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프루스트 읽기 :: 첫 번째 후기 +4
토라진
/ 2018-09-10
/ 조회 1,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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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쓰는 세미나 후기.
잊고 있었던 고등학교 친구를 다시 것처럼, 반갑지만 어색하고 어떤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곧 익숙해질 거란 믿음이 생기기도 하는......가을바람을 맞으며 긴 저녁 산책을 마친 지금 이 순간. 부드러운 마들렌의 기억처럼 함께 나눈 이야기와 웃음들의 불확실한 기억들을 불가능한 방식으로 적어보려 합니다. 자세를 바꿀 때마다 다른 방향으로 향해 달려가는 벽을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죠.
지난주에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몇 달 만에 만났지만 지난주에 만난 듯 다정한 사람들 덕분에 반갑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무더운 여름을 지내느라 모두들 힘들었지만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여름은 다시 추억이 됩니다.
모로님의 고양이가 에어컨도 없이 여름을 견딘 이야기며 방 한 구석 컴퓨터 앞에서 종일 더위와 싸웠던 기억들, 이별과 또 다른 만남들과 다시 이어지는 냉혹하고 가차 없는 일상들......
‘습관! 능숙하면서도 느린 이 조정자는 잠시 머무르는 숙소에서 몇 주 동안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다가, 우리가 찾아내면 행복해지는 그런 것이다.’
라는 본문의 문장처럼,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스스로를 단련하고 어떻게든 쾌락과 행복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 같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그런 안간힘의 순간들 아닐까요? 누군가는 일상의 규칙들을 성실하게 따르는 방식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파괴하면서 시간들을 부숴가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으면서 말이죠.
그리고 여기 또 다른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프루스트는 냄새 맡고 맛을 보는 감각을 통해 과거의 시간을 불러오기도 하고 다가오는 시간들을 당겨오기도 합니다. 나무 계단의 바니쉬 계단의 냄새를 맡으며 어머니를 기다리는 고통의 시간을 견디기도 하며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맛보며 과거의 행복한 기억들을 불러오기도 하죠.
그렇다면 현재의 감각으로 불러 일으켜진 기억으로 이루어진 ‘나’는 정말 진정한 존재로서의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그의 책을 모두 읽고 난 다음에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여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무지의 세계를 집요하게 탐구하고 파고들었던 그의 시도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감각과 기억, 그리고 존재와 삶에 대한 탐구의 궤적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고스란히 그의 책에 남겨져 있을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어쩌면 처음부터 실패를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감각으로 발화되는 인식의 진실이라는 것은 어머니와의 완전한 합일과 만족을 얻지 못하게 될 운명이라는 서사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실패는 화자인 마르셀이 불운한 인물인 스완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으로도 드러납니다. 결국 이 모든 프루스트의 시도는 실패를 위한 무한삽질과 그 공허한 피로감을 위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민한 감각으로 사물에 스민 시간과 공간을 관통해가고 일상의 질서와 윤리의 틀을 벗어나 욕망과 삶의 본질 탐구에 기민했던 프루스트.
그를 이해하기 위해 첫 발을 내딛은 시간들. 함께 했던 가을의 햇살과 바람들을 순간순간 기민하게 느끼고 싶어졌습니다. 이야기는 계속되고 우리의 삶 역시 그러할 테니까 말입니다.
다음 주에도 그 다음 주에도 또 그렇게 계속 만나겠습니다. ~~^^
댓글목록
모로님의 댓글
모로
모로의 고양이는 여름을 견디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살았어요,라고 전해달라고 하네요ㅎㅎ
본편보다 더 재밌는 세미나 시간이 기다려지네요.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네가 고생이 많다'라고 고양이에게 전해주세요. ㅋㅋㅋ
담주에도 재밌게!!!
자연님의 댓글
자연
그냥 좋은 것들은 우연이나 감각에 의해 기억되는 과거였나봐요...슬퍼지는 것들도겠지요?
오늘처럼 볕이 좋고 바람이 부는 날에 콩브레가 어울리려는지, 으흠... 일단 독서대에 책을 펼쳐 놓았네요...
콩브레를 떠올리면 저녁 7시가 생각난다는 마르셀, 이 책 끝에서 무엇이 남을려는지 기대가 되네요..
어느 때, 어떤 순간이....함께 읽는 동안 찾아지겠죠!!!!!!!
수욜에 뵈요^.^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어쩐지 슬픈데...아름다웠던 콩프레의 그 시간들......
누구에게나 그 시간들이 있겠죠.
오랫동안 가지 않았던 다락의 먼지를 털고 물건들을 들여다보듯.....
조심스레 천천히 책과 기억들에 다가가 봐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