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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0215(수) 사드에 대한 첫번째 강의_발제문 +3
주호 / 2017-02-14 / 조회 2,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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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사드에 대한 강의 - 첫 번째 강연

주 호

 

 

 

 

추론의 진실 ::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푸코는 사드의 주요 저작 중 하나인 『새로운 쥐스틴 또는 미덕의 불운』을 중심으로 첫 번째 강연을 진행한다. 

푸코에게 『새로운 쥐스틴 또는 미덕의 불운』은 사드의 사유와 상상력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가장 극단적이고 가장 완정한 형식 아래 드러내주는 일종의 보고서였다. 사드는 바스티유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쥐스틴을 주인공으로 하는 최초의 소설 『미덕의 불운(1787)』을 탈고하였고 이후 두 차례에 걸쳐 개작한 끝에 총 10권에 이르는 『새로운 쥐스틴 또는 미덕의 불운(1797)』을 출간하였다. 푸코는 이 작품이 전적으로 진실의 기호 아래 놓여 있다고 말한다. 

사드는 이 작품에서 범죄를 있는 그대로, 의기양양하고 숭고한 것으로 보여주겠다고 말하면서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진실이니까 여러분은 나를 믿어야만 하지.”라며 자기 소설이 갖는 절대적 진실성을 강조한다. 사드의 또 다른 작품 『알린과 발쿠르』는 이른바 서한소설로써 사드 자신은 다만 책 한권 분량이 되는 어떤 편지를 그저 옮겨 쓰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또 『쥐스틴』에서는 주석 부분에 작가가 스스로를 드러내며 “이거, 이 이야기는 진실입니다.”라고 끊임없이 주지시킨다. “내가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내 머리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믿을만한 사람의 말(또는 편지) 속에 담겨 있었다”라거나 작가 자신이 어느 순간 작품 안에서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며 말하기 시작하는 것(작가의 직접적 개입) 등은 사실 18세기의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서 있음직함, 즉 진실을 확보하기 위해 즐겨 사용한 방법들이었다. 사드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가 진실임을 강조하는데 한번이라도 사드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드의 소설이 단 한 순간도 있음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그렇다면 사드에게 진실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푸코는 사드가 말하는 진실이 추론의 진실이라고 설명한다. 18세기 소설가의 문제는 감동을 줄 수 있는 하나의 허구를 진실이라는 형식 아래 확립하는 것이었지만, 사드의 문제는 하나의 진실을 분해하는 것, 한 명의 철학자로서 하나의 진실을 분해하는 것이었다. 『쥐스틴』이라는 소설의 관건은 살인, 야만성, 지배의 수행 및 욕망의 수행을 통해, 하나의 진실일 무엇인가가 드러나게 만드는 것이다. 즉,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행위를 완수하는 순간 또는 그 직전⋅직후 스스로가 자신의 행위를 설명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해 말하는 것, 이것이 진실이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진실어야하는 것은 추론이자, 욕망의 수행을 지탱해주는 혹은 수행에 의해 촉진되는 합리성의 형식이다. 그렇다면 이 욕망과 진실 관계는 어떤 형식과 어떤 수준에서 나타날 수 있었을까? 푸코는 이 문제를 두 가지 수준에서 분석한다. 첫 번째는 책이라는 존재 자체의 수준이고, 두 번째는 등장인물들에 의해 유지되는 추론의 내용이라는 수준이다.

 

 

사드의 글쓰기 :: 탈한계화

사드는 자신의 소설에 존재하는 불쾌감에도 불구하고 “내가 말을 건네는 대상은 여러분의 감수성도 마음도 아닌, 여러분의 이성, 오직 이성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하나의 근본적인 진리, 악덕이 늘 보상을 받고 미덕은 늘 벌을 받는다는 진리를 증명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드의 소설 안에는 악덕의 보상과 미덕의 처벌에 관련된 어떤 일관된 논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덕을 지닌 쥐스틴의 불행은 늘 우연에 의해 발생한 것이지 결코 쥐스틴이 행한 행동의 논리적인 결과가 아니다. 악덕은 보상받고 미덕은 벌을 받는다는 방식은 사드 자신이 조종해가는 하나의 체계일 뿐이다. 그렇다면 사드가 글쓰기를 통해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쥐스틴과 쥘리에트』에서 우리는 글쓰기 행위에 관련된 사드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에는 쥘리에트가 한 여성에게 타락의 마지막 관문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자위를 하는 하나의 전형적인 절차를 보여준다. 사드에게 글쓰기란 보편적 합리성의 도구가 전혀 아니며, 개인적 몽상의 도구, 보조물, 에로틱한 꿈을 성적 실천과 이어주는 하나의 특정한 방식이다. 따라서 글쓰기는 몽상의 구축, 성적 실천의 구축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단계, 몽상으로부터 실행으로 나아가는 순수하고도 단순한 하나의 단계인 것이다. 방금 말한 이 장면은 사드가 갇혀 있던 시간 동안 매일 아침저녁으로 아마도 실제로 행했던 일들일 것이란 점에서 사드에게 글쓰기란 자기 책의 글쓰기이자, 자신의 고독한 광기의 글쓰기이다.  

사드는 『소설에 대한 생각들』이라는 짧은 논평 안에서 소설가는 자연 속으로 스스로를 내던져야 하며 그 품속에서 글을 쓸 때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가슴을 열어젖히고 어떤 방해물에 의해서도 제한되거나 억제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몽환적 글쓰기는 앞서 쥘리에트의 몽환과 절차상 동일하다. 사드의 글쓰기는 성적 몽환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드의 글쓰기는 진실과 어떤 관련을 가질 수 있을까? 푸코는 좀 더 엄밀한 방식으로 사드의 텍스트를 연구한다. 

사드의 소설에서 글쓰기는 첫째, 상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을 이어주는 매개적 역할을 수행하는데, 말하자면 현실 원칙을 상상력의 한계 너머 가장 먼 곳까지 밀어붙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글쓰기의 첫번째 기능은 현실과 상상력의 경계를 철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쓰기는 현실을 제거하고 상상적인 것 자체의 모든 한계를 무화시키고 소거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글쓰기 덕분에 쾌락원칙에 의해 전적으로 지배되면서 결코 현실원칙과 만나지 않는 하나의 세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사드에게 있어 글쓰기는 되풀이된 향락의 원리이다. 글쓰기로부터 출발하여 피로, 피곤, 노령과 죽음에 관계없이 모든 것이 영속적으로 무한히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글쓰기의 두번째 기능은 시간적 한계를 소거하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되풀이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어떤 시간적 한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글쓰기는 단순히 향락의 무한정한 되풀이에 그치지 않는다. 글쓰기의 세번째 기능은 상상력으로 하여금 자신의 고유한 한계들을 넘어서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읽기-쓰기-다시읽기-다시쓰기 등을 통해 매번 우리는 새로운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된다. 글쓰기는 쾌락의 탈한계화, 되풀이의 탈한계화, 이미지 자체의 탈한계화이며, 글쓰기가 모든 한계를 하나씩 하나씩 다 넘어서버리기 때문에 글쓰기는 한계 자체에 대한 탈한계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탈한계화 덕에 개인은 가장 일탈적 지점에 위치하면서 더 이상 누구와도 공통점을 갖지 않게 된다. 글쓰기는 개인을 단순한 특이성 안에 위치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개인을 극한의 고독 속으로 몰고 간다. 사드는 “직접 해보면”이라고 말하는데 일단 개인이 그것을 실제로 행한 이후에는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직접 해본’ 개인은 이제 절대적이고 전적으로 범죄적 존재가 되는데 극단에 위치한 개인은 결국 그 행위를 범죄로 인식하지 않으면서 범죄 자체가 소거된다. 사드에게 있어 범죄는 불규칙성의 관념을 위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글쓰기는 범죄와 범죄 아닌 것, 허용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이 마지막 경계마저도 소거해 버린다. 



사드 :: 나는 진실을 말한다 ― 네가 믿든 안 믿든

사드가 ‘나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애쓴다’고 말할 때, 그것은 앞서 살펴보았던 18세기 소설가들의 방식과 다른 어떤 것이다. 사드에게 있어 진실의 말하기란, 욕망, 환상, 상상력을 진실과의 어떤 관계 안에 확립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현실원리가 존재하지 않으며 전적으로 욕망에 복종하면서 욕망을 작동시키고 증식시키는 것을 말한다. 모든 환상은 진실한 것이 되고, 상상력 자체가 진실의 증명이 되며 하나의 환상을 넘어서 그것으로부터 또 다른 환상을 찾아낸다. 

글쓰기는 욕망을 진실의 질서 안으로 진입시킨다. 글쓰기는 모든 한계를 소거하고 욕망을 되풀이의 영원한 세계 안에 도입시켜 버린다. 또한 글쓰기는 욕망을 진실의 세계 안으로 도입한다. 이는 글쓰기가 욕망을 위해 합법적인 것과 비합법적인 것, 허용된 것과 허용되지 않은 것, 도덕적인 것과 비도덕적인 것의 모든 경계와 한계를 소거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라는 무제한성의 결과로 욕망은 자신의 안에 고유한 진실, 고유한 되풀이, 고유한 무한성, 고유한 검증의 심급을 모두 소유하는 하나의 절대적 주권자가 된다. 

마무리에서 푸코는 사드의 글쓰기가 외적인 진실을 통한 타인의 설득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말한다. 사드의 글쓰기가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는 다는 것이다. 사드는 글쓰기를 통해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의 글쓰기를 절대적으로 고독한 글쓰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드에게 환상은 글쓰기를 통해서 물질성을 부여받는다. 욕망은 어떤 한계도 없는 지점에 결국 도달하고야 말았으며 글쓰기는 진실이 되어버린 욕망, 욕망의 형식을 지닌 진실이다. 사드가 글을 쓰는 이유, 그것은 욕망과 관련된 외부성의 철폐 때문이다.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훌륭한 발제네요.
이 부분 짧기도 하고, 크게 내용이 많지 않다고 했지만
막상 보니까 그렇지도 않죠?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주에도 도움을 많이 받아야겠어요. ㅎㅎ

현님의 댓글

발제문 감사합니다.
오늘 몸이 안 좋아 참석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반장님 연락처를 몰라 부득이 여기 댓글 남깁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삼월님의 댓글

삼월 댓글의 댓글

알겠습니다.
얼른 나아서 다음주엔 만날 수 있길 바랄게요.
그리고, 세미나 출석과 관련된 사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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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쾌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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