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공백3] 김영랑_발제문
도우리
/ 2017-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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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 김윤식 선생은 1903년 전남 강진 출생으로 본명은 윤식, 아호는 영랑이다.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휘문고를 거쳐, 1920년에 일본으로 건나가 아오야마 학원 영문학과에서 수학했다. 그후 박용철, 정지용, 정인보 등과 <시문학>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활발히 시작 활동을 펼쳤다. 영랑은 생전에 <영랑시집>(1935년)과 <영랑시선>(1949년) 두 권의 시집을 출간했으나, 1950년 한국전쟁 때 유탄을 맞아 애석하게 운명했다.
우리 민족의 정한을 노래한 시인으로 알려진 그의 시 세계는 동양적 은일의 시관과 한시, 특히 고산 윤선도의 시조 등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자연에 대한 음풍농월적인 태도를 지양하고,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면서 동시에 순수하고 깨끗한 자연 앞에 승복하는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일제 치하의 억압적 식민지 현실을 날카롭게 드러냈다.
자연에 자신의 감정을 맑게 투영한 탁월한 서정시를 쓴 이 시인은 추상적 관념을 거부하고 자연물에 대한 순정한 심정을 투사함으로써, 고요한 내면을 지순한 언어로 표상한 점이 특징이다.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詩)의 가슴을 살프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얄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뉘 눈결에 쏘이었소
뉘 눈결에 쏘이었소
온통 수줍어진 저 하늘빛
담 안에 복숭아꽃이 붉고
밖에 봄은 벌써 재앙스럽소
꾀꼬리 단둘이 단둘이로다
빈 골짝도 부끄러워
혼란스런 노래로 흰 구름 피어올리나
그 속에 든 꿈이 더 재앙스럽소
뻘은 가슴을 훤히 벗고
뻘은 가슴을 훤히 벗고
개풀 수줍어 고개 숙이네
한낮에 배란 놈이 저 가슴 만졌고나
뻘건 맨발로는 나도 자꾸 간지럽고나
사개틀닌 고풍의 툇마루에
사개틀닌 고풍(古風)의 툇마루에 없는 듯이 앉아
아직 떠오를 기척도 없는 달을 기둘린다
아무런 생각 없이
아무런 뜻 없이
이제 저 감나무 그림자가
사뿐 한 치씩 옮아오고
이 마루 위에 빛깔의 방석이
보시시 깔리우면
나는 내 하나인 외론 벗
갸날픈 내 그림자와
말없이 몸짓없이 서로 맞대고 있으려니
이 밤 옮기는 발짓이나 들려오리라
*사개:상자 따위의 모퉁이 끝을 들쭉날쭉하게 파낸 부분 또는 그런 짜임새
황홀한 달빛
황홀한 달빛
바다는 은(銀)장
천지는 꿈인 양
이리 고요하다
부르면 내려울 듯
정뜬 달은
맑고 은은한 노래
울려날 듯
저 은장 위에
떨어진단들
달이야 설마
깨어질라고
떨어져보라
저 달 어서 떨어져라
그 혼란서럼
아름다운 천동 지동
후젓한 삼경(三更)
산 위에 홀히
꿈구는 바다
깨울 수 없다
청명
호르 호르르 호르르르 가을 아침
취여진 청명을 마시고 거닐면
수풀이 호르르 벌레가 호르르르
청명은 내 머릿속 가슴 속을 젖어들어
발끝 손끝으로 새어나가나니
온 살결 터럭끝은 모두 눈이요 입이라
나는 수풀의 정을 알 수 있고
벌레의 예지를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나도 이 아침 청명의
가장 고웁지 못한 노래꾼이 된다
수풀과 벌레는 자고 깨인 어린애
밤새워 빨고도 이슬은 남았다
남았거든 나를 주라
나는 이 청명에도 주리나니
방에 문을 달고 벽을 향해 숨쉬지 않았느뇨
햇발이 처음 쏟아오아
청명은 갑자기 으리으리한 관(冠)을 쓴다
그때에토록 하고 동백 한 알은 빠지나니
오! 그 빛남 그 고요함
간밤에 하늘을 쫓긴 별살의 흐름이 저러했다
온 소리의 앞소리요
온 빛깔의 비롯이라
이 청명에 포근 축여진 내 마음
감각의 낯익은 고향을 찾았노라
평생 못 떠날 내 집을 들었노라
*취여진: 젖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