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문학의 고고학 > 사드에 대한 강의 1 - 후기 +1
토라진
/ 2017-02-21
/ 조회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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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5일.
드디어, 푸코가 사드를 소개해 주었다.
그와의 만남은 잠깐 동안이었지만, 마치 동침이라도 한듯 강렬했다.그리고 함께 나누었던 공기가 아직도 어색하고 불편하게 남아 있다.
사드는 역시 '나쁜 남자'였다.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독하고, 그리고 그만큼 매혹적이었다. 푸코가 '진실'의 문제를 꺼내든 것은 어쩌면 '나쁜 남자'를 감당할 각오를 하라는 경고였는지 모르겠다.
사드는 맨 첫줄부터, 자신이 이야기하려는 바와 관련하여 그가 겪은 역겨움과 공포에 대해, 문인이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철학적이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리고, 사드는 말하기를, 범죄를 있는 그대로, 실제 있는 그대로, 즉 다시 말해, 의기양양하고도 숭고한 것으로서 보여주겠노라고 말합니다. - 210
사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책 하단의 주석을 달아 이렇게 적습니다. "맹세컨데, 이 이야기는 진실입니다. 나를 믿으세요. 엄청난 정확성으로 옮겨 적은 이야기입니다." - 213
온갖 성적 향락과 수많은 학살을 저지르는 사드의 소설 속 이야기들이 모두 진실이라니......하지만 여기서 '진실'은 '사실'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추론이자, 욕망의 수행을 지탱해주는 혹은 욕망의 수행에 의해 촉진되는 합리성의 형식이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의 상식과 이성 앞에 발가벗고 물구나무 서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내가 말을 건네는 대상은 여러분의 감수성도 마음도 아닌, 여러분의 이성, 오직 이성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하나의 근본적인 진리, 악덕이 늘 보상을 받고 미덕은 늘 벌을 받는다는 진리를 증명하고 싶어요 - 217
' 악덕은 보상받고 미덕은 벌을 받는'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사드는 자신의 이야기를 조정해나간다. 또한 이런 글쓰기는 에로틱한 꿈을 성적 실천과 이어주는 하나의 특정한 방식이며 몽환의 구축, 성적 실천의 구축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단계, 몽상으로부터 실행으로 나아가는 순수하고도 단순한 하나의 단계였다.
푸코는 이런 사드를 '성의 경찰관'이라 별명을 지어주면서 눈을 찡긋거린다. 사드가 '특정한 도구적 합리성의 전개를 동반하는 하나의 규율적 에로티즘의 촉진자'라는 것에 암묵적인 동의를 구하려는 듯이 말이다.
"우선 보름 동안 음탕한 짓을 하지 말아 봐요. 즐거운 일도 하고 재밌는 일도 하지만, 여하튼 보름이 될 때까지는 음탕한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아 봐요. 그리고 보름이 지나면 혼자 자 봐요. 조용하게, 침묵 속에서, 그리고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말이에요. 그리고 이제 당신이 이 보름 동안 물리쳤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봐요. 그 다음엔, 점차로 강도를 높여가면서, 당신의 상상력에 다양한 종류의 일탈 행위들을 허락하는 자유를 주세요. 이런 상상들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자세하게 그려보요. 그리고 이것들을 연속적으로 계속해서 되새겨 봐요......광적인 흥분이 당신의 감각을 사로잡고, 이미 절정에 다다른 당신은 '음탕한 년'처럼 오르가즘을 느끼게 될 거예요. 일단 이렇게 되면, 다시 춧불을 켜고 방금 전까지 당신을 불태웠던 일탈을, 세세한 부분을 알려줄 어떤 상황도 빼놓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탁자 위에서 세세히 옮겨 적어 봐요......그리고 일을 하다가 잠드는 거예요. 다음 날 일어나서 그 글을 다시 읽어봐요......그리고 이제 이 생각을 구체화해 보면서, 당신의 모리가 이끄는 대로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마음대로 모두 덧붙여 봐요, 일단 직접 해보면, 당신은 어떤 방식이 자기에게 가장 잘 맞는 거리두기의 방식인지를 알게 될 거예요. - 221
사드는 글쓰기와 성행위의 관계를 마치 눈 앞에 재료를 두고 요리법을 설명하듯이 말한다. 이에 대해 푸코가 한 마디를 덧붙인다. "일단 직접 해보면......" 하지만 직접 해보게 되면 그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좋은 글을 써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자기 어머니의 연인인 양, 어머니의 품 속으로 뛰어들 듯, 자연(본성 혹은 본질) 속으로 스스로를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가는 어머니 자연과 근친상관을 행하는 아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상상력의 경계 너머 가장 먼 곳까지 밀어붙일 수 있어야 한다. 그곳에서 가장 고독하고 광기어린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라도 말이다.
현실과 상상력의 경계를 뛰어 넘고, 향락의 원리를 되풀이하면서 글쓰기는 드디어 한게 자체에 대한 탈한계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다. 이 때는 결코 다시 뒤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는 이미 범죄자가 되어 있는 몸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범죄는 특이한 한 존재로서의 개인으로 나타날 때 사라진다. 범죄가 사라지는 곳에는 불규칙성의 관념이 우뚝 솟아오른다. 그것은 나를 위협하는 동시에 흥분시켰다.
하지만 흥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드가 말하는 글쓰기가, 되풀이되는 욕망, 한정이 없는 욕망, 어떤 금지의 법도 갖지 않는 욕망, 어떤 억제도 모르는 욕망, 외부가 없는 욕망이라는 형식을 갖는 진실이라는 것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실에 대한 진정한 용기를 보여준, 한 번도 보지 못한 새로운 신체를 엿보게 해준 사드. 그를 안내해준 푸코에게 나는 무슨 말을 건네야 할까? 깐깐하고 냉철하게 자신을 벼리는 일에 매진했던 푸코에게......그에게 건네는 말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은, 어쩌면 보름 동안 침묵과 어둠 속에서 금욕하는 일과도 같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서 한계도 경계도 없이 나는 그에게 무언가를 쏟아붓게 될까? 글쎄, 알 수 없는 일이다. 최소한 스스로 솟아오르는 관념의 신체를 갖게 되는 때가 되면 가능하게 될는지도......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그래요. 사드를 만났는데, 이 정도 독한 후기는 나와주어야... ㅎㅎ 흐뭇하게 잘 읽었습니다.
일주일 넘게 사드와 함께 지낸 듯 합니다. 나쁜 노무시키. 사악하고 뻔뻔한 인간.
푸코가 소개해주는 사드를 만날려고 음탕함과는 거리가 먼 '미덕의 불운'을 늦은 밤 꺼내서 읽을 때부터 조금은 깨달았지요.
두 번째 만나는 사드는 더 사악하고, 독해졌습니다.
사람들을 죽이고, 해체하고, 그러다 서로를 죽이고, 결국에는 자신의 죽음마저 최상의 쾌락으로 받아들이는,
사드의 주인공들에 대해 발제까지 하고 보니 이것이 좀비의 삶이로구나, 느껴지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감상이 밀려옵니다. 그 시간 토라진 님이랑 함께 못한다고 생각하니 자꾸만 주절주절 적게 되네요.
역시 진실을 대할 때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가 봅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스스로 솟아오르는 관념의 신체에 대해 더 이야기해줘요!