붐>에서처럼 이 시기의 영화들은 지속적으로 직장과 개인적 행복의 양립 불가능성을 설파한다.

여성들 간의 연대는 쓸모없는 것으로 묘사되고, 여성은 포기와 희생 없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여성 캐릭터의 장래를 축소시킬 때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호들갑스럽게 이를 격려했다.

이들은 끊임없이 여성을 두 집단으로 분류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 성향의 영화들은 모성을 최대한 매력적인 것으로 그리면서, 번식에 참여하는 겸손한 여성과 번식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성공과 출세를 지향하는 여성으로 나눈다. 여기에서 낙태(임신중절)은 좋은 여성과 나쁜 여성을 나누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

영화 <패티록스(1988)>을 제작한 그웬 필드의 경험은 할리우드의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에 대한 적개심을 볼 수 있는 척도가 됐다. 이 영화에서 자기주장이 강한 싱글 여성이 결혼을 피하고 성관계를 즐기며, 혼자 아이를 키우겠다는 선택을 하지만 그에 대한 어떤 대가도 치루지 않는 여성이 나온다. 이 영화는 호평을 받았지만, 그 이후 영화사들로부처 외면을 받았다. 이유는 자유로운 성관계를 하는 싱글여성이 나오는 무책임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1980년대의 반격 성향의 영화는 피그말리온 전통을 포용하여 남성이 여성을 자신의 소유물이자 재산으로 재정의 하고 되찾아 온다. <귀여운 여인>은 이 주제를 잘 담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마다 남성들은 가족의 강한 지배자이자, 부양자, 여성적인 미덕의 수호자라는 역할로 복귀한다. 가족영화로 복귀하여 안락한 가정에 대한 환상으로 영화들은 끝나지 않고, 결혼이 폭죽처럼 터지는 결말로 주로 막을 내렸다.

1980년대 말 이런 류의 영화들에서 남성과 여성은 더이상 페미니즘적 다툼 속에서 갈등을 해결하려 노력하지도 않고, 나중에는 함께 어울리지도 않는다. 1980년대 말에 만개한 터프가이 영화에서 남성 주인공들은 남자밖에 없는 황량한 전쟁지역이나 서부로 향한다. 끊임없이 생산되는 전쟁영화와 폭력 수위가 올라가면서 <프레데터>, <다이하드>, <로보캅>, <리썰 웨폰>, <폭풍의 질주>, <토탈리콜>과 같은 영화들이 쏟아지면서 여성들은 부차적인 캐릭터로 축소되거나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다른 카테고리로 남성 캐릭터들은 아버지의 부활이라는 전적으로 남성적인 환상에 빠져든다. 많은 영화들 속에서 어머니는 없고 아버지와 아들만 남아서 영적인 유대를 복원한다.

1990년 미국 배우 협회가 할리우드의 여성배역을 계산해보고 지난 2년간 여성의 수가 급락한 사실은 놀랍지 않다. 배우협회의 보고에 따르면 남성 배역이 여성 배역보다 두 배 이상 많아졌다.

남성들이 남성성이 과장되게 흘러넘치는 환상의 나라로 떠나는 동안 아직 죽지 않은 여성 캐릭터들은 훨씬 폭력적인 시련에 혹사당했다. 1988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여성은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피해자 역을 맡았다. 그리고 그 한 명은 소녀 역할이었다.

6장 TV 10대 천사와 결혼하지 않은 마녀

1980년대 말 황금 시간대의 텔레비전에서 여성들이 종적을 감추게 된다. 이것은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 텔레비존 프로그램의 패턴과 같다. 지금까지 여성들 자신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텔레비전 장르인 시트콤에서도 기반을 잃었다. 오래된 ‘기이한 커플’ 포맷이 부활하면서 새로운 시트콤 다섯 편 중 한 편 꼴로 성인 여성이 전혀 등장하지 않을 채 총각 친구들이 같은 집에 사는 시트콤들이 줄줄이 방영됐다. 황금 시간대를 차지한 한부모 가정 시트콤에서는 자녀의 2/3가 아빠나 남성 보호자와 함께 사는 것이 나왔는데, 실제 세상에서 이런 경우는 11%뿐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점차 확대되어 여성이 죽거나 사라지고 가족드라마에서도 싱글 아버지가 가정을 책임지는 내용이 주를 이루게 된다.

이제 텔레비젼에서는 성인 여성이 사라지고 남성들로 채워졌다. 여성들은 보조적인 역할이나 성적 어필을 하는 역할로 나왔고, 성인 보다는 어린 소녀들이 나오는, 주로 합법적으로 성관계가 가능한 연령의 여성(16~18)보다는 그 아래의 소녀들을 노출시켜 출연시켰다. 그리고 그 소녀들은 더 나아가 피해자가 된다. 1980년대의 주된 피해자 역은 이제 소녀들로만 채워졌고, 이러한 내용의 액션 어드벤쳐 시리즈가 좀 더 균형잡힌 드라마들을 몰아냈다. 1985~1986년 시즌이 되자 여성들은 위축되었다. 여성을 상대로 하는 잔인한 폭력과 살인은 사이코패스가 잔혹한 살인을 일삼은 슬래셔 무비를 뺨칠정도였다. (한국의 <나의 아저씨>가 여러모로 생각납니다.) 1987년 황금 시간대 텔레비전에 대한 한 분석에 따르면 말하는 캘릭터 882명 중 남성이 66%였다. 이는 1950년대와 거의 동일한 비중이다.

새로운 남성 악당들이 여성들을 때려눕히느라 정신이 없었다면, 꾸준히 방영 중인 시리즈물에 등장하는 남성 주인공들은 점점 더 행동을 거칠게 했다.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서부극과 경찰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가장 적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류의 마초 드라마 시리즈들은 계속 나왔다. 이는 어떤 문화적 수단의 제작자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의 강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 사례이다.

텔레비전상의 반격은 어느 정도 영화산업을 뒤따르는 모양새였다. 반격적인 영화들이 리메이크되어 드라마로 등장했고, 남자품귀현상과 직장여성들의 아기 열망(열병), 불임으로 까무러쳤고, 어린이집의 성적 학대라는 ‘유행병’마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도구로 변질되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에서의 반격은 할리우드보다는 제한 받게 되었다. 여성들의 영향력이 텔레비전에서 더 컸다. 다시 말하자면 여성들은 시청자 다수를 점할 뿐만 아니라 광고주들이 가장 손에 넣고 싶어하는 시청자들이다. 1987~1988년 시즌에 텔레비전 프로그래머들이 꼴사나운 남자들과 시든 여자들의 모습을 억지로 보여주자 큰 충격을 줄 정도로 많은 여성 시청자들이 텔레비전을 그냥 꺼버렸다. 황금시간대의 25편의 드라마 중 어떤 것도 상위 20위에 들지 못했고, 1년 새에 시청률은 9%나 하락했다. 이는 하룻밤에 평균 350만 가구를 잃은 것이었다.

다음 시즌이 되자 프로그래머들은 한 발 물러나 두 어편의 강한 여성 두인공을 황금 시간대에 출연시켰다. <로잔느 아줌마>, <머피 브라운>은 제작자들이 둘 다 여성이었으며, 곧바로 대대적인 흥행을 거뒀다. 그러나 <뉴스위크>에서는 강한 여성 두 명은 너무 많으며, 독립적인 여성이 황금 시간대를 장악했다고 불평했다. 그 다음 시즌이 되자 새로운 시리즈물들 10대 모델과 주부, 수녀 그리고 교외에 사는 착한 주부 마녀로 화면은 채우면서 황금 시간대는 전통적인 여성적 상징으로 돌아갔다. 새로 방영된 33편의 드라마 중에 일하는 여성 나오는 건 두 편뿐이었고, 나머지 드라마의 여성들은 아내이거나 귀여운 소녀이거나, 눈에 띄지 않았다.

독립적인 여성들을 상대로 한 텔레비전의 반격이 오락가락 하는 것은 텔레비전 산업 자체가 여성 시청자들에게 대단히 양가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텔레비전 작가의 90% 이상이 백인 남성인 상황에서 이들은 여성 시청자의 인정에 영화제작자들보다 더 매달리지만, 바로 이런 의존성 때문에 더 분통을 터뜨린다.

여성 시청자들이 좋아할만한 자율적인 여성이 나오는 드라마가 나오면 이를 폐지하려는 방송국의 반복된 시도에 맞서야 했다. <디자이닝 우먼>, <케이투 앤 앨리>와 같은 엄청난 인기의 드라마 시리즈물들이었음에도 같은 반격에 끊임없이 싸워야했다.

여성 시청자들은 일관되게 지도자, 여걸, 코미디언 같은 비전통적인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시청한다. 그러나 텔레비전 광고주들은 현대여성들에게 가장 매력 없는 내용을 주문한다.

독립적인 여성을 상대로 한 1980년대 텔레비전의 반격은 시즌에 따라 가다 서다를 반복했고, 일부 드라마들은 그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디자이닝 우먼>, <골든 걸스>가 이런 예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1980년대 반격은 텔레비전에서 건강하고 독립적인 여성들을 축소시키고 그 자리에 향수로 범벅된 ‘가족’ 여성의 초상을 구겨 넣는데에 성공했다. 그렇게 1980년대 초에는 페미니즘 사안들을 지워버렸고, 중반에는 교외의 주부가 최상층에 있고, 그 아래 직장 여성, 그 아래 싱글여성들이 맨 밑바닥에 있는 전통적인 여성 위계를 재구축했다.

1970년대 중반 짧은 시간동안 황금 시간다 텔레비전 시리즈물들응 정치적인 사안을 다뤘고, 폭 넓은 페미니즘 주제를 다뤘다. 그러나 1978년쯤 되자 이런 프로그램은 모두 폐지되었다.

인기 소설인 <여자의 방>을 드라마로 제작하려 하자 (페미니즘적인 내용이 조금만 들어가도) 남자들과 텔레비전 네트워크의 남성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반대했고, 전미품위협회와 같은 우익집단들은 보이콧 하겠다고 협박하며 광고를 취소하는 등의 압박을 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여자의 방>은 45%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호의적인 편지들과 함께 에미상을 수상했다.

텔레비전에서의 반격은 드라마들의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들의 말투와 옷, 외모에 온갖 트집을 잡으며 ‘여성스러운’ 요소를 부각시키기 위해 온갖 압박을 넣었다. 텔레비전 네트워크는 실제로 페미니즘 주제에 초점을 맞춘 에피소드를 단속했다.

<케그니 앤 레이시>라는 강인한 여성 경찰 두 명이 파트너로 활동하며 각종 페미니즘적 이슈에 페미니즘적 면모를 선보인 프로그램이 이 반격의 희생이 되었다. 영화로 텔레비전에 방영을 어렵게 성공하고 42%라는 초대박을 터뜨리고 주인공들은 여우주연으로 에미상까지 받으며 재방송 기간에는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이 드라마 시리즈물은 시리즈물 상과 에미상을 5번 더 수상했으나, 1987년 CBS는 이 드라마를 정규시간대에서 빼내 비인기 시간대에 재배치하고 다음시즌 폐지해버렸다.

이제 드라마들의 모든 캐릭터들은 우리가 예상하는 바로 그 반격을 그대로 실천했다. 여성들은 싱글임을 한타나며 아기열병에 걸리고, 출산이 폭죽처럼 터졌다. 그러나 교활하게도 1950년대를 복고풍으로 불러왔다. 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이 일어나기 전을 회상하며 향수에 젖은 듯 한 내용으로 채우며, 여성들은 다시 집 안의 애들이 줄줄이 딸린 어머니로, 집안의 천사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복고풍은 자본주의에 대한 소극적 저항으로도 보였지만, 그 효과보다는 여성에 대한 소극적이고 모성과 결혼에 대한 퇴행적인 환상을 불러일으키는데 더 많은 효과를 보였다. 이제 텔레비전에서는 직장여성에 대한 얄팍한 인정조차 하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는 나쁜 도시 여자들이 ‘구세계’의 가치를 배운다. 엄마로서의 여성의 희생의 가치에 대해서 배운다. 동시에 아버지는 가족의 통치자로서 위엄을 내세우고, 통치자로서 군림하는 모습으로 가득찼다. 다자녀 가정의 유일한 소득원으로서의 지위를 되찾게 된 것이다. 남성들은 또한 체력을 다시 회복한 듯 장작을 패고, 물레방아를 고치며 남성성을 과시했다.

1980년대 말의 영화제작자들처럼 황금시간대 프로그램 편성자들은 여성들 간의 싸움을 불러냈다. 직장 여성을 희생시켜 가정주부를 찬양했으며, 1950년대 텔레비전처럼 감히 가족의 울타리 밖에 나온 엄마들을 비방했다. 아무리 계몽된 프로그램이라도 일하는 엄마에 대한 경멸적인 어조를 잃지 않았다.

싱글여성들은 대체로 사라졌고, 나온 경우에도 우거지상에 일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이혼녀 정도의 역할뿐이었다. 그리고 우르 자신들의 ‘선택’인양 결혼식장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여성들의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결혼은 싱글 남성들의 소망충족이라는 저변의 의도였을 뿐이다. 특히 출세지향적인 싱글여성들은 남성들이 만든 계급 안에서 가장 낮은 계급에 속할 뿐이었다. 싱글여성에 대한 정신적 붕괴도 지속적으로 보여주었다.

 

바보상자를 멀리하라는 할머님의 말씀이 떠오르는 장이었다. 우리가 실제로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고, 대중들의 심리를 반영한다고 믿고 있었던 오락물들인 영화/드라마 등의 미디어들이 실제로는 너무도 정치적이었다. 영화계/드라마계를 지탱하는 그토록 많은 여성 시청자들이 있어도, 여성 취향이라고 볼 만한게 하나도 없는 현재의 한국, 미국의 드라마들 영화들을 보며 그 이유를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조작을 통해 여성들이 손쉽게 자신의 삶을 바꿀 것이라는 생각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국민을 정말 개돼지로 보지 않는 것에 대한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이들에게는 밑지는 장사도 아닐테니 말이다. 잘되면 여성들을 ㅜ려쳐서 결혼하고 번식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고, 최소한 불안감과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고, 고립시키고 여성들 간에 싸움을 붙여 분열되게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더 많은 여성들이 의식화를 한 상태로 타협 없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 그리고 더 많은 컨텐츠를 생산해내는 것. 그렇게 페미니즘적 내용들이 당연한 것이며, 단순한 지지가 아닌 실질적 내용에 대한 지지를 더 많은 여성에게 알려주는 것. 가부장제 최하위의 싱글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것 등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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