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세미나] 2번째 시간 후기 +6
희음
/ 2017-02-20
/ 조회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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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세미나를 진행하기 전, 자신을 소개하고 세미나에 참여하게 된 동기를 밝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카프카를 들었다 놓기만 했거나, 분명 읽은 기억은 있으나 무엇을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그런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그와는 조금 다른 동기를 가진 분이 있었는데, 바로 현 님이었지요. 카프카와의 온전한 결별을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는 말. 그건 이 세계를 보는 너무 검은 눈, 이 세계의 검고 어두운 후면을 후벼 파듯 바라보는 그에게서 빠져나와야겠다는 결심일 겁니다. 조금 다르게 읽어야겠다는 생각. 어쩌면 그보다는 실험실 친구들과 함께 그 세계의 어둠의 극한까지 한 번 내려가 보겠다는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바닥을 치고 나면 밝은 곳으로 솟아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인지도요. 그 마음에 동참해 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미나 시간에 오갔던 몇 가지 열띤 쟁점들 위주로 적어보겠습니다. 가장 재미있었던 장이 5장 <촌장의 집에서>였는데요, 앞선 장에서 다리목 여관 여주인이 ‘당신은 어디로 가든지 이곳에서는 가장 무지한 사람임을 잊지 말고 조심하’라고 경고했던 것처럼, 촌장 또한 여기서 K를 무지하고도 이해가 얕은 자로 취급하죠. K가 이곳 시스템의 부조리함과 불가해함에 대해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에 대해, 그 또한 나름의 기묘한 논리로 반박하며 그를 몰아세웁니다. 자신이 속한 세계를 흠집 내려는 K에 맞서 그는 반불구인 몸으로 그 시스템의 환영적 완전무결함을 지켜내려는 듯 보입니다. 그와 관련해 무척이나 흥미로운 묘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추앙하는 소르디니라는 관료의 업무 풍경입니다.
- 내가 들은 바로는 그의 사무실에는 차곡차곡 쌓인 서류 뭉치 기둥들이 사방 벽을 가리며 가득 차 있는데, 그것들 모두 소르디니가 당장 처리 중인 서류들이라는 거예요. 그 뭉치에서 서류들을 빼기도 하고 끼워 넣기도 하는데 모든 일이 몹시 다급하게 이루어져 서류 뭉치 기둥들이 줄곧 무너진다고 해요. 기둥이 바닥으로 무너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는 것은 소르디니 사무실의 특징이 되었어요. 그런 점에서 소르디니는 진정한 일꾼이고, 하찮은 일에도 중요한 일을 대할 때와 똑같은 세심함을 기울이는 사람입니다.
쓰러질 듯한 서류들로 쌓이고 메워진 하나의 벽, 그걸 서류 벽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슬아슬하게 세워져 있는 그 벽은 너무 자주 무너집니다. 쿵쿵, 소리를 내면서. 그리고 그 벽은 지치지 않고 서류로 다시 채워지고 또 무너지길 되풀이합니다. 서류 벽은 소설 안에서 민감하고 완전무결한 관료제의 상징처럼 그려집니다. 어찌 보면 그것의 위태로움은 어떤 완전함과는 거리가 있는 듯하지만, 중요한 지점은 그 벽이 끊임없이 다시 세워진다는 겁니다. 그 벽이 다시 세워지는 건 누구에 의해서일까요. 소르디니? 혹은 그의 상관? 아니면 관료제로 그려지고 있는 하나의 권력? 텍스트는 앞으로도 반 이상이 남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성’이라는 유령의 목소리와 시선과 호흡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5장에서 오가는 촌장과 K의 논쟁 사이에 카프카의 깊고 어두운 한숨 같은 구절도 숨어 있었습니다.
- 이제 와 다시 되돌아가려고 그렇게 멀고 먼 여행을 한 게 아닙니다.
- 그런데 그 배정은 하늘에서 대충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어요. 아무런 고려 없이 말입니다.
- 하찮은 혼란이 상황에 따라서는 한 사람의 실존을 결정한다는 점을 통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이유 없이 던져졌습니다. ‘세상에 남’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구조, 의지, 우연 등의 갖가지 항목들을 찾아 기술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둥절해 하는 당사자에게는 결코 실존적인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가족, 사회, 지구라는 시스템 안에서의 양질의 데이터로는 쓰일 수 있을지 몰라도 말입니다. 우리라는 존재는 어쩌면,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는 실수들의 조합에 의해 태어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카프카의 저 문장들이 아프게 다가왔던 이유입니다.
K의 조수들 캐릭터는 예사롭지 않은 의뭉스러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분명 K의 일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배정된 자들인데 그 둘은 K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일을 시작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둘은 K에 의해서 언제나 밀쳐지고 배제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그들은 K에게 밀착해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프리다와 K가 애정행각을 벌일 때조차 그들은 어느새 그 곁에 와 음산한 정물처럼, 집요한 감시자처럼 서 있습니다. 그들은 골목의 예기치 않은 그림자처럼 기분 나쁜 냄새를 풍깁니다. 그들의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 어슴푸레한 빛에서 보면 조수들이 있는 구석에는 다만 커다란 실몽당이 하나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K가 낮의 밝은 빛에서 본 바로는 그들은 K를 아주 주의 깊게 관찰하고 또 지속적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 K는 조수들이 바깥에서는 볼 수 없고 그 자신도 그들이 안 보이는 작은 방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하지만 애원하듯 나지막하게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는 그곳에서도 여전히 그를 따라왔다.
K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곳의 모든 이들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설의 일회적이고도 부속적으로 느껴지는 인물에게까지도 이름이 있지요. 그런데 유독 이 소설의 중심인물인 K에게만은 이름이 없습니다. 대문자 K로만 불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이 이상한 성의 세계, 이상한 그들만의 순결한 논리가 절대적 진리가 되어버리는 세계, 분명 불렀으나 대답은 없는 이 세계에서 지극한 정상성을 지닌 듯한 K라는 존재는 끝없이 배제되고 기각됩니다. 질문은 있으나 답 없는 세계에 의해 유린되어 버린 한 인물에 대한 은유가, 그 이니셜로 대표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조심스레 해 보았습니다.
이 밖에도 다른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는데 지면 관계(?) 상 마음에만 담아둡니다. 후기 늦어진 점 죄송합니다. 카프카 문우들, 오늘, 다시 뵙겠네요. 기다려집니다.^^
댓글목록
주호님의 댓글
주호
이토록 훌륭한 후기라니요. 감격스럽네요.
희음님의 후기가 올라오지 않아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했는데, 역시 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카프카와의 결별을 위해 세미나에 참여했다는 현님의 세미나 신청 이유는 저 또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전 "이토록 매력적인 카프카와 정말 결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다음 시간에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갈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럼 좀 이따 뵙겠습니다!
희음님의 댓글
희음
아, 주호 님, 손톱을 물어뜯으며, 라니요... 미안한 마음에, 제 손톱이 아려오는 듯합니다.
다음 후기 쓰게 될 때는 그 손톱 기억의 힘으로 일찌감치, 빠릿빠릿, 조목조목 더 욜씸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결별 선언이 참 모호한 것 같아요. 그 결별이란 게 어쩌면 결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내 몸 안으로 텍스트가 온전히 스며버리는 거죠. 더 이상 텍스트를 펼치지 않아도 될 만큼.
그리하여 카프카가 내 신체의 바탕과 바닥이 되어서, 그 힘으로 내가 튀어오르게 되는 것.
그리 되면 좋겠어요. 근데 말하고 보니, 왠지 좀 무시무시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ㅋㅋㅋ
삼월님의 댓글
삼월
세번째 카프카 세미나를 하러 가는 날,
전철 안에서 희음 님의 후기를 읽습니다.
지난주 결석을 한 터라 궁금함이 증폭되어
초조하게 글제목을 손으로 누르고, 화면을 내립니다
손톱을 물어뜯지는 않았으나,
나도 모르게 손톱 끝에 힘이 들어갑니다.
도무지 친해지지 않던 카프카였고,
지금도 어찌 읽어야할지 생각이 모이지 않아 당황스러웠는데
이대로 세미나원들의 이야기와 생각에 기대어 흘러가보아도
좋겠습니다.
용기와 즐거움, 날카로움까지 전해준 후기에 감사를 보냅니다.
조금 있다 세미나실에서 만나겠군요! ㅎㅎ
희음님의 댓글
희음
오늘도 즐거웠습니다. 카프카 시작한 뒤로 삼월 님과 처음 만나는 자리였는데, 그래서인지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 중요한 서류들 위에서 과자 부스러기나 부숴 먹는 그들, 물신처럼 귀히 여기던 증서로 종이배나 접던 촌장의 부인.
그런 부분에 대한 발견이 무척 멋졌습니다. 삼월 님 말씀 덕분에, 진리란 잘 닦인 포장도로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진리란 고작 블랙코메디나 스쳐지나는 값없는 말들, 혹은 무심코 하는 일상적인 행동들 위에서 툭 튀어 나오는 거라는,
진리에 대한 진리를 다시금 깨우치게 되었어요. 머리가 아니라, 신체나 말초에서 진실의 아지랑이는 피어오른다는 사실!
따뜻한 말씀도 깊이 감사하고요, 삼월 님. 언제나 그랬듯이요.^^
현님의 댓글
현
세미나에 참여하게 되면서 내심 걱정하면서도 기대했던 것은, 저에게 카프카가 조금 다르게 읽힐 여지가 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저에겐 여전히 카프카의 문장들은 고역입니다만, 세미나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부분이 있어서 늘 기대가 됩니다. 아마 세미나가 끝을 향해 갈수록 저는 더 기쁘게 결별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ㅎㅎ
그나저나 다른 무엇보다도 '성'을 읽기에 정말 적합한 계절이 아닐지요. '성'의 배경처럼 겨울이 길고 깊은 느낌이에요.
희음님의 댓글
희음
본문에 인용한 카프카의 어두운 한숨에 관한 문장들은, 현 님의 발견에 의한 것이었어요.
지난 시간에도 '남아메리카나 에스파냐'로 가자는 프리다의 말을 발견해서 말씀해 주셨지요.
철저하게 그 시간과 공간의 배경이 비현실적인, 다만 여섯 날의 행로라는 설정만이 소설의 현실감을 담보할 뿐인,
<성>에서 저렇듯 너무도 분명한 지명의 첫 언급. 그 덕에 우리는 그 지명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며,
그런 언급이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 아니라,
카프카 만의 화법과 기법에 대해서도 크게 감탄할 수 있었지요.
현 님이 함께하는 카프카 세미나는 내내 어둠의 빛으로 번창하고 창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현 님이 바라는 다른 시선의 획득, 다른 자리로의 도약 또한 성취해낼 수 있을 거라 믿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