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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성》 네 번째 세미나 발제 및 후기 +3
namu / 2017-03-02 / 조회 2,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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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네 번째 세미나 후기

 

《성》 네 번째 세미나를 마쳤습니다. 하도 많은 얘기(다른 때와 마찬가지로)가 쏟아나져나와 내 부처님 귀로도 다 접수할 수가 없었으니, 다른 분들의 의견에 토를 달기보다는 그 와중에 스쳐갔던 저의 느낌이나 발언을 한두 가지 정리해보려 합니다. 그나마 갈짓자행보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앞서지만요.

 

《성》​을 읽으면서 연극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데요. 그 말은 연극적 특성(요소)이 곧잘 눈에 띈다는 것이에요. 우선 일반적인 의미에서 연극적 환상성이라고 할까요. 이 작품은 디테일한 상황 묘사나 대화 등으로 볼 때, 분명 리얼리즘 소설의 외관을 갖춘 듯한데, 전체적으론 애매모호하고 신기루 같은 환상적 아우라가 도드라져 보입니다. 눈 속에 파묻힌 언덕 위의 어둠과 안개를 배경으로 자리잡은 어렴풋한 성의 모습처럼 말이지요. 이런 비현실적인 느낌은 종잡을 수 없는 대화나 인물들의 수수께끼 같은 정체성의 혼란 등에서도 느껴지지요.

 

(클람)는 마을에 올 때 전혀 다른 모습이고 떠날 때 다르며 맥주를 마시기 전에 다르고 마신 뒤에 다르고, 깨어 있을 때 다르고 자고 있을 때 다르며 혼자 있을 때 다르고 이야기 중일 때 다르다고 해요.” (《성》)

 

참고로 카프카의 일기엔 '나는 말하는 것과 달리 쓰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말하고, 생각해야 할 것과 달리 생각하고----'라는 대목이 보이는데, 카프카는 까마귀 고기를 삶아 먹었나봐요(체코어로 Kavka는 까마귀). 그의 건망증이 도를 넘은 것 같죠. 사실 이런 갈짓자 서술은 본문에서 엄청 많이 눈에 띄지요. (‘갈짓자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서술뿐만이 아니라 인물들의 정체성도 갈짓자 행보를 그리고 있고, K가 성을 두고 벌이는 투쟁도 갈짓자 막싸움 아니던가요.)

 

다음으로 연극적 특성은 공간과 시간이라는 배경에서도 엿볼 수 있지요《성》의 배경은 이 세상과는 동떨어진 성과 마을인데, 성은 마을 주민들의 입방아에서만 등장하지요. 그리고 마을에 딸린 두 여관과 학교, 바르바네스의 집이 주 무대가 되어 있고, 전체 서사는 7일에 걸쳐있다고 하지요. 이런 지극히 한정된 시공간은 무대에 올리기에도 만만할 것 같네요.

 

등장인물 또한 연극성이 두드러진 측면이 있어요. 소설의 전개가 주로 인물들 간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고요. 특히 아말리아 집안 내력에 대해서는 올가와 k의 긴 대화를 통해 드러나지요. 아울러 두 조수와 슈바이처란 인물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다소 과장되어 있다는 느낌이 드네요.

 

따라서 연극 무대처럼 고립된 《성》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사건들은 비현실적인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연극적 속성을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다음으로 이 소설의 주제(아직 시기상조인 줄 알지만)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아직 본격적으로 카프카의 해설서를 거의 들춰보지 않았습니다. 이런 태도는 의도적인데, 되도록 선입견을 배제하고 일단 제 깜냥으로 들이대자는 생각에서였지요.(물론 20여년 전에 장편 삼부작을 읽었더군요. 이번에 상자 속에 처박아두었던 범우사 판을 꺼내 살펴보았더니 밑줄이 좍좍 그어져 있었어요. 하지만 지난 번에 말씀드렸듯이, 《소송 이던가요. ‘개x끼!’ 하면서 끝났다, 외에는 남아 있는 기억이 없어요.)

 

아무튼 우리 주호 반장님의 첫 발제엔 Das schloss』​ ​​,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들하고 8가지를 친절하게 소개해주셨는데요.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도 문어발처럼 논자들이 물어뜯기에 먹음직스러운 여러 개의 다리(문어는 다리가 8개라네요)를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누군가 카프카의 작품을 일러 유예의 열린 형식이라 했던 말이 마음에 들어요. 주호님의 발제를 다시 읽고 지금 제 생각을 포개보니 저는 그 중에서 5번째 해석에 감응이 퍽 오네요(‘전기적이란 말이 자서전적과 통한다는 의미에서지 내용 자체는 많은 차이가 있지 않나 싶네요). 그러고 보니 오라클님은 애시당초 《성》을 권력의 문제로 보고 관료제를 풍자한 작품으로 점찍고 줄기차게 밀고나간다는 점에서 사회학적 해석(아도르노)”에 근접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네요.

 

사회학적 해석(아도르노), 20세기 나타난 전체주의 체제의 위계 내지 권력구조를 서술한 작품, 자의적인 권력, 관청이나 국가체제의 과도한 관료화에 대한 풍자. 전체주의적 지배체제에 저항하는 K의 투쟁

 

전기적 해석, 몇 번의 약혼에 실패한 독신자이자 폐결핵 환자이며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못한 작가의 실패한 삶의 기술. 글쓰기에 몰두하면서 자신의 삶을 고립시킨 예외적 존재에 대한 자기 성찰의 기록

 

저는 《성》을 카프카가 자신의 삶을 우의적으로 그린 자서전적인 소설이라는 생각을 해요. 이 작품엔 보험회사 직원으로서의 관료제 사회(성의 관청”)와 가부장적인 아버지(“클람”), 유대인 소수자(아웃사이더로서의 “k”), 연인들과의 관계 등, 이 모든 자신의 경험들을 알레고리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울러 카프카는 끝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하지요. <>이야 말로 그런 소설이 아닌가 싶고요. K는 결국 성에는 못들어간다고 하잖아요. 성에 진입한다는 것은 끝이 있는 소설인 셈이지요(closed ending). 카프카의 글쓰기 욕망은 글쓰기 과정 자체이지, 완성된(형식적으로) 글이 될 수 없어요. 우리네 삶 역시 목적(완성)은 없으며 과정 그 자체가 아닌가요. 말라르메의 소망처럼 카프카가 단 한 권의 책(Le Livre, 즉 우주가 완전한 우주에 대해 스스로 말하고 그 우주의 모든 것을 종합한 대문자 책)”을 썼다면, “끝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었던 작가로서의 존재 가치는 무의미한 것이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k와 성의 관계는 작가로서의 자신의 삶을 은유하고 있다고 봅니다. 성에 진입하지 못하고 우회하며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제 꼬리를 문 아우로보로스처럼 삶과의 끊임없는 투쟁, 시시푸스의 유의미한 말짱 도루묵’(徒勞)! 이게 k의 갈짓자 행보의 정체예요. 작가로서의 운명적인 영원한 게걸음! 그런 점에서 《성》은 미완성이 아니라 삶의 여여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유예의 열린 형식이란 말도 카프카적 글쓰기의 존재 방식이 아닐는지요.

 

“ (---) 달리 어쩔 수 없이 그가 희망을 쫓아간다면 모든 힘을 거기에 모으고 그 밖에는 즉 식사, 거처, 마을 관청, 그리고 프리다까지도 전혀 신경 쓰지 말아야했다. (《성》)”

 

여기서 저는 희망을 카프카의 글쓰기 욕망으로 번역해 읽고자 합니다.

 

《 글 쓰는 것이야말로 ---지상의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던 카프카는 문학이 아닌 모든 것을 부수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는 오직 문학을 위해 일반 사람이 누리고 있는 일상적인 섹스, 음식, , 철학적 사고, 특히 음악이 주는 즐거움 까지도 포기했다. 자신의 부족한 힘을 모두 글을 쓰는 목적에 모으기 위해서였다.​ 

, 철학적 사고, 특히 음악이 주는 즐거움 까지도 포기했던카프카. 글쓰기란 얼어붙은 의식의 바다를 깨부수는 도끼가 아니고서 무엇이겠느냐, 는 카프카의 작가 의식이 새삼 제 뇌리를 강타하는 비오는 밤입니다. 옴마니팟메훔!

 

*이 글은 미진하고 의심쩍은 글입니다. 다만 그 동안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느꼈던 이제까지의 제 느낌입니다.

댓글목록

주호님의 댓글

주호

"후기 꼭 올려주셔야 해요~"라는 말에 당황스러워하시던 모습은 역시 페이크였네요. 멋진 후기입니다.
그때 제가 소개해드렸던 8가지 해석 외에도, 카프카의 소설에 대해서는 수많은 해석들이 존재하더군요.
우리끼리 웃으면서 나눴던 해석―'성'을 동성애가 가능한 유토피아적 공간으로―도 있었구요.
나무님께서 지난 세미나 서두에 말씀하셨던 '비틀거리는 주체'라는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네요.
그러고보니 카프카의 모든 주인공들은 카프카 자신이면서 동시에 비틀거리며 이야기 속으로 나아간다는 인상을 주네요.
추후에 카프카 비평서를 통해 카프카를 읽는 또다른 눈을 갖게 되면 좋겠네요.
우리 세미나원들 내공으로 봐서는, 비평서 한두권 읽는다고 해서 한쪽으로만 치우쳐 작품을 해석하지는 않을듯!

삼월님의 댓글

삼월

잘 읽었습니다.
20세기 이후의 모든 소설은 추리소설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믿는 저는,
은연중에 카프카의 소설에서도 등장인물들의 음모와 작가의 속임수를 찾아내려 애쓰고 있었나봅니다.
그러다보니 저의 읽기 자체가 갈짓자행보였는데,
namu님의 후기를 읽고나니 그게 우리 삶의 진실이 아니었던가, 하고 새삼 고개를 끄덕거리게 됩니다.
앞으로도 함께 카프카와 K의 행보를 갈짓자로 읽어봐요!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나무님의 느릿한, 그리고 규칙적인 리듬이 깃든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도파도파 레미미~~ㅋㅋ)
세미나 때 나무님이 말씀하셨던 부분을 이 글을 통해 좀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만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었던 카프카.
그는 갈지자로 걸으며 이리저리 비틀거리면서도 성을 향해 나아가야 했던 K와 무척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먼지처럼 부유하던 서로의 생각들이 세미나를 하면서 몽글몽글 먼지덩이를 이루는 것이 신비하고 즐겁습니다.
몽글몽글 만들어질 이야기들이 앞으로 어디서 끝나게 될지,
아니면 어디쯤에서 서성이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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