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생명관리정치의 탄생> 0217 후기 +4
유택
/ 2017-02-18
/ 조회 3,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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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관리정치의 탄생 5,6강 후기
3명의 결원으로 비록 아쉽게 세미나를 시작했지만 또 역시 남은 네 명은 아니나 다를까 입모아 우리 푸코씨가 거대하게 엮은 미로 같은 이야기속으로 2시간 동안 흠씬 빠져들었습니다. 선우님… 푸코 세미나 다음부터 절대 빠지지 마셔요. 너무 허전합디다. 푸코 맥락도 잘 못 잡겠고! 고로 강력히 전격 촉구하는 바입니다. 이것은 저만의 간곡한 촉구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 또 명심키 바랍니다. ㅎ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주에 뵈어요~ 이 따끈한 후기를 선우님께 바칩니다. ㅋ 뉴미, 알료샤님도 건강 회복하시어 다음주에 뵐게요!
일단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다르냐가 세미나 도입부에서 우리들의 첫 질문이었습니다. 대략 이렇습니다. 자유주의는 ‘시장경제’와 ‘자유방임’이 결합된 채로 가격의 자동조절, 즉 스미스식의 자유주의로 이해될 수 있겠고요. 우리가 지금 공부하는 이 신자유주의는 시장경제와 자유방임의 정책의 분리로 설명되는데, 그 분기점이 ‘순수경쟁’의 원리가 제시된 이후부터지요. 고전 자유주의에서 ‘교환’이 있다면, 신자유주의에서는 교환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자유주의, 즉 용의주도, 능동성, 항구적 개입 등의 비호아래 단순히 경제정책이 아니라, 행동방식의 문제이고 통치양식/통치술의 문제입니다.
베버와 맑스가 나옵니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윤리를 말하는 사상가인데요. 이것이 무엇입니까. 부유함은 곧 구원받았다는 신의 징표, 부유함의 도덕화. 그래서 베버는 자본주의를 이러저러한 장치의 뒷받침으로 계속 지속 가능한 원리(즉 자본주의의 비합리적 합리성)로 보는 반면에, 맑스는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자본주의는 그것이 내재한 모순으로 결국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도래하고 사회주의로 이행한다는 원리이지요. 곧 자본주의는 영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둘은 다릅니다.
신자유주의는 나치즘을 통과하면서 그들 스스로를 정의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이라는 인상적인 표현이 나옵니다. 즉, 19세기 중반부터 자유주의는 독일에서 이미 존재했고, 자유주의 정책들에 반하는 일련의(시간 순으로) 장애물들이 등장하는데요. 보호주의경제 – 국가사회주의 – 계획경제 – 케인주의를 거치면서, 나치즘(국민사회주의)은 그 모든것들을 하나로 종합한 원리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신자유주의는 이것을 또 비판하며 자신을 정립하는 것이고요.
5,6강에서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 한가지. 우리가 흔히 대중사회/일차원적 인간의 사회/권위주의 사회/소비사회/스펙터클의 사회 같은 비판은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 쓰였던 말들로 기억하는데요. 그렇지 않나요? 자본주의 사회의 폐혜를 말해보라 하면 저 윗단어들을 자동적으로 줄줄 말하지 않았나요? 저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푸코는 또 아니라고 합니다. 또 확 뒤집어집니다. 오히려 위에서 말한 것들은 자본주의 비판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주의에 연결되어 있고, 반자유주의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 시장경제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겁니다. 그 예로 나치즘 사회를 자세히 분석하지요.(각자 본문을 찾아 읽어보셔요 중요합니다) 이제 시장경제가, 시장의 자유가 중요해집니다. 국가의 감시 아래 있는 시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장의 감시 아래 있는 국가가 됩니다. 신자유주의 통치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장경제를 수반합니다. 고로 시장 때문에 통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위해 통치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또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복지경제(정책)에 대해 또다시 뒤집어지는 생각을 겪어야 했습니다. 소비재 접근을 상대적으로 균등화 하는 것이 복지경제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정책으로 우리는 익히 알고 있고 여전히 지금도 저는 그렇게 인식 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며칠전에 갔었던 노들야학의 토론회에서 발표한 빈곤사회연대의 사무국장의 발제도 그래했지요. 어느 정부가 복지공약을 그렇게 하더니 정권 잡고 나서는 공약 이행을 하지 않는다. 나는 철저한 감시자 역할을 하겠다 등등의 말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선한 정부 / 선한 국가가 평등한 복지정책을 시행할거라는 믿음이 그 밑에 깔린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신자유주의의 작동방식은 그렇지 않다고 푸코가 분석합니다. 푸코는 기존의 제 생각과는 또 정반대입니다. 그래서 매력 있습니다. 즉 복지에 있어서 질서자유주의(신자유주의)는 반대의 관점을 내놓습니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지금 현재에도 여전히 그대로 적용되는 분석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전율이 일었습니다. 불평등이 만인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신자유주의 안에서 사회정책은 평등을 목적으로 설정할 수가 없습니다. 불평등이 작동하도록 놔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보장을 통해 개인들을 위험에서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그 내부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대면할 수 있는 일종의 경제적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입니다.(각자도생의 삶) 그래서 진실로 근본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은 오직 하나, 경제성장뿐입니다. 그렇다고 경제성장이 크면 클수록 사회정책이 더 후해지는 것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시쳇말로 낙수효과는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에게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대량의 실업자들입니다. 그들이 언제라도 투입될 수 있는 준비된 노동력이기에 자본주의는 유지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에게는 노동자의 몸과 정신을 노동하기에 알맞게 유지 시켜주는 (신자유주의식의) 복지정책이 엄청 중요한 것이겠지요. 무섭네요.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아니 그렇군요.. 아…
신자유주의적 통치는 근본적으로 모든 순간, 모든 사회적 층위에서 경쟁메커니즘이 조절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회에 개입합니다. 그러면서 사회에 대한 조절자로서의 보편적 시장의 구성이라는 자신의 목표를 실현할 수 있게 됩니다. 경제 법칙만 인정하고 준수해야 하는 통치가 아니라 사회의 통치이고 사회정책이 됩니다. 신자유주의는 상품 효과에 종속된 사회가 아니라 경쟁의 역학에 종속된 사회 곧 슈퍼마켓 사회가 아니라 기업사회 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부딪히면서 경쟁의 한층 증식되고 사법에 의한 중재가 필요하게 되어 사법사회의 공고화가 한편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신자유주의라는 단어는 익히 잘 알잖아요. 맨날 듣는 소리고요. 푸코가 70년대말에 이렇게 분석을 하다니. 마지막에 좀 자세하게 신자유주의의 미세한 일례/목표들을 열거할때는 다들 깜짝 놀라 엉덩이가 들썩였습니다. 공동체 공동체 노래하며 대안 운운도 사실 신자유주의의 통치행동의 목표에 포섭 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다같이 깜놀! 신자유주의가 던진 촘촘한 그물망을 벗어날 수 있는게 없더라고요. 무섭네요. 현재 서울 2017년 2월을 살아가는 우리가… 삶을, 타인을 그리고 사물을 대하는 행동/사유방식조차도 <경쟁>과 <틀x(엑스)>에 의해 휘둘러진다는 그 사실. 사유의 상투어! ㅎㅎㅎ 신자유주의 행동방식/사유방식/통치방식이 내 뼛속 깊숙이 뿌리 박혀, 죽지 않고서는 탈주 불가능할 것이 저의 개인적 전망! 소리 반장은 세미나 도중 절실하게 절규합디다. 탈주하고 싶다! 이제는 주체의 해석학을 열심히 읽고 탈주를 구상해야겠다! 라고. <주체의 해석학>에서 푸코가 시도한 자기 테크닉에 관한 일련의 연구가 동성애자/여성/소수민 등을 위한 새로운 형식의 투쟁을 명확히 현시하고 또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주체의 해석학>p26)고는 하지만 번역자 심세광의 서문에 나온 이 말처럼 과연 그게 쉬울까요? ^^; 이상입니다.
댓글목록
선우님의 댓글
선우
ㅎㅎ 와 이렇게 빨리 자세히 써주시다니...
저도 책을 어설프게 읽어놔서 내용에 대한 덧글은 나중에 달게요.
암튼 책 읽는데, 이 후기가 많은 도움이 될듯요. 땡~큐^^
삼월님의 댓글
삼월
결석생이 많아 걱정했지만,
유택님의 맥락 제대로 잡은 발제로 탄력받은 세미나였습니다.
저도 이 시간 유택님 후기를 읽으며, 전율이 이네요.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우님 비롯하여 결석하신 분들의 자리를 메꾸려
남은 사람들이 긴장한 탓도 있으니
이런 갑작스러운 결석도 의외의 좋은 결과를 불러온다고
할 수도 있을까요?
그치만 다들 다음주에는 회복하여 더 열띤 세미나 꾸릴 수 있기를.
내용에 대해서는, 유택님이 완벽에 가까운 후기를 써주었다고
감히 평가합니다. 그리고 감탄합니다!
ㅎㅎ 다음에도 기대할게요~~
선우님의 댓글
선우
이제야 책 다시 읽고, 후기도 천천히 다시 읽었습니다.
삼월 말대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후기!!
근데 "공동체 공동체 노래하며 대안 운운 하는 것도 사실 신자유주의 통치행동의 목표에 포섭될 수 있다" 는 것은 무슨
말이예요?
선우님의 댓글
선우
5장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시장을 교환으로 보든, 경쟁으로 보든 그것은 모두 시장을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으로 본다는 점이라는 푸코의 지적 부분입니다. 경쟁 또한 욕구나 본능이나 행동양식 등 자연적인 작용의 결과가
아니고요. 경쟁은 다만 형식화의 원리로서, 여러 불평등 사이의 형식적 작용이라는 것. 시장과 경쟁은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만
나타나는 것이고 그 효과를 생산한다는 것. 푸코의 이런 관점은 이 책 처음 부분에서 보편이라는 개념은 원래 없었는데, 이것이 어떤
조건 아래서 구성되는지 보겠다는 것과 '진실'이 아니라 '진실담론'의 체제를 구축하는 구조를 연구하겠다는 그의 방법론을 다시 환기
시킵니다. 시장에서의 교환, 경쟁이 자연적 소여가 아니라 역사적 산물이라는 맑스의 이야기가 묻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